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from Me

서산류방택천문기상과학관

Jimie 2020. 3. 31. 20:24

 

서산류방택천문기상과학관 

 瑞山柳方澤天文氣象科學館

 

정숙공(靖肅公) 금헌(琴軒) (柳方澤),

서산군(瑞山君) 할아버지는 저(블로거)의 20대조부입니다. 


이 밤도 저 하늘에 별이 되어 빛나고 계시는 할아버지를 우러러 숭모하옵니다.

20世孫  熙寬 謹上

 

과학관을 방문하여 주신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드리면서

뜻깊은 추억의 장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래의 영상과 글을 전재하여 주신 님께 저의 각별한 마음을 담아 깊이 감사드립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류방택*
고려말 대표적인 학자

 

그의 일생을 써놓은 정이오 문집"교은집"
1411년에 쓴 것으로 류방택이 죽은9년뒤 후손에의해 정이오(1347~1434)그에게 부탁해 쓰인 것으로 보인다.

 

정이오는 류방택의 장자 류백유의  절친한 지인으로 추측된다.
백유는 공민왕(1369)18년 장원급제 했고, 정이오는 5년뒤인 1374년에 과거에 급제했다.

 

     

*류방택동상


류방택이 천문도에 이름을 남기게 된것은 자신이 원했던것이 아니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성계의 찬탈을 못마땅하게 여겼던것으로 보이기때문이다.

고려에 향한 그의 정절이 극진했다고한다.


고려에 충성한 그는 조선왕조에는  반골이었던것만은 분명하고

천문계산에 이룩한 공로를 인정하여 태조 이성계가 개국일등공신을 주려했으나 사양하고 받지아니 하였다고 교은집은 기록으로 전하고 있다.

*입구안에 비치된 안내문
 

그때 나이73세로 개성의 취령산아래 김포방에 숨었다.

거기에 집을 짓고 위에 단을 만들어 날마다 옛서울을 향해  눈물을 흘리며 그쪽을 바라보고 절하였다는것이다.


그렇다하여 류방택이 새왕조에 대해 적극적으로 저항한것은 아니였다.

이성계의 명에 따라"천상열차분야지도"를 만드는데 천문계산을 책임지도하였다.

 

방택 별

2000년 12월 6일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정강리에 있는 한국천문연구원 보현산 천문대에서 발견한

새로운 소행성에 ‘류방택 XC44’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류방택 기록과 체험지비치
 

오늘날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잘알려져 있으면서도 천문계산을 맡았던 고려말의 위대한 천문학자 류방택이 전혀 알려지지 않게된 사연은 우선 돌에 새겨진 천문도의 중요성조차 세상에 알려져 인정받기 시작한것은 불과 3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국보로 지정된것은1983년 일이고 그전까지는 창덕궁(예전당시 비원)창고속에 보관 되었지 세상에는
알려지지도 않았습니다.

몰랐던 천문학
 

중요한 과학문화재가 천문학자와 과학학자들의 연구대상으로 부각된것은 그후의 일입니다
류방택이란 이름은 천문도의 둘째자리에 등장하지만 그인물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수 없었기 때문...

 

      

봄※북두칠성이 높이 떠있어 기준으로 다른별자리를 찾을수 있다

 

      

여름※한 여름밤 머리 위에서 가장밝게 빛나는 별이 직녀이고 남쪽으로 보이는별이 견우이다

 

      

가을※남쪽하늘에 보이는 남쪽물고기자리의1등성은 포말하우트를 제외하고 뚜렷하게 밝은별이없다

머리위에 높이 떠있는 사각모형의 페가 수스 자리를 길잡이로 삼는다면 가을철 별자리도 찾기쉽다

 

      

겨울※겨울밤 하늘의 6개1등성이 만드는 커다란 육각형은 겨울철의 다이아몬드로 알려져있다

 

      

 

     

풍기대 사진과 설명.

 

      

     

측우기 사진과 설명.

 

      

 

      

수표 사진과 설명.

 

      

      

혼천의사진과 설명

 

      

      

간의 사진과 설명.

 

      

 

      

우암 혼천의 사진과 설명.

 

      

      

일성정시의 사진과 설명

 

      

      

신법천문도 설명

 

      

      

 

      

학생시절에 배윘던 교과서에도 있었던 그림


      

 

 

 

류방택형장이 이성계 앞에서 하명받아 "천상열차분야지도"와 천문도, 천문계산법을 여러 중신들과 회의하며 논의 하는 모형을 만들어놓은것입니다

 

이밖에 3D체험할수있는 우주 별자리 시청각교실도 있고  별에 대한 도서도 한쪽벽면에 준비되어 있어요

 

넖은 잔디밭도 있어서 따뜻한 봄햇살 받으며 봄소풍 나오셔도 좋을거 같아요.
그냥 하늘쳐다보면 떠있는별보고 "으응 별이네 이쁘다"는 말이 다였는데 앞으로는 유심히 별자리를 찾아보겠죠.

 

 

www.youtube.com/watch?v=s-rT5c3epCM

                         

두 개의 작은 별 …

서산류방택천문기상과학관

찾아가시는길* 서산에서 부석 방향 ,인지면 애정리

서산이안큐브 오피스텔 분양상담실장 오주연

[출처] 류방택천문기상과학관

*류방택 (柳方澤1320~1402) : 고려말의 대표적인 학자, 고려말 절의를 지킨 충신, 1헌(一軒)  3은(三隱)이시다.

본관은 서산瑞山), 자는 금헌(琴軒), 시호는 정숙(靖肅).

부인은 예조판서(禮曹判書) 손애(孫埃)의 딸이다.

 

고려말, 조선천문학자 , 서령 瑞寧 (서산瑞山의 옛 명칭) 인지면(仁旨面) 출신 과학자 .

 

서령부원군 류성간(柳成澗)의 7대손이자, 류백유(柳伯濡백종(柳伯淙)·류백순(柳伯濡) 의 아버지. 호는 금헌(琴軒). 거문고 금(琴)자 금헌(琴軒)은, 실제로 거문고를 매우 사랑하고 연주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류방택이 천문도에 이름을 남기게 된 것은 자신이 원했던 것이 아니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성계의 찬탈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고려를 향한 그의 정절은 극진했다고 전한다.

 

공주 계룡산 동학사 경내에 있는 삼은각(三隱閣)은 금헌(琴軒) 류방택(柳方澤)

고려 말 절의를 지킨 삼은(三隱)--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목은(牧隱) 이색(李穡), 의 위패를

모시고 제를 올린 곳으로 전해진다. 훗날에는 야은(冶隱) 길재(吉再) 의 위패도 봉안되었을 것이다.

 

* 이는 고려충신, 금헌 류방택이 연장자로서 82세까지 장수하면서 제일 오래 살았기 때문에 기려진 일이며, 그의 위패는 1621년  삼은각에 배향되었으니 고려말 충신 1헌(一軒) 3은(三隱) 절의를 역사가 기억함이다.

 

 

*1924년 도은 이숭인· 죽헌 나계종의 위패를 모시게 되어 삼은각에는 현재 6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고려 6충신이다.

 

~연장자 순~

*금헌(琴軒) 류방택(柳方澤1320~1402) , 목은(牧隱) 이 색 (李穡1328~1396) ,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죽헌(竹軒) 나계종(羅繼從1339∼1415) ,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1347~1392), 야은(冶隱) 길 재(吉再 1353~1419)

 

고려말 절의를 지킨 충신, 1헌(二軒) 3은(三隱) 의 개관이다.

 

블로거 주) 글 중에 " 1헌(一軒) 3은(三隱) "은

려말-선초 정세와, 충신 금헌이 연장자로서 82세 장수하여

생전의 동시대 충신들을 기린 행적을 종합한다면 려말 충신으로 "1헌3은" 을 열거함이 응당할 것이다.

 

고려를 향한 그의 정절은 극진했다고 전한다.

고려 충신 류방택이 조선왕조에 반골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새왕조 태조의 간청으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만드는데 천문계산을 책임지도하고, 제작(천문계산)에 공헌한 공로로 태조 이성계가 개국일등공신을 주려했으나 사양하고 받지 아니하였다고 전한다. 그때  73세 노구를 이끌고 옛 도읍 개경으로 돌아가 취령산(鷲嶺山)아래 김포방에서 은거하였다. 

 

그곳에 집을 짓고 위에 단을 만들어 날마다 옛궁궐을 향해 절을 올리고 그 쪽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다 망국의 한을 안고  고려인의 여생을 마친다.

 

정이오는 그의 행장에서 그의 시 두 줄을 인용하고 있는데, 徠松酷受霜前幹하고 淇竹偏憐雪後枝라는 대목이다.  중국의 소나무와 대나무가 많은 산과 물의 예를 들어 자신의 송죽(松竹)같은 절개를 노래한 것이다.

 

그의 시 끝은 ‘평생 전조(前朝)를 잊지 못하고 사모하며, 거문고 뜯어 내 마음을 부쳐보노라!(平生耿耿前朝意 彈一雅絃奇所思)’로 끝난다.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음악을 통해 마음의 찌꺼기를 걸러내고 순수한 마음을 길러야만 공부하는 바탕을 마련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죽는 날에는 아들에게 “나는 고려 사람으로 개성에서 죽으니, 내 무덤을 봉(封)하지 말고, 비석도 세우지 말라”고 했다고 전한다.

 

태종4년에 정숙공 시호가 내려짐.

 

류방택柳方澤의 일생을 정이오(鄭以吾)는 1411년 그의 문집, "교은집(郊隱集)"에 전하고 있다.

정이오(鄭以吾1347~1434) 류방택의 장자 류백유(柳伯濡)의 절친한 지인으로 추측된다.

류백유(柳伯濡1341~ ) 는 공민왕18년(1369) 장원급제 했고, 정이오는 5년뒤인 1374년에 과거에 급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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