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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전투비행단 & 강릉아가씨 노래비

Jimie 2022. 1. 9. 09:49

제18전투비행단 & 강릉아가씨 노래비 공군문화유산답사기 / 공군IN   2014. 1. 21. 13:04

 

 

빨간마후라의 고향
제18전투비행단 & 강릉아가씨 노래비

 

제18전투비행단은 6·25 전쟁 기간 중 대한민국공군의 전진기지로 펼친 작전 중 93퍼센트를 담당한 공군의 살아있는 역사를 간직한 빨간마후라의 고향이다. 또 옛날에 ‘한송정(寒松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던 곳으로, 그 일대는 신라 때 동해안의 명승으로 금강산의 삼일포와 총석정, 속초 영랑호, 강릉 경포호와 더불어 화랑들의 국토순례지이며 심신을 단련하던 훈련지였다. 특히 한송정은 화랑의 우두머리 영랑, 술랑, 안상, 남석행 등 네 신선[四仙]이 차를 달여 마시던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 차의 도입은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로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으나, 그보다 앞서 진흥왕(재위 540-576) 무렵에 네 신선이 한송정에서 차를 달여 마셨다는 기록을 미루어 보아 한송정은 1,500여 년 전의 차유적지인 셈이다. 지금은 다만 그 터라고 추측되는 곳에 근래에 단조로운 ‘한송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한송정비’를 세웠다.

 

여기가 신라화랑이 유람하던 곳/
지금도 남은 자취 기이하구나/
주대(酒臺)는 꺼꾸러져 풀에 묻혔고/
차화덕[茶竈] 내뒹굴어 이끼만 꼈네

 

한송정비에 새겨진 김극기(金克己, ?-1209)의 시 「한송정」이다. 그는 고려 말 무신들이 득세한 어지러운 세상에 등을 돌리고 방랑객으로 떠돌다가 옛 한송정에 들려 지은 시로 당시만 해도 주대와 차 끓이던 돌화덕은 푸른 이끼가 눌어붙어 황량했다. 1900년 초만 해도 한송정 주변은 큰 노송들이 울창하게 서 있었다. 지금은 그 옛날 울창했던 솔숲은 없어지고 ‘한송정 솔을 베어 배를 만들어 타고 강릉 경포대 달구경 가자’는 노랫가락만 전해온다.


여하튼 한송정 일대는 화랑들의 심신 단련하던 곳으로 6·25 한국전쟁 땐 공군기지로서 대한민국을 지켜내는데 큰 몫을 한 곳이다. 당시 우리 공군은 평양대폭격 등 출격 때마다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도 제1전투비행단 10전투비행전대의 강릉기지에서는 날마다 F-51D 무스탕 전투기 조종사들이 빨간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쉴 새 없이 출격이 이뤄지고 있었다.


조종사들이 빨간마후라를 처음 두른 정설은 김영환(金英渙,1921-1954) 장군이 1951년 전대장인 대령으로 있던 시절로 도미(渡美) 교육을 위해 공군본부로 출장을 가는 길에 공군참모총장 집에 잠시 들른다. 당시 참모총장 김정렬은 김영환 대령의 친형으로 부인은 이희재 여사로서 김영환 대령의 형수이다. 마침 김영환 대령은 형수가 붉은 치마를 입은 것을 보고 ‘형수님이 입고 있는 빨간 치마 색깔이 좋게 보이니, 마후라를 만들어 달라’고 했더니, 치마를 짓고 난 자투리 천으로 마후라를 만들어서 시동생 김영환 대령에게 선물로 준다. 그래서 빨간마후라가 만들어지게 되었고 김영환 대령은 빨간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다닌 첫 전투조종사다.


그 후 강릉기지의 조종사들이 빨간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출격했고, 우리나라 전체 공군 조종사들에게 퍼지게 되면서 공군의 상징이 되었으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 공군 조종사만이 전체가 빨간마후라를 매게 되었다. 그리고 6·25전쟁이 휴전되고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1964년 영화 <빨간마후라>가 제작된다. 신상옥(申相玉, 1926-2006)이 감독했고 배우 신영균, 최무룡, 최은희가 출연했다.


강릉기지에서는 날마다 출격이다. 그 가운데서도 ‘산돼지’란 별명의 나관중(배우 신영균) 소령은 1백회의 출격의 기록을 세운 조종사다. 그는 비록 적은 액수의 봉급을 받지만 출격해서 언제 조국을 위해 산화할지 모르는 동료, 부하 조종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며 정을 나누곤 한다. 그의 절친한 전우(배우 최무룡)는 서양식 술집 바의 여자 종업원 지선(배우 최은희)과 사귀며 결혼까지 했으나 어느 날 출격해 기지로 돌아오지 못하고 산화한다. 슬픔에 잠긴 그의 부인 지선을 위로하던 다른 전우가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는 게 영화의 줄거리다.


영화 <빨간마후라>의 원작자는 한운사(韓雲史, 1923-2009)로 공군의 청탁을 받고 대한민국 공군의 초창기 역사를 바탕으로 6·25전쟁 중 강릉기지를 무대로 조종사들이 조국의 하늘에 목숨을 걸고 싸워온 과정을 극적(劇的)으로 형상화한 영화다. 그런데 영화가 만들어지기 전 1962년 MBC 문화방송국 창사 1주년 기념특집 라디오 연속극 ‘빨간마후라’가 영화 <빨간마후라>의 모태(母胎)가 되고 연속극 주제가 「강릉아가씨」는 영화 <빨간마후라>의 주제가 「빨간마후라」의 모곡(母曲)이 되었다.

 

빨간 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하늘의 사나이들 나올 무렵엔/
빨간 연지 입술 강릉아가씨/
강가에 나와 기다리시네//
대관령 구름 뚫고 떠오를 때엔/
강릉아가씨는 마음 졸이며/
가슴에 두 손 모아 무사하소서/
하늘에 사나이는 빨간마후라//


강릉아가씨 노래비에 새겨진 「강릉아가씨」의 노랫말이다. 빨간마후라를 목에 맨 조종사에게 사랑에 빠진 강릉아가씨가 빨간 연지입술로 화장을 하고 강가에 나와서 조종사를 기다리는 두근거리는 마음과 또 출격했을 때 무사히 강릉기지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노래다. 마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 여류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의 시 「채련곡(採蓮曲)」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는 노래라 할까.

 

해 맑은 가을 호수 옥처럼 새파란데/
연꽃 우거진 곳에 목란배를 매었네/
물 건너 님을 만나 연꽃 따 던지고/
행여나 뉘 봤을까 한나절 부끄러웠네


허난설헌의 「채련곡」으로 사랑과 애정을 노래한 멋진 시다. 오늘날에도 사랑에 빠진 사람의 두근거림을 나타내는 시로 높이 평가 받는다. ‘연밥 따는 노래’라는 의미의 「채련곡」은 그 당시 유교의 양반사회에서 아녀자가 사랑을 너무 방탕하게 표현한 시라고 하여 허난설헌 사후 그녀의 시문집인 『허난설헌집』에 싣지 못했다.「 강릉아가씨」 노래 역시 허난설헌의 시「 채련곡」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강릉아가씨’의 노랫말은 실제 그 당시 강릉기지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강릉아가씨는 빨간마후라를 목에 두른 전투기 조종사들이 백 번째로 출격하던 날, 강릉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무사히 승리하고 돌아오라고 환송식을 하였다. 그리고 무사히 기지로 돌아온 조종사들의 목에 꽃다발을 걸어주며 환영식을 도맡았던 강릉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다.


영화 <빨간마후라>에서 산돼지 나관중 소령의 실제적 모델을 삼은 조종사는 유치곤(兪致坤, 1927-1965) 장군이다. 그는 대구시 달성군 유가면 쌍계리에서 태어나 6·25전쟁 중인 1951년 소위로 임관해 1952년 1월 평양 승호리 철교폭파 작전에서 450미터로 초저공비행하면서 미 공군이 500여 차례 공격으로도 파괴하지 못한 철교를 폭파해서 북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영화 <빨간마후라> 마지막 부분에 철교폭파 장면이 나오는데, 그 당시 극장에서 그 장면을 보던 관객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지르던 열기는 제11회 아시아영화제에서 감독, 편집, 남우주연상을 받아 동아시아를 휩쓸 만큼 유행했다.


그런데 하마터면 「강릉아가씨」가 사라질 뻔했는데, 오늘날 되살려 회자되게 된 공로는 신길수(申吉洙) 장군이다. 그는 1993년 10월 1일 공군 창군일을 기해 당시 제18전투비행단장으로 노랫말을 쓴 한운사와 곡을 붙인 황문평(黃文平, 1920-2004)을 만나 「강릉아가씨」의 원본을 찾아내 다음해 4월 1일 기지 내비행단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역사기념관 옆에 <강릉아가씨 노래비> 를 건립했다.


가로, 세로 3.2미터 기초석 위에 삼각형비를 축으로 세운 ‘강릉아가씨 노래비’ 앞면에는 노랫말과 악보를 새기고 뒷면에는 ‘강릉아가씨 노래는 역사의 흐름 속에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갔음을 못내 아쉬워하던 10대 단장 신길수 준장이 노래를 찾아내어 빨간마후라의 산실인 비행단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노래비를 세워 역사에 남기고자 한다’는 내력이 새겨져있다. 그리고 「강릉아가씨」의 노래를 영화 <빨간마후라> 주제가로 삼으려고 했지만 노랫말과 곡이 부적절해 다시 개사한 주제가가 한때 국민애창곡으로 오늘날 공군장병들이나 공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빨간마후라는 하늘의 사나이/ 하늘의 사나이는 빨간마후라/ 빨간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구름따라 흐른다 나도 흐른다/ 아가씨야 내마음 믿지를 말아라/ 번개처럼 지나가는 청춘이란다’의 노래임을 언급하고 있다.


영화 <빨간마후라>에서 조종사들이 6·25전쟁 때 맹활약했던 프로펠러 엔진의 F-51D 무스탕을 타고 출격해야 하는데 촬영 당시 이미 무스탕은 퇴역했고 우리나라 공군은 제트시대를 접어들어 제트 엔진의 F-86F 세이버 전투기를 1955년에 도입해 1966년 F-5A 프리덤 파이터 초음속 전투기가 도입 때까지 공군의 주력기로 운용되고 있었다. 그래서 영화에선 그 당시 최신예 기종 F-86F 전투기를 활용했다. 그러니 영화 <빨간마후라>는 6·25전쟁 당시 우리 공군의 맹활약과 최신예 전투기의 홍보적인 일면도 있었으리라.


오늘도 공군 제18전투비행단에서는 6·25 전쟁 때의 선배 빨간마후라 조종사들의 유지를 받들고 있는 후배 조종사들이 활주로 끝에서 어떠한 영공침범도 막아내야 한다는 각오로 비상 대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