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영 후보로 대선에 3차례 출마했던 이회창(87) 전 한나라당 총재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단일화 필요성을 강조하며 양 측의 결단을 촉구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지난 18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의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우상조 기자
이 전 총재는 지난 18일 중앙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일단) 대통령이 돼야만 좋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며 “(단일화를 안해) 1%든 2%든 3%든 그런 차이로 떨어지면 천추의 한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총재는 1997년 DJP연합(김대중+김종필)과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의 영향으로 대선에서 패배했던 경험이 있다. 그는 “(선거에서 떨어져) 대통령이 되지 못하면 ‘좋은 대통령’이란 말을 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안 후보는 ‘내가 양보하고 단일화하겠다. 요구사항에 대해 받고 안 받고는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먼저 모든 것을 내던지듯 하고, 윤 후보 쪽에선 (합당시 당협위원장들의) 지역구 조정 등 요구조건을 다 받아야 된다”고 덧붙였다.
20일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단일화 결렬 선언 이후 진행된 추가 전화 인터뷰에서도 이 전 총재는 “국민의힘과 윤 후보는 계속 문을 열어놓고 직·간접적으로 단일화 성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안 후보는 정권교체라는 대의를 위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 통 큰 결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대선에서 ‘병풍(兵風)’ 등 네거티브 비방전의 대표적 피해자였던 그는 “허위나 과장에 의한 네거티브는 불법이고 민주주의에 반한다”며 “허위 네거티브는 ‘정말 침 뱉어야 할 짓’으로 국민들이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정치 현안에 관련한 공개적인 언급을 꺼려온 이 전 총재는 “대선 막바지가 되니 (침묵하는 것이) 내 스스로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인터뷰 배경을 설명했다.
인터뷰는 지난 18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로 단암빌딩에 있는 이 전 총재의 개인 사무실에서 1시간 40분 가량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과거 이 전 총재는 보수진영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카드란 평가를 들으며 세 차례나 대선에 출마했다. 이번 대선를 보는 소회는.
대선은 한마디로 난장판이지. 후보와 정당이 죽자 살자 싸우는 선거니까. 누군가가 ‘대한민국의 선거는 소용돌이’란 말을 했다. 난장판 가운데 뱀들이 소용돌이에 빨려 하늘로 막 올라간다. 하늘로 들어가는 한 마리는 용이 되고 나머지 뱀들은 땅에 떨어져 널부러져 버리는 거지. 나도 널부러진 뱀 한 마리였던 셈인데.
-이번엔 난장판이 더 심한 것 같다.
윤석열 후보는 문재인 정권에서 검찰총장 하다 쫓기다시피 스스로 나와 야당후보가 됐으니 민주당에선 ‘이 사람이 대통령되면 다 죽는다’고 하고, 윤 후보도 ‘내가 안 되면 (보복을) 당할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죽자 살자 대결 판이 돼 버린 것 같다. 선거로 대통령을 뽑는 건 공존의 방식인데 이렇게 결사적이면 한 쪽을 배제하고 박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증오가 판을 치게 된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지난 18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의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우상조 기자
-근본 원인은 뭐라고 보시나.
문재인 대통령과 이 정권의 국정 운영 스타일·행동이 굉장히 분열적, 갈등적이기 때문에 끝까지 소용돌이로 가고 결사적으로 할 것이다. 피 터지게 싸웠다 하더라도 선거가 끝난 뒤 공존해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야 된다.
-공존은 누가 당선돼도 쉽지 않아 보인다.
보수는 물론 이념적 색채를 떠난 국민 상당수가 ‘이래서 나라가 되겠냐’는 걱정을 한다. 이 후보가 되면 ‘이재명 대통령’에 승복하는 분위기가 되겠는가. 윤 후보가 되면 국회 절대 다수를 민주당이 차지하고 있는데 과연 잘 할 수 있겠나.
-문재인 정권 검찰총장인 윤 후보가 야당 후보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의 토양이 무너진 것 아닌가.
박 대통령 탄핵은 보수 대통령의, 보수 정권의 몰락이다. 그러나 보수의 기반 자체는 무너진 게 아니다. 누구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 같은 것은 필요 없다’는 말을 했는데 그렇게 생각 안한다. 보수와 진보는 항상 경쟁하는 것이다. 다만 그것이 격화되거나 상대방을 없애려고 하니까 문제가 된다.
-보수는 이회창·이명박·박근혜와 같은 스타를 발굴하지 못했다.
정당 안에서 서로 싸우고 토론하면서 인물이 크는 것인데 그런 것이 좀 약해졌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집권당의 안락함이나 나태에 빠진 점도 있겠다. 비상대책위원장을 당 내에서 정하지 못하고 외부에서 자꾸 들여왔다. 당 내에선 인물이 키워지지 않는 것처럼 됐다.
지난 18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의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우상조 기자
-대한민국의 보수 정당이 해야할 일은 뭐라고 보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등 보전할 가치를 지키면서 혁신하는 것이다. 핵심은 자유라고 본다. 혁신을 하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정의다. 정의라는 개념이 현 정권에서 너무 흔한 게 되고 오염이 됐다. 정의를 자기들의 전유물처럼 말했는데 전부 다 엉터리인 것으로 드러난 것 아니냐. 조국 사태부터.
-현재의 국민의힘은 보수의 역할과 지향에 충실한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 현재는 그 당의 당원도 아니지만, 전신이었던 한나라당을 맡았던 관계이니 친정같다는 생각을 한다. 걱정스럽고 불안할 때가 있지만 잘 하겠지. 보수가 정권을 잡으면 나라를 옳게 제대로 끌고 갈 것으로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해줬으면 좋겠다.
-양강 후보를 비교하자면. 이 후보는 윤 후보가 무능하다고 한다.
유능과 무능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시중의 시각을 말하자면, 나쁜 쪽으로 말하면 이 후보는 공자가 말하는 ‘교언영색(巧言令色·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꾸민다)’, 윤 후보는 ‘허장성세(虛張聲勢·비어 있고 과장된 형세로 소리를 낸다)’다. 이것을 정의 추구라는 좋은 시각에서 볼 수도 있다. 이 후보는 영특하고 유능한 리더, 윤 후보는 박력 있게 자기 목표와 정의 실현을 위해 난관을 뚫고 나가는 리더형이 되는 것이다. 누가 더 정의에 가까운지는 국민들이 판단하시겠지.
-‘병풍’ 등 네거티브에 시달렸고 결국 선거에서 졌다. 이번 네거티브 대선을 보는 느낌은.
과거에 겪었던 것은 기억하고 싶지도 않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1997년 정치 초년생때 순진하게 ‘네거티브 하지 말자’고 했더니 YS(김영삼 전 대통령)도 ‘정치를 네거티브 안 하고 어떻게 하냐’고 하더라. 정당 대표와 대통령 후보를 했던 내가 정치권의 후진적 행태에 큰소리 칠 입장은 아니고, 네거티브를 당해 억울해서 하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하지만 허위나 과장에 의한 네거티브는 막아야 한다. 그렇게 상대방을 경쟁의 장에서 몰아내겠다고 하면 경쟁의 공정성을 침해한다. 국민들이 ‘허위 네거티브는 정말 침 뱉어야 할 짓’으로 평가했으면 좋겠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지난 18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의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우상조 기자
-이 전 총재는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단일화의 가장 큰 피해자다. 윤석열-안철수 후보는 단일화 해야 하나.
단일화 해야 한다. DJP 연합이 1.6% 차이로 내가 대통령이 안 된 (여러 요인 중 하나의) 요인이 된 건 틀림없다. 대통령이 돼야만 좋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선거에서 떨어져) 대통령이 되지 못하면 ‘좋은 대통령’은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난 ‘내가 대통령이 됐다면 잘할 텐데’ 같은 생각은 추호도 안 하고 그런 말도 안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만일 1%든 2%든 3%의 차이로 떨어진다면 천추의 한이 될 것이다.
-안 후보는 단일화 여론조사를 제안했다.
여론조사는 안된다. 민주당은 국회의원들까지 전부 (여론조사 경선시) ‘안 후보에 투표하자’고 공공연하게 주장하는데 역선택의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그렇게 가는 건 국민의힘으로선 바보짓이다. 부인과 딸이 안 후보와 함께 고생하는 장면을 보면 가슴이 참 아프더라. 아무리 작은 정당이라도 (챙겨야 할) 당협위원장들과 조직이 있어 여러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안 후보가 통 크게 ‘내가 양보하고 단일화 하겠다. 단일화 요구사항에 대해 받고 안 받고는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먼저 모든 것을 내던지듯 하고, 윤 후보 쪽에선 요구조건을 일단 탁 받아야 한다. 지역구 조정 등 이런 것 다 받아야 된다.
-국민의힘 내부엔 ‘안철수 없이도 이길 수 있는데 왜 단일화 하느냐’는 생각도 있는 것 같다.
여론조사는 안심할 수 없다. 강자인 윤 후보가 받으면 그런 수용적인 태도가 (선거에)아주 플러스가 된다. 단일화를 하지 않고 근근이 이기는 것 보다 단일화로 더 크게 이기면 대선 끝난 후 정국 운영에도 큰 힘이 되지 않겠는가.
-그만큼 정권교체가 절실하다는 뜻인가.
문재인 정권이 너무 못해서 그렇다. 갈등과 상호 배척으로 민주주의 기본 체제를 망가뜨려 놓은 데다 국가의 미래발전과 국가간 신용, 국가의 품격과 위신, 국민의 자존심까지도 땅에 떨어뜨렸기 때문에 반드시 심판돼야 한다. 심판이 없다면 민주주의 책임성이 없어진다. 잘못을 해놓고도 먹고 튀는 먹튀정권이 된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지난 18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의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우상조 기자
-윤 후보가 되면 검찰공화국이 될 것이란 우려가 있다.
(그동안의 대통령들은) 정권을 잡기 전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고 해놓고 잡고 나면 검찰을 수단으로 삼았다. 윤 후보는 안하겠다고 말해왔으니 안하리라 본다. 검사들의 보직인사권도 청와대나 법무부장관이 아닌 검찰총장한테 주기를 권한다.
-후보들에게 하고 싶은 당부는.
후보들이 대통령이 되면 180도 바뀐다. 후보때는 자신이 완벽하다든가 선택된 사람이라고 생각 안한다. 겸손하게 자신을 안다. 하지만 딱 당선되면 운명이 정한 지도자, 하늘이 점지한 대통령이 돼버린다. 그러면 권력 독점과 독선, 오만이 생겨 가장 중요한 권력분립과 분산을 시답찮게 생각한다. 이재명이든 윤석열이든 대통령이 되면 제발 사람이 바뀌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 정권이 쇠락하지 않기 위해서도.
-정권 쇠락을 막을려면.
이승만 정권 말기 인천지법 판사를 하던 시절에 4.19가 났다. 파출소가 텅텅 비었더라. 요지부동 권력도 국민의 신뢰가 없어지면 허약하기 짝이 없는 정권이 된다. 정권을 바라고 추구하는 사람들은 그런 점을 절대로 잊어선 안 된다.
-요즘 조해주 상임위원 등 선관위의 정치적 중립성이 자주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 전 총재는 선관위원장 출신인데.
노태우 정권 시작 때 선관위원장으로 들어갔는데 그 때도 경선 캠프 출신이나 민변 출신 등 (자기편을) 시키는 이런 일은 없었다. 선관위가 눈치를 보거나 시원찮게 굴면 무시당하고, 헌법기관이면서도 아첨이나 하고 빌붙는 기관처럼 취급받는다.
서승욱 정치팀장 sswook@joongang.co.kr
d811****55분 전
선거공작 전문그룹에 두 번 당한 분의 한 맺힌 말씀, 그런데 철수는 지금까지는 문빠로써 좌익 소모품으로만 살아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