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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자 - '섬마을 선생님' & '섬마을 선생님' 노래비

Jimie 2022. 1. 26. 02:28

여왕님 '섬마을 선생님' 노래비 기사(2006년 제주도정뉴스)

 

섬마을 처녀 순정 노래한 '섬마을 선생님'

https://www.youtube.com/watch?v=X2LUZrXvxM4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열아홉 살 섬 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구름도 쫒겨가는 섬마을에

무엇하러 왔던가 총각선생님

그리움이 별처럼 쌓이는 바닷가에

시름을 달래보는 총각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떠나지 마오

 

 

이경재 작사, 박춘석 작곡, 이미자 노래인 ‘섬마을 선생님’은 언제 들어도 애잔한 느낌이 든다.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의 비단결 같은 미성(美聲)이 감칠맛을 더해 준다.

낭랑하고 애틋한 음색에다 총각선생님에 대한 섬마을처녀의 순정이 듬뿍 묻어난다.

특히 조국 근대화의 광풍 속에 한국여인의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그려내 가슴이 찡해온다.

이미자의 최대 히트곡 ‘동백아가씨’만큼이나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섬마을 선생님’은 1966년 만들어졌다.

이 씨도 가장 아끼는 노래이자 ‘동백아가씨’ ‘기러기 아빠’와 함께 3대 히트곡으로 꼽는다.

‘섬마을 선생님’은 1967년 문공부가 주최한 제2회 무궁화상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엔카 ‘다와라보시겐바’ 표절 시비

 

공교롭게도 이들 3곡은 박정희 군사정권시절 방송금지곡이 됐다.

‘섬마을 선생님’은 일본의 ‘다와라보시겐바’란 엔카를 표절했다는 이유로 1989년 해금될 때까지 22년간 방송전파를 타지 못하고 묶였다.

‘트로트의 여왕’, ‘국민가수’ 등 어떤 찬사에도 지나침이 없는 그는 화려한 연륜만큼이나 힘든 시간들이 많았다.

 

당시 이미자 음반은 나오자마자 팔려 품절사태를 맞곤 했다.

그 여파로 다른 음반사들이 매우 힘들었던 상황이 되자 이미자 노래에 제동을 걸 필요를 느끼게 돼 제재했다는 말도 나왔다.

‘섬마을 선생님’은 그 무렵 가요계 태풍을 일으킨 곡으로 “김종필 전 총재가 아코디언으로 연주해준 적도 있다”고 이씨는 회고했다.

 

또 거친 할머니들이 펼치는 코믹극 ‘마파도2’의 삽입곡으로도 쓰여 신세대 가요애호가들로부터도 인기를 얻었다.

 

이 노래는 북한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애창곡이다.

남한가요를 좋아하는 김 위원장은 측근들과 여배우들이 참석하는 비밀파티 때 ‘섬마을 선생님’, ‘찔레꽃’, ‘이별’ 등을 열창한다.

 

‘섬마을 선생님’ 가사 첫마디에 나오는 해당화는 여름 해변에서 아침 이슬을 머금고 바다를 향해 피는 꽃이다.

자세히 보면 사랑하는 임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아낙네처럼 애처롭게 보인다.

 

북한 원산 남동쪽 명사십리엔 해당화가 유명하다.

유난히 흰 모래밭과 긴 초록빛의 곰솔 숲 뒤로 보이는 옥빛 바다, 거기에 피어있는 주홍빛 해당화는 명사십리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명물이다.

 

해당화는 선비와 문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꽃으로 시나 노래소재로 많이 등장한다.

고전소설 ‘장끼전’에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 진다고 한탄마라.

너야 내년 봄이면 다시 피겠지만 우리 님 이번 가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는 내용이 나온다.

만해 한용운의 시(‘해당화’)에선 ‘당신은 해당화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봄은 벌써 늦었습니다’고 읊조렸다. 해당화는 곧 봄과 희망을 상징한다.

 

노래 히트하자 같은 제목 영화, 드라마 등도 제작

 

‘섬마을 선생님’은 2006년 봄 신세대 트로트가수 장윤정씨가 새 버전으로 리메이크해 불러 화제를 모았다.

생명력이 길고 세대를 뛰어넘는 가요란 게 증명됐다.

장윤정은 고교시절 ‘섬마을 선생님’을 즐겨 불렀다.

 

가요무대-장윤정(Jang Yunjeong) - 섬마을 선생님.20141117

https://www.youtube.com/watch?v=C7zWBgg-deY 

 

노래가 크게 히트하자 1967년 김기덕 감독이 같은 제목의 영화까지 만들었다.

1960년대 후반 외딴 섬으로 계몽 온 총각선생님과 섬 처녀 사이의 수채화 같은 사랑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신지식인과 구세대 사이의 갈등도 영화 중간 중간에 스며들어있다.

영화엔 당시 최고 인기배우들이 많이 나온다.

오영일, 문희, 안은숙, 김희갑 등이 그들이다.

 

 

▲ 섬마을 선생님 영화촬영지였던 대이작도(인천광역시 옹진군 자월면).

흑백영화였음에도 촬영지인 대이작도(인천광역시 옹진군 자월면)의 아름다운 풍광이 느껴졌던 영화로 인기가 대단했다.

지금의 대이작도 마을입구엔 전교생이 몇 명뿐인 ‘이작 분교’가 있다.

그러나 대이작도엔 유명한 자월초등학교 계남분교가 하나 더 있었다.

폐교가 됐지만 ‘섬마을 선생님’ 영화제작 때 주 촬영지로 쓰인 곳이다.

인천연안부두에서 배로 1시간쯤 걸리는 대이작도는 ‘섬 마을 선생’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계남분교 앞엔 ‘섬마을 선생’ 영화 촬영장소였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다.

 

옹진군은 영화촬영지였던 계남분교 일대를 영화에 나온 옛 모습대로 되살려 관광명소로 삼고 있다.

영화의 모티브가 됐던 ‘섬마을 선생님’ 가사비도 마을입구에 세웠다.

 

영화에 이어 라디오연속극으로도 인기를 모았다.

또 2004년 6월 2일부터는 SBS 수목드라마 ‘섬마을 선생님’(오후 9시55분)도 방영됐다.

청춘멜로물로 드라마 배경지는 주민이 100여명에 불과한 전남 신안군 흑산면 하태도.  극중에선 ‘하루도’로 불렸다.

 

 

▲ 함평 안악해변에 있는 섬마을 선생님 노래비.

 

2004년 7월 하순 전남 함평에선 노래 ‘섬마을 선생님’을 기념하고 ‘2008 함평 세계 나비․곤충 엑스포’ 성공을 기원하는 기념조형물을 세웠다.

 

함평군 손불면 월천리 안악해수욕장 입구에 가로 10m, 세로 4m, 높이 13.5m의 구리, 화강석 등으로 만들어졌다.

 

노래 말이 새겨진 조형물 중 소녀상은 노래에 나오는 총각선생님에 대한 섬 처녀의 간절한 기다림을 나타냈다.

바로 옆엔 500원짜리 동전을 넣으면 노래를 들려주는 기계도 설치돼 있다.

이미자를 잘 모르는 세대도 노랫가락을 들으면 ‘아! 그 노래’라고 무릎을 친다.

 

해당화는 함평에 아주 많다.

함평군은 2000년 8월 태풍으로 쓸려간 월천방조제를 다시 쌓아 해당화 6만 그루를 심어 ‘해당화길’로 꾸몄다.

전국 최대 규모의 해당화가 심어진 것이다.

해당화는 꽃의 지름이 평균 5㎝를 넘는다.

바닷가 모래땅에서 잘 자란다.

5~7월에 꽃이 피고 가을에 빨간 열매를 맺는다.

꽃잎은 분홍색, 진분홍색, 검붉은 색으로 빛깔이 다양하다. 더러 흰색 꽃도 있다.

술이 덜 깬 양귀비가 자신의 붉은 얼굴을 해당화에 비유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국민가수’ 이미자는 ‘가요계 살아 있는 전설’

 

가요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하는 국민가수 이미자는 1941년 10월 30일 서울 한남동에서 2남4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서울 마포에 있는 문성여고 3학년 때인 1958년 KBS-TV 노래자랑대회에 나가 1등을 한 뒤 1959년 19살 때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했다.

 

그로부터 50여 년간 2100곡을 발표했고 그 중 400여곡이 히트했다.

한국가요사상 가장 많은 취입곡 기록이다.

1989년 대중가수로는 이례적으로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서기도 했다.

또 500여장의 음반 발표, 최다 음반 판매, 최장기간 가수활동 등 여러 기록들을 갖고 있다.

팔린 음반 수는 1500만~2000만장. 이씨는 가요계 데뷔 50주년 기념음반으로 100여곡(히트곡 70곡, 전통가요 30곡)을 CD 6장에 담은 기념음반을 내기도 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타고났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맑고 아름답다.

음성분석기에 나타난 그의 목소리는 음정 높낮이 변화가 3옥타브(8배 음폭) 동안 안정적이다.

더 놀라운 건 목소리가 20대 때와 60대 때가 아주 비슷했다는 것.

발성폐활량이 일반인의 2.5배란 연구결과(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배명진 교수)도 이채롭다.

1999년 일본으로 건너간 가수 정재은씨가 첫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박춘석, ‘가수 이미자 키워낸 작곡가’

 

노래를 작곡한 박춘석 씨는 ‘가수 이미자를 키워낸 작곡가’로 이미자씨가 부른 수많은 곡들을 만들었다.

‘검은 뿔테안경’이 트레이드마크로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2700여곡을 발표했다.

그중 1152곡이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됐다.

역시 최다등록기록이다. 대표곡으로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

▲나훈아의 ‘물레방아 도는데’

▲손인호 씨가 부른 ‘비 내리는 호남선’

▲은방울자매의 ‘마포종점’ 등 작곡해서 히트한 곡들이 수두룩하다.

 

뇌졸중으로 16년간 투병하던 그는 2010년 3월 14일 오전 6시 자택에서 향년 80세로 별세했다.

1930년 5월 8일 서울서 태어난 그는 조선고무공업(주)를 운영하던 부친 밑에서 유복하게 자랐다.

본명은 의병(義秉). 춘석은 아명이다.

4살 때부터 풍금을 자유자재로 치기 시작하며 ‘신동’소리를 들었던 그는 봉래소학교, 경기중학교를 거치는 동안 피아노와 아코디언을 스스로 독파했다.

1949년 피아노전공으로 서울대 기악과에 입학, 1년간 다니다 중퇴한 그는 이듬해 신흥대(현 경희대) 영문과로 편입해 졸업했다.

 

경기중 4학년(고교 1년) 때 길옥윤, 베니 김 등의 제의로 서울 명동 ‘황금클럽’ 무대에 서면서 피아니스트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54년 ‘황혼의 엘레지’(노래 백일희)를 시작으로 본격 작곡가 길로 들어섰다.

 

이미자와의 만남은 그의 음악세계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1964년 이미자와 콤비시대가 열리면서 작풍이 트로트로 돌아섰다.

이미자와는 환상의 호흡을 맞췄다.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아빠’ ‘흑산도 아가씨’ ‘황혼의 블루스’ ‘그리움은 가슴마다’ ‘삼백리 한려수도’를 비롯해 30주년 기념음반 타이틀곡 ‘노래는 나의 인생’까지 500여 곡을 발표했다.

 

이미자에게 ‘엘레지의 여왕’이란 별칭의 왕관을 씌워준 이도 바로 고인이다.

그의 히트곡의 4분의 1을 이미자가 불렀고 이미자 히트곡의 3분의 1 또한 박춘석이 만든 노래다.

올 6월 11일 박춘석기념사업회가 추모사업의 하나로 충남 보령시 개화예술공원 국제조각대전행사에 맞춰 박춘석 선생의 기념비 제막식을 가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