永慕 聘母
人緣瑞海結婚成
廣宅光寧幸運盈
眞正優雅天上月
花容端粧羨衆望
多子竭力眞英育
忠孝輔仁勸奬誠
累代先宗追慕裏
名門懿績永繁榮
서산류씨 해평김씨 인연으로 혼인 이루니
널따란 집은 광녕과 행운으로 가득하도다
바르고 가지런하고 우아한 모습은 달덩이 같고
꽃같은 얼굴 단정한 옷차림은 뭇사람이 선망하도다
열자녀 있는 힘 다하여 참된 교육하였으며
충성과 효도 권장함에 정성을 다 하셨도다
여러대 선조유훈 받드는 일 늘 생각하였구나
명문 선조의 훌륭한 업적 길이 번영 이룰진저
2017年 丁酉 歲暮
壻 綾城 具滋乙 謹上
아버지, 어머니의 합분(合墳) 묘원
By The Morning - Andante ♬
나의 어머니 海平 金甲자 壽자는 1904년 6월 28일,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용성동 와룡마을에서 부 김영두(金永斗)와 모 절강 시효열(浙江施孝烈)의 2녀중 장녀로 출생
성장하여 10대중반에 와룡마을 서산35세손 류형식(瑞山 柳亨植)에 출가하였다.
어머니는 2대 독자인 나의 아버지와의 사이에 4남6녀를 두었고 47세에 나를 막내로 두셨다.
자녀를 잘 양육하여 가정을 번성케 하는 일은 분명 한평생의 소원이었을 것이며 ,일제와 해방정국 그리고 한국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난의 시절 상상을 절하는 고난을 헤치고 살았을 삶의 뒤안길은 한권의 소설로는 다 담을 수도 없을 것이다.
특히 일제치하 가난한 농촌에서 삼부자가 동경유학의 길에 오른 10여년, 아녀자 홀로 조선에 남아 농사를 지으며 자식 키우고 집을 지키고 산 세월은 어이하였을지 외롭고 신산스런 인고의 삶은 상상조차 아득하다.
그런 한편
일제시대때 동경에서 유학하던 두 아들이 방학을 맞아 귀가하면 모정은 얼마나 좋으셨을까?
성주읍내에서 와룡까지 이십리길 그 무거운 법서(法書)를 머리에 이고 집으로 걸어 오셨을 행복한 모습이 그려진다.
김천 소양골 누나집 그 먼 길을 다니러 벽진 달창고개를 넘어 도보로 왕래하는 제 사람들이 당시로선 보기 힘든
후란네루(대학생 복장)입은 대학생 구경하겠다고 몰려들었으니 자랑스런 당신의 아들에 얼마나 마음 뿌듯하셨을까.
비록 언문도 모르는 문맹인 궁벽한 시골 아낙이지만 동경유학생 아들을 둔 일제 당시(1930년대 중반~40년대 초반)의 고운 내 어머니 꿈많던 젊은 한 시절이었으리라. 비록 고난스런 당신의 삶은 이 세상 그 누구도 알지 못 했겠지만...
20자녀(자부,사위포함)의 어머니는 9남 6녀 친손, 15남 11녀 외손, 수 많은 증손자녀의 할머니로 1992년 7월 22일 향년 88세로 파란 만장한 운명의 한 생을 마감하시니 무덤은 고향 마을 뒷산에 아버지와 합봉(合封)으로 모셨다.
늦게둔 막내 아들로 하여 늙어진 당신의 무자력과 무능력을 안타까이 애태우며 마음 아팠을 모성애(母性愛)를 생각만 해도 금세 눈시울이 뜨거워지나니 나는 어쩔 수 없이 타고난 불효자(不孝子; Unfilial Son)...
'The Story from M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춘천댁 사공 (0) | 2020.04.04 |
---|---|
雄志 禮讚 (0) | 2020.04.02 |
永慕 聘父 (0) | 2020.04.01 |
永慕, 烈婦 星州都氏 (0) | 2020.04.01 |
서산류방택천문기상과학관 (0) | 2020.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