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꽃「迎春花」
나는 부모님과 많은 형제.자매들이 고스란히 일제 시대를 살아서 그런지...
대부분 오래전 이승을 떠나고 나만 남은 지금은 그 분들이 겪었을 아픈 시대상을 추상하며 아파하는 습관이 세월가면서 늘어나고 있음이다.
봄이 온들 꽃이 핀들 아침이 오고 해가 바뀐들 희망보다는 점점 캄캄한 먹구름 하늘과 절망과 좌절을 느끼고 살았을 ,특히 우리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대동아 전쟁에 내 몰리던 1930년대말,1940년대 초반 당하고 겪었을 낭떠러지 같은 절망앞에 암울했을 그 시절의 봄...
이쯤이면 언제나 나를 슬프게 하는 내 인생의 회환 하나가 생손가락 앓듯 아리게 아파오는 사연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여름에 시골에서 는 매우 귀한 전보 한통을 받았다.
1959년 당시 부산 서면에 살던 30대 중반의 네째 누나가 작고했다는 것이다. 나는 한번도 그 누나 얼굴을 본 적이 없어 모습은 알 수 없으나 혈연의 당김인지, 그것이 슬프고 억울한 설움되어 겉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슬픈 눈물, 어린 시골뜨기 열살소년은 하늘이 아득해자는 생사의 갈림길에 선 큰 충격을 받았다.
내 인생 겨우 열살에 얼굴도 모르는 누나를 이별케 하는 죽음이란 것을 만나는 첫경험이었다.
아랫 마을로 아버지를 찾아나섰다. "아버지 서면 누나 죽었다고 전보 왔어요" 전보를 드렸다.
아무말 없이 집으로 돌아오시던 아버지 뒤를 따라 오면서 '누나를 한번도 못보고 이제 영영..."그게 그렇게 억울한 설움으로 북받쳐 올라왔다.
누나는 내가 태어나기전 일제시대때 소위 정신대니 하여 처녀들을 징발하던 것을 피하기 위해 선보는 것도 사주단자를 보내는 것도 없이 혼례도 치르지 않은채 어둠이 내리던 어느날 저녁에 쫓기듯 먼 동네로 소위 시집이라고 보내져 버렸다는 것이다.
당시 아버지는 형 둘을 유학시킨다고 일본에 체류하였으니 아버지도 없는 상황에서 화급히... 안 가겠다고 마루 기둥을 끌어안고 몸부림을 쳤다는 누나다.
시집가면 그야말로 출가외인이 되던 시대, 아이 키우며 시집살이 메달리다 보면 친정은 머나먼 타향이 되고 그러다가 부산으로 나갔으니 교통마저 불편한 머나먼 먼 땅 막막한 거리...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런 연유로 나와 누나는 상면 한번 할 기회도 가지지 못한채 영영 이별이라는 슬픈 운명을 나누게 되었을 것이다. 나의 10남매중 내가 유일하게 얼굴을 모르는 동기간이 그 서면 누나다.
일제의 봄을 그렇게 쓸쓸히 보냈을 누나를 그려 보노라면 내 마음 금세 찢어 아프고 두눈가 뜨거운 눈물 막을 길 없다.
영춘화 피는 고향 엣집, 그 언덕 그리며 눈물지었을 누나.........................................
늙은 아버지 엄마한테 막내동생이 맺혔다더니 늦게 이 일을 어쩌나 생각하며 마음 아팠을 누나....
(나는 아버지 57세, 어머니 45세에 그 분들의 십남매 막내로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인생 70 고래희' 시절에 나는 가히 환갑동이다.나의 선고는 2대 독자로 외로운 홀혈단신이다. 세살에 부모를 여의고 당신의 할머니 품에서 자랐다. 4남 6녀 나의 형제자매를 두셨다 )
시절 인연이
인생 사연이
슬프다. 참 슬프다.
迎春花 ,
일제의 봄은 조선인들에겐 과연 무엇이었을까 ?
봄맞이 꽃「迎春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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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바람, 눈보라 속 피어나는 꽃 .
내 몸속에
스며드는 따뜻한 봄 기운~
내 맘속에
피어나는 그리움은 봄 아지랑이~!
봄맞이 꽃 피는
고향집 뒷동산 자락.
내 마음에 피어나는 영춘하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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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중에서 가장 먼저 봄빛을 맞이하며 꽃을 피운다는 迎春花(영춘화)......
'迎春一花引來百花開'
(영춘일화인래백화개)
'영춘화는 모든 꽃으로 하여금 이제 꽃을 피워도 좋다'~ 고 세상에 알리는
봄의 전령사 [傳令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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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연(李海燕, 1924년 ~ 2019) 황해도 해주 출생,어린 시절에 대하여는 잘 알려진 바가 없고 ,
17세 때인 1941년 10월 일본 군국가요 번안곡 "백련 홍련"을 불러 컬럼비아 레코드사를 통하여 데뷔합니다.
<소주뱃사공>(이가실 작사, 손목인 작곡)1942년12월,<뗏목 이천리>(구완희 작사, 손목인 작곡)1942년11월, <황해도 노래〉1943년4월,〈아리랑 풍년〉1943년8월.〈단장의 미아리 고개〉1956년,〈울어라 대동강〉1957년, 〈압록강 칠백 리〉1960년, 등 많은 노래를 남겼으며 ,
迎春花도 1942년에 발표한 , 당시 표현으로 소위 ‘신가요’입니다.
1절은 한국어로 이 해연, 2절은 한어, 3절은 일본어로 리샹란(야마구치 요시코)의 가창으로 불려지는데 당시 일제가 추구하고 의도하는 시대상(소위 대동아 공영?)을 반추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해연은 1960년대까지 활동한 이후 미국으로 이주하였으며 2019년 12월 10일 오전 5시 페더럴웨이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습니다.향년 95세
1940년대부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곡들을 불러 오랜 기간 사랑을 받았던 이해연의 1950년대 말의 모습
영춘화 (신가요) / 이해연,이향란
앨범 :(1943) 이해연,이향란,/ 영춘화, 이규남/열사의 맹세
迎春花 - 李海燕.李香蘭
[韓中日語] [Korean/Mandarin/Japanese]
迎春花 -
李香蘭 / 李海燕 [Lee Hae Yeon 이해연] .
滿映電影 “迎春花” 主題曲 .
作曲:古賀政男 .作詞:西条八十/白文會 .
第一段 韓語 李海燕演唱 .
第二段 漢語 李香蘭演唱 .
第三段 日語 李香蘭演唱 .
창문을 열어치면 아카시아의
새파란 싹이 트는 늦은 봄 거리
페치카 불러 다오 이별의 노래를
봄바람 불어 불어 잉춘화ㄹ
一朵兒開來 艷陽光
īduǒerkāilai yanyangguāng
이뚜얼카이라이 얜양광
꽃 한송이 피어오면 밝은 태양빛
兩朵兒開來 小鳥兒唱
liǎngduǒerkāilai xiǎoniǎoer chang
량뚜얼카이라이 씨야오냐올창
두송이 피어나면 작은새가 노래하네
滿洲春天 啊好春天
Mǎnzhōuchūntiān āhǎochūntiān
만쩌우춘티이엔 아 하오춘티이엔
만주의 봄날은 , 아! 좋은 계절
行人襟上 迎春花兒
xingrenjīnshǎng yingchūnhuāer
씽런찐상 잉춘화얼
나그네 옷깃에도 영춘화
春を 知らせる 花ならば 봄을 알리는 꽃이라면
하루오 시라세루 하나나라바
人の こころも わかる 筈 사람의 마음도 알터
히토노 코코로모 와카루 하즈
今宵 かの 君 なにをか おもう 오늘밤 그 사람은 무얼 생각하는지
코요이 카노 키미 나니오카 오모우
われに ささやけ 迎春花 나에게 속삭여다오 영춘화
와레니 사사야케 잉춘후아ㄹ
노래파일... 영춘화 (신가요)- 이해연,이향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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迎春花 (1942年3月) /「迎春花」主題歌
詞:西條八十 白文會 曲:古賀政男
Winter jasmine 迎春花 by Li Xiang Lan 李香蘭 ( 山口淑子)
窓を あければ アカシヤの 창문을 열면 아카시아의
마도오 아케레바 아카시야노
青い 芽を 吹く 春の 風 새파란 싹 틔우는 봄바람
아오이 메오 후쿠 하루노 카제
ペチカ うたえよ 別れの 歌を 페치카 불러다오 이별의 노래를
페치카 우타에요 와카레노 우타오
春が 来る来る 迎春花 봄바람 불어 불어 영춘화
하루ㅇ가 쿠루쿠루 잉춘후아ㄹ
一朶開來艶陽光
兩朵開來小鳥唱
滿洲春天好春天
行人襟上迎春花
春を 知らせる 花ならば 봄을 알리는 꽃이라면
하루오 시라세루 하나나라바
人の こころも わかる 筈 사람의 마음도 알터
히토노 코코로모 와카루 하즈
今宵 かの 君 なにをか おもう 오늘밤 그 사람은 무얼 생각하는지
코요이 카노 키미 나니오카 오모우
われに ささやけ 迎春花 나에게 속삭여다오 영춘화
와레니 사사야케 잉춘후아ㄹ
迎春花 (1942)
李香兰(리코란, 리샹란, 야먀구치 요시코)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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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의원 당시의 山口 淑子(야마구치 요시코.)
李香蘭 ( 山口淑子)
李香兰(리코란, 리샹란, 야먀구치 요시코)1920~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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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샹란은 1920년 만주 푸순에서 태어난 중국의 배우.가수로 1946년까지 중국에서 활동.
중국 가요사 및 중화권 노래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영향을 남겼다.
종전후 중국에 의해 1946년 본국으로 추방된다.
본국이란 아버지 어머니의 나라......
그녀로선 살아본 적도 없고 떠난 적도 없는 나라, 일본으로 가는 것이다.
迎春花는 아직 중국에 있을 당시 1942년 작품이다.애잔한 선율이다.
대표작은 야래향인데 등뤼진의 리메이크 전에 원작을 부른 사람이 리샹란이다.
리샹란은 한국과도 인연이 있었다. 경성(京城)에서 공연을 했고 명망가들이 베푼 만찬에 한복을 입고 참석해 자태를 뽐내기도 했다.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에는 주한 일본대사관에 근무하는 남편과 서울에 몇 년 머물기도 했다.
서울을 떠나는 날까지 그가 왕년의 리샹란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1974年、時の総理・田中角栄の要請で自民党から立候補し、参議院議員になります。その後、
3期18年に渡って議員活動を続けました。写真は、議員当時の山口淑子氏です。
1974년도에는 당시의 총리인 다나까가쿠에이의 요청으로 자민당의 입후보가 되어
일본 참의원 의원이 된다.그후에 세번 18년에 걸쳐 참의원 활동을 한다.
90대 고령에도 일본 채프린(Chaplin)협회 명예고문으로 활약.
2014년 9월 7일 토쿄 자택에서 95세로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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