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ese Arts

伊那の勘太郞 月夜唄

Jimie 2024. 5. 18. 06:02

映画 [伊那の勘太郞] の主題歌
勘太郎月夜唄
唄 :小畑実
https://www.youtube.com/watch?v=2BYPRYm7bCE

 

 

勘太郎月夜唄 간타로즈키요우타
作詞: 佐伯孝夫 作曲: 清水保雄 唄: 小畑 実
 
카ㅇ게카 야나기카 간타로산카
影か柳か 勘太郎さんか 그림자일까 버들일까 간타로상일까
이나와 나나타니 이토히쿠 케무리
伊那は七谷 糸ひく煙り 이나는 깊은 산골 피어 오르는 연기    
스테테 와카레타 고쿄노 즈키니
棄てて別れた 故郷の月に버리고 따나온 고향의 달에
시노부 고요이노 호토토ㅇ기스
偲ぶ今宵の ほととぎす 그리워하는 이 밤의 두견새
* 이나(伊那)는 나가노켄(長野県) 남부의 伊那谷 北部 지명이며  나나타니(七谷)는 산골마을임.
他地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산골 벽촌 마을 이곳이 映畵<伊那の勘太郎>의 배경이 되고
主題曲이 愛唱되면서 갑자기 일본 전국에 알려져 有名 해 진 마을임.


나리와 야쿠자니 야츠레테 이테모
形はやくざに やつれていても 행색은 야쿠자  초라하게 보이지만
즈키요 미테쿠레 고코로노 니시키
月よ見てくれ 心の錦 달님아 보아다오 비단결 같은 마음
우마레 가왓테 텐류노 미즈니
生まれ変わって 天龍の水に 다시 태어나서 덴류의 강물에
우츠스  오토코노 하레스ㅇ가타
うつす男の 晴れ姿  비추는 사나이의 장한 모습


*덴류노 미즈(天龍の水)는 나가노켄(長野縣)에 있는 덴류강- 天竜川 를 말하며,
長野県에서 愛知県 静岡県을 거쳐 太平洋으로 흘러들어가는 길이 213km  激流의 江임.


기쿠와 사카에루 아오이와 카레루
菊は栄える 葵は枯れる 국화는 활짝 피고 접시꽃은 시드네
쿠와오 츠무코로 아오쟈 나이카
桑を摘む頃 逢おうじゃないか 뽕잎 딸 무렵에 만나자꾸나
키리니 키에유쿠 잇폰가타나
霧に消え行く 一本刀 안개 속으로 사라져 가는 칼 한자루(義理의 俠客)
나이테 미오쿠루 베니츠츠지
泣いて見送る 紅つつじ 울면서 배웅하는  붉은 진달래


* 국화는 번창하고 접시꽃은 시든다(菊は栄える 葵は枯れる).
국화는 황실의 문장이고, 접시꽃은 도쿠가와(德川)가의 문장으로, 황실은 성하고 도쿠가와가는
망한다는 뜻.  뽕 따는 무렵이란 음4월이 누에에 뽕을 주는 적기를 이름.
잇폰가타나(一本刀;いっぽんがたな)란, 무사들은 대소 두 자루의 칼을 차지만, 협객들은 날밑이 없는 한자루만 차기에
잇폰가타나라고 하며  야쿠자의 별칭임.

 


勘太郎月夜歌
小畑 実 ・ 藤原 亮子
https://www.youtube.com/watch?v=9fGeVQvXsek

 

1943년에 개봉된 영화 이나노 칸타로(伊那の勘太郞)의 주제가 입니다.
이 노래는 전시 중, 가장 히트한 곡으로 전후에도 다시 히트하고 야쿠자를 주제로 하는 노래의 단골
메뉴가 됩니다. 이 노래로 오바타 미노루(小畑実)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영화는 메이지유신 직전의 동란기가 무대로, 주인공인 간타로가 고향인 이나에서 악행을 일삼던 야쿠자
일당과 싸워 우두머리를 죽이고 떠난 후, 덴구당(天狗党)에 가담하고 돌아온다는 이야기입니다.
간타로는 실재인물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야마다 후타로(山田風太郎)의 소설 ‘마군의 통과(魔群の通過)” 우수이 도쿠타로(薄井督太郎)라는
실재인물이 등장합니다. 그 인물을 개략하여 가공의 인물이 생긴 연유를 알아 보겠습니다.

우수이 도쿠타로(薄井督太郎)는 뜻을 세우고 상경해 사상가인 사쿠마 쇼잔(佐久間象山)의 문하생이 되어
존왕양이(尊王攘夷: 왕을 받들고 외적을 무찌른다는 사상)을 신봉합니다.
마침 일어난 존왕양이를 주장하는 덴구당(天狗党)의 난에 참모로 가담합니다. 덴구당이 지나는 곳마다 약탈
행위가 끝이지 않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데 진격로를 이나지(伊那路)로 할 것인가, 기소지(木曽路)로 할 것인가 입니다.
우수이는 이나지 통과를 적극 반대합니다.
이나지로 가면 고향인 이나가 쑥대밭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의견은 무시되고 , 그는
그날 밤에 자취를 감춥니다. 그후 난이 평정되고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아 메이지유신 후에 우수이 다츠유키
(薄井龍之)로 개명하고 개척사감사(開拓使監事), 도쿄재판소 판사 등을 역임합니다.

개척사감사 시절에는 삿포로의 공설유곽 건설에 관여했었는데 그것이 우수노유곽(薄野遊廓)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그리고 시내 한 구역에 그의 성 우수(薄)를 따서 우수노(薄野)라고 정했는데 지금은 삿포로시의 번화가로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입니다.

우수이는 야쿠자가 아니지만 간타로라는 드라마틱한 야쿠자로 역할변경 시켜서 영화화 한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스토리로는 어떻게 각색되었는지 보겠습니다.

이나(伊那)일대에서 주베에(重兵衛)일당은 주민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평범한 청년 간타로에게는 어릴 때 친구 쇼키치(庄吉))가 있는데 그에게는 약혼자 오싱(おしん)이 있습니다.
오싱은 마음속으로 간타로를 사모하고있습니다. 그것을 안 쇼키치는 자포자기가 되어 주베에의 도박장에서
도박에 빠집니다. 그런 사정을 오싱은 간타로에게 알립니다.
간타로는 단신 도박장에 갔는데 마침 쇼키치가 돈을 다 잃어 오싱의 땅까지 잡히고 있는 상황입니다.
간타로는 자기의 몸을 담보로 주베에에 도전합니다. 긴장의 순간 주사위의 눈은 간타로의 승으로 나옵니다.
그러자 비겁하게 주베에는 칼을 들이대고 일당에게 간타로를 거적에 말아서 덴류강에 던져버리게 합니다.
마침 강 아래에서 도미고로(富五郎) 오야붕(야쿠자의 우두머리)이 배를 타고있었는데 거적을 발견합니다.

이윽고 세월이 흘러 도미고로의 신뢰를 얻고 잘 지내는 간타로에게 쇼키치가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오싱까지 위태롭게 되었다는 소식이 날아옵니다. 간타로는 단숨에 이나에 가 오싱을 구해냅니다. 질투에 눈이 먼 쇼키치는 주베에의 강요로 간타로를 밤에 불러내게 합니다

주베에 일당에게 포위된 간타로는 위기를 맞는데 구원자가 나타납니다.
다름아닌 도미고로입니다. 간타로는 덤벼드는 상대를 잇폰가타나로 베고 또 벱니다.
우두머리인 주베에마저 쓰러뜨리고 완승합니다.

다음날 아침 간타로는 이별을 서러워하는 오싱과 쇼키치를 뒤로 하고 산도가사(三度笠)를 쓰고 텐류강의 안개 속으로 사라져갑니다.
그리고 3년후, 간타로는 존왕양이파의 한 사람이 되어 이나로 돌아옵니다.

                                                          勧太郎月夜〔伊那市春日公園・春日城址跡)


이 영화는 1943년에 개봉한 작품인데 당시 전시하에서는 야쿠자를 다룬 영화는 검열에서 통과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존왕양이의 한 사람이라는 부분을 삽입에서 검열을 통과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영화를 검열에서 통과시키려면 한낱 야쿠자를 주인공으로 해서는 어렵고, 근왕(勤王)의 지사로한다는 설정으로 제작해서 통과시켰다고 합니다. 그 때에 주인공의 이름을 영화감독 이나가키 히로시(稲垣浩)의 별칭인 '이나간'을 따서 '이나노 간타로' 라고 정했다는 것입니다.

이나노 간타로라는 이름을 생각해낸 사람이 각본가 미우라 인타로(三村伸太郎)인데 이나가키가 말하기를
미우라의 소변보는 시간이 남보다 세배는 길어 함께 일보면 늘 기다려야 했다고합니다. 한번은 남의 집 담장에서 일보고 있는데 경찰이 오는것을 본 이나가키가 놀라서 그에게 가자 경찰은 이미 지나간 뒤였습니다.

이나가키가 '곤란한 때에 걸렸네 현행범이야' 하자, 그는 "역시 에도(江戶: 도쿄의 옛이름)는 멋진 데야, 경찰이 뭘하는 거요 묻길래 난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미안합니다 했더니 경찰이 솔직한 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한쪽 다리를 들고 마저 일보시오 하고 지나가던데" 개처럼 한쪽 발을 들고 일보라는 건데 개는 처벌할 수 없지요.

이 영화는 당시 인기 절정인 배우 하세가와 가즈오(長谷川一夫)와 야마다 이수즈(山田五十鈴)가 공연해서
영화와 함께  노래도 크게 히트합니다. 간타로의 실재여부는 차치하고 영화와 노래가 이나시(伊那市)를 빛냈다는 것을 기념해서 “이나노 간타로 겐쇼비((伊那の勘太郎顕彰碑)를 그 곳 가수가공원(春日公園)에 세웠습니다.

 



映画の主題歌 「勘太郎月夜唄」 
尺八とギター
\https://www.youtube.com/watch?v=WSOOJraGpcI

 

 

작사자 사에키 다카오(佐伯孝夫)와 작곡자 시미즈 야수오(清水保雄)는 "유시마노 시라우메
(湯島の白梅)" 작사.곡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시미즈 야수오는 고가 마사오의 비서겸 운전수겸 작곡 및 편곡가였는데 고가 마사오가 오바타의
미성에 반해서 이 노래를 부르게 하려고 시미즈의 명의로 작곡했다고 합니다.  명의를 빌린 것은오바타와
고가는 소속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바타 미노루(小畑実)는, 해방 후에도 “고겐노에키요 사요나라(高原の駅よさようなら)” “호시카게노 고미치(星影の小径)” “나가사키노 자봉우리(長崎のザボン売り)” "바라오 메시마세(薔薇を召しませ)” 등, 많은 히트곡을 냈습니다.
본명은 강영철로 평양출신인데 1937년, 14세때 일본으로 건너가서 고학하며 음악학교를 다녔습니다. 기숙하던 집주인의 성인 오바타(小畑)를 따서 오바타 미노루로 했습니다.


오바타가 처음 입사한 데가 빅터레코드사로서 1941년 18세때 작곡가 에구치 요시(江口夜詩)의 테스트를 받으러 갔는데 그 미성에 모두가 놀라 곧 채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미성을 전시중에는 살릴 수 없어 고생하고 있을 때 “湯島の白梅”의 노래를 기획하고, 오바타 미노루에게 부르도록 했는데, 당시 신인을 세울때는 인기가수인 이성의 선배와 같이 부도록 되어있어, 중견가수인
후지와라 료코(藤原亮子)와 함께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 때 오바타는 완전히 얼어붙어 NG가 속출했다고 합니다.

1957년에 은퇴, 실업계로 나나 라스베가스에서 호텔경영에도 참여하고, 재일동포 실업가 서갑호가 사장인 사카모토방적(坂本紡績)에서 중역을 지냈으나, 결국 1969년에 복귀합니다.
그는 1979년, 골프장에서 급성심부전으로 쓰러져 55세로 세상을 떴습니다.


<사족>
재일동포 서갑호는 사카모토방적(坂本紡績)의 사장인데 한국에도 1967년에 방림방적주식회사를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주일한국대사관의 신축 대지를 무상으로 제공했는데, 그 공을 기려 한국대사관 1층에 '제일한국대사관의 역사'를 소개하는 자료실을 설치하고 그의 아호를 따서 동명실(東鳴室)이라고 명명하고, 그의 흉상도 세웠습니다. 오바타 미노루는 그의 사위입니다.



勘太郎 仁侠の徒 伊那に咲く
남아 간타로 의협심의 사나이 이나에 피다

 

 

映画 [伊那の勘太郞] の主題歌
勘太郎月夜唄
作詩 佐伯孝夫 作曲 清水保雄 歌 小畑実

伊那市(昭和29年4月1日市制施行)と伊那商工会議所は、春日公園に『伊那の勘太郎碑」を建立。その石碑は大映社長、永田氏によるものである
昭和18年(1943)に公開された東宝映画『伊那の勘太郞』の主題歌。長伊那市でロケ 長谷川一夫、山田五十鈴が主演
幕末の動乱期を舞台に、天狗党の乱に加担し、やがて故郷の伊那に帰ってくるヤクザの物語。



小畑 実(おばた みのる、1923年4月30日 - 1979年4月24日)は、朝鮮平壌出身の歌手。本名は康 永喆(강영철)。
小畑氏  1941年の『成吉思汗』 1942年の『湯島の白梅』 1943年には『勘太郎月夜唄』 ...『小判鮫の唄』『薔薇を召しませ』『アメリカ通いの白い船』『長崎のザボン売り』『高原の駅よさようなら』『山の端に月の出る頃』『青い流れに』『ロンドンの街角で』『花の三度笠』 『星影の小径』 『星のない渚』『湯の町しぐれ』などヒット曲があ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