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握の砂 (한 줌의 모래) 와 初恋 (첫 사랑 )~~~
石川啄木像
『一握の砂』は 啄木が1910年(明43)12月に東雲堂から出版した(石川啄木 24歲)。
石川啄木像(이시카와 타쿠보쿠 상)
一握の砂 (한 줌의 모래)
『石川啄木(이시카와 타쿠보쿠), (1886-1912)
東海の小島の磯の白砂に 동해바다 작은 섬의 해변가 흰 모래밭에
われ泣きぬれて 나는 눈물에 젖어
蟹とたはむる 게와 함께 노닌다
いのちなき砂のかなしさよ 생명이 없는 모래의 슬픔이여
さらさらと 사르륵 하고
握れば指のあひだより落つ 움켜 쥐면 손가락 사이로 떨어진다
はたらけど 일을 하여도
はたらけど猶わが生活樂にならざり 일을 하여도 여전히 나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는다
ぢつと手を見る 가만히 손을 들여다 본다
友がみなわれよりえらく見ゆる日よ 친구가 모두 나보다 훌륭해 보이는 날에
花を買ひ來て 꽃을 사 가지고 와
妻としたしむ 아내와 벗한다
病のごと 병이 난 듯이
思鄕のこころ湧く日なり 망향의 그리움이 솟아나는 날
日にあをぞらの煙かなしも 푸른 하늘 보니 연기가 슬프도다
己が名をほのかに呼びて 나의 이름을 어렴풋이 부르고
淚せし 눈물 젖었던
十四の春にかへる術なし 열네 살의 봄으로 돌아갈 방법 없네
不來方のお城の草に寢ころびて 고즈카타 성터의 풀밭에 누워
空に吸はれし 하늘로 빨려들었던
十五の心 열다섯 살 마음
ふるさとの訛なつかし 고향 사람의 사투리 그립구나
停車場の人ごみの中に 정류장의 붐비는 인파 속으로
そを聽きにゆく 그를 들으러 간다
かにかくに澁民村は戀しかり 생각할수록 시부타미 마을 그립구나
おもひでの山 추억의 산이여
おもひでの川 추억의 강이여
さいはての驛に下り立ち 땅 끝의 기차역에 내려 서니
雪あかり 눈빛이 환해
さびしき町にあゆみ入りにき 호젓한 마을로 걸어 들어가고 말았네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
이시카와 와 처 호리아니
1904年(明治37年)婚約時代の啄木と妻の堀合節子
我を愛する歌 자기를 사랑하는 노래
石川啄木 이시카와 타쿠보쿠
東海の小島の磯の白砂に 동해의 작은 섬 바닷가 백사장에
われ泣きぬれて 나 울다 눈물에 젖어
蟹とたわむる 게(㙰)와 노닌다
頬につたふ 볼에 흐르는
なみだのごはず 눈물 닦지 않고
一握の砂を示しし人を忘れず 한줌의 모래 내밀던 사람 잊지 못하네
大海にむかひて一人 바다를 바라보며 홀로
七八日 칠팔일
泣きなむとすと家を出でにき 실컷 울리라 집을 나서다
痛く錆びしピストル出でぬ 몹시 녹슨 피스톨 나왔네
砂山の 모래산
砂を指もて掘りてありしに 모래를 손가락으로 파고 있는데
ひと夜さに嵐来たりて築きたる 하룻밤 새 폭풍 불어 만들어진
この砂山は 이 모래산은
何の墓ぞも 무슨 무덤인가
砂山の砂に腹這い 모래산 모래에 엎드려
初恋の 첫사랑의
いたみを遠くおもひ出ずる日 아픔을 아득히 회상하는 날
砂山の裾によこたはる流木に 모래산 기슭에 가로누운 流木에
あたり見まはし 사방 둘러보고
物言ひてみる 홀로 중얼거린다
いのちなき砂のかなしさよ 생명 없는 모래의 슬픔이어
さらさらと 주르륵
握れば指のあひだより落つ 쥐면 손가락 사이로 떨어지네
しつとりと 촉촉히
なみだを吸へる砂の玉 눈물 머금은 모래알
なみだは重きものにしあるかな 눈물은 무거운 것이기도 하구나
大といふ字を百あまり 큰대자를 백여 개
砂に書き 모래에 쓰고
死ぬことをやめて帰り来たれり 죽기를 단념하고 돌아왔노라
石川 啄木(いしかわ たくぼく、이시카와 타쿠보쿠)
1886年(明治19年)2月20日, 이와테 현(岩手縣) 히노토(日戶) ~ 1912年(明治45年)4月13日, 도쿄(東京)
岩手県南岩手郡 日戸(ひのと)村(現在の盛岡市日戸)に、曹洞宗日照山常光寺住職の父・石川一禎(いってい)と母・カツの長男として生まれる。
일본의 시인. 일본의 고유시 형태인 단카[短歌]의 거장이다. 본명은 이시카와 하지메[石川一].
비록 학업을 마치지는 못했으나, 독서를 통해 일본은 물론 서양의 문학을 두루 섭렵했다.
1905년에 첫 시집 〈憧憬 あこがれ〉을 발표했다. 1906년 처녀소설로 자연주의적인 소설 <구름은 천재이다> 간행.
1908년 도쿄에 정착한 이래 연애지상주의적 낭만파 시인들의 모임인 묘조파[明星派] 시인들과 접촉하게 되면서 차츰 자연주의에 기울었으나, 결국 정치적 성향의 시풍으로 전향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며 문필생활을 시도하나 여의치 못하고 3행으로 마무리되는 독특한 短歌集 을 간행.
1910년 그의 대표작인 〈한줌의 모래 一握の砂〉가 출판되었다. 그 감상적인 서정으로 후세 오래 애송되고 있다..
이 시집의 551편의 시는 전통적인 단카[短歌] 형식으로 씌어졌지만, 언어 자체는 생기있는 현대적인 언어들로 표현되었다. 그의 시는 심오한 인간미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그가 개척한 단카의 경지는 지적이며 종종 냉소적이다.
도쿄에서 낭비벽에서 비롯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견뎌내면서 〈아사히 신문 朝日新聞〉의 교정원 겸 시 편집자로서 생계를 유지했다. 이 당시의 생활은 특히 〈로마자 일기 ロ-マ字日記〉(1954)에 잘 묘사되어 있다. 그의 아내가 읽지 못하도록 로마자로 쓴 이 일기에서 다쿠보쿠는 자신의 복잡하고 감정적이며 지적인 삶을 놀랍도록 정직하게 피력하고 있다.
그는 소설도 썼지만 번득이는 재기에도 불구하고 시보다 수준이 떨어졌으며 그다지 호응도 얻지 못했다. 비전통적인 형식으로 씌어진 시집 〈호루라기와 휘파람 呼子と口笛〉(1912)은 무정부주의·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이 다소 엿보인다.
〈슬픈 장난감 悲しき玩具〉(1912)이라는 시집을 남기고 영양실조로 지병이던 폐결핵이 악화되어 죽었다.
또 미완으로 끝난 제2시집 <호르라기와 휘파람>은, 소위 大逆事件 직후의 "겨울의 시대"의 폐쇄감을 비판적으로 지양하려 한 詩稿로, 일본 근대시에 새로운 면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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