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Arts

찔레꽃 두 송이

Jimie 2020. 7. 19. 05:44

행복공간 ━━━━♡ 찔레꽃 두 송이

 

Jimie 16.04.04 14:17

 

 

그 옛날 오늘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왔는데

빼앗긴 들에도 꽃은 폈는데

나라 잃은 민족은 시키는대로 숨죽이며 따라 읊기만 해야 했던 봄노래, 슬픈 앵무새 ~

 

www.youtube.com/watch?v=2ZNFuXlAmGI

 1.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언덕 우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동무야

2.달 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세 동무
천 리 객창 북두성이 서럽습니다
삼 년 전에 모여 앉아 백인 사진
하염없이 바라보니 즐거운 시절아

 

1940년대 초반 우리는 땅이 꺼진 체념뿐 한숨만 길었으리니, 그 얼마나 깊은 낭떠러지 끝,절망의 늪이었을까.

 

1941년 백난아의 찔레꽃은 참혹한 암흑의 역사이며 슬픈 민족의 자화상이다.

 

일본노래 정형이 3개 절이듯 찔레꽃도...

(참 서글픈 얘기이나 당시로선 국제법상 보아도 일본국의 조선인의 노래...국내법상으로도 일본국이니 법은 일본 법이고, 국민들은 일본국민이고... )

 

백난아의 찔레꽃은 음원이나 노랫말이 여러 형태이며 백난아도 여러형태의 노랫말로 불렀는데....

분단과 시대상황 탓이라면 그 또한 '찔레꽃'의 운명이런가?

 

전재하는 노래비와 서로 다른 노랫말에서도 그러한즉  얼룩지고 어지러운 근.현대사의 소용돌이었던가.

내 아는 바 없으니 어지럽기만 하다.

 

www.youtube.com/watch?v=9FitMakaOAw

1942년 가수 백난아(白蘭兒·1923∼92)가 취입한 노래 '찔레꽃'(김영일 작사, 김교성 작곡, 태평레코드 5028)

 

여기, 백난아님 노래비에  찔레꽃 두 송이 ... 바친다.

 

백난아-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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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원은 60년대 녹음원본에 70년대 후반 다시 스테레오로 업시킨 음원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fM_BDnWWL4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 위의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삼년 전에 같이 앉아 백인 사진
하염없이 바라보니 그리운 시절아

 

 

달 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그대와
연분홍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자주 고름 입에 물고 눈물 흘리며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사람아

 

 

연분홍 봄 바람이 돌아서는 북간도
아릅다운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꾀꼬리는 동산에서 슬피울고
호랑나비 춤을 춘다 그리운 고향아

 

 

 

백난아-찔레꽃

 

 

 

 

1.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이별가를 불러주는 못 잊을 사람아

2.

달 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동창생
천 리 객창 북두성이 서럽습니다
작년 봄에 모여 앉아 찍은 사진
하염없이 바라보니 즐거운 시절아

3.

연분홍 봄바람이 돌아드는 북간도
아름다운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꾀꼬리는 중천에서 슬피 울고
호랑나비 춤을 춘다 그리운 고향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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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가요114 남인수 팬클럽 자료실에서 발췌 >
1941년5월 태평레코드발표 SP 수록가사

 

 

 

김영일 작사, 김교성 작곡, 백난아 노래

찔레꽃 붉게피는 남쪽나라 내고향
언덕우에 초가삼칸 그립습니다
자주고름 입에물고 눈물젖어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잊을 동무야

달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세동무
천리객창 북두성이 서럽습니다
삼년전에 모여앉아 백인사진
하염없이 바라보니 즐거운 시절아

연분홍 봄바람이 돌아드는 북간도
아름다운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꾀꼬리는 중천에서 슬피울고
호랑나비 춤을춘다 그리운 고향아

 

 

일제 강점기  1941년에 가수 백난아(白蘭兒)가 발표한 노래 '찔레꽃'이다.

김영일이 작사하고, 김교성이 작곡한 곡으로, 한국의 야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 찔레꽃을 소재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그렸다.

 

백난아는 1923년 한림읍 명월리에서 가난한 어부의 딸로 태어났다.

 

청진에서 살던 17세에 함경도 회령에서 열린 전국가요콩쿠르에서 2위로 입상하면서 가수로서 발을 내딛었고,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가수 백년설이 백난아를 스카웃하여 수양딸로 삼다.

그러한 사연으로 가수 백난아가 제주 출신이라는 사실은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1930년대 태평레코드사의 전속 가수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백년설은 양녀 오금숙 (吳錦淑-吳貴淑이라고도 함)에게 백난아白蘭兒라는 예명을 지어준다...

 

난초처럼 곧고 순결한 품위를 항상 지니라는 뜻에서다.

난초처럼 한평생을 청아하게 살다가 찔레꽃같이 아름답게 그리운 노래들을 쏟아 낸 가수 백난아다.

 

 

이 가요곡,찔레꽃에는 연변 정서가 물씬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 노래는 1941년 5월 태평레코드사 발매 음반으로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일제말 암흑기에서 이 노래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소극적이었다.

 

몇 해 뒤 해방이 되고 나자 뒤늦게 폭발적 인기곡으로 되살아나게 되었다.

고향을 떠나 머나먼 타관객지에서 향수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 짙은 향수를 불러 일으켜 주는 백난아(白蘭兒)의 노래가 무척이나 커다란 공감을 주었던 듯하다.

 

한때 월북작사가인 조명암(趙鳴岩)의 작품으로 오인되어 원래의 작사자인 김영일(金英一)이 이에 항변하는 소동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

 

분단 이후 가사의 일부가 개작되었는데,

1절의 끝에서 <못 잊을 동무야>라는 대목이 <못 잊을 친구야>로 바뀌었다.

 

2절에서도 <노래하던 세 동무>가 <노래하던 동창생>으로 ,

< 삼 년 전에 모여 앉아 백인 사진>도 <작년 봄에 모여 앉아 박은 사진>으로 바뀌었다.

 

3절에서는 <돌아드는 북간도>가 <날아드는 내 고향>으로...

 

원래의 가사가 더욱 아련한 애수와 정취가 느껴지는 듯 하나 시대의 제약으로 작사자는 원작에 기어이 수정과 가필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이다.

 

작사가 강사랑(강해인)에 의하면 이 노래를 부른 가수 백난아는 '부잣집 맏며느리 같이 복스럽게 생긴' 여성으로, '어느 항구 뒷골목 목로주점 골방에서 젓가락 장단을 치면서 한 많은 신세를 푸념하는 그 여자의 넋두리같이 청승맞으면서도 정다운 느낌이 드는' 목소리를 지녔다 한다.

 

대표곡[직녀성] 등을 히트시키면서 민족의 애환을 토하듯 숱한 노래를 쏟아내고 가신 백난아님...

 

찔레꽃은

한국방송의 성인가요 전문 프로그램인《가요무대》가 2005년 방송 20돌을 맞아 가장 많이 불렸던 노래를 조사해 발표했을 때, 〈울고 넘는 박달재〉에 이어 전체 2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대한민국에서 오랫동안 애창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동안 발표된 곡이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도 계속 불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1년 북한에서 공연을 가졌던 김연자의 증언에 따르면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과 함께 김정일의 애창곡이기도 하다.

2007년 백난아의 고향인 제주도에 찔레꽃 노래 공원과 노래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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