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7월 7일 일제가 베이징 근교 노구교를 공격하면서 중일 전쟁이 발발한다.
항일의 전세가 전 중국으로 퍼져 나갔으며, 정율성은 이즈음 연안행을 결행한다.
중국 공산당의 혁명기지였던 산시성(陝西省) 옌안(延安).
1938년 4월 정율성(23세)이 작곡한 ‘연안송 (延安頌)'
1938년 봄 어느날 저녁 옌안 중앙대례당에서 마오쩌둥을 비롯한 주은래, 주덕 등 중국공산당 최고지도부가 참석한 대규모 음악회가 열린 날, 정율성(鄭律成)은 여성가수 탕룽메이(唐榮枚)와 함께 무대에 올라 자신이 작곡한 '옌안쑹(延安頌, 연안송)'을 노래하게 된다.
항일의 심장으로 불리는 옌안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항일투쟁의 의지를 담아 "연안을 노래한다"는
옌안쑹(延安頌)' 은 마오쩌둥과 공산당 간부들은 물론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끓어 넘치는 정치적 격정을 담은 정률성의 격양된 노래소리는 모주석의 박수와 관중들의 열렬한 갈채를 받았다. 공연이 있은 다음날 중공중앙선전부에서 《연안송》악보를 가져갔고 이 노래는 재빨리 전선과 후방으로 광범위하게 퍼져 나갔는데 심지어는 국민당통치구와 동남아의 화교에게까지도 퍼졌다.
서정적이면서도 웅장한 느낌으로 감동을 주는 이 노래는 당시 중국 전역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우리의 “아리랑”처럼 널리 애창되어, 공연 이후 1945년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8년 동안 대표적인 항일 노래로 자리 잡았다.
정율성은 혁명의 성지 연안의 웅장함과 항일, 연안의 밝은 미래를 그리고 있다.
정율성은 척박한 연안의 모습과 열악한 중국공산당 본거지를 동경과 서정이 가득한 낭만의 도시로 묘사했다.
▲ 정율성의 연안송 친필 악보
●정율성의 위대한 걸작 ‘연안송’(延安頌)
莫耶(모예)詩
https://www.youtube.com/watch?v=7Qqr6hKOhzY
1938年4月作于延安。 原名《歌颂延安》,中宣部将之改名为《延安颂》(有征得作者同意)。
夕阳辉耀着山头的塔影,
月色映照着河边的流萤,
春风吹遍了坦平的原野,
群山结成了坚固的围屏。
석양의 빛은 산봉우리 탑을 비추고, 달빛은 강가의 반딧불을 비춰주네,
봄바람은 평탄한 벌판에 불어가고, 많은 산들은 견고한 장벽을 이루었네.
啊!延安!
你这庄严雄伟的古城,
到处传遍了抗战的歌声,
啊!延安!
你这庄严雄伟的古城,
热血在你胸中奔腾。
아, 연안! 너 이 장엄하고 웅위한 고성(古城), 여기저기에 항전의 노래소리가 울려퍼지네.
아, 연안! 너 이 장엄하고 웅위한 고성, 뜨거운 피가 너의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네.
千万颗青年的心,
埋藏着对敌人的仇恨,
在山野田间长长的行列,
结成了坚固的阵线。
看群众已抬起了头,
看群众已扬起了手,
无数的人和无数的心,
发出了对敌人的怒吼,
士兵瞄准了枪口,
准备和敌人搏斗。
천만 청년의 마음, 적들에 대한 원한을 품었네, 산야와 논밭의 길고긴 행렬에서 견고한 전선을 이루었네.
봐라! 군중들은 이제 머리를 들었노라, 봐라! 군중들은 이제 손을 들어올리노라.
무수한 사람과 무수한 마음, 적들에 대해 분노의 포효를 하고 있네.
사병들은 총구를 겨냥하고, 적들과 싸울 준비를 하고 있네.
啊!延安!
你这庄严雄伟的城墙,
筑成坚固抗日的阵线,
你的名字将万古流芳,
在历史上灿烂辉煌。
아, 연안! 너 이 장엄하고 웅위한 성벽, 견고한 항일의 전선을 구축하였고
너의 이름을 만고에 남길 것이며, 역사에서 찬란하게 빛나리!
<‘연안송’(延安頌)에서)
정율성 음악세계에서 또 하나의 위대한 걸작은 1938년에 ‘연안송’(延安頌) 작곡이다. 연안송은 중국항일투쟁 당시 全 중국인민들의 대일 항전에 대한 필승의 결심과 믿음을 찬양하는 곡으로 지난 1990년에는 20세기 중국음악의 기념비적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항일과 혁명을 위해 천리 만리 먼 길을 걸어 연안에 모인 젊은이들의 혁명의 열정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는 ‘연안송’은 당시 중국공산당 지도부에서 악보로 만들어 중국 전역으로 보급했을 만큼 그 파장은 지대했다.
곡조가 서정적이면서도 웅장한 전투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연안송은 삽시간에 항일 근거지로부터 국민당 통치구까지, 화북(華北)에서 멀리 동남아까지 항일 웅비의 영원한 노래가 되었다.
1938년 봄, 연안성에서는 모택동 등 공산당 최고위 간부들이 참석한 야회집회 첫 행사로 정율성이 만돌린을 타면서 소프라노 여자 가수 탕룽메이(唐榮枚)와 함께 ‘가송연안’(歌頌延安, 뒤에 ‘연안송’으로 개칭)을 격양된 목소리로 불렀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아, 연안! 장엄하고 웅대한 도시! 항전의 노래 곳곳에 울린다.”
정율성은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 뚜렷하고 강한 인상을 남긴다. 모택동 주석이 자리에 있었는데 노래가 끝난뒤 모택동은 물론 청중들은 모두가 감격한 나머지 한결같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연안송’의 작사자는 당시 루쉰예술학원문학과의 모예(莫耶)로 연안을 칭송한 한편의 시가 정율성이 작곡한 아름다운 선율로 옷을 입으면서 유명해졌다. 당시 모예는 연안에서 이름이 나기 시작한 여성 시인이었다. 얼마전에는 ‘연안송’이란 드라마가 중국 국영방송인 CCTV에 방영될 정도였다.
중국인들이 정율성을 자자손손 칭송하는 것은 그의 음악 속에는 강한 서정성이 내재되어 있다는데 있다. 중국인들은 정율성이 작곡한 ‘연안송’을 듣고 부르면서 중국적이지도 않으면서 낭만적인 서양음악의 선율을 담고 있다고 평가한다.
중국인들은 한결같이 연안송이 서정성과 전투성을 겸비하고 있다고 말한다. 연안송의 전반부는 장엄하고 웅장한 분위기로 잔잔하게 흐르다가 중간에 발랄하고 빠른 곡으로 이어지며 마지막 부분에서 또다시 잔잔한 분위기로 완결되는 오묘한 구도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1939년에 창작된 ‘연수요’(延水謠)는 ‘연안송’의 자매편으로 서양풍의 송가형식과 산베이(陝北, 산시성 북부) 민족의 농밀한 서정풍이 배어있는 곡이다. 중국인들은 연안송을 처음 듣는 순간 깊게 빨려 들어가는듯 전염성이 강하다고 말한다. 이 노래는 오늘날의 중국 젊은이들 역시 너무 좋아한다.
‘연수요’를 들어보면 가슴을 파고드는 깊은 한국적인 한이 느껴진다. ‘연수요’는 정율성이 당시 연안이 위치해 있던 산시성 북부지역 민가(民歌)의 가락을 취해서 한국적 정서를 담아 새롭게 작곡한 것이다. 이는 정율성이 민가에서 그 진수를 흡수하는 재능이 탁월했음이 거듭 확인된다.
정율성은 1952년부터 문화대혁명이 시작되기 전인 1963년까지 조선족이 거주한 연변은 물론 쓰촨(四川), 헤이룽장(黑龍江), 저장(浙江), 후난(湖南), 광시(廣西), 구이저우(貴州), 윈난(雲南), 푸젠(福建), 장시(江西)성 등지를 다니면서 소수민족의 민요와 민간의 음악을 수집하고 중국인의 정서를 한층 풍부하게 창작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정율성은 연안에 있던 4년동안이 그의 일생을 통해 창작활동에서 최고조에 달한 시기였다. 약 50수를 썼으며 특히 연안에서 초기 2년동안 ‘연안송’과 ‘팔로군행진곡’ ‘연수요’ 등 대표작 걸작 3곡을 창작했다. 정율성은 이 3곡을 통해 송가, 진행곡과 민가 등 3분야에서 중국현대음악사상 선구자적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단순히 항일가요는 항일가요로 남는데 정율성 작품의 항일가요는 예술가곡으로 남을 정도로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다. 정율성은 쓰라린 심정을 더욱 폭넓고 아름다운 창작활동으로 달래어 나갔다. "생활 속에는 투쟁만 있고 붉은 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유쾌한 심정으로 아름다운 초목산천도 노래하여야 한다."고 마음을 다지곤 했다.
1952년 정율성은 눈덮인 만주땅 북녘 흥안령의 생활상을 통해 '벌목가'와 '흥안령에 눈 내리네'를 작곡하기도 했다.
03. 延水謠_옌수이의 노래 03:00
https://www.youtube.com/watch?v=eFnben2od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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