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 Human Geography 195

스탈린 때 350만 굶어죽었다, 우크라이나는 그 악몽 잊지않는다

스탈린 때 350만 굶어죽었다, 우크라이나는 그 악몽 잊지않는다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61] 우크라이나 대기근 ‘홀로도모르’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2.03.15 03:00 얼어붙은 감자 캐는 어린이들 - 1930년대 초반 극심한 기근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약 350만명이 굶어 죽는 비극이 벌어졌다. 소련이 집단 농장, 국영 농장에 농민들을 강제 편입시킨 데 이어 대량 공출로 곡물을 수탈하면서 굶주림이 심해졌다. 스탈린은 저항하는 우크라이나 농민들을 소비에트의 적으로 규정하고 가혹하게 처벌했다. 1933년에는 굶어 죽는 이가 하루 평균 1만5000명 규모로 늘어날 정도였다. 사진은 1933년 도네츠크의 한 집단 농장에서 어린이들이 얼어붙은 감자를 캐는 장면이다. /위키피디아 193..

“박정희 후계 모의했다는 ‘윤필용 사건’은 모함… 그래도 朴리더십 존경”

“박정희 후계 모의했다는 ‘윤필용 사건’은 모함… 그래도 朴리더십 존경” [아무튼, 주말] ‘윤필용 쿠데타’의 전말 책으로 낸 지성한 회장 최인준 기자 입력 2022.02.19 03:00 1973년 3월 9일 육군보안사령부 서빙고 분실. 영문도 모르는 채 조사실로 끌려온 40대 육군 대령은 조사관이 시키는 대로 허겁지겁 옷을 갈아입었다. 계급장이 없는 해진 군복이었다. 며칠 동안 강도 높은 취조가 계속됐다. “수도경비사령관 윤필용 소장이 쿠데타에 성공하면 자리를 내주기로 했다면서? 모두 털어놔!” 세간에 박정희 정권 최대 권력 스캔들로 알려진 ‘윤필용 쿠데타 사건’의 시작이었다. 윤 소장이 한 술자리에서 쿠데타를 모의했다는 의혹이었다. 군 재판에서 이등병으로 강등된 윤 소장은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옥살..

크림 전쟁과 나이팅게일

흑해를 둘러싼 러시아와 열강들의 각축전 크림 전쟁 유럽의 강대국이 되고 싶었던 러시아의 남하 정책 최후의 종교 전쟁이었던 30년 전쟁 이후 17세기 말부터 유럽의 열강들은 자국의 세력을 확장해 나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특히 경제적 이권을 차지하기 위한 영토 분쟁이 잦아지면서 군사력을 더욱 강화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찌감치 중상주의(16세기 말부터 18세기에 걸쳐 유럽에서 지배적이었던 경제 정책. 나라의 부를 늘리려고 상업을 중히 여김) 정책을 앞세워 절대 군주제(군주가 국가 통치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는 정치 체제)를 완성한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아직도 중세 봉건적 농노제가 기반인 러시아는 후진성(일정한 수준을 기준으로 할 때 그보다 뒤떨어진 상태)을 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1..

크림 반도의 역사 (6)

8. 2 차 대전 시기의 크림 반도 2 차 대전 시기에도 의심할 바 없이 크림 반도의 전략적 가치는 매우 컸다. 일단 흑해함대의 본부가 있는 곳으로써 소련의 주요 전략 기지였기 때문에 독일군이 이를 점령하지 않고는 더 동쪽으로 진출하기는 위험했다. 소련을 기습 침공한 독일군은 빠른 속도로 주변 지역을 장악했고 1941 년 겨울이 오기전 크림 반도 대부분을 장악했으나 단 한곳, 흑해 함대의 기지이자 소련이 자랑하는 요새인 세바스토폴 (Sevastopol) 을 점령하지는 못했다. 아무리 1941 년 당시의 독일군이 기세 등등하고 소련군이 공황상태였다곤 해도 세바스토폴은 워낙 요새화가 잘 되어 있어 독일군도 간단하게 점령하기는 힘들었기 때문이다. 크림 전쟁 이후 가장 격렬한 요새 포위전이 바로 이 세바스토폴 ..

크림 반도의 역사 (5)

6. 혁명기의 크림 반도 크림 전쟁이 끝나고 한동안 평화를 누렸던 크림 반도가 다시 격동의 시대로 진입한 것은 1917 년 러시아 혁명과 함께였다. 당시 볼셰비키 혁명 정권은 명칭과는 달리 러시아 내에서 소수파에 지나지 않았다. 1920 년대 스탈린이 정권을 잡고도 볼셰비키는 '러시아라는 호수에 떨어진 붉은 잉크 한 방울' 이라는 표현처럼 널리 확산되지 못한 상태였다. 이런 상태였기 때문에 차르 니콜라이 2세의 치명적인 무능함과 이후 임시 정부의 혼란 덕분에 정권을 잡은 소비에트는 초기 권력이 매우 취약했다. 결국 다양한 반혁명 혹은 혁명 세력과의 내전은 불가피했다. 이 시기에 볼셰비키 혁명 정권과 전쟁을 치른 다양한 반혁명 세력 중에는 사실 러시아 제국의 붕괴를 틈타 독립을 쟁취하려는 민족주의자들도 다..

크림 반도의 역사 (4)

5. 크림 전쟁 ​ ​크림 전쟁은 러시아에서는 동방전쟁 (Eastern War : Восточная война)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실 전쟁 자체가 흑해와 카프카스 지방, 아나톨리아 지방, 발트해, 백해 등에서도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크림 전쟁은 다소 정확하지 않은 명칭일 수도 있으나 가장 중요한 육상 전투가 벌어진 지역이 크림 반도 특히 세바스토폴 요새라는 점을 생각하면 적당한 명칭이다. ​ ​ 기본적으로 크림 전쟁은 러시아 남진 정책과 이에 반대하는 열강들의 전쟁이었으나 처음 시작은 매우 엉뚱하게도 흑해에서 한참 떨어진 예루살렘이었다. 1851 년 프랑스 제국의 황제인 나폴레옹 3 세는 당시 오스만 제국의 영토인 팔레스타인에서 카톨릭 교도의 특권을 인정하게 하는 내용의 조약을 오스만 제국과 맺는..

크림 반도의 역사 (3)

4. 러시아의 남하 이반 뇌제 사후 혼란을 겪던 러시아는 17 세기 후반 로마노프 왕조는 물론이고 러시아 역사상 가장 걸출한 군주인 표트르 대제 (Pyotr Alexeyevich, Пётр Вели́кий, Pyotr Velikiy) 시대에 이르러 주변으로의 강력한 팽창 정책을 수행했다. 표트르 대제의 팽창 정책이 이전의 러시아의 팽창과 가진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바로 서방과의 창을 원했다는 점과 바다의 통제권을 가지기 희망했다는 점이다. 본래 러시아는 육군 위주의 육지 국가이다. 비록 러시아가 강을 중심으로 발달했다고 해도 이점은 분명했다. 이와 같은 역사에서 변화를 시도했던 인물은 바로 이반 뇌제로 이전에 설명한 리보니아 전쟁이 바로 그 첫번째 시도였다. 즉 발트해로의 진출을 노리고 25 년에..

크림 반도의 역사 (1, 2)

2014 년 초 우크라이나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Viktor Fedorovych Yanukovych )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혁명으로 실각한 이후 크림 반도의 정세는 요동치고 있습니다. 크림 지역에 러시아 군이 증강되고 크림 자치 공화국이 러시아와의 합병을 준비하는 한편으로 우크라이나 과도 정부와 서방측은 이에 반발하면서 신냉전이라는 이야기도 나오는 판입니다. 이글을 쓰는 시점에서 앞으로 이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 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크림 반도의 역사에 대해서는 간략히 적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간단한 포스트를 준비했습니다. 작성자 고든. 간략히 보는 크림 반도의 역사 (1) 1. 고대의 크림 반도 크림 반도에 최초 살았던 민족이 어느 민족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확실한 것은 이 지역이 위치상 교통의 ..

크림반도의 역사 개관

크림 반도는 그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다양한 민족과 국가의 지배를 받아왔으며 주변 강대국들의 의사에 좌우되어 각축장이 되어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선사 시대, 고대 크림 반도에 인간이 정착했다는 고고학적 증거는 중기 구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키익-코바(Kiik-Koba) 동굴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은 대략 8만 년 전의 것이다.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7세기 사이에 고대 그리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기원전 5세기에는 보스포루스 왕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기원전 5세기 말에는 케르소네소스가 건설되었다.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 사이에 스키타이 왕국의 중심지가 프리드네프로비예(드네프르 강 연안 지역)에서 크림 반도로 옮겨졌다. 기원전 2세기에는 스키타이인들이 그리스인들과 해안 항구를 차지하..

크림반도

크림 반도 Krymsky Poluostrov 위치 : 흑해와 아조프 해 사이 인구 : 2,248,400명 (2014 추계) 면적 : 27,000㎢. 크림 반도(Krymsky Poluostrov) 흑해와 아조프 해 사이에 있는 반도. 페레코프 지협을 통해 본토와 연결되지만 사실상 섬에 가까운 모양을 하고 있다. 반도의 북부와 중부는 평야이며, 남부 쪽으로 크림 산맥이 솟아 있다. 따뜻한 남부의 좁은 해안평야는 주요 휴양지이자 보양지이다. 오랫동안 타타르족의 본거지였으며, 지정학적으로 주변 국가들이 노리는 요충지였다. 18세기에 러시아에 합병된 후 소비에트 연방의 우크라이나에 속한 자치공화국이었으며, 2014년 독립하여 러시아에 합병되었으나 합병의 적법성에 대해 우크라이나 및 서방 국가들간의 분쟁 지역이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