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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아네모네~~~ ♬

울고 넘는 대관령~~~ ♬ 대관령에서 강릉과 동해를 내려다 보며 한없이 자유를 갈망하던 대관령( K-Juliet ,공군 파견대) 나그네~~~ 바람도 쉬어 넘고 구름도 쉬어 넘는 고봉 하늘고개 대관령 령 아래 님이 오신다면 아흔 아홉 굽이진 고개~~~ 나는 단숨에 내쳐 한굽이로 달려가리라. *갓 스무살 대관령 청년길손은 아름다운 님을 아름답게 그리던 시절, 령 떠난 기나긴 세월~~~, 지금도 그 세월은 흐르고 있으리라... 대관령 구비도는 산골짜기 개울물 여울져 흐르는 물소리 따라~ 울고 넘는 대관령 울고넘는 大關嶺 1960 朴載弘박재홍, 文藝部문예부 작사, 全吾承전오승 작곡 *************************************************************************..

The Story from Me 2021.02.13

대관령(大關嶺) 길손

대관령 마루에서 본 강릉과 동해: 저 멀리 푸르른 동해와 수평선 맞닿은 하늘... 대관령(大關嶺)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과 평창군 대관령면 사이에 위치한 해발832m의 고개. 대관령 지역은 태백산맥(백두대간) 동쪽 해안산맥의 중부로서, 황병산(黃柄山, 1,407m)·노인봉(老人峯, 1,338m)·선자령(仙子嶺, 1,157m)·능경봉(陵京峰, 1,123m)·고루포기산(1,238m)· 발왕산(發旺山, 1,458m) 등 높은 산지로 둘러싸인 해발고도 700m 이상의 평탄면(平坦面)과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신선이 살던 심심산골 "고루포기 마을"의 산, ’소은백이산(所隱柏伊山)’, 즉 ’고루포기산’은 울창한 숲과 초원지대와 야생화가 조화를 이루는 환상적인 곳이라.... *********************..

Wonderful World 2021.02.13

마음의 고향

마음의故鄕 1949년 2월 9일 수도극장 개봉 출연 최은희, 유민, 변기종, 오헌룡, 최운봉, 김선영, 석금성 윤용규(감독) 함세덕 희곡(원작), 「동승(童僧)」(1939)을 각색하여 동서영화기업사에서 1949년에 제작한 문예영화. 이 영화는 1950년 4월 최초로 프랑스와 문화교류의 일환으로, 프란시 날프 영화사의 「꿈속의 노래」(1949)와 교환 상영되었다. 줄거리 도성(유민)은 어릴 때 산사에 버려진 업둥이로 주지 노스님(변기종) 손에 불도를 배우며 자라난 동승이다. 불도에는 관심이 없고 말썽만 부리는 그는 보지 못한 어머니를 늘 그리워한다. 그러던 중 성인이 된 어느날 도성은 자식을 잃고 공양을 드리러 절을 찾아온 젊은 미망인- 서울 아씨(최은희)에게 반해 그녀에게서 모정을 느낀다. 젊은 미망인에..

Korean Arts 2021.02.13

마의태자(麻衣太子)

麻衣太子 墓 ~인제군 남면 김부리와 갑둔리에 마의 태자와 관련한 전설과 유적이 산재하고 있다~ 마의태자(麻衣太子. 생몰년 미상)는 통일신라 제56대 경순왕(敬順王)의 태자(太子)이다. 이름은 사서에 전하지 않으며, 후대에 마의를 입고 살았다 하여 마의 태자라 부른다.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과 왕후 죽방부인 사이 첫째 왕자다. 935년 10월 부왕 경순왕이 군신회의를 소집하여 나라를 고려에 귀부(歸附)하려 하자 이를 반대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여, 개골산(지금의 금강산)에 들어가 바위 아래 집을 짓고 마의를 입고서 초식(草食)으로 연명하다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왕자 이름은 사서에 전하지 않으며, 단지 왕자라 할 뿐 장자(長子)니 태자니 하는 말은 없다. 다만 후대에 태자 또는 마의(麻衣)를 입고 살았다 ..

Korean Arts 2021.02.13

사나이 순정

사나이 순정 1960 박재홍 작사 : 반야월 작곡 : 이인권 https://www.youtube.com/watch?v=V3aPz3mGfNo 1.♬ 사나이 순정이라 변함이 없이 괴로우나 즐거우나 그대와 함께 고난의 인생사막 가시밭 길을 웃으며 걸어가자 지금 그 맹서 행복은 어이이리 멀기만 하나 2.♬ 인생의 봄한때라 시름도 많아 외로우나 괴로우나 그대와 같이 밤하늘 별빛같은 희망을 안고 영원을 약속하며 바친 그 사랑 새파란 푸른꿈이 품에 안기네 3.♬ 사나이 정열이라 태양과 같이 비가오나 눈이오나 그대를 위해 슬픔도 물리치고 눈물도 참고 따스한 보금자리 이룩한 사랑 동트는 아침해가 창에 비치네 https://www.youtube.com/watch?v=sB8Bjyb7dgwhttps://www.youtube...

Korean Arts 2021.02.13

대동강(大同江) 달밤

강을 건너 시집가는 행렬. 머리에 짐을 인 아낙들이 청류벽 아래 강변길을 지나고 있다. 멀리 모란대와 그 아래쪽에 부벽루 그리고 우측 강 건너로 능라도가 보인다. 꿈에 본 대동강 1956 박재홍 : 노래 박대림 : 작사 전오승 : 작곡 1.綾羅島 가물가물 구비치는 大同江물 모란봉이 어드메냐 말 물어 가며 풀피리 불어 보던 그 時節이 그리워 自由의 鐘이울면~~ 찾아가리 故鄕 山川 2.瑞氣山 봉우리에 저녁빛이 짙어지면 乙密臺가 어드메냐 말 물어 가며 얼룩소 고삐 잡던 그 세월이 그리워 무궁화 꺾~어 들고~~더듬으리 그 추억을 3.내 故鄕 산 마루에 黃昏 빛이 짙어지면 내 故鄕이 그립구나 반가운 얼굴 내 故鄕을 등질 때는 그리울 줄 몰랐건만 정든땅 그리움이~~ 그 時節에 故鄕山川) ​고구려의 도읍 평양성의 부..

Korean Arts 2021.02.12

유정천리(有情千里)

스타365 • 박재홍(朴載弘)은 1924년 4월 7일 생,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시흥리 109번지가 그의 고향 입니다. 토목건설 청부업을 하는 아버지의 두 형제 중 맞이로 태어난 박재홍은 시흥에서 보통학교 3학년 때 함경남도 함흥에 있는 신흥 보통학교로 전학을 간 후 아버지의 사업장을 따라 여러 군데 전전 하면서 학교를 옮겼습니다.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 하기는 했으나 역시 아버지의 사업장을 따라서 전전하는 동안에 학업을 제대로 계속 하지 못하고 단계 수력 발전소, 수풍 수력 발전소 등에서 전기 기술을 습득 하기도 했던 박재홍. 해방되던 해 서울에 있는 조선 전선 주식회사에 시험을 보고 입사한 박재홍은 그 다음해 그러니까 1946년 중앙극장에서 개최된 오케이 레코드가 주최하는 전국 콩쿨에 당당 ..

Korean Arts 2021.02.12

물방아 도는 내력(來歷)

물방아 도는 내력(來歷) 1955 박재홍, 손로원 작사, 이재호 작곡 벼슬도 싫다만은 명예도 싫어 정든 땅 언덕위에 초가집 짓고 낮이면 밭에 나가 길쌈을 매고 밤이면 사랑방에 새끼 꼬면서 새들이 우는 속을 알아보련다 서울이 좋다지만 나는야 싫어 흐르는 시냇가에 다리를 놓고 고향을 잃은 길손 건너게 하며 봄이면 버들피리 꺾어 불면서 물레방아 도는 내력 알아버련다 사랑도 싫다만은 황금도 싫어 새파란 산기슭에 달이뜨면 은 바위밑 토끼들과 이야기하고 마을의 등잔불을 바라보면서 뻐꾹새 우는곡절 알아보련다 草家故鄕초가고향 1958 半夜月반야월 작사, 金秉秀김병수 작편곡 향수(鄕愁 / Nostalgia), 1953 배석영 작사 / 이재호 작곡 부모형제 이별하고 낯설은 타관에서 어머님의 자장가를 노래하던 그 시절이 슬..

Korean Arts 2021.02.12

울고넘는 박달재

박재홍 히트 멜로디 선집 박재홍 (朴載弘) 1924년 4월 7일 경기도 시흥군에서 태어났고, 1947년 무렵 개최된 가수선발대회에서 당선되어 가수로 데뷔했다. 194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인기 가수로 활동하며 많은 히트곡 음반을 발표했고, 이후 신곡 발표는 많지 않았으나 원로 가수로서 무대 활동을 했다. 생애 출생지는 경기도 시흥군이지만 어린 시절 함경남도 함흥시로 이주해 성장한 것으로 전한다. 가수로 데뷔하기 이전 광복 전후에는 전기기술자로 일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1947년 무렵 가수선발대회 당선을 계기로 데뷔해 많은 인기곡을 발표했고, 한국전쟁 동안과 그 직후 1950년대 중반에는 피난지 부산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신곡 발표 중단 이후에도 공연과 방송 출연 등으로 활동을 꾸준히 이어..

Korean Arts 2021.02.12

박재홍(朴載弘)의 삶의 발자국

박재홍(朴載弘)은 1924년 4월 7일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시흥리 109번지에서 출생. 1---가수 박재홍씨의 고향은 경기도 시흥군 복면 시흥리로 현재는 서울시에 편입되어있다. 1924년,4월 7일 부친 박순학씨와 모친 이순이씨 사이에 4형제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세살때 아버지등에 업혀서 이북땅으로 갔다. 아버지 직업이 수력발전소 건설현장에서 감독으로 일하시는 관계로 한곳에 정착해 살아보지 못했다. 해서 그가 철이들어 이사 다니던곳,학교는 함남신흥 보통학교 를 졸업했던 희미한 유년시절 뿐이었다한다. 2---해서 박재홍씨의 어린시절 은 세가지추억으로 요약될수있다. 유난히 배가 고팠다는것, 집과 학교를 자주 옮겨다녔다는것, 그리고 남달리 노래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유난히 배가고팠던것은 수력발전소 하..

Beautiful People 2021.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