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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m 쓰레기 산' 은마아파트 굴욕···강남 1번지가 썩는다

Jimie 2021. 7. 8. 09:30

'2m 쓰레기 산' 은마아파트 굴욕···강남 1번지가 썩는다 [르포]

[중앙일보] 입력 2021.07.08 05:00 | 

 

7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은마아파트에서 쓰레기 처리 작업이 진행중이다. 은마아파트 지하실에 있는 쓰레기는 약 2300t으로 처리비용만 약 3억 5000만원에 달한다. 최연수기자

 

갈색의 명품 스카프는 더러운 먼지와 빗물에 절어 있었다. 오염된 종이 포대와 철사, 정체불명의 비닐 틈바구니로 보이는 화려한 브랜드 이름이 처량해 보였다. 도무지 만져보고 싶지 않은 명품 스카프 주변에는 냉장고 등 녹슨 가전제품과 부서진 책상과 옷장, 골프가방이 보였다.

쓰레기 더미는 서울 강남의 한복판, 그 유명한 대치동 은마아파트에서 40년간 쌓여 왔다. 7일 오전 11시, 은마아파트 지상 주차장 한가운데에는 2m가 넘는 쓰레기 산이 생겼다. 악취가 코를 찔렀다. 쓰레기 산은 근로자 8명이 2일간 아파트 한 동의 절반을 치운 양이라고 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남은 20여개의 동 지하실을 청소해야 한다. 예상되는 쓰레기 무게는 2600t에 달한다.

“외국인 노동자도 힘들다고 도망가”

7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은마아파트에서 쓰레기 처리 작업이 진행중이다. 은마아파트 지하실에 있는 쓰레기는 약 2300t으로 처리비용만 약 3억 5000만원에 달한다. 최연수기자

 

주차장 곳곳에 폐기물 운반 트럭이 모여들었다. 아파트 입구엔 지친 청소부들이 사료 봉투를 깔고 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아파트 청소를 돕는 60대 A씨는 “어제 지하에서 한 사람이 사다리를 타고 쌓여있는 쓰레기를 치우다 떨어져 병원에 갔다”고 했다. 그는 “매트리스, 가전제품 등 별별 쓰레기가 다 나온다. 외국인 노동자 5명이 너무 힘들다며 도망갔다”고 했다.

아파트 지하 1층, 쓰레기 창고 바로 옆 휴게실에는 청소부가 잠시 누울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었다. 10년 넘게 아파트 청소부로 일했다는 B씨는 “이사 나간 집주인이 버린 쓰레기와 함께 살았다”고 했다. 지하실 창고 바닥은 물이 흥건했고 누군가 버린 듯한 선풍기와 서랍장들이 눅눅하게 젖어있었다.

은마아파트 한 동의 지하실이 청소된 모습. 한 동의 지하실을 치우는 데에만 2일이 걸렸다. 최연수기자

쓰레기 처리비용 3억5000만원

강남 재건축에서 가장 ‘핫’하다는 은마아파트에서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대규모 쓰레기는 주민들의 오랜 골칫거리였다. 악취는 갈수록 심해졌고 처리비용도 억원 단위를 넘기게 됐다. 서울 강남의 부동산 1번지라 불리는 은마아파트가 재건축 투기 대상으로 인식되면서 정작 생활 여건은 더 나빠져 온 것이다.

소유주가 아닌 주민들은 쓰레기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내 집이 아닌데 왜 몇억이 넘는 처리비용을 내야 하느냐”는 입장이었다. 은마 아파트의 경우, 입주자의 70~80%가 세입자라고 한다.

십수 년의 우여곡절 끝에 동 대표 회의에서 동대표 과반수가 쓰레기 수거에 동의하게 됐고, 지난달 29일부터 처리작업이 진행됐다. 쓰레기 처리 비용은 약 3억5000만원이라고 한다. 아파트 측에서는 주민들의 동의가 뒷받침되면 아파트가 보유한 각종 잡수입금과 장기수선 충당금 등으로 비용을 낼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사한 사람이 버린 쓰레기 비용 내야 하나”

7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은마아파트에서 쓰레기 처리 작업이 진행중이다. 은마아파트 지하실에 있는 쓰레기는 약 2300t으로 처리비용만 약 3억 5000만원에 달한다. 최연수기자

 

주민 간의 갈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다. 은마아파트에서 전세로 산 지 6년 차라는 주민 김모(36)씨는 “저렇게 쓰레기 산을 만들면서 이사를 하는 건 비양심적이지 않냐”며 “지금 주민들을 상대로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쓰레기를 수거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쓰레기 처리 비용만 몇억이 넘는다고 들었는데 가구당 처리비용을 부과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고 덧붙였다.

아파트 측의 관리 자체가 소홀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주민 장모(72)씨는 “이 아파트에서 32년 동안 살았는데, 여기에 산 사람들이 지하에 쓰레기를 버린 게 아니다. 이사 가는 사람들의 짐을 청소부들이 주워서 모아뒀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경비실에서 관리를 깨끗하게 했으면 이런 상황까지 왔겠냐”며 “이 정도로 많은 쓰레기가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말했다.

은마아파트 관리소 관계자는 “집주인이지만 월세나 전세를 주고 나가 사는 집주인들이 많다 보니 동의를 한 번에 다 얻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며 “그동안 지하실에 물이 계속 차면서 모기가 여름마다 기승을 부리고 냄새가 나서 민원이 많았었다. 한 달 내에 다 해결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연수 기자 choi.yeonsu1@joongang.co.kr, 이수민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