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해 스페인과 이탈리아, 교황청을 순방했다. ‘현안이 없는데 왜 가느냐’는 목소리가 정부 내에서도 있었지만 듣지 않았다. 곧이어 사우디 등 중동 3국도 방문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2년 대선을 한 달 앞두고 인도네시아와 태국을 다녀왔다. 발리에서 열린 ‘민주주의 포럼’ 참석이 명목이었지만, 그 행사는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동행하지 않았을 정도로 외교적 비중이 낮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6년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3국 방문을 마쳤을 때 청와대 측은 ‘6대륙 정상 외교 마무리’라고 했다. 전 세계 육지를 다 돌았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임기 초엔 ‘4강’ 미·중·일·러를 중심으로 순방에 나선다.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같은 정상 외교 무대도 매년 빠지지 않는다. 그러다 임기 말이 다가오면 가 볼만 하거나, 가보지 못했거나, 가보기 어려운 나라를 방문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청와대 전 수석은 “대선 후보가 정해지면 국내에서 대통령의 영향력은 계속 줄지만 외국에선 여전히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고 했다. 대한민국의 위상 덕분이다. 골치 아픈 현안이 쌓인 국내보다 환대가 기다리는 외국이 더 좋을 수 있다. 역대 외교부 장관들은 대통령의 이런 심리를 이용해 해외 순방 일정을 만들어 왔다. 외교관 출신 한 사람은 “일종의 뇌물”이라고 했다. 임기 말 해외 순방을 거부한 대통령은 거의 없다고 한다. 미국도 마찬가지인지 클린턴 전 대통령은 성(性) 추문으로 하원의 탄핵을 받았던 1998년 한 해에만 45일간 해외에 체류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호주 방문을 마치고 오늘 귀국한다. 국내 코로나 상황이 매일 비상인데 해외에 있었다. 요즘 호주는 미국과 함께 ‘반(反)중국 전선’의 최일선에 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호주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베이징올림픽 보이콧’에 대해 “한국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호주 방문은 중국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도 했다. 한·호주 우호에 도움 되지 않는 말을 하려면 호주엔 왜 갔나.
▶덩샤오핑은 집권 직후인 1978~79년 미국·일본·북한·동남아 등 10여 국을 숨 가쁘게 돌아다녔다. 미·일과 수교하는 등 안보 위협을 제거했다. 그러고는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외국에 나가지 않았다. 그래도 개혁·개방의 외부 환경을 만든 최고의 ‘외교 전략가’란 평가를 받는다. 문 대통령도 ‘6대륙 정상 외교 완성’을 이룰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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