瑞山柳方澤天文氣象科學館
학생시절에 배윘던 교과서에도 있었던 그림
류방택형장이 이성계 앞에서 하명받아 "천상열차분야지도"와 천문도, 천문계산법을 여러 중신들과 회의하며 논의 하는 모형을 만들어놓은것입니다
이밖에 3D체험할수있는 우주 별자리 시청각교실도 있고 별에 대한 도서도 한쪽벽면에 준비되어 있어요
넖은 잔디밭도 있어서 따뜻한 봄햇살 받으며 봄소풍 나오셔도 좋을거 같아요.
그냥 하늘쳐다보면 떠있는별보고 "으응 별이네 이쁘다"는 말이 다였는데 앞으로는 유심히 별자리를 찾아보겠죠.
www.youtube.com/watch?v=s-rT5c3epCM
두 개의 작은 별 …
서산류방택천문기상과학관
찾아가시는길* 서산에서 부석 방향 ,인지면 애정리
서산이안큐브 오피스텔 분양상담실장 오주연
[출처] 류방택천문기상과학관
*류방택 (柳方澤1320~1402) : 고려말의 대표적인 학자, 고려말 절의를 지킨 충신, 1헌(一軒) 3은(三隱)이시다.
본관은 서산瑞山), 자는 금헌(琴軒), 시호는 정숙(靖肅).
부인은 예조판서(禮曹判書) 손애(孫埃)의 딸이다.
고려말, 조선초 천문학자 , 서령 瑞寧 (서산瑞山의 옛 명칭) 인지면(仁旨面) 출신 과학자 .
서령부원군 류성간(柳成澗)의 7대손이자, 류백유(柳伯濡)· 류백종(柳伯淙)·류백순(柳伯濡) 의 아버지. 호는 금헌(琴軒). 거문고 금(琴)자 금헌(琴軒)은, 실제로 거문고를 매우 사랑하고 연주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류방택이 천문도에 이름을 남기게 된 것은 자신이 원했던 것이 아니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성계의 찬탈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고려를 향한 그의 정절은 극진했다고 전한다.
공주 계룡산 동학사 경내에 있는 삼은각(三隱閣)은 금헌(琴軒) 류방택(柳方澤)이
고려 말 절의를 지킨 삼은(三隱)--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목은(牧隱) 이색(李穡), 의 위패를
모시고 제를 올린 곳으로 전해진다. 훗날에는 야은(冶隱) 길재(吉再) 의 위패도 봉안되었을 것이다.
* 이는 고려충신, 금헌 류방택이 연장자로서 82세까지 장수하면서 제일 오래 살았기 때문에 기려진 일이며, 그의 위패는 1621년 삼은각에 배향되었으니 고려말 충신 1헌(一軒) 3은(三隱)의 절의를 역사가 기억함이다.
*1924년 도은 이숭인· 죽헌 나계종의 위패를 모시게 되어 삼은각에는 현재 6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고려 6충신이다.
~연장자 순~
*금헌(琴軒) 류방택(柳方澤1320~1402) , 목은(牧隱) 이 색 (李穡1328~1396) ,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 죽헌(竹軒) 나계종(羅繼從1339∼1415) ,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1347~1392), 야은(冶隱) 길 재(吉再 1353~1419)
고려말 절의를 지킨 충신, 1헌(二軒) 3은(三隱) 의 개관이다.
블로거 주) 글 중에 " 1헌(一軒) 3은(三隱) "은
려말-선초 정세와, 충신 금헌이 연장자로서 82세 장수하여
생전의 동시대 충신들을 기린 행적을 종합한다면 려말 충신으로 "1헌3은" 을 열거함이 응당할 것이다.
고려를 향한 그의 정절은 극진했다고 전한다.
고려 충신 류방택이 조선왕조에 반골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새왕조 태조의 간청으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만드는데 천문계산을 책임지도하고, 제작(천문계산)에 공헌한 공로로 태조 이성계가 개국일등공신을 주려했으나 사양하고 받지 아니하였다고 전한다. 그때 73세 노구를 이끌고 옛 도읍 개경으로 돌아가 취령산(鷲嶺山)아래 김포방에서 은거하였다.
그곳에 집을 짓고 위에 단을 만들어 날마다 옛궁궐을 향해 절을 올리고 그 쪽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다 망국의 한을 안고 고려인의 여생을 마친다.
정이오는 그의 행장에서 그의 시 두 줄을 인용하고 있는데, 徠松酷受霜前幹하고 淇竹偏憐雪後枝라는 대목이다. 중국의 소나무와 대나무가 많은 산과 물의 예를 들어 자신의 송죽(松竹)같은 절개를 노래한 것이다.
그의 시 끝은 ‘평생 전조(前朝)를 잊지 못하고 사모하며, 거문고 뜯어 내 마음을 부쳐보노라!(平生耿耿前朝意 彈一雅絃奇所思)’로 끝난다.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음악을 통해 마음의 찌꺼기를 걸러내고 순수한 마음을 길러야만 공부하는 바탕을 마련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죽는 날에는 아들에게 “나는 고려 사람으로 개성에서 죽으니, 내 무덤을 봉(封)하지 말고, 비석도 세우지 말라”고 했다고 전한다.
태종4년에 정숙공 시호가 내려짐.
류방택柳方澤의 일생을 정이오(鄭以吾)는 1411년 그의 문집, "교은집(郊隱集)"에 전하고 있다.
정이오(鄭以吾1347~1434) 는 류방택의 장자 류백유(柳伯濡)의 절친한 지인으로 추측된다.
류백유(柳伯濡1341~ ) 는 공민왕18년(1369) 장원급제 했고, 정이오는 5년뒤인 1374년에 과거에 급제했다.
'The Story from Me' 카테고리의 다른 글
永慕 聘父 (0) | 2020.04.01 |
---|---|
永慕, 烈婦 星州都氏 (0) | 2020.04.01 |
서산류씨 관향(瑞山柳氏 貫鄕) (0) | 2020.03.31 |
서산류씨(瑞山柳氏) 유래2 (0) | 2020.03.31 |
서산류씨(瑞山柳氏) 유래1 (0) | 2020.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