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월 청령포 ◆
++ 어 제 시 ++
천추의 원한을 가슴깊이 품은체
적막한 영월땅 황량한 산 속에서
만고의 외로운 혼이 홀로 헤메는데
푸른솔은 옜 동산에 우거 졌구나
고계위의 소나무는 삶계에 늙었고
냇물은 돌에 부딪쳐 소란도 하다
산이 깊어 맹수도 득실 거리니
저물기 전에 사립문을 닫노라
**영월청령포**
계유정난의 후폭풍으로 왕위를 빼았기고 "단종복위 운동"의 실패로
조선 제6대 왕이었던 열일곱살 어린 단종이 유배된 애달픈 한이 서려있는 곳이다.
노산군으로 강봉된 단종은 1457년(세조 3년) 6월 이곳으로 유배되었고 그 해 여름 홍수로 청령포가 침수되자 8월에 영월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긴 후 10월에 한 많은 이승을 떠났다.
이 애달픈 역사를 쓰게 만들었던 수양대군, 훗날의 세조에 대한 평가는
춘원 이광수가 '단종애사'를 집필하고 난 뒤 '세조대왕'을 집필할 정도로 역사적, 인간적 고찰이 엇갈리고 있으며 또한 김동인의 '대수양'처럼 세조의 입장에서 저술된 책도 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왕방연(王邦衍)은 세종 세조 때의 인물이며, <청구영언>에 의하면 세종 때 사람이고, 금오랑(金吾郞)으로 노산군(魯山君, 단종)을 영월까지 압송하고 돌아오면서 냇가에서 방황하다가 느낀 바 있어 시조를 지었다. 이 노래에서 그 사람이 임금을 사랑하는 정성을 볼 수 있다.
님을 이별한 심정을 울며 흐르는 냇물에 비기어 곡진하게 표현해 내었다.
간밤에 울던 여울 슬피 울어 지내어다.
이제야 생각하니 님이 울어 보내도다.
저 물이 거슬러 흐르고자 나도 울어 녜리라.
원호(元昊)는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이다. <국조인물고>에 의하면, 자는 자허(子虛)이고, 호는 무항(霧巷) 또는 관란(觀瀾)이며 본관은 원주다.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치고 문종 때에는 집현전 직제학이 되었다.
수양대군이 권세를 잡자 고향 원주로 퇴거하였다.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자 강 맞은편에 집을 지어 당호를 관란(觀瀾)이라 하고, 시나 책을 지으며 아침저녁으로 건너다보고 울며 지내다가 단종이 죽자 3년상을 치렀다. 세조가 호조참의를 제수했으나 끝내 불응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두문불출하다가 여생을 마쳤다.
**어소**
◀ 청령포 금표(禁標)비 ▶
비록 늦었지만, 임금이 거처했던 성역이라 백성의 출입을 통제하는 금표를 1726년(영조2년)에 세웠다.
정면엔 '청령포금표', 후면엔 '동서삼백척 남북사백구십척 차후니생역재당금'이라 새겨져 있다.
요즘말로 '인가자 외 출입금지' 푯말인데 당시의 청령포는 사방 6자 기준으로 4,100평 이내일 것 같다.
4,100평... 감은 안오지만, 조선시대의 척(자)당 31.2cm를 기준으로 가로94m 세로153m 의 규모이다.
그런데 '지금이후로 생기는 진흙에도 금표를 적용한다'는 '차후니생역재당금'의 표현이 재미롭다.
此後泥生亦在當禁이라... 아마도 청령포가 생겨난 근원을 이야기해주는 문구가 아닌가 싶다.
◀ 망향탑 ▶& ◀ 관음송 ▶
열입곱살 단종은 배필이던 정순왕후 송씨를 생각하며 막돌을 주워 님을 그리는 돌탑을 쌓아갔다고 한다.
단종 유지비각 서쪽 층암절벽 위에 위치한 청령포 망향탑은 단종이 청령포에서 귀향살이할 때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근심과 한양에 두고 온 왕후 송씨를 생각하며 이곳에 오를 때 마다 산기슭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돌들을 주워 날라다 쌓아 올렸다고 한다.
이후 이것을 망향탑으로 부르게 되었다.1974년 영월군수 김명한의 주선으로 허물어졌던 탑을 다시 복원했다.
지금 보는 망향탑은 아무래도 후인들의 손을 탓을 것 같은데, 그들도 잠시 과거로 돌아가 단종을 위로하고 한마음이 되어 돌을 얹었을까...
정순왕후 송씨는 궁궐에서 쫒겨난 뒤 동대문 밖 지금의 숭인동 산기슭에 삼칸 초가(정업원)를 짓고 매일 조석으로 인근 산봉우리(동망봉)에 올라 단종의 무사를 기원했고 단종의 죽음을 알고는 평생을 매일 조석으로 통곡하며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정순왕후 송씨는 처음엔 따라나온 시녀의 동냥으로, 그 이후론 인근 아낙네들의 적선으로,
나중에는 염색들이는 일을 하여 근근히 연명하면서도, 죽을 때까지 세조의 도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무치는 원한을 짓씹어 삼키며 한 많은 인생 82년을 그렇게 살았다. 그 피맺힌 한을 어이했을꼬....
단종이 한양 쪽을 바라다보며 시름에 잠겼다는 뾰쪽뾰쪽한 바위인데
난간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한 절벽 밑으로 무심한 서강이 유유히 흘러간다.
그 옛날의 서강은 단종의 눈물과 한을 받아내어 몽매에도 그리던 한양으로 실어냈을 것이다.
노산대에서 바라다 본 청령포의 북사면은 서강으로 내리 꽂히는 낭떠러지의 연속이다.
빤히 내다보이지만 나갈 수 없는 바깥세상...사람 가둬놓기에 이 보다도 더한 곳이 있을까...
내가 단종 이라면 17세나이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뒷산을 넘어서 단양이나 소백산으로 숨어들어
일단 생명은 부지를 하고보았을 텐데 그러면 역사는??????나는 문경에서 그나이에 그쯤이야
물안개 피어나는 외딴섬 청령포
강물은 세월 따라 유유히 흐르고
기암절벽 넘지 못한 두견새
목놓아 서글피 울어대니
단종의 한 맺힌 애사가
솔 바람 따라 떠나지 못해 누워 있누나
피맺힌 한이 서러워
노고대 새벽 안개에 잠드니
하늘 닿아 치솟은
육백 년 관음송 마저
흘러가는 구름 앞에 통곡을 하누나
지나가는 나그네 심사
서러운 마음에 배알하니
한 서린 세월이 서강에 어른거려
떠나지 못하고 시름에 잠기누나.
청령포/ 詩 대안 박장락
두견새 우는 청령포- 심수경
https://www.youtube.com/watch?v=escxhSElsCM
[출처] 청령포(영월=단종유배지)|작성자 스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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