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iting Articles

"北흉악범이라 북송" 안보실, 서해공무원 南송환 요구 안했다

Jimie 2022. 10. 17. 20:13

"北흉악범이라 북송" 안보실, 서해공무원 南송환 요구 안했다

  • 중앙일보
  • 허정원
  • 입력2022.10.17 18:59최종수정2022.10.17 19:21

서해 공무원 피격 사망사건과 관련해 감사원이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 등 문재인 정부의 위법 정황이 담긴 중간 감사결과를 내놓으면서 검찰의 판단에도 이목이 쏠린다. 검찰은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가 실종 이튿날 북측에 발견된 뒤 피살되기까지 5시간 동안 청와대가 이를 보고 받고도 송환·구조 요청을 하지 않은 배경을 놓고 당시 국가안보실 등 청와대가 피살 은폐 및 월북 조작에 조직적으로 가담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특히 안보실은 공무원 피살 사건 10개월 전엔 ‘흉악범’이란 이유로 북한의 송환 요청도 없었는데도 먼저 북측에 송환 의사를 타진해 탈북 어민 2명을 강제 북송해놓고, 국민 이 씨에 대해선 신속한 송환 요청조차 하지 않아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靑, 이씨 피살 5시간 전 北발견 알았지만

서해 공무원 피격 사망사건 관련 핵심 의사결정자로 분류되는 (왼쪽부터) 박지원 전 국장원장,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중앙포토.

 

17일 감사원의 서해 공무원 피격 사망사건 관련 중간 감사결과에 따르면 국가정보원, 합참과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이 씨의 북한해역 발견정황을 인지한 건 국정원이 2020년 9월22일 오후 15시 49분으로 가장 빨랐고, 이어 합참(4시 40분), 안보실(5시 18분)순이었다. 이 중 청와대는 북한군이 이 씨를 사살한 뒤 소각한 시점(오후 9시 40분~10시 50분)을 고려하면 이 씨의 피살보다 약 5시간 앞서 사건 정황을 인지한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이 씨의 피살 3시간 전인 오후 6시36분 최초 서면 보고를 받았다. 감사원이 분석한 통일부의 상황일지에 따르면 문 대통령에게 올라간 서면 보고서에는 이 씨가 단순히 북한 해역에서 표류 중이라는 사실에서 한발 더 나아가 “북측이 실종자를 해상에서 발견한 첩보 입수”라고 돼 있었다. 그러나 컨트롤 타워인 안보실을 포함해 국방부·통일부 등 어떤 정부 기관도 북측에 이 씨에 대한 구조·송환 요청을 하지 않았다.



北흉악범이라 북송한 정부, 이씨 송환 요청 안해

정부가 2019년 11월 판문점에서 탈북 어민 우범선씨를 북송하는 모습. 함께 탈북한 김현욱 씨도 이날 송환됐다. [사진 통일부]

 

정치권에선 이 씨에 대한 자진 월북 판단이 조작됐을 뿐만 아니라, 사건이 발생하기 불과 10개월 전 일어난 탈북어민 강제북송 결정에 비춰봐도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9년 11월 청와대는 남측에 귀순 의사를 밝힌 탈북어민 2명에 대해 ‘선상 살인을 저지른 흉악범이지만 남측에 형사관할권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북송했다.





정의용 당시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7월 ‘흉악범 추방사건에 대한 입장문’에서 “이들은 희대의 엽기적 살인마들”이라며 “북한으로부터 송환 요청을 받은 사실은 없고, 해당 어민들을 추방할 경우 상대국의 인수 의사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북측에 의사를 먼저 타진했다”고 밝힌 바 있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안보실은 강제 북송 때와 정반대로 우리 공무원 이씨에 대해 아무 송환·구조 조치를 하지 않았다. 대북 통지 주관부처인 통일부에 발견 사실조차 알리지 않았다. 서훈 당시 안보실장은 상황 진행 중인 오후 7시 30분 정상 퇴근했다.





서 전 실장은 이씨가 북한군에 피살·소각됐다는 보고를 받은 뒤 이튿날인 새벽 1시 관계장관회의를 소집했지만 “보안을 유지하라”는 지침만 내렸다.





서 전 실장은 오전 8시 30분 문재인 대통령 이씨 피살·소각 대면 보고 직후인 오전 10시 2차 관계장관회의를 소집한 뒤 ‘타 승선원과 달리 혼자 구명조끼 착용’, ‘CCTV 사각지대에서 신발 발견’된 내용 등 군 첩보 외 다른 월북 근거를 제시하며 국방부에 이튿날까지 자진 월북을 기초로 종합분석 결과를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이후 해경 수사 결과 어업지도선에서 사라진 구명조끼가 없었고 CCTV는 원래 고장난 상태로 슬리퍼 소유자도 확인되지 않았다.





설사 이씨가 자진 월북을 시도했더라도 국가보안법 위반(잠입·탈출) 혐의 피의자이기 때문에 우선 구조 및 송환 요청을 했어야 하는 데 피살 이후 허위 월북 근거만 찾았던 셈이다.



강제북송 사건과 정반대 ‘귀순·월북 진정성’ 판단

2019년 11월 8일 오후 해군이 동해상에서 북한 오징어잡이 목선을 동해 NLL 해역에서 북측에 인계했다.  이 목선은 16명의 동료 선원을 살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도피 중 군 당국에 나포된 북한 주민 2명이 타고 있던 배다. 뉴스1.

 

귀순·월북 진정성에 대한 판단도 180도 달랐다. 안보실은 탈북 어민들의 경우 직접 자필 귀순 의향서까지 썼지만, 귀순 의사에 진정성이 없다며 강제 북송을 강행했었다.

반면 국민이 이씨 피살을 아직 모르던 9월 23일 오후 3시 해경에 “선박 CCTV 사각에서 신발 발견, 지방에서(가정불화) 혼자 거주 등 2가지 팩트를 반영한 보도문을 배포하거나 기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식으로 전달하라”며 언론 대응 지침을 하달해 부정적 이미지를 사전 유포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보실과 국방부의 이씨 자진 월북 판단과 달리 “이씨가 발견 당시 최초에는 자진 월북 의사를 언급하지 않거나 왜 들어왔는지에 대한 답변을 회피하다가, 거듭된 질문에 월북 의사를 표명했다”며 “통상 긴급한 구호 희망, 안도감 및 안전 확보 차원에서 자진 월북을 적극 피력한다”고 달리 봤다. 국정원 역시 9월 22~23일 2차례 분석에서 “월북 의사가 불분명하다”고 분석하고 9월 27일 “자진 월북 판단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며 기존 판단을 유지한 것으로 이번에 드러났다.



‘유죄’ 판례있는 첩보 106건 새벽 삭제 의혹

지난 6월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 연합뉴스.

 

검찰은 감사원의 수사요청에 따라 청와대와 정부가 자진 월북에 유리한 정황만 선별한 후 표류 예측·더미 실험 등 자진 월북과 배치되는 정황은 일부 제외한 것이 직권남용에 해당하는지, 이 씨에 대한 구조·송환요청을 하지 않은 것이 직무유기에 해당하는지 등을 판단할 것으로 관측된다.

또 국방부와 국가정보원이 9월23일 새벽 관계장관 회의 종료 후 퇴근한 실무자를 새벽에 불러내 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MIMS·밈스)에서 첩보 관련 자료 106건을 삭제한 건과 관련해선, 지난 7월 유죄가 내려진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무단 파기’ 사건을 참고해 형법상 공용전자기록등손상죄 적용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삭제된 첩보 원본이 남아있다는 반론과 관련해 “소설책을 사면 여러 권이 있다. 서점에도 있고, 우리 집에도 있다. 그런데 누군가 우리 집에 가서 소설책을 다 찢었다. 그러면 서점에 같은 책이 있으니까 안 찢은 게 되느냐”며 “이 사건과 관련한 법리적 의문은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서욱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소환 조사를 마치고 박지원 전 국정원장, 서훈 전 안보실장에 대한 조사를 앞두고 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