永慕 聘父
育英興家遠供基
大道人疑獨自宜
開拓途商憑壯志
晩年暢德頌明碑
庭園靑竹依前色
家址黃臺感舊隨
遺訓棲辭誠實踐
賢孫秀越永世熙
자녀교육 집안번성 원대한 터 일으키려 크나큰 길 사람들 모르니 나홀로 마땅하다
크나큰 보부상 개척은 장대한 뜻 증빙한다 만년에 창덕하니 비문에 밝게 빛나네
뒤뜰의 푸른 대나무 예전 색과 다름없는데 집터의 누른 대석들 옛날 감회 불러오네
東棲말씀 유훈실천 온 정성 다할지라 뛰어난 현손들에 영광 이 세상 길이 빛날지라
2012年 仲秋節
婿 綾城 具滋乙 謹上
아버지 墓園에서
~慶尙北道 星州郡 草田面 龍星里 臥龍마을 松大山~
나의 아버지 亨자 植자는 父 봉연(鳳淵) 母 진주 강씨(晋州姜氏)의 1남 1녀 장남으로
1892년 6월 18일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용성리 와룡 마을에서 태어나셨다.
세살 천애고아가 된 2대독자, 나의 아버지는 당신의 조모님(성주도씨) 품에서 양육되고, 성장하였다.
일제치하 가난만이 전재산이던 극빈한 농부가 자녀교육 큰 뜻을 품고 두 아들을 데리고 홀현단신 동경으로,
중학부터 대학까지 유학을 시키면서 상상을 절하는 고난의 시절을 보내는 등, 일찌기 선각자의 길을 걸었다.
해방과 한국전쟁, 소용돌이치는 혼돈과 격변의 시대 상황에서 비운을 맞았으니 운명의 여신은 무심도 하여라.
내 아버지 57세에, 나는 아버지의 4남6녀 - 10자녀 막내로 태어났으니 가히 환갑동이다.
아버지는 내가 14세이던 1962년 (음)8월 25일, 향년 71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시골 중학을 마치고 독학과 검정고시, 군문에서 택한 만학의 야간대학생,
교직 6년, 정당 당료 12년, 사슴농장주 6년 모텔주인 3년 고물상3년...등 이역 나그네 길 20여년~
세월의 강물은 흐르고 흘러 나도 인생여로 한바퀴 돌았을 즈음엔 아버지 가신지도 어언 반세기 세월~.
열네살 소년도 그 사이 예순중반의 초로가 되어 있었다.
2012년 10월 10일(음력 8월25일),
이역 나그네는 소년의 꿈이 놀던 내고향 옛동산에 올라
아버지 묘원을 둘러 보고 50주기 제사를 받들어 모시었다.
2012년 10월 10일(음력 8월25일)
세살난 천애고아, 어린 손자(내아버지)를 슬하에 거두어 주신 당신의 할머니(나의 증조모님)께 감사드리고
우리 집 지켜주신 성주도씨 할머니의 거룩한 사랑과 희생을 영원히 기리고자 '경모의 빗돌' 하나 세워 바치었다.
모두 다 가고 이젠 빈 하늘마저 텅비어버린 이승
홀로 남은 막내 (증손자)의 마음 속엔
허전한 외로움에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烈婦의 香氣 百世芳香하리라~~~...
2012.10.10
앞산 뻐꾸기 울음~ , 산울림 하나 가득~
한적한 고향 하늘을 채우고 있었다.
'사출아, 참 잘 했다.
우리 할머니 좋아하실거야.'
열네살 어린 막내를 두고 가시면서 눈을 감지 못하신 내 아버지(夏卿 어른)의 음성이 귓전에 멤돈다.
*사출(四出)은 나의 아호(兒名)이다.
김학남-망향
작시:윤복진
https://www.youtube.com/watch?v=sernXSfOUh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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