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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 졸업→ROTC 장교→법률사무소 알바→100억대 사기

Jimie 2021. 7. 8. 09:09

[단독]법대 졸업→ROTC 장교→법률사무소 알바→100억대 사기

포항=홍순빈 기자 입력 2021. 07. 08. 05:30

 

수산업자, 체육단체 회장, 인터넷 언론사 부회장…

검찰, 경찰, 언론계 등 유력인사들에게 금품을 건네 '수산업자 게이트' 파문을 일으킨 김모씨(43)에게 붙었던 수식어다. 지난 7일 기자가 경북 포항시 구룡포읍 인근 어촌의 김씨가 수산업체 주소지로 등록한 건물을 찾아갔다. 거기서 만난 인근 주민들은 하나같이 "수산업자 행세를 한 사람 때문에 온 동네가 난리가 났다"며 입을 모았다.

 

지난 7일 기자가 찾아간 '가짜 수산업자' 김모씨(43)의 집/사진=홍순빈 기자

 

 

법대 졸업→ROTC 장교→법률사무소 알바→사기꾼…

포항 시내에서 차로 40분 정도 달려야 나오는 작은 어촌마을에서 김씨의 행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김씨의 수산업체 주소지로 등록한 낡은 슬레이트 지붕의 건물 앞에는 빈 수조들만 밖에 나와 있었다. 김씨가 등록한 수산업체는 구룡포리에 주소만 둔 유령회사였고 이 곳은 어릴적 김씨가 살았던 본가였다.

 

현재 김씨의 집에는 2명의 세입자가 살고 있었다. 김씨는 이들 중 94세 독거노인에게 수도요금 등 공과금을 계속해서 받아왔다. 하지만 김씨가 수도요금을 제때 내지 않아 단수가 됐다. 인근 주민들은 이 소식을 듣고 이 세입자를 도와 물을 끌어다주기도 했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김씨의 집은 오징어 덕장을 했다. 초·중학교를 구룡포읍에서 나온 김씨는 대구에 있는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며 고향을 떠났다. 대구에 소재의 대학에서 법대를 졸업하고 ROTC 장교로 군생활을 마친 뒤 2008년 법률사무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김씨는 주변에 법률사무소 사무장이 됐다고 사칭하며 개인회생과 파산절차를 위한 돈을 여럿 지인들로부터 받았다. 하지만 김씨는 이미 2008년에 근무한 법률사무소를 나온 상태였고 처리해줄 돈도 없었다.

 

김씨 집 인근에서 수산업을 하는 A씨는 "나름 똑똑했으니 법대를 진학한 것이 아니겠느냐"며 "그런데 그런 양반이 2008년 쯤 변호사 법률사무소에서 일한다고 사기를 치다 걸려 7,8년 정도 도피생활을 했다"고 했다. 그는 "그의 말을 믿고 줬다가 사기를 당한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고 했다.

수산업자를 사칭한 김모씨가 자신의 SNS에 올려놓은 사진. 그는 포항에 OO물산이라는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으로 행세했다/사진=김씨 SNS 

 

렌트카 구룡포 지부장에서 가짜 수산업자로 '탈바꿈'

김씨는 출소 후 형편이 어려워지자 수산업체로 등록된 본가로 돌아와 3~4개월 간 생활을 했다. 그러면서 렌트카 사업에 뛰어들어 '구룡포 지부장' 직함을 들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모 언론사 기자, 김무성 전 의원의 친형을 포함해 유력인사 등을 만나기 위해 렌트업체에 소속된 외제차를 끌고 갔다고 했다.

 

이후 그는 가짜 수산업체를 차려 100억원 대의 사기 행각을 시작했다. 김씨는 유력인사 등으로부터 얻은 투자금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포항에 한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다. 그 후 직원 등을 시켜 대게, 독도새우, 고동 등 월 100만~150만원 정도의 금품을 유력인사에게 보냈다는 게 김씨와 함께 일했다는 사람의 설명이다.

 

김씨 집 인근에서 만난 주민 김모씨(63)는 "보라색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김씨를 자주 봤다"며 "씀씀이가 꽤 크고 언변이 좋아 지역 유지 등과 친했다"고 했다. 그는 "그런데 마지막에 길가에서 우연히 마주친 후 통 보이지 않다가 지금까지 우리를 상대로 사기를 쳤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다"며 "지난 2월에도 유력인사가 이 근처로 찾아와 김씨를 찾았다"고 했다.

 

그는 2018년 6월부터 올해 1월까지 서울, 대구 등에서 투자금 명목으로 7명에게 모두 116억원을 받아 챙긴 정황이 드러났다. 김씨는 이들을 "선동오징어 매매사업에 투자하면 수개월 안에 3~4배 수익을 벌어다 주겠다"며 속이기도 했다. 김씨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사기 등의 혐의로 지난 4월 구속기소됐다.

 

포항=홍순빈 기자 binihong@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