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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시(禪詩)의 대가(大家), 서산대사(西山大師) 휴정(休靜)

Jimie 2022. 9. 30. 14:51

 

<선시(禪詩)의 대가(大家), 서산대사(西山大師) 휴정(休靜)의
 

 이수재에 차운하여[次李秀才韻] / 휴정(休靜)

無心無出峀 무심한 구름은 멧부리에서 나오지 않는데
有意鳥知還 새는 생각 있어 돌아올 줄 아는가?
儒釋雖云一 유와 불이 비록 하나라고 이르지만
一忙而一閑 하나는 바쁘고 하나는 한가롭네

앞의 두 구절은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의 내용 中 “구름은 무심히 동굴에서 나오고(雲無心以出岫) 새는 날다가 지쳐서야 돌아올 줄 안다(鳥倦飛而知還)”란 구절을 차용했다. 이 시 ‘無心’의 주체는 곧 구름이다. 그러나 서산대사의 이 시에 등장하는 구름과 새는 불자(佛者)와 유자(儒者)를 상징한다. 구름은 마냥 한가롭고 무심한 불자인 자신을, 새는 부단 없이 바쁜 유자(李秀才)를 가리킨다. 그래서 유와 불은 하나라고 하지만, 세상은 이들을 바쁨(忙)과 한가함(閑)으로 갈라놓는다고 한 것이다. 이 시는 분명 유자(李秀才)에게 보내는 시이다. 서로의 처지로 인해서 삶의 양태가 사뭇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유와 불은 하나다.’라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조선중기의 고승 서산대사(西山大師, 1520~1604)는 ‘인간의 생사(生死)는 일어났다 사라지는 뜬구름 같다(生死也起滅如浮雲)’고 읊었다. / 휴정(休靜)
 
 
인간의 생사(生死)는 일어났다 사라지는 뜬구름  '(生死也起滅如浮雲)’ / 휴정(休靜)
 
生也一片浮雲起 세상에 태어남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死也一片浮雲滅 죽음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사라지는 것이다.
浮雲自體本無實 뜬구름 자체는 본래 실체가 없나니
生死去來亦如然 죽고 살고 오고감이 모두 그와 같도다.

삶에 대한 고뇌와 죽음에 대한 그의 달관하는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것과 같고, 죽음 또한 한 조각 구름이 사라짐과 같다고 했다. 수억 겁의 세월이 지나오면서 우주의 전체적인 원리로 보아 사람이 사는 시간이란 번갯불 한 번 번쩍거리는 그런 순간일 것이다. 구름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임을 강조하면서 죽고 사는 것도 모두가 한 조각의 구름처럼 실체가 없이 왔다 사라짐을 법리에 근거한 법문과 같은 시상(詩想)으로 표현했다. 불가(佛家)에서는,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에 "본디 온 곳으로 간다"고 답한다. 
 

다음 5언 詩 《야설(野雪)》은 서산대사(西山大師 1520~1604)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나 기실 이 시는 조선시대 임연당(臨淵堂) 이양연(李亮淵·1771~1853)의 작품이다. 서산대사의 문집인 '청허집(淸虛集)'에는 실려 있지 않고, 이양연의 시집인 '임연당별집(臨淵堂別集)'에 실려 있고, '대동시선(大東詩選)'에도 이양연의 작품으로 올라 있어, 이양연(李亮淵)의 작품으로 보는 것이 옳은 것 같다. 《야설(野雪)》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야설(野雪)》

踏雪野中去 그대,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不須胡亂行 부디 그 걸음 어지럽게 하지 마시게
今日我行跡 오늘 남긴 그대 발자국
燧作後人程 뒤따르는 사람의 이정표 되리니

오늘의 나의 삶과 행동, 언어표현이 나중 사람들의 이정표가 된다는 사실. 작은 일 하나에도 옷깃을 여미며 조신하게 처신하며 잘 살아야 할 일이다. 아니, 잘 살아내야 할 일이다. 그래서인지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나를 뒤따라오는 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지? 다시 한 번 더 되묻게 만든다. 한편 이 시는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의 애송시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임종게[臨終偈] 죽음을 앞두고 쓴 詩 / 휴정(休靜)

千計萬思量 천가지 계책과 만가지 생각들
紅爐一點雪 불타는 화로 속 한 점 눈이네
泥牛水上行 진흙으로 빚은 소 물 위를 가고
大地虛空裂 대지와 허공이 찢어지는구나

아등바등 보다 많은 것을 가지려 애쓰고 남보다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돌아보면 다 부질 없다는 얘기다. 한 평생 끌고 다닌 천만 가지 생각과 생각들, 이 생각들이 모여 번뇌를 이루고, 번뇌는 끝이 없어 고해(苦海) 속을 헤매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화롯불에 떨어진 눈송이의 형체가 어디에 있겠으며 진흙으로 빚은 소가 물 위를 걸으니 그 형체 또한 모두 무너져 내려 알아볼 수나 있겠는가. 통쾌한 깨달음의 경계를 저벅저벅 물살을 가르고 돌진하는 진흙소의 서슬에 견주고, 천지가 뒤집히고 허공이 갈라지는 열반의 깨달음을 표현하였다. 부질없는 권세와 재물에 연연해하지 말라는 지혜의 경구다. 
 

삼몽사(三夢詞) 세 개의 꿈 / 휴정(休靜)

主人夢說客 주인은 나그네에게 꿈 이야기하고
客夢說主人 나그네도 주인에게 꿈 이야기하네
今說二夢客 지금 꿈 이야기하는 두 나그네
亦是夢中人 또한 꿈 속의 사람이네

세상만사가 일장춘몽(一場春夢)이다. 고로 ‘우리네 인생 또한 한바탕의 꿈이고, 우리는 그 꿈속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삼몽사(三夢詞)>는 본디 오언고시(五言古詩)다.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친구 노수신(盧守愼)에게 보낸 편지 말미(末尾)에 이 시를 썼다. 삼몽(三夢)이란? 첫째, 대사(大師)가 태어나기 전 그의 어머니가 꾼 태몽(胎夢)이고, 둘째는 대사가 세 살 때 아버지 꿈에 노인이 나타나 이름을 운학(雲鶴)이라 지어준 꿈이다. 셋째 꿈은 서산대사 자신의 일생이 그저 한갓 꿈이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서산대사는 자신의 한 평생을 스스로 기록하고 이를 일컬어 삼몽록(三夢錄)이라 이름 지었다.
후세에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 1903~1982)은 〈서산의 문학〉에서 이 한시(漢詩)를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인세(人世)를 꿈으로 본 시가가 고래로 얼마나 많은지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렵지마는 휴정의 20자(三夢詞)를 넘어설 작품은 없을 것이다.”고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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