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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잇단 교황 알현이 간접회담 이라고? 靑의 신박한 해석

Jimie 2021. 11. 7. 06:19

한·미 잇단 교황 알현이 간접회담 이라고? 靑의 신박한 해석[뉴스원샷]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DMZ 철조망 십자가를 선물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강렬한 열망의 기도를 담아 만들었다"며 십자가의 의미를 직접 설명하고 있다. 뉴스1

 



유지혜 외교안보팀장의 픽 : 교황 방북



가을은 바야흐로 다자 정상외교의 계절이다. 코로나19로 막혔던 외교 기회들이 속속 다시 열렸고, 문재인 대통령도 유럽을 찾아 다양한 다자외교 일정을 소화했다. 특히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는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중요한 무대였다.

하지만 국내에서 더 회자된 건 ‘교황 방북’이다. 문 대통령이 주요 20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이탈리아 로마를 방문했을 때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해 방북 의사를 다시 확인한 것이다.

 



한ㆍ미 잇딴 교황 알현이 ‘간접회담’?



교황 방북 자체가 많은 이들에게 설레임과 울림을 주는 키워드다. 여러 여건이 잘 갖춰져 성사된다면 한반도 평화를 위한 큰 기여가 될 것도 분명하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청와대사진기자단=중앙일보 김성룡 기자

 

문제는 이후 생겨나는 청와대발 잡음이다. 지난 1일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교황님을 중심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연쇄 면담을 가졌다는 것은 양국의 관심사, 한반도 평화에 대한 문제가 직접 정상회담은 아니지만 간접 정상회담(을 통해 논의되는) 효과를 가졌을 것이라고 저는 평가한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달 29일 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잇따라 만났다. 박 수석의 발언은 한ㆍ미 정상이 연이어 교황을 만났으니, 한반도 문제에 대한 양국의 의견도 한ㆍ미 정상회담급으로 공유됐을 것이라는 취지로 들린다.

어불성설이다. 정상회담은 고도의 정치·외교적 행위다. 양국의 각급 인사 누가, 몇 번을 만나도 결정할 수 없는 일을 담판지을 수 있는 유일한 자리가 정상회담이다.

그러니 다자 정상외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각국 외교당국은 주요국과 15분, 20분씩 만나는 약식 정상회담 일정이라도 기어이 맞춰보려고 끝까지 애를 쓰는 것이다. 잠깐을 만나도 주고받는 대화의 표현이나 바디 랭기지 하나하나가 큰 의미를 갖는다. ‘간접 정상회담’이란 단어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교황청도 염두 두고 일정” 아전인수



하지만 청와대의 인식은 확고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도 2일 KBS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문 대통령)면담 후에 바로 바이든 대통령 면담이 이어졌기 때문에 3자가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교황님을 매개로 한국과 미국이 연결되고, 또 교황청도 이를 염두에 두고 일정을 조율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바티칸을 찾아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이런 식의 해석이 가능하다면 애초에 다자회담은 필요치 않다.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과 다른 19개국 정상을 잇따라 만나면, 곧 20개국 정상 간에 간접 정상회담이 이뤄진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황청이 이를 염두에 두고 일정을 조율했는지 아닌지는 교황청이 직접 밝힐 일이지, 청와대 대변인이 짐작으로 할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이런 불필요한 해석을 공개적으로 내놓는 것 자체가 수많은 정상 중 단 세 나라 정상에만 알현 기회를 주며 한국을 특별하게 대한 교황청의 선의를 희석하는 게 될 수 있다.

박수현 수석은 또 교황청의 보도자료에는 교황 방북 언급이 없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그 보도에 따르면 교황님께서 하지도 않으신 말씀을 했다고 청와대가 브리핑했다는 것입니까? 참 이해가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시쳇말로 참 ‘신박’한 해석이다. 교황청뿐 아니라 백악관의 보도자료에도 방북 관련 내용은 없었다는 내용을 다룬 중앙일보의 10월31일 오후 1시12분 송고 기사는 “물론 보도자료에 없다는 게 꼭 관련 논의를 아예 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기에는 ‘교황 방북’과 관련해 청와대의 드라이브만 눈에 띄는 모양새다”라고 지적했다.



회담 뒤 각기 다른 발표, 중점 다르단 뜻



양자회담 뒤 각기 다른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는 건 통상적인 일이다. 각기 중시하는 부분이 무엇인지에 따라 보도자료에 담을 내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A가 보도자료에서 언급한 내용을 B가 보도자료로 언급하지 않았다는 건 중점을 두는 회담 내용이 각기 다르다는 것이지, 회담에서 논의되지 않은 내용을 일방이 꾸며냈다는 뜻은 아니다. 외교 회담의 기본이자 상식이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프레스센터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교황청 방문 및 회담 결과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연합뉴스

 

하지만 박경미 대변인도 이를 이어받아 “문 대통령이 전 세계의 정신적 지주인 교황님과의 대화를 지어낼 수는 없다. 어떻게 그렇게 가당치 않은 상상을 할 수 있을까, 언론에 대해 참으로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교황청에서 해당 내용을 공표하지 않았다는 언론 보도를 “그럼 우리가 거짓말을 했다는 이야기냐”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청와대의 인식이 더 ‘개탄’스럽다. 정부여당이 언론의 정확성과 공정성에 대해 이런 ‘가당치 않은 상상’을 하기 때문에 언론중재법 처리 시도 같은 무리수도 가능했지 싶다.



본질은 방북 가능성 ‘과대포장’ 여부



청와대의 ‘교황 시리즈’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박 대변인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과 베이징 겨울 올림픽을 연결할 수 있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교황님이 아르헨티나, 따뜻한 나라 출신이기 때문에 겨울에는 움직이기 어렵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굳이 아르헨티나의 기후를 논할 필요도 없다. 교황 방북과 관련한 본질적 질문은 현실화 가능성이 실제로 얼마나 있는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을 위한 정부의 열망이 이런 가능성을 필요 이상으로 과대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여부다. 여기에 답을 하면 될 일이다.

이런 식의 대응은 오히려 중요한 일에 향해야 할 시선을 분산한다. 일례가 2일(현지시간) 글래스고에서 열린 국제메탄협약 서약식이다.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배출되는 메탄의 양을 2020년 대비 최소 30% 줄이겠다고 100여개국이 서약했는데, 서약 행사에서 무대에 올라간 국가 정상은 한국을 비롯해 캐나다와 아르헨티나, 베트남 등 채 몇명 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영국 글래스고 스코틀랜드 이벤트 캠퍼스(SEC)에서 열린 국제메탄서약 출범식에 참석, 박수치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합의의 실효성이나 국내적으로 미칠 영향, 특히 경제적 파급력은 신중히 보고 준비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한국의 정상이 이런 무대의 중심에 있다는 것 자체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해 국제사회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한국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대통령의 개인 플레이가 아니라 한국민이 그간 피땀 흘려 노력해 이뤄낸 결과다. 청와대가 주력해 알려야 하는 건 아르헨티나의 기후가 아니라 이런 장면이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