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줌 재 돼서야 가족 만났다···'피눈물 생이별' 벌써 6166명 [영상]
입력 2022.01.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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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돼 입원한 뒤부터 형님 얼굴 한번을 못 보고 보냈어요. 사망 통보를 받고 병원에 달려 갔더니 이름표만 덜렁 남았어요.”
최모(66·서울 서초구)씨는 지난 5일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난 형(70)을 떠올리며 가슴을 쳤다. 뇌출혈로 1년 동안 투병생활을 해온 고인의 마지막 길은 쓸쓸함 그 자체였다. 거동이 불편했던 형 최씨를 돌보던 가족들은 지난해 9월께 서울 강동구의 한 요양병원에 최씨를 입원시켰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가족 면회가 제한돼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얼굴은 볼 수 있었다.
그러다 지난해 연말 최씨가 입원한 요양병원에서 집단감염이 터졌다. 20여명의 확진자 가운데 최씨도 포함됐다. 최씨는 성북구에 있는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옮겨졌다. 이후 면회는 완전히 차단됐다. 가족들은 손꼽아 퇴원 소식만을 기다렸지만 돌아온 건 최씨의 사망 통보였다. 입원 열흘만에 홀로 세상을 떠났다. 병원 지침상 아무도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동생 최씨는 “발인이나 염은 커녕 얼굴 확인도 못 하고 화장을 했다”며 “형님 얼굴 한 번 못 보고 보낸게 평생 가슴에 한이 될 것 같다”라고 한탄했다.
관 꺼내자 소독부터…가족과 추모시간 2~3분 남짓
지난해 12월 경기도의 한 화장터에서 레벨D 방호복을 입은 직원들이 코로나19 사망자의 관을 옮기고 있다. [한국장례협회 제공]
코로나19 유가족들은 화장 전 마지막 순간까지도 고인과 닿지 못했다. 6일 오후 5시, 경기도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 앞에는 13대의 운구차가 줄지어 대기 중이었다. 코로나19 사망자는 일반 사망자 화장이 모두 끝난 오후 5시부터 화장이 시작된다. 늘어서 있던 운구차에서 하나씩 관이 나오자 가장 먼저 이들을 맞은 건 소독약이었다. 시신을 세 겹에 걸쳐 밀봉하고 입관했지만 레벨D 방호복을 입은 직원이 관 주위와 운구차 내부에 소독약을 뿌렸다. 이후 방호복을 입은 3~4명의 직원이 관을 건물 안으로 옮겼다.
건물 내부에 미리 모여있던 유족들은 관이 들어오자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일부 유족은 빨간색 차단봉 뒤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목 놓아 고인의 이름을 불렀지만 관 근처에 접근할 수는 없었다. 관에 붙어있는 이름표를 보고 직원이 유족을 불렀다. 가족들은 멀찌감치 서서 2~3분 남짓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어떤 이는 관 앞에서 절을 올렸고, 어떤 이는 카메라로 고인의 마지막을 담기도 했다. 13명의 망자를 추모하는 데 걸린 시간은 도합 20여분 정도였다. 고인을 떠나보낸 한 유족은 밖으로 나와 연신 “미안해”라고 외치며 울음을 토해냈다. 화장터로 들어간 망자들은 2시간 뒤 한 줌의 재가 된 뒤에야 그리웠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코로나 발생 2년…허울뿐인 지침
지난해 12월 경기도의 한 화장터에서 레벨D 방호복을 입은 직원들이 코로나19 사망자의 관을 옮기고 있다. [한국장례협회 제공]
이같은 생이별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부는 코로나19 발생 초기부터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선(先) 화장, 후(後) 장례’ 지침을 이어왔다. 국내에서 코로나19 발생 이후 2년간 사망한 6166명의 유족은 대부분 최소한의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하고 고인을 떠나보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방역 앞에 인륜도 뒷전이 된 것이다. 지난해 2월 코로나19 사망자 장례관리 지침이 개정돼 임종이 임박한 확진자의 경우 가족이 원하면 보호구를 착용하고 대면 면회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아버지(63)를 코로나19로 잃은 B씨(33)는 지침과 달리 병원 중환자실에서부터 임종 때까지 한 달 동안 면회를 일절 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간호사를 통해 가족들이 찍어 보낸 영상을 휴대전화로 보여주는 것이 전부였다. B씨가 직장 내 집단감염으로 확진 판정을 받았고, 부모가 연달아 감염된 터라 B씨는 극심한 죄책감을 안고 있다. 그는 “내가 먼저 확진됐을 때 아버지가 ‘엄마랑 나는 건강하니까 괜찮을 거다’라며 웃으며 위로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고 토로했다. 그는 “온갖 의료장비에 둘러싸인 채 아버지 홀로 임종을 맞았다”며 “얼굴 한 번 못 본 게 평생 가슴에 남을 것 같다”고 눈물을 흘렸다.
반면 지난 6일 92살의 처조모를 잃은 이모(47)씨는 감염병 전담병원에서 가족 1명에 한해 면회가 허용됐다고 했다. 이씨는 “아들이었던 장인어른이 레벨D 방호복을 입고 들어가 할머니를 만났다”고 말했다. 다만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지는 못했다고 덧붙였다. 지침상 가족 중 1명이 CCTV 화면으로 고인의 임종을 지킬 수 있었지만, 새벽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고 한다. 이씨는 “감염 우려, 의료진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이해는 하지만 고인의 얼굴 확인 정도는 할 수 있게 시간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현장에선 “별도 장소 갖추기 어려워…지침 모호”
일선 의료기관에서는 현장의 애로사항이 있다고 토로했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일반 환자의 경우 임종 때 병실 하나를 비우고 가족들과의 추모 시간을 만들어줄 수 있는데 코로나19 사망자의 경우 음압시설을 갖춘 별도의 장소를 따로 만들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다인실일 경우 다른 환자들을 배려해 사망자를 빨리 빼야 하기 때문에 가족을 충분히 기다려줄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의 한 감염병 전담병원 관계자는 정부의 지침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점을 문제로 들었다. 해당 관계자는 “몇 명까지 면회를 허용해도 될지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며 “지금까지는 가족 중 1명만 CCTV로 임종을 지킬 수 있도록 해왔는데 다른 병원을 참고해 2인까지 늘리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과학적 근거에 따라 세부 가이드라인을 배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 “정부, 행정 편의주의만 따져…기본권 보호해야”
5일 오후 서울 중랑구의 한 감염병 전담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망한 사망자를 운구하고 있다. 뉴스1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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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장기화 됨에 따라 장례 지침도 고인과 유족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쪽으로 개정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임종 시에 최소한 가족 일부는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금껏 이런 프로세스가 정착되지 못한 건 정부의 행정 편의주의적 지침 탓”이라며 “병원에 책임을 떠넘기기만 했다”고 비판했다.
천병철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도 “정부가 마음만 먹는다면 과학적 근거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인데 2년이 넘도록 같은 지침이 이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천 교수는 “사망자의 체액을 만지지 않는다면 망자로부터 전파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라며 “정부가 내 일이 아니라는 식으로 방치하지 말고 불필요한 부분을 최대한 제거해서 유족을 배려한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다만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지침 개정이 필요하다”면서도 “방호복을 착용하는 훈련이 안 됐을 경우 입고 벗는 과정에서 오염이 생겨 감염될 수 있다. 임종을 앞두고 대면 면회를 허용하더라도, 일부 고위험군인 가족의 경우 제한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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