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from Me

김미애의 삶

Jimie 2020. 4. 25. 13:55

 

2020. 4. 25. 12:54

"김미애 프로필"

"김미애 변호사 인생승리?" 

김미애 의원은 ?

그녀는 법조인 출신 정치인이다. 2002년 제44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29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주경야독으로 동아대학교 법학과에 입학. 졸업하였다.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았으며, 1학년 때부터 고시반에 들어가 사법시험 공부에 몰두했다. 

2002년 제4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그녀의 유년 시절은 ?

 1969년 경상북도 영일군 구룡포읍 하정1리(현 포항시 구룡포읍)에서 태어나

(1969년 11월 15일 ; 음력 10월 6일)

 50여 가구 남짓한 작은 어촌마을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에 어머니가 암으로 쓰러졌다고 한다.

특별한 약이나 치료방법도 없었고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병원비는 엄두도 못 내던 시절이었다. 

 어린 그는 어머니를 리어카에 태우고 40분가량 떨어진 예배당을 찾아가 병을 낫게 해 달라며 기도를 드렸다.

 

어머니는 4년간 병마와 싸우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후 어린 시절의 소녀 미애는 고독감과 외로움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다.

들이 버린 참고서나 문제집을 주워다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풀어가며 공부하여 포항여자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가정 형편으로  고등학교 1학년 초에  중퇴하고

1985년 비내리는 오월 어느 날, 어머니를 잃은 소녀 김미애는 고향 포항을 떠나 부산으로 왔다.

 

부산 반여동에 있는 태광그룹의 한 방직공장 노동자로 취직해서 방직 공장과 와이셔츠 공장을 전전하며 일했다.   

여기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어린 소녀들이 가득했고, 노동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노동 3권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기본권조차 보장되지 않았던 시절, 환경에서

8시간 3교대로 진행되는 강도 높은 노동이 이어졌다고 한다.

 

     

20대 초반에는 주경야독으로 일본어를 익혀  해운대 호텔 인근에 있는 잡화상에 취직했고,

그렇게 해서 저축한 3천만원과 친구 아버지에게 빌린 돈을 보태 1994년에 작은 초밥 가게를 열어서 2년간 운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의 끈을 놓지 않고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아

1997년 늦은 나이 29세에 동아대학교 야간대학 법학과를 입학. 4년간 장학금을 받으며

고시반에 입실하여 기숙사에 숙식을 제공받았다.

 

면학,졸업후 2002년 제44회 사법시험에 합격. 변호사가 되어 2005년에는 법률사무소를 개소하였다.

 

2006년 이후 모교에 1억원의 장학금을 내기도 하는 등

은혜에 감사하고 보은하는 선한 인품격을 지닌 인간상이다.

 

2010년 부터 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로

후배 후학들 교육에도 선배의 정성을 다하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리고 2019년 1월 자유한국당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을 당협위원장에 선임되었다.

 2020년 3월 미래통합당 공관위로부터 해운대구 을 단수공천을 받았다.

2020년 4월 15일 선거에서, 제21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나는 내가 흘린 땀의 가치를 믿었다"

"나는 보수의 가치를 신뢰하고, 자유를 존중한다"

'나는 당의 강령과 당헌을 모두 읽어봤다. 이 당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미애씨는 멋쟁이~! 

멋 있어요.

 

 

존경하고 친애하는

金美愛님께,

 

만나게 되고 뵙게 되어 반갑고

들려주신 인생역정에는 같이 아파하면서

아리고 애련한 연민은  어이할  수가 없었답니다.

 

축하드리고  감사하고 대단히 반갑습니다.

허수 없는 인생,  삶 그 자체가 진실.정직이며 자주. 자립.정의이거늘

그대는 만인의 귀감이요 후학들에겐 인생 교과서 그 자체라 믿습니다.

 

나는 감히 말합니다.

님의 존재 자체가 젊은이들의 꿈이요 희망이며  이미 나라위한 무한의 기여라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님의 인생행로가 길이요 답이며 모두 같이 노래해야 하는 참된 인생예찬 찬가입니다. 

無類  韓國政治에 분명 하늘이 내리신 은총 있음이로다.

비로소 정치를 할 자격이 있는 사람, 참 정치인 한 사람 나셨으니 어두운 조국의 정치에 그대는 별빛이요 희망이요 등대입니다.

 

참으로 고귀한 분이시다.

부디, 자유민주 시민 위해 자유민주 조국 위해  바른 삶의 화신이신 분이 

바른 정치에도 선구자로써  영광의 길에  심신 다바쳐 열성껏 일하시라,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다 받으시라,

부디 님의 뜻 맘껏 펼치시기를, 당신을 사랑하는 모든 자유시민의 염원과  하느님의 은총이 님을 지켜주시리라 믿고 축원합니다.

 

청춘시절 고생은 누가 신나게 했는지 우리 묻지 맙시다.

독학의 길- 검정고시 동문에, 동아대학교 야간대학 법학과 동문수학인데다, 정당활동마저 전통 보수정당에서 뜻한 바가 다름없고...  어쩌면 이렇게나 닮은 궤적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려온 우리는,  이 세상에선  너무도 희귀한  운명적인 연분도 몇천겁은 되리니 어쩜 많이도 닮은 닮은꼴 인생여정 , 우리는 인생동지(人生同志) !

 

정치적 꿈을 접고 조국 떠난 근 삼십년 세월...

이즈음 이방인은  나의 20여년 정통 후배, 김 당선자를 만나, 내 인생 전무한 희열을 느끼고 있답니다.

나의 꿈도 챙겨주시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부디 뜻한 바  가실 길 따라 정진하세요.

한국 정치사와 역사에 참 정치인의 사표로 우뚝 빛나시고, 또 님의 참된 인간성, 그 사랑의 힘이 크게 쓰임새 있기를 고대하고 기원합니다.   

 

겸손은 영원한 인간미!

초심대로, 살아오신 그대로 살아가세요.  그게 님의 길이요  바른 삶의 길이다 나는 확신합니다.

반가이 뵈올 때까지 안전제일, 건강하시고 마음에ㄴ 언제나 평화가 여울져 흐르시기를~!

 

사랑하는 美愛씨,

보고 싶소.

 

부디 님의 운명에 , 삶에 만족하시어 행복하세요.

 

2020년 4월 25일

머나먼 어느 이역 하늘 아래에서

혼자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낫살이나 먹은 사람도 하나 있어요 ㅎ~,

님의 불민하고 초라한 어느 선배가 삼가 바치오니다.

 

 

Abide With Me

https://www.youtube.com/watch?v=fg3gCw5mm7c

 Hayley Westenra  sings "Abide With Me"

at the final of the Rugby League Challenge Cup Final - Wembley Stadium London -

29 August 2009, with the Black Dyke Brass Band & The ACM Gospel Choir. Broadcast by BBC1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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