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 Human Geography

크림반도

Jimie 2022. 2. 14. 05:47

 

크림 반도 Krymsky Poluostrov

위치 : 흑해와 아조프 해 사이

인구 : 2,248,400명 (2014 추계)

면적 : 27,000㎢.

 

                                                       크림 반도(Krymsky Poluostrov)

 

흑해와 아조프 해 사이에 있는 반도. 

페레코프 지협을 통해 본토와 연결되지만 사실상 섬에 가까운 모양을 하고 있다. 

반도의 북부와 중부는 평야이며, 남부 쪽으로 크림 산맥이 솟아 있다. 따뜻한 남부의 좁은 해안평야는 주요 휴양지이자 보양지이다. 

 

오랫동안 타타르족의 본거지였으며, 지정학적으로 주변 국가들이 노리는 요충지였다. 18세기에 러시아에 합병된 후 소비에트 연방의 우크라이나에 속한 자치공화국이었으며,  2014년 독립하여 러시아에 합병되었으나 합병의 적법성에 대해 우크라이나 및 서방 국가들간의 분쟁 지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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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환경

크림 반도는 흑해와 아조프 해 사이에 자리잡고 있으며, 페레코프 지협을 통해 본토와 연결된다. 시바시 염호 및 염습지가 반도와 본토 사이에 놓여 있다. 긴 모래톱인 아라바트 반도에 의해 아조프 해와 분리되는 시바시의 바닷물은 페레코프 지협의 크라스노페레콥스크의 화학공업단지에 공급된다. 크림 반도는 크게 세 지역으로 나뉜다.

 

반도의 북부와 중부(전체 면적의 약 75%)는 지표수가 거의 없는 건조한 스텝으로 이루어진 평평한 평야이다. 두 번째 지역인 케르치 반도는 러시아 방향으로 향한 지역으로 철광석이 풍부한 낮은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 번째 지역은 남쪽의 숲이 울창한 크림 산맥 지역이다. 이 산맥은 봉우리가 평평한 석회암 산괴로서, 북쪽에서 남쪽으로 갈수록 높아지며, 최고봉은 로만코쉬 산(1,545m)이다. 산에는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지중해성 기후를 보여주는 남부의 좁은 해안평야는 주요 휴양지이다.

산업과 경제

남부의 낮은 산지에는 포도농장이 넓게 분포하며, 꽃과 담배 농사도 주요 산업이다. 많은 도시에서 농산물 가공과 포도주를 생산한다. 행정 중심지인 심페로폴은 크림 산맥의 산기슭에 있는데, 경공업과 서비스업이 발달했으며 교통의 중심지이다. 노치니에 있는 크림 천문대는 동유럽에서 가장 큰 천문학 연구 시설로 알려져 있다. 남부 해안을 따라 얄타, 구르주프, 알루슈타, 알프카 등의 지역에서 관광업이 발달해 있다. 최적의 조건을 갖춘 항구도시인 세바스토폴은 오랫동안 러시아의 해군기지로 쓰였다.

역사

고대에는 케르소네소스 타우리카라고 불렸으며, BC 6세기경부터 그리스의 식민지 개척자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스키타이(흑해, 카스피 해 북동부를 중심으로 활약했던 옛 왕국)에 의해 반도 내륙지역을 점령당하기도 했다. 그뒤 키메리오스 보스포루스 왕국의 수중에 들어갔으나 이 왕국도 결국에는 이방인들의 침입으로 붕괴되었다. BC 2세기 무렵에는 스키타이 왕국의 중심지였으며, BC 1세기 경부터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4세기에는 동로마 제국의 일부로 편입되었고, 오랫동안 바흐치사라이를 수도로 삼았던 타타르족의 본거지였으며, 1783년 러시아에 합병되었다. 1853년에는 러시아와 영국 등의 동맹국과 벌인 크림 전쟁의 무대가 되었다. 1921년에는 소비에트 연방의 일원으로 타타르족의 '크림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공화국'이 수립되었으나, 나치에 협력했다는 혐의로 1944년 폐지되고 주로 격하되었다.

 

타타르족은 러시아에 의해 1945년 중앙 아시아와 시베리아로 추방되었다가 법적으로 1967년 복권되었으나 귀환은 허용되지 않았다. 1954년 우크라이나 공화국에 양도되었다가 1991년 크림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공화국이 수립되었고, 이듬해에는 크림 자치공화국이 수립되어 소련이 붕괴하면서 독립한 우크라이나에 편입되었다.

현황

2014년 크림 자치공화국은 친 서방 정책을 취한 우크라이나 정부에 반발하여 크림 공화국으로 독립을 시도한 데 이어, 3월에는 러시아에 피합병하기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그 결과 합병 찬성으로 발표되면서 러시아와의 합병 수순에 돌입했다. 러시아에서도 크림 반도의 합병안을 통과시켰으며, 2015년 1월 공식적으로 러시아의 한 행정구역으로 합병되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 서방 국가들이 이에 반발하면서 국제적 문제로 불거졌고, 국제연합에서는 총회 결의를 통해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을 불법이라고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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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와 크림반도

 

크림반도를 둘러싸고 크림공화국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을 펼칠 수 밖에 없는지는 과거 역사속에 매우 뚜렷하게 나타난다.

 

두 나라의 기본적인 입장은

러시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영토 일부일 뿐이다.

VS

우크라이나:  유럽국가의 일원이 되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

 

양국의 생각이 완전히 다르다. 물론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생각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반면 러시아 국민들 대부분의 생각은 같다.) 우크라이나의 민족 구성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러시아로부터의 '실질적' 독립을 원하는 국민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양국이 충돌하는 곳이 바로 크림반도다. 이곳을 둘러싼 갈등과 증오, 대립의 해묵은 역사는 원만한 문제해결이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한데  민족, 종교적으로 매우 복잡한 상황이다.

 

 Crimea 크림반도.

 

과거 소련의 일부로 체르노빌 폭발이 있었던 우크라이나는  '전략적 요충지' 크림반도를 둘러싸고 이웃과 에정된 충돌을피치 못할 운명을 가지고 있다 하겠다.

 

 

크림반도를 둘러싸고 우크라이나-러시아의 역사는 전개되었다.

 

크림반도는 수 세기동안  영토의 주인이 끊임없이 바뀌면서 갈등의 중심지가 되었다.  자연스레 식민지와 독립국가를 번갈아가며 경험하게 되는 운명을 타고난 셈이다.

 

비극의 역사가 본격 시작된 것은 1783년이었다.

당시 유럽대륙의 지배자였던 오토만 제국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러시아 제국은 크림반도를 자국영토에 편입시켜버렸다. 그로부터 70년 뒤에 일어난 크림전쟁(1853~1856,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 전쟁을 인류 최초의 세계대전으로 분류하기도 한다.)은 크림반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크림전쟁의 구도는 프랑스+영국+오토만 제국 vs 러시아였다. 그런데 이 두 세력의 전장인 크림반도는 온 땅이 폐허가 되고 말았다.  이 전쟁의 목적은 매우 분명했다. 유럽대륙(발칸반도)으로 영향력을 확대해가던 러시아 제국과 이를 몰아내려는 유럽세력이  맞붙은 전쟁이었던 것(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이 활약한 전쟁.)

 

이 전쟁은 러시아의 참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크림반도는 여전히 러시아 영토로 남게 된다.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식민지로 남거나 통일을 못한 채 분단국가로 남을 수 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크림반도는 독립할 수 있는 기회를 그냥 흘려보낸 것이니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가시밭길 뿐이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크림반도는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의 일원이 된다.  1944년 당시 소련 지도자 스탈린은 크림반도에 거주하고 있던 원주민, 타타르족 전체를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킨다. 실제로는 추방이나 다름없었다.  2차 대전 중 타타르족이 히틀러의 나치와 협력했다는 혐의였다.(하지만 타타르족이 나치와 협력했다는 증거는 별로 없었으나 강제이주의 구실로 삼았다.)

 

온갖 핍박과 박해에 시달리던 크림반도에 서광이 비춘 것은건 1954년이었다. 당시 소련 지도자 흐루시초프가 크림반도를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에서 떼내어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전환시켜준 것이다.  흐루시초프 자신이 우크라이나 소수민족 출신으로 자신의 민족, 나라를 위해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 소속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스탈린 시대에 비해서는 한결 나아진 변화였다.

 

스탈린과 흐루시초프.

흐루시초프는 스탈인의 뒤를 이어 소련 최고의 지도자에 오른다.

유구한 역사의 우크라이나는  동서양의 중요 무역로가 지나가던 거점도시--  중세시대에도 수도였던 지금의 수도키에프를 중심으로 한때 유럽의 최대 도시로 번영할 정도였다. 그런데 우크라이나도 건국 이래 상당 기간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식민지로 지냈던 비운의 역사를 맞이 했다. 1793년 폴란드가 분할되고부터는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그때부터 지금까지 러시아의 영향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도 독립을 위해 나름 노력을 많이 했던 국가다. 러시아 혁명 직후인 1918년 대내외에 독립을 선포했지만3년 후인 1921년 러시아의 붉은 군대에 의해 점령된 후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간판을 바꿔 달게 된다.(훗날 흐루시초프가 크림반도를 떼내어 여기에 편입시킨 것이다.) 우크라이나 역시 크림반도와 마찬가지로 스탈린 시절에는 엄청난 핍박과 박해를 받았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되자 우크라이나는 독립을 쟁취하게 되었다.  하지만 크림반도 처리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주변국들과 우크라이나, 또 당사자인 크림반도의 협상 끝에 이 지역은 결국 '우크라이나에 속한 자치 공화국'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1. 크림공화국은 원래 우크라이나와 전혀 상관없는 나라였다.

2. 소련 지도자들의 의중에 따라 크림공화국은 독립상태, 러시아 영토, 우크라이나에 속하는등... 

3. 2014년 러시아에 의해 점령되었다.

 

크림반도에서 일어나는 지역적 문제는 자치정부가 결정하지만 더 큰 문제는 우크라이나 중앙정부가 결정하는 '어색한 동거' 상태로 있다가 2014년 다시 러시아에 귀속되었다.

 

크림공화국  민족구성

 

크림반도의 원래 민족은 타타르 족이었다.(12%)  스탈린이 이 지역의 타타르족을 머나먼 변방으로 강제추방시켰다. 하지만 소련이 붕괴되자 타타르인들은 점점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오기 시작해 지금은 12%에 달하는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민족구성이 다양한만큼 요구사항이 저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이 지역 러시아 원주민들은 '1992년 체제'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즉 크림반도가 우크라이나 지배체제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대통령을 선출하고 외교정책도 자주적으로 펴야한다는 뜻.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크림공화국의 독립을 허용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크림공화국의 최대 도시, 세바스토폴 때문이다. 이곳은 수 세기 전서부터 군사적 전략적 요충지로 자리매김 해왔던 곳이다. 1948년 러시아는 세바스토폴을 크림반도에서 분리하여 모스크바의 종속도시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세바스토폴의 위치(빨간 사각형, 천혜의 위치.)

 

1978년이 되어서야 이 도시는 비로소 우크라이나의 영향권 아래로 들어오게 되었다.  즉 우크라이나가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를 러시아로부터 되찾아온 것이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된 이후에도 러시아는 세바스토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이 도시에 대한 지배권 협상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간에 지리하게 이어졌다. 양측 모두 이 도시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한치 물러섬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 도시와 인근 일부 지역을 포함한 영토는 우크라이나의 지배를 받되 매우 특수한 자치구역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2014년 크림 자치공화국은 친 서방 정책을 취한 우크라이나 정부에 반발하여 크림 공화국으로 독립을 시도한 데 이어, 3월에는 러시아에 피합병하기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그 결과 합병 찬성으로 발표되면서 러시아와의 합병 수순에 돌입했다. 러시아에서도 크림 반도의 합병안을 통과시켰으며, 2015년 1월 공식적으로 러시아의 한 행정구역으로 합병되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 서방 국가들이 이에 반발하면서 국제적 문제로 불거졌고, 국제연합에서는 총회 결의를 통해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을 불법이라고 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