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Arts

남정임(南貞妊)

Jimie 2020. 5. 18. 05:09

 

 

 

남정임(南貞妊, 1945년 7월 21일 ~ 1992년 9월 2일)은 대한민국의 유명 영화배우였다. 윤정희, 문희와 함께 196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의 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혜성같이 등장한 남정임

 

출처 <서울국제여성영화제 SIWFF 2014. 5. 16. 10:32 >

조용히 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여배우, 남정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여성신문이 함께하는 "그리운 여배우" 14탄 남정임

 

 

한국 영화사에는 대단한 여배우들이 많았다. 하지만 여배우들의 업적은 폄하되거나 잊혀져 그들을 기억하는 이가 적다. 50년대 말부터 109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수많은 여배우들과 함께 작업해 온 김수용 감독의 인간적인 시선과 생생한 기억으로 여배들의 자취를 되살려본다. 여성신문사와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그리운 여배우' 연재가 우리나라 여배우사의 귀중하고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남정임 ©한국영상자료원(조희문 기증)

1966년 춘원 이광수의 <유정>에서 한국 최초로 TV 공개모집에서 당선되어 화려하게 데뷔한 남정임은 국도극장에서 33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그때는 KBS- TV가 아직 사옥이 없어 신세계 백화점 옥상에 가건물을 짓고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마지막 두 사람의 후보자 중 누가 당선되느냐 아나운서가 너무 힘을 주었기 때문에 2등한 후보자가 졸도하는 사태가 벌어졌었다. 그 후 남정임은 밤낮으로 촬영장을 누비고 다니다가 문희가 등장하고 윤정희가 발탁되어 세칭 트로이카 시대를 맞게 된다.

 

남정임은 우선 얼굴이 예쁘다. 그리고 온순하고 예의가 바르다. 결손가정이라 어머니 밑에서 남매가 자랐는데, 어머니가 뛰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외국 촬영 때는 으레 어머니를 여배우로 대접하고 딸은 심부름꾼으로 봤다. 남정임은 작품에 대한 욕심이 많아, 아침 집에서 촬영소로 가는 길에 남의 포스터, 그러니까 문희나 윤정희의 얼굴을 먼저 보면 그날 점심을 굶는다.

 

67년 천승세의 <만선>을 찍을 때 남해의 어촌에서 촬영하다가 돌아오는 길에 배가 암초에 부딪혔다. 깜깜한 밤중 파선 직전의 공포 속에서 30여 명의 배우들은 침묵했고, 원로배우 변기종이 기도를 했다. 이어 김승호는 하느님 당신 너무 하잖아. 종일 땡볕에서 촬영하고 우린 저녁도 굶었단 말야. 우리가 뭘 잘못해 바닷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거야!” 소리소리 쳤다. 그런데 옆에서 들으니 남정임은 자기 스케줄맨에게 이번에 서울 가서 무슨 무슨 작품 계약을 꼭 해야지, 안 하면 아저씨는 해고라고 공갈을 치고 있었다.

 

<까치소리>, <봄봄>, <어느 여배우의 고백>, <수전지대> 등 이 무렵의 남정임은 정열적인 연기를 했으며 라이벌 의식 외에는 아무런 걱정이 없는 행복한 여배우였다. 그런데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이 있듯이, 전성기의 여배우도 10년을 넘기기가 힘에 벅찼다. 문희가 신문사로 갑자기 시집가는 바람에 남정임도 어디론가 결혼을 해야 하는데 그때 재일교포 청년 하나가 신랑으로 나타났다. 나는 그 젊은이를 직접 만난 일이 있는데, 용모로 보나 그가 하는 한국말 솜씨로 보나 한국의 일급 여배우 남정임이 이렇게 숙맥 같은 사내의 아내가 된다는 것이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신부 어머니는 그들의 재산에 홀딱 반했다는 소문이 흘렀다. 그녀가 소문도 없이 일본으로 떠나고 딸을 낳았다는 소식도 들렸다. 물론 우리들은 그녀가 떠난 빈 자리를 다른 배우로 채우면서 쉬지 않고 영화를 만들었다.

 

1978년 가을, 남정임은 서울로 홀연히 돌아왔다. 나는 그녀에게 최인훈 원작 <웃음소리>를 맡기면서 인생이란 다 그런 거다, 다 잊어버리고 영화에 열중하자고 타일렀다. 짧은 가을 날씨의 햇볕을 아끼면서 우리는 광릉 수목원 숲 속에서 며칠을 강행군하면서 촬영을 끝냈다. 그리고 현실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 불가사의한 사랑의 형태를 어느 정도 규명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남정임을 에스코트하던 사내 하나가 있었는데 그가 두 번째 남편이었다. 둘은 곧 아들 낳고 딸 낳고 행복한 보금자리를 꾸몄다. 더욱이 남자가 부자라는 말에 설득력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여배우는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나는 충격 속에서도 한 여배우의 데뷔작과 마지막 작품을 함께 한 것을 큰 인연으로 생각했다.

 

정임의 아이들은 잘 커서 여배우를 하겠다는 등 소문이 있었지만, 아직 영화에 나온 것은 아닌 것 같다. 다만 내가 그 남편에게 고마워하는 것은 재혼하지 않고 아이들을 기르면서 미인 장모를 모시고 산다는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행동인가.

 

글: 김수용 감독

 


남정임 1945-1992년, 경기도 광주 출생.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졸업, 몇 편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다가 <유정>의 공모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활동, 60년대 후반기의 최고 인기 여배우가 됨. 출연 작품은 약 360여 편에 이르는데 이중 대부분은 결혼 전인 60년대 후반에 출연한 것으로, 발랄하고 깜찍한 젊은 여성의 역할이 돋보였다.


김수용 감독 1929년 경기도 안성 출생. 1950년 서울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중위로 한국전쟁에 참전. 1958년 육군 대위로 예편 후 ‘공처가’로 영화감독 데뷔. 이후 50여년 간 109편의 영화를 만듦. 1984년 몬트리올 세계영화제 심사위원, 1985년 동경 국제영화제, 아세아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활동.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 제33회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국민원로회의 의원 등 역임.

 

 

남정임 ©한국영상자료원(조희문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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