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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급 말단 공무원까지 재산등록…100만명 날벼락

Jimie 2021. 3. 30. 03:50

9급 말단 공무원까지 재산등록…100만명 날벼락

[중앙일보] 입력 2021.03.30 00:02 수정 2021.03.30 00:42

 

정부와 여당이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해 공직자 재산등록 범위를 9급 하위직 공무원까지 확대하는 안을 내놓자 공무원들이 반발하고 있다.

“선거 앞 전시행정…공무원만 제물”
정부 투기 근절 대책에 반발 확산
“모든 공무원 범죄자로 보나” 비판
전셋값 인상 논란 김상조 실장 경질

“땅 투기 위기 모면 희생양 삼나”
전공노 “보여주기 정책 중단해야”
청와대 “엄중한 상황 감안한 것”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9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 투기 근절 및 재발 방지 대책’ 브리핑을 열고 “부동산 투기 근절 및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면서 정부는 법·제도·문화·행태 등을 원점에서 점검했다”며 “원칙적으로 모든 공직자가 재산을 등록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예방 대책에 중점을 뒀다”고 했다. 전날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재발 방지 대책 고위 협의회를 열어 도출한 결과다.

문재인 대통령은 발표에 앞서 청와대에서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도시 개발 과정에서 있었던 공직자와 기획부동산 등의 투기 행태에 대해 소속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엄정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례적으로 대통령의 모두발언 전체를 생중계 했다.

홍 부총리의 말대로라면 현재 4급 이상 공무원을 기준으로 하는 공직자 재산 의무 등록 범위가 5~9급까지 확대된다. 지난해 나온 행정안전부 ‘2020 행정안전통계연보’가 집계한 2019년 12월 기준 전국 공무원 수는 110만4000여 명이다. 정부는 모든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까지 더하면 재산등록 의무화 대상은 130만 명 정도가 될 것으로 추산했다. 현재 재산등록 대상 고위 공무원은 약 23만 명이다. 새 정책이 시행되면 100만 명 이상이 추가 등록 대상이 된다.

이에 “모든 공무원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이냐”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대구공무원노동조합은 이날 성명을 통해 “(모든 공직자 재산등록 의무화는) 새내기 공무원에게 범죄 집단의 굴레를 씌우는 것”이라며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부모의 재산까지 공개해야 하는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이 너무나 참담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산 등록 의무화를 즉시 중단하고 하루속히 실효성 있는 정책 수립을 엄중히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발표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경질과 맞물리면서 비판은 거세졌다. 김 전 실장은 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등 임대차 3법의 시행 이틀 전 부부 공동명의의 청담동 아파트 전세보증금을 14.1% 올려 세입자와 계약 갱신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실장은 전·월세 상한제 등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규제를 주도한 상징적 인물로 지목돼 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부동산과 관련한 엄중한 상황을 감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직사회에선 이날 정부 대책에 “말단까지 규제해야 하냐”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주를 이뤘다.

공직사회 “만만한 게 공무원, 주민센터 말단까지 규제 참담”

한 경제부처 과장급 직원은 “개발 정보랑 아무런 관계가 없는 공무원들까지 잠재적 투기꾼으로 규정하는 조치”라면서 “정부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방책”이라고 해석했다. 세종의 다른 부처 과장급 공무원은 “애초에 문제는 부동산 관련 내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이를 악용했다는 점”이라며 “부동산 관련 기관의 공직자에 대한 감시를 더 조인다면 동의할 수 있다”고 반발했다.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대구공무원노동조합은 “(재산등록 의무화가) 그럴듯한 대책 같아 보이지만 실효성도 효과도 없는 제도”라고 주장했다. 이 조합은 “자치단체 9급부터 7급 공무원은 대부분 주민자치센터나 사업소에서 민원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이들은 (LH 사태를 부른 부동산 관련) ‘특정 정보’에 대한 접근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차명거래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재산등록 대상 확대가 실효성을 거둘 수 없을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 홍 부총리는 “기관별로 금융정보 조회 시스템을 구축하면 차명계좌까지 포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정기관들이 나서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반박도 나왔다. 충청남도 김태신 공무원노조 위원장은 “검찰·경찰·감사원 등 그 많은 사정기관은 다 어디에 쓰려고 이런 짓을 하느냐”고 했다.

일각에서는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성난 여론을 달래기 위한 방편일 뿐이라고 해석했다. 앞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지난 23일 성명을 내고 “선거를 앞두고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을 중단해야 한다”며 “하위직 공무원은 땅 투기 위기 모면의 희생양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전교조 출신인 대전 지역 한 초등학교 교사는 “정권이 공직사회 표를 다 포기한 것 같다”고 소리를 높였다.

전라북도 소속 7급 공무원은 “부동산값 폭등과 LH 임직원의 신도시 투기 논란 때문에 정부에서 떠난 민심을 뒤집기 위해 만만한 하위직 공무원들을 제물 삼는 것 아니냐”며 “죄인 취급하는 것 같아 불쾌하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와 달리 행정이 투명해져 공무원 대부분은 부동산 개발 정보 등에 접근하기 어려운 데다 설사 정보를 알아도 불법행위는 하지 않는다”며 “보궐선거를 앞두고 보여주기식 대책만 내놓지 말고 투기 혐의가 있는 공직자라도 제대로 수사해 처벌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서울시 소속 공무원은 “공무원으로서 늘 조심하고 윤리의식과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데 공무원이 봉인가 싶다”고 하소연했다.

100만 명 넘게 늘어나는 재산등록자 때문에 행정력이 낭비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홍 부총리는 “(재산등록) 시스템이 갖춰지기 전까지는 부동산만 신고하는데, 토지와 주택을 보유한 사람은 많지 않다”며 “큰 행정적 부담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명지대 김형준(인문교양학부) 교수는 “뒤늦게 강도 높은 대책을 쏟아낸들 ‘왜 이제 와 난리야, 여태 왜 못 했어’라는 반감만 심어줄 정도로 지금은 부동산 정책 자체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상실한 상태”라고 평가했다.

김방현·김윤호·임성빈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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