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상 속으로 [신동욱 앵커의 시선]
https://www.youtube.com/watch?v=aj3-DryKSuA
글 사진 박중록(한국습지NGO네트워크, greennd@hanmail.net)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이 지구별을 여행하며 살아가는 존재, 도요물떼새의 여행은 실로 놀랍다.
러시아의 시베리아나 알래스카의 툰드라에서 태어나 자란 뒤, 툰드라가 얼기 시작하면 이들은 남쪽으로 이동하여
멀리는 남반구의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 오면 툰드라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북반구의 짧은 여름을 이용해 새끼를 키운 뒤, 자란 어린 새와 함께 다시 남반구로 내려가 겨울을 나고
다시 돌아오는 일을 평생 되풀이한다.
상상해 보라. 작은 새 한마리가 태평양을 건너 남반구에서 북반구를 오가는 모습을!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먼 거리를 한 번도 쉬지 않고 날기도 하며,
혹은 그 거리가 워낙 멀어 북반구와 남반구를 오가는 도중 쉬어가기도 하는데
우리나라 남서해안 갯벌도 이들이 쉬어가는 중간 휴게소(기착지)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얄비(4YRBY)의 비행 사진: Jesse Conklin
이들의 다리에 채워진 유색 깃과 가락지를 통해 이들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엿보는 순간의 감동은 대단하다.
2008년 4월이었다. 필드스코프(망원경)에 한 번도 본적 없는 새가 들어왔다. 가슴이 쿵짝쿵짝 뛰기 시작했다.
흰색이 보이고 그 밖에도 색색 가락지를 차고 있는 듯 보였다.
흰색 깃(flag)은 뉴질랜드에서 새들의 이동을 연구하기 위해 사용하는 색이다.
뉴질랜드에서 온 새도 처음이지만 발에 이렇게 여러 개 가락지를 차고 있는 새도 처음이었다.
그러나 거리가 멀어 이를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었다.
새는 낙동강하구의 바다 쪽 한 가운데, 양식장 말뚝에서 쉬고 있었는데-밀물 때 새들이 쉴 수 있는 낙동강하구의 육지 쪽
높은 갯벌은 모두 매립되어 많은 도요새들이 양식장 말뚝이나 줄 위, 혹은 제방 위에서 불안하게 휴식을 취한다- 육지 쪽에서는
거리가 멀어 확인이 어려웠다.
며칠 뒤, 물때에 맞춰 배를 타고 나간 게 4월20일 경이었으리라. 말뚝 위에서 쉬고 있는 이들을 다시 만났다.
▲ 양식장 말뚝에서 쉬고 있는 큰뒷부리도요
우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1백이 넘는 큰뒷부리도요 무리 중 한 마리의 다리엔 흰 깃과 4개의 유색가락지가 선명하였다.
한쪽 발엔 노랑(Yellow)과 빨강(Red), 다른 쪽 발엔 노랑(Yellow)과 파랑(Blue).
이렇게 유색가락지를 여럿 채우는 것은 개체를 식별하기 위해서다.
색깔의 첫머리 글자만 따면 이 친구의 이름은 4YRBY.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고 조사를 마친 뒤 도요물떼새의 이동을 연구하는 NGO와 연구자들에게
4YRBY의 사진과 함께 그 소식을 묻는 메일을 보냈다.
며칠 뒤 호주의 도요물떼새 보호단체인 AWSG(Australasian Wader Studies Group)의 담당자로 부터 기다리던 연락이 왔다.
뉴질랜드 북섬의 마나와투강 하구에서 뉴질랜드의 한 연구자가 가락지를 채웠다며.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제시 콘클린(Jesse Conklin)은 큰뒷부리도요의 깃 색이 이동 중 어떻게 변하는지를 연구하고 있으며,
4YRBY가 마나와투강 이외 지역에서 관찰된 건 처음이라며 반갑다는 인사와 함께 그 소식을 전해왔다.
이렇게 해서 얄비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 얄비(4YRBY) 사진: Jesse Conklin
처음엔 얄비를 ‘와르비’라 부르다, 더 친숙하게 줄여 얄비라 부르기 시작하였고,
이듬해도 또 그 다음해도 계속해 낙동강하구를 찾아오면서 점점 더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다.
인터넷에 얄비를 한 번 검색해보라.
2008년 4월 20일 처음 만났던 이 친구는 이듬 해 4월 19일, 그 다음 해엔 4월 18일,
그리고 4년 째인 2011년엔 4월 17일 낙동강하구에서 다시 만났다.
낙동강하구서 약 1달 가량을 머물다 얄비는 북쪽으로-위성 추적에서 호주의 큰뒷부리도요는 시베리아로,
뉴질랜드서 출발한 큰뒷부리도요는 알래스카로 이동하였다- 떠나갔다.
그리고 가을이면 뉴질랜드로 돌아가고, 겨울을 난 뒤 다시 봄이면 낙동강하구를 거쳐 알래스카로.
▲ 낙동강하구의 얄비(4YRBY)
얄비와의 4년간의 만남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새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여행을 하고 있는지를!
비슷한 시기에 같은 장소를 거쳐 이동하며, 새들에겐 국경이 없으며, 자연 속에서 우리 모두가 지구촌 가족이라는 것을!
얄비가 계기가 되어 부산의 어린 학생들은 뉴질랜드를 다녀왔고,
이 새의 놀라운 이동에 감동한 KNN의 진재운PD는 얄비의 여행을 ‘위대한 비행’이라는 이름으로 영화로 만들었다.
2012년 불가리아에서 열린 람사르총회 본회의장에서도 상영된 이 영화는
지금도 세계 이름난 자연과 환경 영화제에 초대받아 상영되고 있다.
▲ 위대한 비행 영화포스터
2012년 봄, 우리들은 얄비의 다섯 번째 도래를 축하하기 위해 잔치를 준비하기로 하고 뉴질랜드의 제시 콘클린에게 연락을 보냈다. 그러나 안타까운 답신이 왔다. 얄비는 지난 해 가을 뉴질랜드로 돌아오지 않았다 하였다.
그러니까 우리가 낙동강하구에서 2011년 5월 7일 얄비를 만난 게 마지막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알래스카로 가는 도중 죽었는지 혹은 알래스카에서 죽었는지-지구 온난화로 고래, 물개 등을 잡기 어려워진
에스키모인들은 겨울 양식으로 큰뒷부리도요를 사냥한다-, 아니면 뉴질랜드로 돌아가는 태평양 상공에서 악천후를 만났는지......
▲ 봄철 바다 건너 도요새들이 도착하는 모습
얄비의 동료들, 위대한 지구의 여행자, 큰뒷부리도요의 이동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여행은 날로 위태로움을 더해 간다. 매년 낙동강하구를 찾아오는 큰뒷부리도요의 수는 크게 줄고 있다.
지난 봄엔 불과 3~40 마리가 찾아 왔다. 새는 지구 생태계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새가 사라진 세상에서 사람들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큰뒷부리도요의 이동은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까?
추운 겨울, 수많은 또 다른 얄비를 우리 아이들이 만나며 환히 웃는 그런 봄날을 꿈꾸어 본다.
국립습지센터 습지블로그 관리운영 : 자연의벗연구소
[출처] 큰뒷부리도요, 얄비를 그리며!|작성자 한국의 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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