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 Human Geography

長恨夢& 金色夜叉

Jimie 2020. 7. 22. 03:50

장한몽(長恨夢) 과 곤지키야샤(金色夜叉)

 

Jimie 16.04.22 08:02

 

문학,연극 ,역사 기행의 머나먼 여로~

<장한몽(長恨夢),이수일(李守一)과 심순애(沈順愛)> 번안작의 번안작 !

 

*영국의 여류작가인 버서 클레이(Bertha M.Clay)의  <여자보다 약한(Weaker than a woman)>에서

*일본의 오자키 고요(尾崎紅葉·1867∼1903)의 '황금 *두억시니 ’라는 뜻의 <곤지키야샤 (金色夜叉)>를 거쳐

            *두억시니 : 모질고 사악한 귀신의 하나

*조선의 일재(一齋) 조중환(趙重桓 1863~1944)의 장한몽(長恨夢)으로 유전流轉한다.

 

그러니까 <장한몽(長恨夢), 이수일과 심순애> 번안작의 번안작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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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 곤지키 야샤 <金色夜叉(貫一とお宮)> 작가인 오자키 고요가 소설을 쓰는 도중에서 사망했기 때문에.

이야기는 중단 된다.

 

金色夜叉(貫一とお宮)와 長恨夢(이수일과 심순애)

 

일본과 한국에서 발매된 책자의 표지사진

왼쪽 콘지키야샤, 오른쪽 장한몽. 옷이 다를 뿐 거의 유사한 동작을 표지그림으로 그렸다.

 

 

많은 사람들은 장한몽(長恨夢 일명:이수일과 심순애)을 한국인이 만든 신파극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이수일과 심순애는 연극이 아닌 신문지상의 연재 소설로 등장했으며 그것도 순수한 한국인의 창작물이 아닌 번안소설로서였다.

 

전편(上)은 1913년 5월 13일~10월 1일까지,

속편(中ㆍ下)은 1915년 5월 25일~12월 26일까지 매일신보에 연재되었으며

연극으로는 1913년 8월 유일단에 의하여 처음으로 공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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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은 1897년 1월부터 에서 1899년 사이에 일본의 국민적인 작가 오자키 고요(尾崎紅葉)에 의해 요미우리신문(読売新聞)의 연재 소설인 ‘곤지키 야사(金色夜叉)’가 우리가 알고 있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원작이다.

 

곤지키 야샤(金色夜叉)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배금주의에 희생당하는 인간성에 대해 고발하는 소설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칸이치(貫一)는 자신이 의탁하고 있는 집안의 외동딸인 미야(宮)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성실하고 착한 칸이치의 성격에 호감을 갖고 있던 미야의 부모는 칸이치가 대학을 졸업하는 때를 맞추어 결혼을 시켜줄 것을 약속한다.

 

그러던 어느날 미야가 소식도 없이 사라졌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칸이치가 수소문을 한 결과 미야는 거부인 토미야마(富山)의 구애를 받아 그를 따라 떠난 것이었다. 칸이치는 미야를 찾아 나섰다.

 

비록 자신이 재력에 있어서는 비견할 바가 아니지만, 그는 자신과 미야 사이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토미야마의 재물에 마음이 혹한 미야는 결국 칸이치를 외면하고 만다.

이 사랑의 실패로 인해, 칸이치는 사람이 변하고 만다.

순수하던 청년이던 칸이치는 괴로움을 잊기 위해 오직 돈을 버는데만 현혹이 된다.

 

육년 후,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괴로워하던 미야는 칸이치를 찾아가지만,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칸이치는 그녀를 차갑게 외면한다.

그러나 완고했던 그의 마음도 어느 순간부터인가 풀어진다.

미야가 측은하게 생각된 그는 그동안 뜯어보지도 않았던 미야의 편지를 돌아본다.

 

이야기는 여기서 중단 된다. 작가인 오자키 고요가 이 대목을 쓰는 도중에서 사망했기 때문이다.

 

당시에서는 ‘오자키 고요’가 곤지키 야샤(金色夜叉)의 집필에 너무 몰두하여 수명을 앞당겼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이 소설은 당대인들의 화제 거리였다.

 

실제로 당시 일본은 상당한 불경기였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오자키 고요의 소설은 35만권이나 예약으로 찍어낼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오자키 고요는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작가인 셈이다

 

‘황금 두억시니’라는 뜻의 <곤지키야샤>(金色夜叉)는. 토쿠토미 로카의 <불여귀>와 함께 일본 근대문학사에서 이른바 ‘언문일치’를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작품으로 꼽힌다.

그리고 자유민권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뒤 일본이 러일전쟁을 향해 치닫고 있던 상황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돈과 사랑’이라는 통속소설의 전형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정치적 색채를 지워버린 이 작품은 일본대중들의 관심을 돌려놓는 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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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몽(長恨夢) 과 곤지키야샤(金色夜叉)

▲ 시즈오카현(静岡県) 이즈(伊豆)반도 아타미(熱海) 해변에 세워진 곤지키야샤(金色夜叉) 동상

貫一お宮 (칸이치와 오미야) 상

▲ 바지단을 잡는 오미야를 나막신으로 차는 장면. 그냥 차는 것도 아니고 일본 나막신인

게타로 차는 모습이 무척 리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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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몽(長恨夢)이수일과 심순애는 조선인들의 선풍적인 인기를 얻습니다. 신문 연재에 이어, 단행본으로, 신파극으로, 영화로 거듭 나면서...

 

그러나 그 인기몰이를 하게된 동기는 일본 식민지 시대의 내선일치 공작이었고 이수일과 심순애는 거기에 이용되었던 짝퉁 작품 이었습니다

 

長恨夢(장한몽)/이수일(李守一)과 심순애(沈順愛)

 

장한몽은 일재(一齋) 조중환(趙重桓 1863~1944)이 일본의 오자키고요(尾崎紅葉 1867∼1903))가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에 1897년 1월~1899년 1월까지 연재했던 곤지키야샤 (金色夜叉)를 번안(번역)한 연애소설이다.

 

이를 매일신보에

전편(上)은 1913년 5월 13일~10월 1일까지,

속편(中ㆍ下)은 1915년 5월 25일~12월 26일까지 연재됐다.

 

그 후 1970~1971년까지 ‘창작과 비평’에 재게재했다.

주인공 이름은 이수일(李守一)과 심순애(沈順愛)로 지었다.

 

그런데

곤지키야샤(金色夜叉)는

영국의 여류작가 버서 클레이(Bertha M.Clay)의 <여자보다 약한(Weaker than a woman)>에서

인물과 내용을 따오고 무대와 이름만 일본으로 옮긴 것임이 2000년에 밝혀졌다.

 


눈물에 젖은 식민지

일제하의 조선..., 신파를 대표하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사랑…

끊임없는 리메이크로 한국인의 감성을 장악, 1969년 신상옥이 이끄는 ‘신필름’에서 <장한몽>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제작한다.

감독은 신상옥, 주연은 신성일과 윤정희 그리고 남궁원이 맡았다.

이 영화는 유신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70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며 전국 곳곳에서 상영된다.

 

뿐만 아니라 70년대말과 80년대초 연극계의 최대 히트작 중의 하나가 극단 가교의 <이수일과 심순애>였다.

그 이름도 유명한 ‘이수일과 심순애’는 이 땅에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1910년대초 이후 의연히 그 매력을 잃지 않고 있었다.

 

아니 지금까지도 이수일과 심순애의 ‘황금을 넘어선 숭고한 사랑’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어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하곤 한다.
한국인의 감성을 장악해버린 이수일과 심순애의 사랑,

그 기원은 어디인가.

조선을 ‘접수’한 일본의 눈물 공세

1910년 8월29일 조선은 일본의 ‘공식적’ 식민지로 전락한다.
제국주의 일본은 조선을 ‘접수’하기가 무섭게 모든 언론을 통폐합해 <매일신보>라는 총독부 어용기관지로 언로를 일원화화고, 판매부수를 확장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소설을 연재한다.

 

독자를 유인하는 가장 강력한 판매전략 중의 하나가 연재소설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우리 나라 초창기의 소설 문학으로 이처럼 신문 연재로 시작한다.
주로 처음에는 식민지 조선과 제국주의 일본의 관계를 드러내기라도 하듯,<장한몽> <쌍옥루> <국의향> 등 일본에서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품들로 대부분이 메이지시대 일본소설의 번안’이었다.

그리고 일본소설 번안 분야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약한 작가가 일재(一齋) 조중환(趙重桓 1863~1944) 이다.

 

일재 조중환(一齋, 趙重桓, 1884?1947)은 근대 초창기의 언론인으로서 1910년대 한국근대문학의 정립기에 번안과 번역 및 희곡의 창작을 통하여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는 1912년에 매일신보에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 희곡으로 평가받는 ‘병자 삼인(病者 三人)을 연재하기도 했으며 신파극단‘문수성(文秀星)’을 창단하여 이들 번역·번안 작품의 연극화에도 관여하여 한국희곡사 및 연극사에도 반드시 거쳐야할 족적을 남겼다. .

 

조중환이 번안해 당시 조선의 독서계를 강타한 소설이 바로 이수일과 심순애를 주인공으로 한 <장한몽(長恨夢)>이다.

 

역시 매일신보에 1913년 5월 13일부터 11월 1일까지 오자키 고요의 곤지키 야샤(金色夜叉)를 번안하여 ‘장한몽(長恨夢)’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연재하였다.

 

그는 여기서 별도의 작업을 한다.

원작은 일본 소설이지만 다수의 독자들에게 친숙할 수 있도록 이야기의 큰 줄기를 제외한 다른 부분을 독자들의 구미에 맞게 각색을 한다. 즉, 일본인 칸이치는 조선인 학생인 ‘이수일’로, 칸이치의 애인인 미야는 미모의 조선인 여성 ‘심순애’로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 역시 일본이 아닌 조선의 평양으로 설정이 된다.

그리고 또한 큰 줄기가 되는 내용이 아닌 부분은 내용상에서도 손질을 한다.

 

장한몽에서 유명한 대목인 대동강 변에서 심순애의 마음을 확인한 이수일이 보름달을 보며 절규하고, 그런 이수일의 바지가랑이를 붙잡는 심순애의 모습은 사실 원작이 아닌 조중환 자신의 창작물인 것이다.

 

 

▷ 1913년 단행본으로 출판된 <장한몽>.

번안 작품 <장한몽>은 1913년 5월13일부터 10월1일까지 <매일신보>에 연재됐으며, 같은해 1913년 유일서관(唯一書館)에서 단행본으로 발간돼 판을 거듭한다.

 

곤지키야샤(金色夜叉)의

몰락한 사무라이 집안의 고아로 입신출세를 꿈꾸는 명문 중학교 학생 하자마 칸이치, 은행가의 아들 도미야마 다다쓰구,
칸이치를 키워준 은인의 딸 오미야

 

장한몽(長恨夢)에선

이수일과 김중배 그리고 심순애 이름으로 등장한다.

공간적 배경도 도쿄에서 평양으로 옮겨 그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원작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예컨대 원작에서는 도미야마와 결혼한 미야가 칸이치의 용서를 받지 못하고 자결하는 비극으로 끝나는 것과 달리 <장한몽>에서는 이수일과 심순애가 재결합함으로써 행복한 결말로 막을 내린다.

원작과의 거리는 번안자의 선택과 독자들의 보이지 않는 압력, 문화적 환경과 정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굴절은 번역과 번안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일종의‘운명’이라 해도 지나친 말을 아닐 것이다.

'이수일과 심순애'

 

** 시놉시스 **

* synopsis [sinάpsis] : 개략 ,요약

 

이수일(李守一)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돌아간 아버지의 친구 심택(沈澤)의 집에서 그집 딸 심순애(沈順愛)와 함께 성장한다.

그리고 어버이들의 뜻에 따라 두 사람은 약혼한다.

 

어느 날 서울 다방골 김씨 집에 초대되어 갔다가 유학생인 김중배(金重培)를 알게 된다.

이수일은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에 이끌린 심순애를 증오하게 되고 심순애와 이수일의 사랑은 어긋나게 된다.

아버지의 병환으로 생활이 궁핍해진 심순애는 보석에 유혹돼 장안의 재벌인 김중배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배신당한 이수일은 금력의 원한으로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 방탕한 생활이 시작되고 수일을 사모했던 고리대금업자인 차미옥의 도움으로 재기하게 된다.

 

사랑의 배반으로 점점 냉혹한 인간으로 변해 가는 이수일~ 그의 절친했던 친구들도 점점 이수일을 멀리하게 된다.

 

순애는 죄책감과 수일의 애정 때문에 불행해지지만 수일은 냉담했다.

그 후 수일도 신경쇠약으로 청량암에 머무는 동안 심경이 변한다.

 

심순애는 김중배의 가혹한 학대를 받고, 엄동설한에 어린 자식까지 빼앗긴 채 쫓겨 나가게 되어 거리를 방황하게 된다.

한편, 순애는 수일에 대한 연모의 정이 지나쳐 광증을 일으킨다.

수일에게 용서를 구했으나 금전에만 몰두한 수일은 듣지 않는다.

 

고민하던 심순애는 비관하고 대동강에 투신자살을 기도했으나 우연히 이수일의 친구 백낙관(白樂觀)에 의해 구출된다.

이때 백낙관의 중재로 수일과 순애는 결국 서로 과거를 뉘우치고 재회한다.
 

수일과 순애의 비련을 그린 장한몽은 물질적 가치에 대항할 수 있는 사랑의 힘을 그 주제로 하고 있다.

이것은 순수한 한국적 배경과 유형으로 개작돼 개화기의 수많은 독자를 얻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신소설의 퇴조와 함께 이후의 통속적 애정소설의 등장을 재촉했으며 연극에서도 이후
신파극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그 파급 효과가 컸던 작품이다.

 

이는 당시뿐만 아니라 요즘에 와서도 돈에 눈먼 여성들에 대한 일대 경각심을 일으키는 것으로 돈보다는 사랑이라는 교훈을 준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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