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암
羽調二數大葉 ○손에막잡고손에가싀쥐고늙길가싀로막고오白髮막로치려터니白髮이졔몬져알고즈럼길노오더라
한손에 막대 잡고 <탄로가(歎老歌)>
우 탁
한손에 막대 잡고
또 한손에 가싀 쥐고
늙난 길 가싀로 막고
오난 백발(白髮)막대로 치려터니
백발(白髮)이 제 몬저 알고
즈름 길로 오더라.
~ 청구영언~
우 탁 (禹倬) : 1263년(원종 4년)-1342년(충혜왕 3년).
단양 우씨로 자는 천장(天章), 이고 호는 역동(易東)또는 백운리라고 했다.
진사 우천규의 아들로서 고려 제 27대인 충숙왕 때의 어진 신하였으며 유명한 유학자였다.
그는 일찌기 회헌 안유에게 글을 배웠고
충렬왕 16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감찰규정, 성균관 좨주(정3품)에 이르렀다. 경사와 역학에 통달했음.
우탁이 영해 사록으로 있을 때 그 고을에 '팔령'이란 요귀의 사당이 있고 사람들이 매우 미신을 따랐다.
그는
" 이것은 요귀로서 민심을 어지럽게 하는 것이니 내 마땅히 때려부수고 마리라"
고 하자 사람들이 모두
"사또님, 큰 일 나실 말씀입니다.
만일 귀신이 원한을 갚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라고 말렸지만, 우탁은 기어코 사당을 때려부수어 바다에 버렸다.
또 감찰 류정으로 있을 때, 충렬왕 다음의 왕인 충선왕이 숙창원비를 왕비로 승격시키자
"그것은 나라의 법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하고 우탁은 흰옷에 도끼를 들고, 땅바닥에 거적자리를 깔고서 엎드려 간했다.
간하는 말씀을 듣지 않으신다면, 도끼로 자기를 죽여달라는 비장한 각오였다.
충선왕도 우탁의 충성스런 간언에 몹시 부끄러워 했다고 한다.
늙자 경상도 예안에 은퇴했지만, 충선왕은 그 충의를 칭찬하여 여러번 불렀으나, 다시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다.
81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시호는 문희라고 한다.
우탁 선생의 탄로가<삼성각 입구>
삼성각
청련암
한손에 막대잡고 ----우탁
한손에 막대잡고
또 한손에 가시쥐고
늙는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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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산에 눈녹인 바람
건듯 불고 간데 없다
잠시만 빌려다가
머리위에 불게 하여
귀밑에 해묵은
서리 녹여볼까 하노라
----------------------
늙지 말고
다시 젊어져 보려했더니
청춘이 날 속이고
백발이 다 되었구나
이따끔 꽃밭을 지날 때면
죄 지은듯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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