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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직원들, 우리에겐 나무 그만 심으라더니 자기들은 심었네요"

Jimie 2021. 3. 11. 18:11

[과천 르포] "LH 직원들, 우리에겐 나무 그만 심으라더니 자기들은 심었네요"

조선비즈 |입력2021.03.11 16:00 |수정 2021.03.11 16:45

 

"토지강탈 앞잡이 LH를 몰아내자."

지난 10일 오전에 찾은 경기도 과천의 과천지구. 지하철 4호선 선바위 역에서 걸어서 5~10분 떨어져 있어 한 눈에 봐도 노른자위 땅이었다. 서울 사당·방배·양재로의 접근성이 아주 좋지만 마치 시골처럼 각종 농원과 비닐하우스가 밀집해 있었다. 이 곳에는 약 7000가구의 주택이 들어설 예정이다.

평화로운 전원마을 같은 분위기였지만, 곳곳엔 색색깔의 플랜카드 여러 장이 휘날리고 있었다. 문구도 무시무시했다. LH에 대한 적대감이 느껴졌다. 곳곳엔 ‘LH 직원 사절, 토지 측량 절대 금지’라는 푯말도 쓰여있었다.

토지 보상을 둘러싼 갈등이 큰 과천지구 곳곳에는 색색깔의 플랜카드가 걸려있었다./연지연 기자

이어지는 비닐하우스촌, 구석에 쌓여져 있는 화분 등 과천지구 전경을 둘러보는데 한 주민이 다가와 물었다. 경계감이 가득한 눈초리였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기자라고 신분을 밝혔더니 그 때부터 토지주 김모씨(65)가 속사포처럼 말을 시작했다.

"남의 땅 사진을 마구 찍어가더라고요. 갑자기 나무들 생기면 안 된다고. 여기 다 농원인데 비닐하우스 개보수도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LH 땅투기 의혹을 받는 직원)들은 어떻게 했어요. 개발 정보 미리 알고 나무를 빽빽하게 심어놨다는 거 아녜요? 뉴스보다 보면 기가 막힙니다."

김씨 말에는 하나라도 묘종을 더 심지 못해 수익이 줄었다는 점에서 속상하다는 감정이 잔뜩 묻어났다. 보상은 차일피일 미뤄지는 와중에 그 안타까움은 더 커진 상태였다. LH에 따르면 정부가 택지지구 발표지로 발표하는 날(공람일) 이후로 건물의 신·증축, 작물활동 등이 금지돼 있다. 보상액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리보곤 공익 위해 낮은 보상가로 팔라더니 자기들은 투기"

과천지구는 2018년 12월 19일 광명과 시흥 등 6개 도시와 함께 3개 신도시 개발 지역으로 지정됐다. 국토교통부와 LH는 지난해 12월 말로 보상 절차를 마무리하고 주택 공급에 속도를 낼 계획이었지만 실제 절차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아직까지 보상에 응한 토지주는 1명도 없다.

토지주와 LH간의 감정평가액 차이는 10% 이상 나는 상황이다. 이 와중에 LH 직원의 땅 투기 문제가 커지면서 토지주들의 불만은 더 거세지고 있었다. 땅 투기 의혹을 받는 직원들 13명 중 8명이 과천사업단이나 과천의왕사업본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기자가 방문한 날은 LH 직원이 과천지구 일대에도 1000㎡ 이상의 땅을 매입했다는 보도가 전해진 다음 날이라 분노가 더 큰 듯했다.

과천지구의 토지주 중 하나인 김 모씨(60대)는 "나이 들면 이사가는 것도 싫다. 변화가 싫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택이 모자라니까 공익을 위해서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보상 받고 내 삶에 대대적인 변화를 주라는 거다. 그런데 LH 직원들이 여기(과천지구)에 내부 규정대로 땅 사서 작물 심고 보상 최대로 받게 했다더라. 그만큼 분양가 올라가는 것 아니냐. 그게 공익이냐"고 반문했다.

보상가액은 토지 매입가에 반영되면서 주택 공급 분양가의 인상 요인이다. 분양가 상한제 등까지 시행해서 무주택자들이 싸게 집을 사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정부 논리가 무색해지고, 이런 방식으로 주거안정을 꾀해야 할 LH 직원들이 오히려 분양가를 높이는 데 일조한 셈이다.

과천지구 토지주들은 LH가 공익을 운운하며 개발이익은 배제돼야 한다는 이유로 보상가액을 낮추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과천지구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보상 과정에서 LH 직원들이 보인 행동 하나하나가 배신감으로 다가온다더라. 한참 합의가 안 될 땐 우리 다음 세대가 집도 못 사고 살 곳도 없는데 어르신들이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던데"라며 "투기할 시간에 보상가액 협상에 더 나섰어야지"라며 혀를 찼다.

과천지구 전경/연지연 기자



◇주택 공급 속도전 심했던 과천지구… 그만큼 토지주 감정 격앙

과천지구는 LH가 유난히 사업에 속도를 냈던 곳이다. 올해 사전청약을 문제없이 진행하기 위해서다. 노른자위 땅인 만큼 이 곳에 주택을 조속히 공급해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이 심했다고 한다. 국토부와 LH는 2021년 말에는 과천지구의 사전청약을 진행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과천토지주대책위원회에 따르면 과천지구 토지주 중 일부는 애초 정부 시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의향을 가졌었다고 했다. 어차피 강제 수용을 당해야 하는 처지니 신속하게 보상을 받고 새로운 터전에 빨리 자리잡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보상이 빨리 이뤄질 것이란 LH 말을 믿고 대출을 받아 다른 터전을 잡은 사람도 여럿이라고 한다. 땅값이 더 오르기 전에 옮길 곳을 찾기 위해서다.

"그런 사람들은 지금 이자는 이자대로 나가고 보상 안 나오고 속이 타겠죠. 보상가액은 터무니없고요."(과천토지주대책위원회 관계자)

그런데 개발이익은 배제하고 감정평가를 해야 한다는 정부 시책이 나오면서 균열이 생겼다. 과천토지주대책위원회 관계자는 "그간 과천이 개발되면서 땅값 오른 것은 생각 안하고 모두 3기 신도시 지정으로 올랐다며 여기에서 나온 개발이익은 배제해야 한다고 LH가 주장한다. 가격이 안 맞으면 땅을 안 팔면 되는데 강제로 팔라면서 여기에 양도세도 최대 45%까지 내라고 한다"고 했다.

과천지구 내 농원에서 만난 이모씨(60대)는 "여기 토지주들이 보상가액에 분개하고 강제몰수 토지에도 세금을 내라는 제도에 화가 나서 시위하다가 과천의왕 사업단장한테 폭언도 들었다"면서 "과천의왕사업단이란 곳은 투기나 하고 토지주들 의견은 폭언으로 무시하는 사업장이었나"고 따져물었다.

또 다른 과천토지주대책위원회 관계자는 "토지주들이 상당히 격앙돼 있다. 최근 과천의왕사업단에 근무했던 LH 직원들이 투기 의혹에 휩싸였다는 소식이 불을 지폈다"면서 "이번 주에 논의 일정도 있었는데 과천의왕사업단이 투기 의혹의 중심이란 소식이 나오자 그쪽 사정으로 논의도 전면 중단됐다. 일이 늦어지는 게 토지주들의 욕심이란 손가락질은 안 나왔으면 한다"고 했다.

3기 신도시에 포함된 과천과천지구. 약 7000가구의 주택이 공급될 예정이다./조선DB



연지연 기자(actress@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