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문재인 정부의 군 지휘부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캠프에 합류하면서 화제가 됐다. 이들은 ‘배신자’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야당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어렵사리 한 자리에 모아 그 이유를 들어봤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캠프에 합류한 문재인 정부의 군 지휘부. 왼쪽부터 전진구 전 해병대사령관, 심승섭 전 해군참모총장, 김용우 전 육군참모총장, 이왕근 전 공군참모총장, 최병혁 전 연합사부사령관. 우상조 기자
김용우 전 육군참모총장, 이왕근 전 공군참모총장, 심승섭 전 해군참모총장, 최병혁 전 연합사부사령관(이상 예비역 대장)은 문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사람들이다. 전진구 전 해병대사령관(예비역 중장)만 문 정부 출범 직전인 2017년 4월 13일에 취임했다. 이들의 별 숫자를 다 합하면 19개다.
다음은 일문일답.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이라 불리는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윤 캠프 행에 대해 지난해 9월 “정부에서 과실을 다 따먹었던 사람들이 자리를 바라고 정치적 선택을 했다”고 비난했다.
김용우 전 총장=왜 문재인 정부의 군인들, 그것도 고위 장성이 등을 돌리는지를 잘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군을 전문가 집단으로 존중하기보다는 여전히 감시와 통제의 대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선진국가, 선진군대가 되려면 건강한 문민통제, 건강한 민군관계가 형성돼야 한다. 국가와 국민의 군대가 돼야지, 당의 군대처럼 특정 정권만을 위한 군대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현 정부는 마치 당의 군대처럼 선택적 충성을 하도록 만들었다. 국가와 국민의 군대가 돼야지, 당의 군대가 말이 되나.
김 전 총장 등은 당시 “고위직으로 임명받은 것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감사하고 있다. 그러나 진급과 보직은 사사로운 시혜가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 이뤄진 일”이라고 반박했다.
-어떤 점을 얘기하고 싶나
김용우=건강한 문민통제, 건강한 민군관계 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1961년 5ㆍ16 군사정변으로 군이 정치에 개입한 지 30년이 더 넘어 1987년 민주화가 이뤄졌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또 지났다. 이제 쿠데타는 불가능하다. 군인은 의료인, 법률가처럼 전문직이다. 문민 통제는 군인을 헌법 수호자로 만들면서 동시에 군인의 전문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안보 서비스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군인과 국가』에서 ‘군인의 가장 위대한 복무는 자신에게 충실하면서 군인의 길을 묵묵히 용감하게 걸어가는 것’이라고 썼다. 군인은 전문성, 책임, 명예를 중시한다. 그걸 지켜줘야만 군인들이 강한 안보를 만들어낸다. 그 보상은 국가와 국민에게 돌아간다. 국민이 군을 무시하고 군이 무너지면 국가도 불안정해진다.
-어떻게 하면 건강한 문민통제, 건강한 민군관계가 형성될 수 있나.
김용우=인사 문제가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무엇보다 청와대나 정치권의 인사개입을 줄이고 인사권한을 대폭적으로 군에 위임해야 한다. 먼저 갈라치기 인사를 해서는 안 된다. 현 정부는 전임 정부에서 일했거나, 그 라인에 있었다는 이유로 진급과 보직에 불이익을 주고 있다. 이런 행태는 군 내부의 분열과 군의 정치화를 조장한다. 둘째로 국방부 장관과 각 군 총장의 권한을 지나치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 청와대가 3, 4성 장군이나 국방부 차관을 검증하고 인사에 관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현 정부는 국방부 실장이나 국장 심지어 장관 대변인이나 각 군의 2급 군무원까지 검증을 받도록 하고 있다. 한마디로 지나치다. 장관이나 총장이 원하는 사람을 적기에 쓸 수 없다면 어떻게 팀워크를 발휘하고 고도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셋째로 검증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 장군인사의 예를 들면, 원래 각 군에서 투명하고 객관적 절차를 거쳐 2배수의 후보자를 추천하는 인사안을 올리면 정부가 가급적 그 범위 안에서 임명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최근 각 군에서 선발하기 이전에 청와대가 저인망식으로 검증하고 있다. 앞뒤가 바뀐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검증은 블랙박스와 같다. 이유가 어떻든 그 과정에서 지나친 개입이나 청탁의 여지가 있고, 이렇게 되면 군의 인사체계가 무력화된다. 군을 믿지 못하니 그래서 자기 사람을 심어야 한다고 생각하다 보니 이러한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정권 초기보다 갈수록 심해지는 듯하다.
이왕근 전 총장=지휘권을 존중해줘야 한다. 위에서 압력을 넣고 흔들면 밑에서 명령을 듣질 않는다. 지휘권이 엉망 돼 군이 오합지졸이 될 수 있다.
이들은 현 정부가 군에 대한 예우를 다 하지 못한 점도 지적했다. 그 사례로 2018년 7월 해병대의 상륙기동헬기인 마린온이 추락해 5명이 숨지고 1명이 다친 사건을 들었다.
-어떤 일이 있었나.
전진구=마린온 유족이 원한 건 청와대의 조문이었다. 그런데 뒤늦게 일주일이 지나 영결식장에 국방개혁비서관이 내려왔다. 일부 유족이 비서관의 멱살을 잡는 일도 있었다. 문 대통령의 조문까진 기대하진 않았다. 다만 청와대가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군 내부의 여론이 좋지 않았다. 당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사고 조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마리온은 문제가 없다’고 밝혀 화를 돋웠다.
-현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 협상을 지원해야 한다며 대규모 한ㆍ미 연합군사훈련을 제한했다.
이왕근=내가 공군작전사령관에 있을 때만 하더라도 한ㆍ미간 훈련이 굉장히 강력했다. 당시 매년 하반기 미국과 ‘비질런트 에이스’라는 공중 연합훈련을 열기로 합의했다. 실제 전시처럼 24시간 훈련을 돌리면서 작전계획에 따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점검했다. 그런데 현 정부는 비질런트 에이스뿐만 아니라 상반기 연합훈련인 ‘맥스 선더’도 축소했다. 미군은 대비 태세를 높이기 위해 훈련을 자꾸 하자고 요구한다. 그런데 우리가 제한하니 미군은 부족한 훈련량을 채우기 위해 미 본토로 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ㆍ미 동맹의 모토는 ‘같이 갑시다(We go together)’인데, 같이 갈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전진구=해병대는 미 해병대와 끈끈한 사이다. 매년 15~20회 미 해병대와 연합훈련을 벌인다. 이 때문에 미 해병대 1~2개 대대가 1년 내내 한반도에 들어와 있다. 그런데 훈련이 축소되다 보니 동맹의 근간이 많이 흔들렸다. 미국이 신뢰할 수 없는 수준으로 내려갔다.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한 미 제3해병원정군사령관과 서북 도서를 다 다니면서 현장상황을 공유하고 전술적 견해를 나눴다. 그런데 9·19 남북 군사합의 이후 그와 같은 작전지도가 사라졌다.
-현 정부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문 대통령의 임기 내 전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지만, 지키진 못했다.
최병혁 전 부사령관=정치인들은 전작권을 미국이 행사한다며 ‘한국에 군사주권’이 없다고 호도하고 있다. 한국은 군사주권이 있다. 한ㆍ미연합군사령부(연합사)는 한ㆍ미 양국의 합동참모본부ㆍ국방부ㆍ대통령의 지휘를 받아 작전권을 행사한다. 주식회사로 비유하자면 지분이 50대 50인 구조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정치권은 ‘장군들이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잡는다’며 군을 모욕했다. 전작권을 전환하는 데 핵심적인 전력을 도입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능력을 다 갖춘 뒤 전환이 이뤄져야 하는 게 원칙인데, 현 정부는 먼저 전환부터 하자고 했다. 미군들도 사적인 자리에선 솔직히 우려한다고 말한다. 게다가 이제 북핵이 너무 고도화돼 현재 양국 간 합의된 수준의 첨단 무기와 군사지휘체계로 감당이 어렵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버웰 벨 전 연합사령관이 '전작권 전환은 위험하다'고 얘기하는 이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측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윤석열 후보의 선제타격 언급에 대해 “정치 지도자가 공공연히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한반도 안보 위기를 고조시키고 정세를 불안케 한다”며 비판했다.
심승섭 전 총장=윤 후보가 무력한 현 정부와 대비할 수 있도록 선거공약으로 제시한 것이다. 대통령은 군통수권자이기 때문에 ‘선제타격’을 얘기할 수 있다. 국가의 안정과 위협에 대한 억지력을 갖추자는 차원에서다. 군통수권자가 말할 수 없다면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윤석열 캠프의 국방 공약 가운데 ‘9ㆍ19 남북 군사합의를 무효화한다’는 내용이 없다.
김용우=군인은 헌법을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정부 정책을 구현하도록 최대한 노력하는 게 맞다. 개개인 가치관은 중요하지 않다. 남북한이 9ㆍ19 합의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총장으로 육군의 입장을 전달했다. 일부는 반영됐고, 일부는 반영이 안 됐다. 9ㆍ19 합의가 남북간 전략적 안정성에 기여한 건 사실이다. 비무장지대(DMZ)에서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는 전략적 차원의 정책인데, 그 보다 아래인 작전ㆍ전술적 차원에서 따지는 건 논란의 소지가 있어서 좀 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다만 9ㆍ19 합의와 별개로 현 정부가 북한에 대해 굴종적인 태도를 보인 건 바꿔야 한다.
이들은 군 지휘부가 충분한 경험과 역량을 쌓을 수 있도록 법에서 정한 임기를 보장받도록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대규모 군사 훈련과 연합훈련을 다시 원상태로 되돌리겠다고도 했다.
-윤석열 후보는 군을 어떻게 생각하나.
심승섭=사회가 현역 군인을 존중해주고, 군복을 벗은 사람의 헌신ㆍ봉사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그러려면 임무를 수행하다 희생당한 전사자와 순직자를 올바르게 기억하고, 유가족을 제대로 예우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다고 군의 잘못까지 덮자는 것은 아니다. 이게 윤 후보의 생각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