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Happiness

하늘에는 초승달

Jimie 2020. 4. 15. 21:14


盡未來際作佛事

미래제가 다하도록 부처님 일 하리라.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 -






선봉사(僊鳳寺) 대각국사(僊鳳寺大覺國師) 의천(義天)



▲ 여염집같은 남숭산(南崇山) 선봉사(僊鳳寺).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 숭오리(崇烏里) 산1번지~



숭오리(崇烏里) 숭산(崇山) 마을

* 숭산(崇山) 마을과 오평(烏坪) 마을의 첫 글자를 따서 숭오(崇烏)라고 하였다.

*  명(明) 태조 홍무제(洪武帝) 주원장(朱元璋)이 출생한 전설의 고향, 금오산(남숭산) 숭산(崇山) 마을

조선 시대에는 인동군 북삼면(北三面)에 속하였고 오늘날은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에 속하는 법정리.


숭오리(崇烏里)는 칠곡군의 가장 서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금오산(金烏山)[976.7m]의 남사면이다.

금오 동천(金烏洞天)은 계곡 피서지로 유명하며, 금오산을 오르는 등산로의 입구에 해당된다.



숭산(崇山) 마을은 금오산[남숭산]의 동남쪽 자락에 있는 마을이다.

수령 약 250년 된 높이 25m의 숭오리 느티나무 한 그루가 마을의 정자목으로 자리한다.

마을 북쪽 대각사에는 대각 국사 의천(義天)[1055~1101]의 공적을 말해 주는 선봉사 대각 국사비[보물 제251호]가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칠곡선봉사 대각국사비(漆谷僊鳳寺大覺國師碑).

보물 제251호.

 칠곡 북삼읍 숭오리(崇烏里) 산 1번지


1천년 세월~... 

교종(敎宗)과 선종(禪宗),  소위 교선(敎禪) 일치를 주장하고 천태종을 개창한 

대각국사(1055∼1101))의 공적을 기리는  선봉사대각국사비(僊鳳寺大覺國師碑).


  • 하늘에는 초승달 / 대각국사 의천 (義天) 


반륜명월백운추 半輪明月白雲秋 하늘에는 초승달 산에는 흰 구름

풍송천성하처시 風送泉聲何處是 어디서 물소리가 바람에 실려 오나

시방무량광불찰 十方無量光佛刹 시방의 한량없는 부처님 나라 다니며

진미래제작불사 盡未來際作佛事 미래제가 다하도록 부처님 일 하리라.



이 시는 고려 대각국사 의천(義天 : 1055〜1101)의 임종게로 알려져 있는 시이다.

문종의 4째 왕자였던 스님은 11살에 출가하여 그 당시 왕사였던 난원(爛圓)을 의지하여 득도한 후

개성 영통사에 머물다 15세에 승통(僧統)이 되기도 하였다.

31살 때 송나라에 들어가 천태교학을 배우고 돌아와 고려에 천태종을 개창하였다.

흥왕사에 교장도감(敎藏都監)을 설립해 많은 경전을 간행하는 등 고려불교 발전에 큰 공로를 세웠다.

5째 왕자였던 동생 증엄(證儼)을 출가시켜 제자로 삼았고 이어 국사가 되었으나 47세를 일기로 생애를 마쳤다.



이 시에는 죽음을 앞둔 대각국사의 발원이 들어있다.

시방의 부처님 나라를 두루 다니며 끝없는 불사를 하겠다는 불법홍포의 큰 원력이 담겨져 있다.

가을 산에 흰 구름과 함께 반달이 떴는데 어디선가 바람결에 물소리가 들려온다.

이 고즈넉한 산수의 풍경 속에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면서도 내생의 원을 그리움 속에 펼쳐놓은 시이다.


지안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7년 3월 제76호



남숭산(南崇山) 선봉사 대각국사비(僊鳳寺大覺國師)

선봉사 대각국사비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 숭오리 산 1번지

고려 천태종의 개조, 대각국사 의천(大覺國師 義天 : 문종 9, 1055~ 숙종 6, 1101)의 생애를 기린 공적비.



대각국사(大覺國師)는 교장도감을 설치하고 중국 송나라와 일본의 서적을 교정·간행하여 『속장경(續藏經)』을 완성한 승려로, 교종과 선종을 통합하여 고려 불교의 융합을 실현하였다.


비의 형태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은 얹은 모습으로, 받침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기고 지붕돌에는 덩굴무늬를 새겼다.


비문에는 대각국사(大覺國師)가 문종(文宗)의 넷째 아들로서 어머니는 인예태후(仁睿太后) 이씨(李氏)이며, 자는 의천(義天)이라는 것과 천태교를 확립하는 과정 및 가르침 등이 실려있다.


 

이비는 높이 3.5m로 고려 인종 10년(1132)에 세웠으며, 비문은 임존(林存)이 짓고, 문인인 승려 덕린(德麟)이 써서 대지(大智)와 덕천(德遷)이 새겨 국사의 입적 31년 후인 1132년(인종 10)에 세웠다.

비문의 글씨는 가로획이 가늘고 세로획이 굵은 독특한 필체이다. 필력은 힘차고 짜임새는 가지런하다. 

선봉사 대각국사비 보물251호


천태종(天台宗) 시조(始祖) 대각국사(大覺國師) 비명(碑銘)

(題額)

 

남숭산(南崇山) 선봉사(僊鳳寺) 해동(海東) 천태종 시조 대각국사의 비명과 서문(序文)

 

조산대부(朝散大夫) 한림시독학사(翰林侍讀學士)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 상서(尙書) 이부시랑(吏部侍郞) 지제고(知制誥)에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下賜) 받은 신(臣) 임존(林存)은 왕명(王命)을 받들어 비문을 짓고  문인(門人) 천수사(天壽寺) 의학(義學)이며, 월남사(月南寺) 주지(住持) 묘오(妙悟)와 삼중대사(三重大師) 신(臣) 승(僧) 덕린(德麟)은 선지(宣旨)를 받들어 비문(碑文)과 아울러 전액(篆額)을 쓰다.



동일인에 대한 자료로는 아주 드물게 대각국사의 생애를 기리는 자료는 선봉사비 말고도 영통사비와 흥왕사 묘지가 있어 묘지와 비 그리고 비의 건립 주체에 따라 내용이 어떻게 다른 지를 살펴볼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자료이다. 특히 동일한 비 형식에서도 화엄종과 천태종의 건립 주체에 따라 내용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 주목된다.


현재 원 자리에 보존되어 있는 비는 비신 둘레로 당초문을 둘러 장식하였고 마모가 심한 편이다.

비문의 내용은 대각국사가 왕자로 태어나 경덕국사에게 출가하여 화엄을 수학하고 널리 종파를 회통하였으며 천태삼관을 일으키려고 송(宋)에 가서 고명한 대덕들을 두루 예방하고 천태산의 지자탑에 발원하고 돌아와 덕린 등을 모아 국청사를 창건하여 천태종을 개창하고 입적한 생애를 기술하였다. 그리고 이어 천태종을 처음으로 제창한 사실을 기리기 위해 따로 비를 세운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음기에는 천태종을 개창하자 다른 승려에게 배운 승려로서 천태종에 온 1천명과 바로 천태종에 들어온 3백명이 있었음을 기술하고 이로써 조계·화엄·유가·율종의 사대업(四大業)과 나란히 하였음을 말하고 문도들을 승계에 따라 열거하였다.






 


'Life & Happiness' 카테고리의 다른 글

Inessa Chimato Chill  (0) 2020.05.24
풍운아,난세를 꺾다!  (0) 2020.05.24
大山倍達,최배달  (0) 2020.05.23
'인생 자체가 한편의 드라마가 아니겠소'  (0) 2020.05.23
생관음(生觀音)  (0) 2020.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