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Arts

갯마을 / 오영수

Jimie 2020. 4. 25. 08:45


   

류희관   17.06.04 13:24

 갯마을 / 오영수




 


  서로 멀리 기차소리를 바람결에 들으며, 어쩌면 동해 파도가 돌각담 밑을 찰싹대는 H라는 조그만 갯마을이 있다.

  더께더께 굴딱지가 붙은 모 없는 돌로 담을 쌓고 낡은 삿갓 모양 옹기종기 엎딘

초마가 스무 집 될까말까 조그마한 멸치 후리막이 있고, 미역으로 이름이 있으나

이 마을 사내들은 대부분 철따라 원양출어에 품팔이를 나간다.

 고기잡이 아낙네들은 썰물이며 조개나 해조를 캐고, 밀물이면 채마밭이나 매는 것으로 여느 갯마을이나 별다름 없다. 다르다고 하면 이 마을에는 유독 과부가 많은 것이라고나 할까?

 고로들은 과부가 많은 탓을 뒤산이 어떻게 갈라져서 어찌어찌 돼서 그렇다느니,

앞바다 물발이 거세서 그렇다느니들 했고, 또 모두 그렇게들 믿고 있다.

  해순이도 과부였다. 과부들 중에서도 가장 젊은 스물 셋의 청상이었다.

  초여름이었다. 어느날 밤, 조금 떨어진 멸치 후리막에서 꽹과리소리가 들려왔다.

  여름 들어 첫 꽹과리다. 마을은 갑자기 수선대기 시작했다. 멸치 떼가 몰려 온 것이다.

  멸치 떼가 들면 막에서는 꽹과리나 나팔로 신호를 한다. 그러면 마을 사람들은 막으로 달려가서 그물을 당긴다. 

  그물이 올라 수확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은면 적은 대로 '짓'이라고 해서 대개는

 잡어를 나눠 받는다. 수고의 대가다. 그렇기 때문에 후리를 당기면 갈 때는 광주리나 바구니를 결코 잊지 않았고 대부분이 아낙네들이다.

 갯마을의 가장 풍성하고 즐거운 때다. 해순이도 부지런히 헌옷을 갈아입고 나갈 채비를 하는데, 담 밖에서 숙이 엄마가 숨찬 소리로,

  "새댁 안 가?"

  "같이 가요, 잠깐..."

  "다들 갔다. 빨리 나오잖고..."

  "아따, 빨리 가면 짓 먼첨 받나 머!"  해순이가 사립 밖을 나서자 숙이 엄마는,

  "아이구, 요것아!"  눈앞에 대고 헛주먹질을 하면서,

  "맴(홑)치마만 걸치먼 될 걸...꼬물대고서..."

  "망측하게 또 맴치마다, 성님(형님)은 정말 맴치마래?"

  "밤인데 누가 보나 머. 첨벙대로 적시노면 빨기 구찮고..."

  사실 그물을 당기고 보면 으레 옷이 젖는다. 식수도 간신히 나눠 먹는 갯마을이라

 빨래가 여간 아니다. 그래서 아낙네들은 맨발에 홑치마만 두르고 나오는 버릇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그로 해서 또 젊은 사내들의 짖꿎은 장난을 싫잖게 받아들이는

갯마을 여인들인지도 모른다.

  해순이와 숙이 엄마는 물기슭 모래톱으로 해서 후리막으로 달려갔다.

 맨발에 추지 모래가 한결 시원하다. 벌써 후리는 시작되었다. 굵직한 로우프에는

후릿군들이 지네발처럼 매달렸다.

  -데에야 데야-

  이편과 저펀에서 이렇게 서로 주고 받으면 로우프는 팽팽해지면서 지그시 당기어

온다. 

  해순이와 숙이 엄마도 아무렇게나 빈틈에 끼여들어 줄을 잡았다.

  바다 저만치서 선두가 칸델라불을 흔들고 고함을 지른다.

  당겨 올린 줄을 뒷거둠질하는 사내들이--데에야 데야--를 선창해서 후릿군들의 기세를 돋우고 막 거간들이 바쁘게들 서성댄다. 가마솥에는 불이 활활 타고 물이 끓는다.

  그물이 가까와 올수록 이 데에야 데야는 박자가 빨라진다.

  -데야 데야 데야 데야-

  이때 쯤은 벌써 멸치가 모래톱에 헤뜨헤뜩 뛰어오른다. 멸치가 많이 들면 수면이

부풀어오르고 그물 주머니가 터지는 때도 있다. 이날 밤도 멸치가 무던히 든 모양이다. 

 선두는 곧장 칸델라를 흔든다. 후릿군들도 신이 난다.

  -데야 데야 데야-

  이때 해순이 손등을 덮어 쥐는 억센 손이 있었다. 줄과 함께 검잡힌 해순이 힘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 내버려 두었다. 후릿군들의 호흡은 더욱 거칠고 빨라진다. 억센 손은 어느 새 해순이의 허리를 감싸안는다. 해순이는 그만 줄 밑으로 빠져 나와 딴 자리로

옮아 버린다. 그물도 거의 올라왔다.

  -야세 야세-

  이때는 사내들이 물기슭으로 뛰어들어 그물 주머니를 한 곳으로 모아두는 판이다.

 누가 또 해순이 치마 밑으로 손을 디민다. 해순이는 반사적으로 획 뿌리치고 저만치

 달아나 버린다. 

  멸치가 모래 위에 하얗게 뛴다. 아낙네들은 뛰어오른 멸치들을 주워 담기에 바쁘다. 

  후리는 끝났다. 멸치는 큰 그물쪽자로 광주리에 펴서 다시 돌(시덴)함에 옮겨 잡어를 골라 낸다. 이래서 멸치가 굴으면 '젓'감으로 날로 넘기기도 하고, 잘면 삶아서

'이리꼬'를 만든다.

  해순이는 짓을 한 바구니 받았다. 무겁도록 이고 아낙네들과 함께 돌아오면서도

 괜히 가슴이 설렌다. 짓보다는 그 억센 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누굴까? 유독 짓을 많이 주던 막 거간이나 아니던가? 누가 엿보지나 않았을까?

  망측해라!

  해순이는 유독 짓이 많은 것이 아낙네들 보기에 무슨 죄나 지은 것처럼 부끄럽기만

했다. 

 그래서 해순이는 되도록 뒤처져 가기로 발을 멈추자 숙이 엄마가 옆구리를 쿡 지르면서,  "너 운 짓이 그렇게도 많애?"

  해순이는 얼른 뭐라고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주니까 받아 왔을 뿐이다.

   "흥, 알아봤어, 요 깍쟁이..."

   아낙네들이 모두 킥킥대고 웃는다. 뭔지 까닭 있는 웃음들이다. 짐작이 있는

 웃음들인지도 모른다. 해순이는 귀밑이 화앗 달았다. 숙이 엄마네 집 앞에서 해순이는,

  "성님, 내 짓 좀 줄까?"

   숙이 엄마는,

  "준 사람에게 뺨맞게..."

  그러면서도 바구니를 내민다. 해순이는 짓을 반이 넘게 부어 주었다.

  해순이는 아랫도리를 헹구고 들어와서 자리에 누웠으나 오래도록 잠이 오질 않는다. 

  그 억센 손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른다. 돌아오지 않는, 어쩌면 꼭 돌아올 것도 같은 성구의 손 같기도 한, 아니면 또 징용으로 끌려가 버린 상수의 손 같기도 한-

그 억세디억센 손-.

  해순이는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애써 본다. 눈을 감아 잠을 청해 본다.

 그러나 금하는 음식일수록 맘이 당기듯 잊어버리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놓치기 싫은 마음-. 그것은 해순이에게 까마득 사라져가는 기억의 불씨를 솟구쳐 사르게를 지펴

 놓은 것과도 같았다. 안타깝고 괴로운 밤이었다.

  창이 밝아 왔다. 해순이는 방문을 열었다. 사리섬 위에 달이 솟았다.

  해순이는 달빛에 산산조각으로 부서진 바다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뇌어 본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눈시울이 젖는다. 한숨과 함께 혀를 한 번 차고는 문지방을 베고 누워 버린다.

 달빛에 젖어 잠이 들었다.

  누가 어깨를 흔든다. 소스라쳐 깨어 보니 그의 시어머니다. 해순이는 벌떡 일어나

가슴을 여미면서.

  "우짜꼬, 그새 잠이 들었던가배-."

  시어머니는 언제나 다름없는 부드럽고 낮은 소리로,"

  "얘야, 문을 닫아 걸고 자거라!"

  남편 없는 며느리가 애처로웠고, 아들 없는 시어머니가 가엾어 친딸 친어머니

못지 않게 정으로 살아가는 고부간이다. 그러나 이날 밤만은 얼굴이 달아올라 해순이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의 시어머니는 언젠가 해순이가 되돌아오기 전에도,

  "얘야, 문을 꼭 걸고 자거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날 밤의 기억이 너무나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그의 시어머니다. 어쩌면 해순이의 오늘은 이 '얘야, 문을 꼭 

닫아 걸고 자거라...'데 요약될는지도 모른다.

  해순이는 보재기(해녀) 딸이다. 그의 어머니가 김가라는 뜨내기 고기잡이 애를 배자 이 마을을 떠나지 못했다. 그래서 해순이가 났다. 해순이는 그의 어머니를 따라 바위

그늘과 모래밭에서 바닷바람에 그을리고 조개껍데기를 만지작거리고 갯냄새에 절어서 컸다. 열살 때부터는 잠수도 배웠다. 해순이가 성구에게로 시집을 가기는 열 아홉살 때였다. 해순이의 성례를 보자 그의 어머니는 그의 고향인 제주도로 가면서,

  "너 땜에 이십 년 동안 고향땅을 못 밟았다. 인제는 마음놓고 간다.

너도 인제 가장을 섬기는 몸이니 아예 어미 생각을랑 마라."

  그의 어머니는 고깃배에 실려 물길로 떠났다.

  해순이에게 장가들기가 소원이던 성구는 그만큼 해순이를 아꼈다. 성구는 해순이에게 물일도 시키지 않았다. 워낙 착실한 성구라 제 혼자 힘만으로도 넉넉지는 못하나마

그의 홀어머니와 동생 해서 네 식구는 먹고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해순이는 안타까왔다. 물옷만 입고 나가면 성구 벌이에 못지 않을 해순이었다.

  어느 날 밤 해순이는,

  "물때가 한창인데..."

  "신풀이가 하고 싶나?"

  "낼 전복을 좀 딸래!"

  "전복은 갈바위 끝으로 가야지?"

  "그긴 큰 게 많지."

  "그만둬."

  "가요!"

  "못 간다니--."

  "집에서 별 할 일도 없는데--."

  "놀지."

  "싫에, 낼은 가고 말 게니..."

  이래서 해순이가 토라지면 성구는 그만 그 억센 손으로 해순이를 잡아당겨 토실한 허리가 으스러지도록 껴안곤 했다.


  고등어철이 왔다. 칠성네 배로 이 마을 고기잡이 여덟 사람이 한 패로 해서 떠나기로 했다. 

어런 때는 되도록이면 같은 고장 사람들끼리 패를 짠다. 같은 날 같이 갔다가 같은 날 같이 돌아온다. 그렇기 때문에 고기잡이 마을에는 같은 달에 난 아이들이 많다.

 이 H마을만 하더라도 같은 달에 난 아이가 다섯이나 된다.

  좋은 날씨였다. 뱃전에는 아낙네들이 제각기 남편들의 어구며 그 동안의 신변 연모들을 챙기느라고 부산하다. 사내들은 사내들대로 응당 간밤에 한 말이겠건만 또 한 번

되풀이를 하곤 한다.

  돛이 올랐다. 썰물에 갈바람을 받아 배는 미끄러지기 시작한다. 사내들은 노를 걷고 자리를 잡는다. 뭍을 향해 담배를 붙이려던 만이 아버지는 깜박 잊었다는 듯이

배꼬리로 뛰어오면서 입에 동그라미를 하고 제 아이 이름을 고함쳐 부른다.

 아이 대신 그의 아내가 치맛자락을 걷어쥐고 물기슭으로 뛰어들며 귀를 돌린다.

  "꼭 그렇게 하라니!"

  "멀요?"

  "엊밤에 말한 것 말야!"

  "알았소!"

  오직 성구만은 돛줄을 잡고 서서 마을 한모퉁이에 눈을 박고 있다.

 거기 돌각담에는 해순이가 손을 뒤로 붙이고 섰다. 갓 온 시집이라 버젓이 뱃전에

나오지 못하는 해순이었다. 성구는 이번 한 철 잘 하면 기어코 의롱을 한 벌 마련할

작정이었다.

  배는 떠났다. 가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이나 그들의 얼굴에는 희망과 기대가 깃들어 있을망정 조그만 불안의 그림자도 없었다.

  바다를 사랑하고, 바다를 믿고, 바다에 기대어 살아온 그네들에게는 기상대나 측후소가 필요치 않았다.

  그들의 체험에서 얻은 지식과 신념은 어떠한 이변에도 굽히지 않았다.

  날을 받아 놓고 선주는 목욕재계하고 풍신과 용신에 제를 올렸다. 풍어도 빌었다. 좋은 날씨에 물때 좋겠다, 갈바람이라 무슨 거림낌이 있었으랴!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곳, 솜구름이 양 떼처럼 피어오르는 희미한 수평선을 향해 배는 벌써 까마득하다.

  대부분의 사내들이 고기잡이를 떠난 갯마을에는 늙은이들이 여린 손자나 데리고

뱃그늘이나 바위 옆에 앉아 무연히 바다를 바라보고, 아낙네들이 썰물에 조개나 캘 뿐 한가하다.

  사흘째 되던 날, 윤노인은 아무래도 수상해서 박노인을 찾아갔다. 박노인도 막 물가로 나오는 참이었다. 두 노인은 바위 옆 모래톱에 도사리고 앉았다. 윤노인이 먼저 입을

뗐다.

  "저 구름발 좀 보라니?"

  "음!"

  구름발은 동남간으로 해서 검은 불꽃처럼 서북을 향해 뻗어 오고 있었다.

  윤노인이 또,

  "하하하, 저 물빛 봐!"

  박노인은 보라기 전에 벌써 짐작이 갔다. 아무래도 변의 징조였다.

  파도 아닌 크고 느린 너울이 왔다. 그럴 때마다 매운 갯냄새가 풍겼다. 틀림없었다.

  이번에는 박노인이 뻔히 알면서도,

  "대마도 쪽으로 갔지?'

  "고기 떼를 찾아갔는데 울릉도 쪽이면 못 갈라고."

  두 노인은 더 말이 없었다. 그새 구름은 해를 덮었다. 바람도 딱 그쳤다. 너울이 점점 커 왔다. 

큰 너울이 올 적마다 물컥 갯냄새가 코를 찔렀다. 두 노인은 말없이 일어나 말없이 헤어졌다. 

 그들의 경험에는 틀림이 없었다. 올 것은 기어코 오고야 말았다. 무서운 밤이었다.

 깜깜한 칠야. 

 비를 몰아치는 바람과 바다의 아우성, 보이는 것은 하늘로 부풀어오른 파도뿐이었다.  그것은 마치 바다의 참고 참았던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흰 이빨로 물을 마구 물어뜯는 것과도 같았다. 파도는 이미 모래톱을 넘어 돌각담을 삼키고 몇몇 집을 휩쓸었다.

 마을 사람들은 뒤 언덕배기 당집으로 모여 들었다. 이러는 동안에 날이 샜다.

 날이 새자부터 바람이 멎어 가고 파도는 낮아 갔다. 샌 날에 보는 마을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이날 밤 한 사람의 희생이 있었다. 윤노인이었다. 그의 며느리 말에 의하면 돌각담이 무너지고 파도가 축담 밑까지 들이밀자 윤노인은 며느리와 손자들 앞세우고 담 밖까지 나오다가 무슨 일로선지 며느리를 먼저 가라고 하고 윤노인은 다시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바다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던가 하듯 잔물결이 안으로 굽은 모래톱을 찰싹대고,

 볕은 한결 뜨거웠고, 하늘은 남빛으로 더욱 짙었다.

  그러나 고등어배는 돌아오지 않았다. 마을은 더욱 큰 어두운 수심에 잠겼다.

 이틀 뒤에 후리막 주인이 신문을 한 장 가지고 와서, 출어한 많은 어선들이 행방불명이 됐다는 기사를 읽어 주었다. 

 마을은 다시 수라장이 됐다. 집집마다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이틀이 지났다.

 울음에도 지쳤다. 울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설마 죽었을라고--이런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아낙네들은 다시 바다로 나갔다.

 살아야 했다. 바다에서 죽고 바다로 해서 산다. 해순이는 성구가 돌아올 것을 누구보다도 믿었다. 그 동안 세 식구가 먹고 살아야 했다. 해순이도 물옷을 입고 바다로 나갔다.

  해조를 따고, 조개를 캐다가도 문득 이마에 손을 얹고 수평선을 바라보곤 아련한 돛배만 지나가도 괜히 가슴을 두근거리는 아낙네들이었다. 멸치 철이건만 후리도 없었다. 

 후리막은 집두껑을 송두리째 날려 버린 그대로 손볼 엄두를 내지 않았다.

 후리도 없는 갯마을 여름밤을 아낙네들은 일쑤 불가(바닷가 모래밭)에 모였다.

 장에 갔다온 아낙네의 장시세를 비롯해서 보고들은 이야기--이것이 이 아낙네들의

 새로운 소식이요, 즐거움이었다. 싸늘한 모래에 발을 묻고 밤새는 줄 몰랐다.

 숙이 엄마가 해순이 허벅지를 베고 벌렁 누우면서,

  "엣다, 그 베개 편하다..."

  그러자 누가,

  "그 베개 임자는 어데 갔는고?"

  아낙네들의 입에서는 모두 가느다란 한숨이 진다.

 숙이 엄마는 해순이 얼굴을 말끄러미 쳐다보면서,

  -에에야 데야 에에야 데야.

  썰물에 돛달고  갈바람 맞아갔소-

  하자, 아낙네들은 모두,

  -에에야 데야

  샛바람 치거던

  밀물에 돌아오소-

  -에에야 데야-

  아낙네들은 그만 목이 메어 버린다. 이때,

  "떼과부년들이 모여서 머 시시닥거리노?"

  보나마나 칠성이네다. 만이 엄마가,

  "과부 아닌 게 저러면 밉지나 않제?"

  칠성네도 다리를 뻗고 펄썩 앉으면서,

  "과부도 과부 나름이지 내가 벌써 사십이 넘었지만...

 이년들 괜히 서방 생각이 나서 자도 않고."

  "말도 마소. 이십 전 과부는 살아도, 사십..."

  "시끄럽다. 이년들아. 사내녀석들 한 두름 몰아다 갈라 줄 테니..."

  "성님이나 실컷 하소."

  모두 딱따그르 웃는다.

  이래저래 여름이 가고 잡어가 많이 잡히는 가을도 헛되이 보냈다.

  모자기, 톳나물, 가스레나물, 파래, 김해서 한 푸ㅁ 가면 미역철이다.

  미역철이 되면 해순이는 금보다 귀한 몸이다. 미역은 아무래도 길 반쯤 물 속이 좋다.

 잠년는 해순이 밖에 없다. 해순이가 미역을 베 올리면 뭍에서는 아낙네들이 둘러앉아 오라기를 지어 돌밭에 말린다. 미역도 이 삼월까지면 거의 진다.

  어느날 밤 해순이는 종일 미역바리를 하고 나무 등치같이 쓰러져 잠이 들었다.

 얼마쯤이나 됐을까? 분명코 짐작이 있는 어떤 압박감에 언뜻 눈을 떴다.

 이미 당한 일이었다. 악! 소리를 지른다는 것이 숨결만 가빠지고 혀가 말을 듣지

 않았다. 대신 사내의 옷자락을 휘감아 잡았다. 

 세상없어도 놓지 않을 작정하고 그러자 해순이의 몸뚱아리는 아리한 성구의 기억 속으로 자꾸만 놓여지고 있었다. 그렇게도 휘감아 잡았던 옷자락이 모르는 새 놓여졌다.

  -아니, 내가 이게...-

  해순이는 제 자신에 새삼스리 놀랐다. 마치 꿈 속에서 깨듯 바싹 정신이 들자 그만 사내의 상고머리를 가슴패기 위에 움켜쥐었다. 사내는 발로 문을 더듬어 찼다.

  "그 방에 누고?"

  시어머니의 잠기 가신 또렷한 소리다. 해순이는 가슴이 덜컥했다.

 그러나 입술에 침을 발라 목을 가다듬었다.

  "뒷간에 갑니더!"

  그리고는 사내의 상고머리를 슬그머니 놓아 주고 발자국소리를 터덕댔다.

  이날 밤 해순이는 가슴이 두근거려 더는 잠을 못 잤다.

  다음날도 미역바리를 나갔다. 숨가쁜 물 속에서도 해순이 머리 한 구석에는

어젯밤 기억이 떠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성게를 가져다 시어머니에게 국을

끓여 드렸다. 시어머니는 성게국을 달게 먹으면서,

  "얘야, 잘 때는 문을 꼭 닫아 걸고 자거라!"

  해순이는 고개를 못 들었다. 대답 대신 시어머니 국대접에 새로 떠온 더운 국만

더 보탰다.


  해순이는 방바위-바위가 둘러싸서 방같이 됐기 때문에-옆에서 한천을 펴고 있었다.

이때 등뒤에서,

  "해순아!"

  해순이는 깜짝 놀라면서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후리막에서 일을 보고 있는 상수다. 해순이는 아랑곳도 않았다. 상수는 슬금슬금

해순이 곁에 다가앉으면서,

  "해순이 내캉 살자!"

  상수의 이글거리는 눈이, 물옷만 입은 해순이에게는 온몸에 부시다.

 해순이는 암말도 없이 돌아앉았다.

  "성구도 없는데 멋한다고 고생을 하겠노?"

  "..."

  "내하고 우리 고향에 가 살자. 우리집엔 논도 있고 밭도 있다.!"

  사실 그의 고향에는 별 걱정 없이 사는 부모가 있었고 국민학교를 나온 상수는

농사 돌보고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두 해 전에 상처를 하자부터 바람을 잡아 떠돌아다니다가 그의 이모집인 

이 후리막에 와서 딩굴고 있었다.

  "응야, 해순아."

  상수의 손이 해순이 어깨에 놓였다. 해순이는 탁 뿌리치고 일어났다. 그러나 상수는 어느 새 해순이 팔을 꽉 잡고 놓지 않는다.

 실랑이를 하는데 돌아가는 고깃배가 이켠으로 가까이 왔다. 

 해순이는 바위그늘에 허리를 꼬부렸다. 그새 상수는 해순이를 끌고 방바위 안으로

숨었다.

  "해순이 우리 날 받아 잔치하자."

  "싫에, 싫에, 난 싫에!"

  "정말?"

  "놔요 좀, 해가 지는데..."

  "그럼 내 말 한 번만 들어..."

  "먼 말?"

  상수는 해순이 허리에 팔을 돌렸다.

  해순이는 몸을 비꼬아 손가락을 비틀었다.

  "내 말 안 들으면 소문낼기다!"

  "머 소문?"

  "니하고 내하고 그렇고 그렇다고?"

  "...?"

  "내 머리 나꾸던 날 밤에..."

  해순이는 비로소 알았다. 아무도 모르는 오직 마음 속 깊이 간직해 둔 비밀을

옆에서 엿보기나 한 것처럼 해순이는 그만 발끈해지자 허리에 꽂은 조개칼을 뽑아

들었다. 서슬에 상수는 주춤 물러났다.

 해순이는 칼을 눈 위에 올려 쥐고,

  "내한테 손 대면 찌른다!"

  "손 안 댈께 내 말 한 번만..."

  "소문낼 텐, 안 낼 텐?"

  "안 낼께, 내 말..."

  "나보고 알은 척할 텐, 안할 텐!"

  "그래, 내 말 한 번만 들어 주먼..."

  상수는 칼을 휘두르는 해순이가 겁은커녕 되레 귀여워만 보였다.

 해순이는 도사리고 칼을 겨루면서도 그날 밤의 기억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칼 쥔 손이 어느새 턱밑까지 내렸다.

  해순이는 눈시울이 자꾸만 부드러워 갔다.

  "해순이!"

  상수가 한 걸음 다가오자 해순이는 언뜻 칼을 고쳐 들고 한 걸음 물러난다.

 상수가 또 한 걸음 다가오자 해순이는 그만 아무렇게나 칼을 내저으면서,

  "더 오지 마래, 더 오면 참말 찌른다!"

  "참말 찔리고 싶다. 찌르면 나도 해순이를 안고 같이 죽을 테야!"하고

상수는 울목대 밑을 가리키면서

  "꼭 요기를 찔러라. 요기를 찔러야 칵 죽느다니."

  해순이는 몸서리를 한 번 쳤다. 상수는 또 한 걸음 다가왔다.

 그러자 해순이는 바위에 등을 붙이고 울음인지 웃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로,

  "안 찌르께 오지 마!"

  "찔리고 싶어 온몸이 근질근질하다. 칵 찔러라. 그래서 같이 죽자!"하는

상수 눈에는 불이 일 듯하면서도 입가에는 어쩌면 미소가 돌 것도 같다.

 상수의 눈을 쏘아보던 해순이는 그만 칼을 내던지고,

  "참 못됐다!"

  상수는 칼을 주어 칼날을 더듬어 보면서,

  "내 이 칼 좀 갈아다 줄까. 이 칼로야 어디..."

  "어쩌면 저렇게도 못됐을꼬."

  "전복 따듯 목을 싹 도리게스리..."

  "흉측해라. 꼭 섬도둑놈 같다!"

  "그랬으면 얼마나 속 시원할꼬?"

  "난 갈테야."

  "날 죽이고 가거라!"

  "아이 참, 그럼 어짜라카노."

  "내 말 한 번만..."

  "그럼 빨리 말해 보라나..."

  상수는 해순이 목에 팔을 감았다. 해순이는 팔굽으로 뿌리치고 돌아앉아 어깨로부터 물옷을 

벗기 시작했다. 이날 해순이는 몇 번이고 상수에게 소문내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다.  그러나 이틀이 못가서 아낙네들 새, 해순이와 상수가 그렇고 그렇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다시 고등어철이 와도 칠성네 배는 소식조차 없었다.

 밤이면 아낙네들만이 불가에 모여들었다. 

 칠성네가 그의 시아버지(박노인-박노인은 그뒤 이렇다 할 병도 없이 시름시름 앓아 누워 지금껏 자리를 뜨지 못한다)가 시키는 말이라면서 작년 그날을 맞아 일제히 제사를 지내라는 것이었다. 

 모두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이 H마을에 여덟 집 제사가 한꺼번에 있는 셈이다.

 제사를 이틀 앞두고 해순이 시어머니는 해순이에게

  "얘야, 성구 제사나 마치거든 개가하도록 해라!"

  "..."

  "새파란 청상이 어찌 혼자 늙겠노."

  해순이는 그저 머엉했다.

  "가면 편할 자리가 있다. 그새 여러 번 말이 있었으나, 성구 첫제사나 치르고 보자고 해왔다. 

너도 대강 짐작이 갈 게다."

  해순이는 낯이 자꾸 달아올랐다. 상수가 틀림없었다. 해순이는 고개가 자꾸만

 무거워 갔다.

  "과부가 과부 사정을 안다고, 나도 일찍 홀로 된 몸이라 그 사정 다 안다.

 죽은 자식보다 너가 더 애처롭다. 저것(시동생)도 인젠 배를 타고 하니

설마 두 식구야..."

  다음 날은 벌써 상수가 해순이를 맞아 간다는 소문이 온 마을에 쫙 퍼졌다.

 그러면서도 아낙네들은 해순이마저 떠난다는 것이 진정 섭섭했고 맥이 풀렸다.

 눈물을 글썽대는 아낙네도 있었다. 해순이는 이 마을-더구나 아낙네들의 귀염동이다. 

 생김새도 밉지 않거니와 마음에 그늘이 없다. 남을 의심할 줄도 모르고 거짓도 없다. 

  그보다도 우선 미역철이 오면...아낙네들은 절로 한숨이 잦았다.

 그러나 해순이는 그저 남녀가 한 번 관계를 맺으면 으레 그렇게 되나 보다, 

 그래서 그렇게 됐고 또 그렇게 해야 되나 보다-이러는 동안에 후리막 안주인과

상수를 따라 해순이는 가야 했다.


  해순이마저 떠난 갯마을은 더욱 쓸쓸했다. 한 길 물 속에 미역발을 두고도 철을

놓쳐 버렸다. 

  보릿고개가 작이도 고되었다. 해조로 끼니를 이어가는 집도 한 두 집이 아니었다.

  또 고등어철이 왔다. 두 번째 맞는 제사를 사흘 앞두고 아낙네들은 불가에 모였다.

  "요번 제사에는 고등 생복도 없겠다!"

  "이밥은 못 차려도 바다를 베고서..."

  "바닷귀신이 고등 생복 없이는 응감도 않을검!"

  이렇게들 주거니받거니 하는데 뒤에서 누가,

  "왁!"

  해순이였다.

  "이거 새댁이 앙이가?"

  "새댁이 우짠 일고?"

  "제사라고 왔나?"

  "너거 새서방은?"

  그 중에서도 숙이 엄마는 해순이를 친정에 온 딸이나처럼 두 손으로 얼굴을 싸고 

들여다보면서,

  "좀 예짓(여위었)구나."

  그러자 칠성네가,

  "여기 좀 안거나 보자!"

  해순이는 아낙네들에 둘러싸여 비로소,

  "성님들 잘 기섰소?"

  "너거 시어머니 봤나?"

  해순이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의 시어머니는 해순이를 보자 입부터 실룩이고 눈물을 거두었다. 아들 생각을

해선지?  아니면 제사날을 잊지 않고 온 며느리가 기특해선지?

 해순이는 제방에 들어가서 우선 잠수연모부터 찾아보았다.

 시렁 위에 그대로 얹혀 있었다. 해순이는 반가왔다. 맘이 놓였다. 

 그래서 불가로 나왔다.

  "난 인자 안 갈 테야. 성님들하고 여기서 같이 살래!"

  그리고는 훌쩍 일어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가슴 가득히 숨을 들이켰다.

  오래간만에 맡는 그렇게도 그립던 갯냄새였다.

  아낙네들은 모두 서로 눈만 바라보고 말이 없었다.

  상수도 징용으로 끌려가 버린 산골에서는 견딜 수 없는 해순이었다.

  오뉴월 콩밭에 들어서면 깜박 숨이 막혔다. 바랭이 풀을 한 골 뜯고 나면 손아귀에

 맥이 탁 풀렸다. 그럴 때마다 눈앞에 훤히 바다가 틔어 왔다.

  물옷을 입고 첨벙 뛰어들면-해순이는 못견디게 바다가 아쉽고 그리웠다.

  -고등어철-해순이는 그만 호미를 내던지고 산비탈로 올라갔다.

 그러나 바다는 안 보였다. 

 해순이는 더욱 기를 쓰고 미칠 듯이 산꼭대기로 기어올랐다.

  그래도 바다는 안 보였다.

  이런 일이 있은 뒤로 마을에서는 해순이가 매구 혼이 들렸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시가에서 무당을 데려다 굿을 차리는 새, 해순이는 걷은 소매만 내리고 마을을 빠져 나와 삼십 

리 산길을 단걸음에 달려온 것이다.

  "진정이냐. 속 시원히 말 좀 해라. 보자-."

  숙이 엄마의 좀 다급한 물음에도 해순이는 조용조용,

  "수수밭에 가면 수숫대가 모두 미역밭 같고, 콩밭에 가면 콩밭이 왼통 바다만 같고..."

  "그래!"

  "바다가 보고파 자꾸 산으로 올라갔지 머. 그래도 바다가 안 보이데-."

  "그래, 너거 새서방은?"

  "징용간 지가 언제라고."

  "저런..."

  "시집에선 날 매구 혼이 들렸대."

  "쯧쯧"

  "난 인제 죽어도 안 갈 테야. 성님들하고 여기 같이 살 테야!"

  이때 후리막에서 야단스리 꽹과리가 울렸다.

  "아, 후리다!"

  "후리다!"

  "안 가?"

  "왜 안 가!"

  숙이 엄마가 해순이를 보고,

  "맴치마만 두르고 빨리 나오라니..."

  해순이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아낙네들은 해순이를 앞세우고 후리막으로 달려갔다. 

맨발에 식은 모래가 해순이는 오장육부에 간지럽도록 시원했다.

  달음산마루에 초아흐렛달이 걸렸다. 달 그림자를 따라 멸치 떼가 들었다.

  -데에야 데야-

  드물게 보는 멸치 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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