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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아가씨' / '빨간 마후라'의 故鄕

Jimie 2022. 1. 9. 09:16

'강릉 아가씨' / '빨간 마후라'의 故鄕

 

(⚘" 강능 , 아가씨 "⚘)

✈ ? ✈

 

공군 제18전투비행단이 있는 강릉기지는

6.25전쟁기간 우리공군의 최 전진기지로서

작전의 93%를 담당한 살아있는 공군 역사의 현장이며, 《빨간마후라의 고향》이다.

옛날에는 ‘한송정(寒松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던 곳으로,

그 일대는 신라 때 동해안의 명승지로서 금강산의 삼일총석정, 속초 영랑호, 강릉경포호와 더불어 화랑들의 국토순례지이며 심신을 단련하던 훈련지였다.

우리나라에 차(茶)의 도입은 신라 선덕여왕 (재위 632-647)때로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으나,

그 보다 앞서 진흥왕(재위 540-576) 무렵 화랑의 우두머리 영랑, 술랑, 안남석, 남석행 등 4명의 신선(四仙)이 "한송정"에서 차를 끓여 마셨다는 기록을 미루어 보아 이곳은 차(茶)의 유적지이기도 하다.

근래 이곳에 단조롭게 "한송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한송정 비’를 세웠다.

-신라화랑이 유람하던 곳

-지금도 남은 자취 기이 하구나

-주대(酒臺)는 꺼꾸러져 풀에 묻혔고

-차화덕[茶竈] 내뒹굴어 이끼만 꼈네.

*한송정 비에 새겨진 김극기(金克己, ?-1209)의 시 「한송정」이다.

그는 고려 말 무신들이 득세한 어지러운 세상에 등을 돌리고 방랑객으로 떠돌다가 옛 한송정에 들려 지은 시로 1900년 초만 해도 "한송정" 주변은 큰노송들이 울창하게 서 있었다.

<한송정 솔을 베어, 배를 만들어 타고 강릉경포대 달구경 가자> 는 노랫가락이 지금도 전해온다.

여하튼 한송정 일대는 옛 화랑들이 심신을 수련하던 곳으로 6.25 한국전쟁 땐 공군기지로서 대한민국을 지켜내는데 큰 몫을 한 곳이다.

당시, 우리나라 공군은 평양대폭격 등 출격 때마다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도

제1전투비행단 10전투비행전대의 강릉기지에서 F-51D 무스탕 전투기 조종사들이 빨간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쉴새없는 출격이 이뤄지고 있었다.

전투조종사의 상징인 <빨간 마후라>를 처음 두른 정설은 고 "김영환(金英煥, 1921-1954) 장군이 1951년 10월 강릉기지 전단장(대령)시절 최초로 착용했다.

당시 김영환 대령은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장지량 장군과 추락한 아군 비행기 조종사의 수색·구조를 위한 방안을 논의하다가 눈에 잘 띄는 빨간색상의 머플러를 착안하였다.

도미(渡美) 교육을 위해 공군본부로 출장을 가는 길에 공군참모총장 집에 잠시 들린다.

당시 참모총장 김정렬은 김영환 대령의 친형으로 부인은 이희재 여사이며 김대령의 형수이다.

마침 김영환 대령은 형수가 붉은 치마를 입은 것을 보고 ‘형수님이 입고 있는 빨간 치마 색깔이 좋게 보이니, 마후라를 만들어 달라’고 했더니, 치마를 짓고 난 자투리 천으로 마후라를 만들어서 시동생 김영환 대령에게 선물로 준다.

그래서 빨간마후라가 만들어 지게 되었고, 김영환 대령은 <빨간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다닌 최초의 공군전투조종사가 된다.

그 후 강릉기지의 조종사들이 빨간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출격하여, 전투조종사들에게 널리 퍼지게 되면서 공군 조종사의 상징이 되었으며 세계에서 유일한 대한민국 공군조종사만이 <빨간마후라>를 착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6.25 전쟁이 휴전되고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1964년 영화 <빨간마후라>가 제작된다. 신상옥(申相玉, 1926-2006)이 감독했고 배우 신영균, 최무룡, 최은희가 출연했다.

강릉기지에서는 날마다 출격이다. 그 가운데서 ‘산돼지’란 별명의 나관중(배우 신영균) 소령은 1백회 출격의 기록을 세운 조종사다.

그는 비록 적은 액수의 봉급을 받지만 출격해서 언제 조국을 위해 산화할지 모르는 동료, 부하 조종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며 정을 나누곤 한다.

그의 절친한 전우(배우 최무룡)는 서양식 술집 바의 여자 종업원 지선(배우 최은희)과 사귀며 결혼까지 했으나, 어느 날 출격해 기지로 돌아오지 못하고 산화한다.

슬픔에 잠긴 그의 부인 지선을 위로하던 다른 전우가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는 게 영화의 줄거리다.

영화 <빨간마후라>의 원작자는 한운사(韓雲史, 1923-2009)로 공군의 청탁을 받고, 한국 공군의 초창기 역사를 바탕으로 6.25 전쟁중에 강릉기지를 무대로 전투조종사들이 조국의 하늘에 목숨을 걸고 싸워온 과정을 극적(劇的)으로 형상화한 영화이다.

그런데 영화가 만들어지기 전에 1962년 MBC 문화방송국 창사1주년 기념특집 라디오 연속극 빨간마후라가 <영화 빨간마후라>의 모태(母胎)가 되고 연속극 주제가  강릉아가씨(노래 김수연)는 영화주제가의 모곡(母曲)이 된다.

* 빨간 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하늘의 사나이들 나올 무렵엔

빨간 연지입술 강릉아가씨_

강가에 나와 기다리 시네~...

 

* 대관령 구름뚫고 떠오를 때엔,

강릉 아가씨는 마음 졸이며

가슴에 두손모아 무사하소서_

하늘에 사나이는 빨간마후라~ ...

강릉기지내 노래비에 새겨진「강릉아가씨」의 노랫말로서, 빨간마후라를 목에 맨 조종사에게 사랑에 빠진 강릉아가씨가 빨간 연지입술로 화장을 하고 강가에 나와서 조종사를 기다리며, 두근거리는 마음과 또 출격했을 때 무사히 강릉기지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뜻한다.

영화 "빨간마후라"는 6.25한국전쟁 당시  강릉기지의 실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강릉아가씨는 빨간마후라를 목에 두른 전투기 조종사들이 백 번째로 출격하던 날, 강릉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무사히 승리하고 돌아오라고 환송식을 하였다.

그리고 무사히 기지로 돌아온 조종사들의 목에 꽃다발을 걸어주며 환영식을 도맡았던 강릉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였다.

영화 <빨간마후라>에서 실제적 모델로 삼은 조종사는 유치곤(兪致坤, 1927-1965)장군이다.

그는 대구시 달성군 유가면 쌍계리에서 태어나 6.25 전쟁 중인 1951년 소위로 임관해 1952년 1월 평양 승호리 철교폭파 작전에서 450미터의 초저공으로 비행하면서 미 공군이 500여 차례 공격으로도 파괴하지 못한 철교를 폭파해서 북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러한「강릉아가씨」노래가 사라질 뻔 했는데, 오늘날 되살리게 된 공로는 신길수(申吉洙)장군이다.

 

당시 제18전투비행단장인 그는 1993년 10월1일 공군창설일을 기해 노랫말을 쓴 한운사와 작곡한 황문평(黃文平, 1920-2004)을 만나 "강릉아가씨"의 원본을 찾아 다음해 4월 기지내에 비행단의 역사를 살펴볼수 있는 역사기념관 옆에 <강릉아가씨 노래비> 를 건립하였다.

그리고 <강릉아가씨>의 노래를 <빨간마후라>의 영화 주제가로 삼으려고 했지만, 노랫말과 곡이 부적절하여 다시 개사한 "빨간마후라의 주제가"는 한때 국민애창곡으로 공군장병들이 즐겨 불렀다.

 

빨간 마후라는 하늘의 사나이

하늘의 사나이는 빨간 마후라_

빨간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구름따라 흐른다 나도 흐른다_

아가씨야 내마음 믿지를 말아라

번개처럼 지나가는 청춘이란다_

의  노래임을 언급하고 있다. ⚘

영화 <빨간 마후라>에서 6.25 전쟁 때 맹활약 했던 프로펠러 엔진의 F-51D 무스탕을 타고 출격해야 하는데, 촬영 당시 이미 무스탕은 퇴역을 하였고,

당시 공군은 제트시대 제트 엔진의 F-86F 세이버 전투기를 1955년에 도입하여, 1966년 F-5A 프리덤 파이터 초음속 전투기로 전환때까지 공군의 주력기로 운용되었다. 그리하여 영화에선 그 당시

최신예 기종 F-86F 전투기를 활용하였다.

오늘도 공군 제18전투비행단에서는 6.25전쟁때 빨간마후라 선배 조종사들의 유지를 받들고 있다.

● 펌/ 공군역사자문위원회 ●

( 글 보낸이 : 김재달 )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