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Arts

반야월(半夜月.진방남)

Jimie 2020. 7. 30. 05:56

반야월(半夜月.진방남)

 

2012. 4. 7. 1:24

 

 

가수ㆍ작사가 반야월(半夜月.진방남. 1917.8.1∼2012.3.26))

 

 1917년 경상남도 마산 출생.  진해농산학교 졸업. 본명 박창오(朴昌吾).

가수로서의 예명은 진방남(秦芳男)이며 추미림(秋美林), 박남포(朴南蒲), 남궁려(南宮麗), 금동선(琴桐線), 허구(許久), 고향초(高香草), 옥단춘(玉丹春), 백구몽(白鷗夢), 처녀림 등의 여러 필명도 사용했다.

 

어릴 때 진해로 이주하여 자랐으며,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충북 청주에서 양복집을 하던 숙부를 찾아가 양복일을 배웠다. 청주 일대에서 ‘노래하는 양복쟁이’로 통하다 청주 지역 콩쿠르를 휩쓸고 1938년 경상북도 김천에서 열렸던 조선일보와 태평레코드 주최 전국 콩쿠르대회에서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곡으로  우승하며 가수로 데뷔한 그는 해방 전 태평레코드사의 전속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가수시절부터 이미 노래보다는 작사에 더 소질을 보이다가 해방직후 최초로 [남대문 악극단]을 조직하여 <산홍아 너만 가고> <마도로스 박> 등의 악극을 제작했으며 1948년 서울중앙방송국(지금의 KBS 라디오 방송국)에 방송극 <허생전>으로 입선을 하기도 했다.

 

이후 완전히 가요작사가로 변신하여 미발표곡 2,000여 곡을 포함한 4,500여 곡의 가요를 만들어 한국의 작사가들 중 가장 많은 작품을 만들었다.

 

특히 작곡가 박시춘, 가수 이난영과 더불어 '한국 가요계의 3대 보물'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대중의 사랑을 받은 노랫말을 많이 작사했다. <넋두리 20년>을 시작으로 자신이 불러 히트한 <꽃마차>, 그리고 <단장의 미아리고개>, <유정천리>, <울고 넘는 박달재>, <만리포 사랑>, <벽오동 심은 뜻은>, <비 내리는 삼랑진>, <아빠의 청춘>, <무너진 사랑탑>, <산장의 여인>, <산유화>, <소양강처녀> 등이 잘 알려진 곡이나, 작사한 노래만 수천 편이 넘는다. <소양강처녀>를 부른 가수는 '김태희'이며 작곡자는 '이재호'이다.

 

그 뒤 그는 <겨레의 영광>이라는 5ㆍ16 군사혁명 찬양가를 지었으며, 1964년 도쿄(東京) 올림픽 때의 신금단 부녀 사건을 보고 <동경에 뿌린 눈물>이라는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 1956년 레코드 작가협회를 창립하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5ㆍ16군사혁명 후 그것이 해산되면서 결성된 가요반세기 작가동지회에도 참여하여 제3대 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1964년에는 음악저작권협회의 설립에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한국가요 작가동지회의 회장을 역임했다. 1974년 한국가요반세기작가동지회 등의 설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76년에는 회갑기념으로 '반야월 가요상'을 제정하여 후배 양성에도 기여하였다.

 

1966년 국제가요대상 작사상, 1967년 공보부장관 감사상을 받았고, 1991년에는 문화훈장 국민장을 서훈 받았다.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은 노래를 작사하고 가장 많은 히트곡을 낸 작사가이면서 가장 많은 노래비를 보유한 작사가로도 알려져 있다. 내 고향 마산항, 단장의 미아리고개, 울고 넘는 박달재, 만리포 사랑 , 두메산골, 소양강처녀, 삼천포아가씨 등의 노래비가 전국 곳곳에 세워져 있다. 고향 마산에서는 반야월 가요제도 열려 왔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가수로 <소년초>, <조국의 아들> 등을 불렀으며 <결전 태평양>, <일억 총진군>과 같은 군국가요 작사에 참여한 경력이 있어, 2008년에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의 음악 부문에 포함되었다.

【경력】

1950년 남대문악극단 창설, 대표

1951년 마산방송국 문예부장

1956년 대한레코드작가협회 창설, 부회장

1962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이사

1962년 한국연예협회 창작분과 위원장

1964년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창설, 이사

1974년 한국원로가요작가백년동지회 회장

1985년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자문위원장

1986년 한국가요예술작가동지회 회장

1995년 한국가요예술작가동지회 명예회장

1999년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원로회 의장

2003년 한국가요예술작가동지회 명예회장

【수상】

1937년 전국가요음악콩쿨대회 1등

1948년 방송희극공모 허생원 입선

1956년 교통부.문교부공모 교통안전의 노래 입선

1966년 국제가요대상 작사상

1966년 대일가요대상 작사상

1967년 공보부장관 감사장

1970년 TBC 방송가요대상 특별상

1990년 KBS 가요대상 특별상

1991년 국민문화훈장 서훈

1996년 제1회 한국 원로가요작가 최고공로예술대상

2006년 제44회 가수의날 최고원로가수특별상

2006년 제13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연예예술발전상

2008년 제천 명예 시민패

2012년 충청북도 명예도민증

2012년 95세로 별세

【노래】<불효자는 웁니다>(1940) <잘 있거라 항구여>(1940) <마상일기>(1940) <꽃마차>(1942)

【작사】<울고 넘는 박달재>(1948) <단장의 미아리 고개>(1956) <산유화>(1956) <산장의 여인>(1957) <무너진 사랑탑>(1958) <열아홉 순정>(1957) <아빠의 청춘>(1966) <소양강처녀>(1969)

【저서】<나의 삶, 나의 노래>(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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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고넘는 박달재(博達嶺)

1948

작사 반야월, 작곡 김교성,

노래 박재홍(朴載弘,1924~1989)

<가요계 원로 반야월씨 별세> -

[연합뉴스](2012. 3. 26)

가요계 원로 반야월(본명 박창오) 씨가 26일 오후 3시20분께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5세.

고인은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진해농산고를 수료한 뒤 1939년 태평레코드사를 통해 공식 데뷔했다. 이후 진방남이란 예명으로 활동하면서 '불효자는 웁니다' '꽃마차' 등 히트곡을 발표했다.

 

해방 이후에는 가수보다 반야월이란 이름의 작사가로 활동했으며 '울고넘는 박달재' '단장의 미아리 고개' '산장의 여인' '소양강 처녀'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마산방송국 문예부장, 한국가요작가동지회 종신회장, 한국음악저작권협회 고문, 한국전통가요사랑뿌리회장 등을 역임했다.

 

고인은 2010년 일제 강점기에 가수로 활동하면서 친일 군국가요를 부른 것을 후회한다며 국민에게 사과한 바 있다. 가요계에 기여한 공로로 KBS특별상, 화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유족은 부인 윤경분(92) 씨와 2남 4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장례는 5일장으로 치를 예정이다.

 

 

[출처] 가수ㆍ작사가 반야월(半夜月.진방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