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Arts

울고넘는 박달재

Jimie 2021. 2. 12. 20:42

박재홍 히트 멜로디 선집

 

 

박재홍 (朴載弘)

 

1924년 4월 7일 경기도 시흥군에서 태어났고, 1947년 무렵 개최된 가수선발대회에서 당선되어 가수로 데뷔했다. 194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인기 가수로 활동하며 많은 히트곡 음반을 발표했고, 이후 신곡 발표는 많지 않았으나 원로 가수로서 무대 활동을 했다.

 

생애

출생지는 경기도 시흥군이지만 어린 시절 함경남도 함흥시로 이주해 성장한 것으로 전한다. 가수로 데뷔하기 이전 광복 전후에는 전기기술자로 일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1947년 무렵 가수선발대회 당선을 계기로 데뷔해 많은 인기곡을 발표했고, 한국전쟁 동안과 그 직후 1950년대 중반에는 피난지 부산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신곡 발표 중단 이후에도 공연과 방송 출연 등으로 활동을 꾸준히 이어 갔으나, 말년에 지병이 악화되어 1989년 3월 21일 타계했다.

 

활동사항

데뷔곡은 1948년 오케레코드에서 옥두옥과 함께 듀엣으로 발표한 「눈물의 오리정」이며, 이후 서울레코드ㆍ고려레코드ㆍ도미도레코드ㆍ미도파레코드ㆍ신세기레코드 등에서 전속가수로 활동하며 많은 인기곡을 발표했다. 대표작으로는 「마음의 사랑」(1949년), 「울고 넘는 박달재」(1950년), 「물방아 도는 내력」(1953년), 「경상도 아가씨」(1955년), 「휘파람 불며」(1957년), 「유정천리」(1959년) 등을 들 수 있다. 당초 영화 주제가로 발표되었던 「유정천리」는 1960년 대통령선거 야당 후보였던 조병옥의 갑작스런 타계와 관련해 대중의 자발적인 추모 개사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1940년대 인기 가수였던 백년설의 뒤를 이어 구수함과 포근함이 느껴지는 서민적 대중가요로 인기를 모았고, 담백하면서도 힘 있는 창법으로 주목을 받았다.

 

 

울고넘는 박달재

반야월 작사 / 김교성 작곡,

1948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넘는 우리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소 소리쳤소 이가슴이 터지도록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두고 가는님아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가소

도토리 묵을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박달재 하늘고개 울고넘는 눈물고개

돌부리 걷어차며 돌아서는 이별길아

도라지 꽃이피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금봉아 불러보나 산울림만 외롭구나

 

*박달재는 충북 제천시 봉양읍에 위치한 고개로서 천등산(天登山) 박달재라고도 하며, 조선시대에는 천등산과 지등산이 연이은 마루라는 뜻에서 이등령으로 불리기도 했다(해발 453m, 길이 500m)

*물항라 저고리: 항라(亢羅)로 만든 한복 윗옷.....항라는 명주실, 모시실, 무명실로 씨를 세 올이나 다섯 올씩 걸러서 구멍이 송송 뚫어지게 짠 것을 말한다

 

*본명이 박창오(朴昌吾, 1917~2012,마산), 가수명이 진방남(秦芳男), 작사가 예명이 반야월(半夜月)인 선생은 '단장의 미아리고개' 등 3,000여곡의 노랫말을 쓴 작사가로, 그리고 불효자(不孝子)는 웁니다' 등 100여곡을 부른 가수로서 가요계의 거장(巨匠)으로 회자

 

*김교성(金敎聲: 1904-1961, 서울): 1930~40년대에 신인가수 선발대회 심사위원으로 활약하면서, 진방남(秦芳男)·백난아(白蘭兒)·박재홍(朴載弘) 등을 발굴....대표곡: 넋두리 20년ㆍ사막의 애상곡(진방남), 찔레꽃ㆍ직녀성(백난아), 자명고(自鳴鼓)사랑ㆍ울고 넘는 박달재(박재홍)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