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 Human Geography

“500만 달러 송금지시서 입수…노무현 수사 뭉갤 수 없었다” ①

Jimie 2022. 11. 22. 09:06

“500만 달러 송금지시서 입수…노무현 수사 뭉갤 수 없었다” ①

“500만 달러 송금지시서 입수…노무현 수사 뭉갤 수 없었다” ①

 

에디터고대훈

여기는 성지(聖地)다. 신화가 살아 숨 쉰다. 황톳빛의 흉상, ‘영원한 나의 대통령’이 새겨진 박석(바닥돌), 헌화대에 놓인 하얀 국화송이, 너럭바위를 품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붉은 철판의 외침이 아우라를 뿜어낸다. 줄을 잇는 추모객들은 추앙으로 응답한다. ‘노무현 신화’를 간직한 김해 봉하마을의 2022년 10월 4일 오후 모습이다.

봉하마을 뒷산의 부엉이바위에 올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하 존칭 생략)이 비극적 최후를 선택한 곳이다. ‘출입금지’ 팻말이 걸린 철조망 너머로 바위가 보였다. 2009년 5월 23일 새벽이었다. “운명이다”는 유서를 남기고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그의 투신은 자살이지만 타살이라고 한다. 검찰이 죄 없는 전직 대통령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은 ‘정치적 타살’이란 프레임이 견고하다.

10월 4일 한 여성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왼쪽에 보이는 절벽이 부엉이바위다. 고대훈 기자

무엇이 그를 부엉이바위로 내몰았을까. 그가 떠난 지 13년이 지났건만 투신 이유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노무현의 죽음은 우리 현대사에 격변을 불러왔다. 폐족으로 몰렸던 ‘친노(親盧)’의 부활, 거악 척결의 상징이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문재인 정권의 등장과 ‘적폐 청산’이란 이름의 정치 보복극,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검사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 등 연쇄 사건들은 노무현의 최후와 얽혀 있다.

중앙일보는 〈“권력의 문지방을 넘어라”-특수부 사람들〉에서 파워 엘리트로 부상한 검찰 특수부를 해부했다. 이제 〈“권력의 문지방을 넘어라”-특수부 비망록〉을 10월 24일부터 매주 월·화 2회씩 연재한다. 수사 비망록에서는 우리 현대사를 뒤흔든 주요 사건들을 선별해 특수수사의 비화와 진실을 파헤친다.

그 첫 번째 순서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640만 달러 수수 의혹 사건’을 재조명한다. 엄청난 충격과 반전을 불러온 역사적 사건인데도 실체가 베일 속에 가려져 왔다. 수사 기록은 그의 죽음과 함께 봉인된 채 잠자고 있다.

지금껏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화 공개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기자는 3개월에 걸쳐 노무현 수사에 직간접으로 관여했던 핵심 관계자들을 은밀하게 대면 접촉했다. 신분 노출을 꺼리며 철저한 익명이 전제 조건이었다. 수사 과정과 전말에 관해 생생한 증언을 채취했다. 증언자들은 정파적 공격이 두려워 13년 동안 가슴속에 삭혀온 비밀을 털어놨다. 지금껏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화가 담겼다. 논쟁적인 새로운 사실과 흥미진진한 뒷얘기는 실증적 자료로서 가치가 충분했다. 이제 실체적 진실을 밝혀 역사의 기록과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 수사 비망록을 쓴다.

‘노무현 사건’은 다섯 개의 의문 덩어리로 구성된다. 첫째, 검찰은 왜 노 전 대통령을 수사 대상에 올렸을까? 둘째, 그의 가족이 받은 ‘500만·100만·40만 달러’는 무엇인가? 셋째, 그를 자살에 이르도록 신병처리가 늦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넷째, 누가 ‘논두렁 시계’ 사건을 창작했나? 다섯째, 그의 수사 기록은 영원히 봉인돼야 하나?

부엉이바위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를 말한다. 그 죽음에 얽힌 다섯 개의 의문을 풀기 위해 역사 속으로의 여정을 부엉이바위에서 출발하는 이유다. ‘검찰은 왜 노무현을 수사 대상에 올렸을까’라는 첫 번째 의문부터 얘기하련다.

철조망과 나무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부엉이바위. 고대훈 기자

“사정(司正) 수사는 대통령의 통치행위라고 할 수 있다. MB 정부에서 (노무현 측에 대한) 기획사정을 좀 해달라고 하는데 임채진 검찰총장은 구체적인 범죄가 드러나지 않으면 못 한다며 딱 버텼다. 그런데 국세청 고발 사건을 만들어서 검찰에 던진 거였다.”

9월의 어느 날, 대검찰청에서 고위 간부를 지낸 A를 경기도의 모처에서 조용히 만나 증언을 들었다. 노무현 수사는 MB 정부의 ‘기획’으로 시작된 수사였다는 주장이다. 검찰이 노무현 수사에 개입하게 된 내막이 공개되기는 처음이다. 당시의 상황을 알아야 이해하기 쉽다. 2008년 2월 출범한 MB 정부는 100일도 안 돼 ‘광우병 광풍’ 속에 석 달 넘게 촛불시위에 시달렸다. MB 지지율은 곤두박질쳤고, 국정 동력을 상실했다. 청와대에선 대선 패배에 불복하는 친노(노무현) 세력이 배후라는 관측이 돌았다. ‘노무현의 후원자’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1945~2020, 이하 존칭 생략)이 국세청에 걸려들었다. 나이키에 운동화를 공급하던 태광실업은 노무현 정권 때 ‘신발공장’에서 벗어나 화학·건설·골프장 등에 진출하는 등 크게 성장하면서 특혜 의혹이 돌았다. 국세청은 박연차의 비자금 조성과 세금포탈 혐의를 잡아내 검찰에 고발했다. 노무현 세력을 겨냥한 경고였다”고 A는 말했다.

대검 중수부는 그해 12월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과정에서 29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노무현의 친형 노건평씨를, 290억여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박연차를 각각 구속 기소했다. 수사가 마무리되는 분위기였다.

“이인규·우병우, 목에 칼 들이대도 양보 안 할 강성”

2009년이 밝고 단행된 대검 중수부의 새 진용은 심상치 않은 전조였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 홍만표 수사기획관, 우병우 중수1과장 등 특수수사통을 발탁했다. 박연차의 정·관계 로비 사건,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 수사의 신호탄이었다. 노무현 수사 과정을 잘 아는 중수부 간부 출신 B를 접촉해 인사 배경을 들었다. 왜 이인규와 우병우가 수사팀에 참가하게 됐는지를 파악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2009년 당시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의 모습. 중앙포토

 

“수사팀 핵심에 이인규·우병우를 포진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여권(MB 정부와 한나라당)에서 목에 칼을 들이대도 양보 안 할 강성이었기 때문이었다. 박연차의 정·관계 로비 리스트에 있는 수사 대상을 봤더니 여(한나라당)와 야(통합민주당)를 같이 수사해야 했다. 검찰은 어느 한쪽만 절대로 안 친다. 여권을 치려면 이상득(MB 친형)·천신일(MB 친구)·최시중(MB 정부 초대 방송통신위원장) 세 사람 중 한두 명은 수사 대상에 들어가야 했다. MB의 오른팔과 왼팔 몇 명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강성 이인규·우병우를 기용한 것이다.”

수사팀을 이끄는 이인규는 대표적인 특수수사통으로, 한번 시작한 수사는 끝을 보고야 마는 스타일로 유명했다. 한때 ‘재계의 저승사자’라고 불렸다.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설도 있다. 1990년대 말 미국 워싱턴에서 파견검사로 체류할 때 현지에서 MB와 만나 각별한 사이가 됐다는 점, 정동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과 고교 선후배 사이라는 점이 거론됐다. 노무현을 직접 수사할 운명을 맞게 될 우병우는 의외였다. B의 이어지는 회고다.

“임채진 총장과 우병우 검사는 근무연이 없었다. 임 총장이 ‘우병우가 김윤옥 언니 사건을 잘 처리했다’고 칭찬하며 눈여겨봤다고 하더라. 2008년 8월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 부장이던 우병우는 MB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언니를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막 출범한 MB 정부의 인척을 구속하면서 민원이 통하지 않는 강직한 성격과 저돌적인 수사력을 높이 평가했다. 서울중앙지검 부장으로 있던 우병우를 후배 기수가 맡았던 중수1과장 자리에 앉힌 건 수사를 철저히 하라는 신호였다. 임 총장은 우병우에게 수사팀 검사를 맘대로 뽑아 쓰라고 했고, 그는 8명의 쟁쟁한 특수통 검사를 직접 차출했다.”

2009년 대검 중수부 1과장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한 우병우 전 민정수석. 뉴스1

“대검, 노무현 측에 500만 달러 송금 정보 입수”

취임 직후 이인규는 “박연차 사건을 원점에서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고 했다. 수사팀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 시작했다. A의 증언은 구체적이다.

“2008년 12월 무렵 노무현 측에서 500만 달러를 받았다는 정보가 대검에 입수됐다. 500만 달러라는 구체적인 범죄 단서가 검찰 수뇌부의 귀에 딱 들어가 버리는 순간, 법무부와 청와대에서도 싹 다 그런 사실을 안다. 집권여당도 곧 알게 된다. 500만 달러 송금지시서를 중수부에서 갖고 오는데 검찰 수뇌부도 수사를 뭉갤 수는 없었다.”

이 증언은 이인규·우병우 인사의 배경을 이해하는 열쇠다. 500만 달러 수사는 검찰에 선택이 아니라 당위의 문제가 됐다. 전직 대통령이 연루된 사건을 맡기기에 적합한 인물을 찾아 선발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검찰은 500만 달러의 존재를 어떻게 파악했을까? 〈②에서 계속〉

추신: 연재 제목 ‘권력의 문지방을 넘어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에서 착안했다. 2003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 때 노 대통령은 자신의 측근들을 수사한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을 만난 자리에서 “검찰이 권력의 문지방을 넘었다”고 서운해했다는 일화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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