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새벽(현지 시각) 규모 7.8의 강진이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를 강타해 최소 2300여 명(오후 6시 현재)이 숨졌다고 AP·AFP통신과 BBC 방송 등이 보도했다. 부상자는 1만여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주민들이 대부분 잠든 새벽에 지진이 발생했고,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린 사람이 많아 앞으로 사상자 숫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이날 새벽 4시 17분쯤 튀르키예 남부 가지안테프주 누르다으에서 동쪽으로 약 26㎞ 떨어진 곳에서 규모 7.8의 지진이 발생했다. 진원 깊이는 약 17.9㎞로 추정됐다. 약 11분쯤 뒤 규모 6.7의 강한 여진이 뒤따랐다. USGS는 “이번 지진은 1939년 3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튀르키예 역사상 최악의 지진과 동일한 규모”라고 설명했다.
튀르키예 당국은 “이날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1498명으로 늘었고, 부상자는 7000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AFP통신은 반군 장악 지역에서 숨진 주민을 포함, 시리아에서만 현재까지 810명이 숨지고 2000명 이상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USGS는 이번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최대 1만명에 이를 확률이 47%라고 예상했다.
정부는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이날 튀르키예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깊은 위로와 애도의 뜻을 전한다”며 “피해 지역에 대한 조속한 복구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규모 7.8의 역대급 강진이 발생한 6일 튀르키예 동남부와 시리아 북부 지역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튀르키예 남부 도시 하타이의 공동 주택 밀집 지역에선 4~5층짜리 건물 10여 채가 융단 폭격을 받은 듯 잇따라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 남부 아다나 지역에선 10여 층짜리 아파트 건물 한 동(棟)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폭삭 주저앉았다. 지역 주민 아슬란씨는 “우리 가족이 한날한시에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며 아찔한 순간을 전했다.
무너진 지붕과 벽체가 켜켜이 쌓여 실종자 구조와 복구 작업에 엄두를 내지 못할 건물이 곳곳에 있었다. 튀르키예 전역에서 최소 3000여 채의 건물이 피해를 입었다고 알려졌다. 주민들은 “무너지는 건물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탈출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푸아트 옥타이 튀르키예 부통령이 사망자 수를 284명으로 발표했으나, 사망자 시신이 속속 수습되면서 몇 시간 만에 1000명을 넘었다. 옥타이 부통령은 이날 하루 여진(餘震)이 70차례 이상 발생했다고 밝혔다. 유럽지중해지진센터(EMSC)에 따르면 이날 오후에는 규모가 최대 7.5에 달하는 여진도 발생했다.
지진 발생 후 술레이만 소을루 튀르키예 내무장관은 10개 피해 지역에 구조대와 보급 비행기를 급파하고, 최고 단계인 4단계 경보를 발령했다. 튀르키예 국영 방송 TRT에는 지진으로 파괴된 건물 잔해에서 생존자를 끌어내 들것으로 옮기는 모습이 방영됐다.
지진의 직격탄을 맞은 시리아 서북부의 피해 상황도 심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곳은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과 내전을 벌이는 반군이 10년 넘게 장악한 지역으로, 알아사드 독재 정권을 피해 탈출한 피란민 400여 만명이 살고 있다. 이곳에서만 수백명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생존자들은 지진으로 폐허가 된 집을 떠나 대피소로 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지역은 내전을 거치며 파손된 건물이 많아 무너진 건물에 의한 인명 피해가 더 클 것으로 보인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시리아 반군 측 민간 구조단체인 ‘하얀 헬멧’은 시리아 북서부를 재난 지역으로 선포했다. 지진으로 인한 흔들림은 튀르키예 최대 도시 이스탄불뿐만 아니라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등에서까지 감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튀르키예는 북동쪽의 유라시아판과 남서쪽 아라비아판에 꾸준히 밀려나는 주요 단층선에 위치하고 있어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으로 꼽힌다. 큰 지각판이 충돌하는 곳에서는 땅이 찢기고 갈라지면서 강진의 원인이 되는 대규모 단층대가 생긴다. 이 일대에서는 최근 25년간 규모 7 이상의 강진이 7차례 발생했다. 1999년 8월 규모 7.8의 강진은 1만70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제발 이 아이만은…" - 6일(현지 시각)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한 시리아 북서부 이들리브주 자르다나에서 한 구조대원이 건물 잔해에서 구조한 아이를 품에 안고 의료진을 찾아 달려가고 있다. 주민들이 대부분 잠든 새벽에 지진이 발생했고,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린 사람이 많을 것으로 보여 희생자 숫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AFP 연합뉴스
이날 지진은 최근 약 6년 사이에 발생한 지진 중 최대 규모로 파악된다. 히로시마 원폭 3만개를 한꺼번에 터뜨리는 것과 같은 파괴력으로 지역을 강타했다는 것이다. 2017년 이라크와 이란 국경을 강타해 600여 명의 사망자와 8000여 명의 부상자를 낸 지진은 규모 7.3이었다.
이날 피해 지역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 약속이 잇달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튀르키예 등이 필요한 모든 지원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튀르키예, 시리아 국민들과 함께하겠다.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문제로 튀르키예와 갈등을 빚어온 이스라엘도 신속 재난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하기로 했다.
튀르키예 주재 한국 대사관은 “이번 지진으로 인한 우리 교민 피해는 현재까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시리아는 한국과 미수교국으로 남아 있어 한인 피해 여부를 곧바로 파악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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