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Happiness

李白의 長干行(其一)

Jimie 2020. 6. 19. 03:49

李白의 長干行(장간행) - 장간 마을의 노래 1

 

장간(長干)은 지명으로 江寧縣에 있음. 고대 금릉[今陵 지금의 남경(南京)] 부근 마을 이름.

行은 歌行.

長干行은 장간마을 남녀의 정을 묘사한 악부(樂府).

 

*樂府 : 詩歌(시가)를 歌詞(가사)로 노래하거나 낭송하는 '漢詩(한시)의 한 형식'.  

--- 중국 한(漢:BC 206~AD 220)나라 무제(武帝) 때 음악을 관장하던 관서의 명칭.

 

 

"낭군은 죽마를 타고 놀고 나는 청매를 따고 놀았네, 장간리 한동네에 살면서 둘은 아무 불평 없었네"

 

애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어도 좋은 동무가 되어 오래 남게 되는데, 장간행에 나오는 친구는 남녀간이다. 사내는 죽마를 타고 놀고 여아는 매화를 따서 우물가 편상 주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남자동무에게 집어 던지며 놀았다. 청매죽마(青梅竹馬)는 그와 같은 동무라는 뜻이다.

 

"내 앞머리가 겨우 이마를 덮게 된 소녀시절

나는 꽃 꺾으며 문앞에서 무심히 놀고 있었지요

 

당신이 죽마를 타고 와서는

함께 침상가에서 푸른 매실을 갖고 놀았지요

우리는 장간 이 마을에서 함께 살았고

둘 다 천진 난만한 어린 시절을 보냈답니다

 

열네살때 나는 당신의 아내가 되어

부끄러움에 한번도 웃지를 못했지요

머리 숙여 컴컴한 벽쪽을 향한 채로

천번 불러도 한번 웃지를 못했습니다

 

열다섯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환한 낯이 되었고

티끌과 재가 될때까지 당신과 함께 했으면 했지요"

 

 

당나라의 대시인 이백(李白)의 오언고시(五言古詩).

한 여자가 남편을 그리워하며, 거주하고 있던 장간(長干)에서 수 백리의 먼 길을 걸어가 장풍사(長風沙)에서 남편을 맞이하는 노래이다.

 

이 시의 첫 부분에서는 어린 시절 함께 스스럼없이 놀면서 서로에게 장난치던 아름다운 옛 추억을 담아내고 있다.

 

◈ 長干行(장간행) - 장간 마을의 노래 (其一)

 

- 李白 이백 -


妾髮初覆額 첩발초복액 저의 머리카락 처음 이마 덮을 적에

折花門前劇 절화문전극 꽃 꺾어 문 앞에서 놀았지요

郎騎竹馬來 낭기죽마래 님께선 죽마 타고 와서는

繞牀弄靑梅 요상농청매 침상 둘래 뱅뱅돌며 매실로 장난쳤지요

 

同居長干里 동거장간리 같이 장간리 마을에 살며

兩小無嫌猜 양소무혐시 두 꼬마는 스스럼없이 지내다

十四爲君婦 십사위군부 열 넷에 당신 아내 되어서는

羞顔未嘗開 수안미상개 부끄러워 얼굴조차 들 수 없었죠

 

低頭向暗壁 저두향암벽 고개 숙여 어둔 벽만 바라보다

千喚不一回 천환불일회 천 번을 불러도 한 번도 돌아보지 못했지요

十五始展眉 십오시전미 열다섯에 비로소 미간 펴고는

願同塵如灰 원동진여회 티끌과 재 되도록 함께 하자 했지요

 

常存抱柱信 상존포주신 늘 변치 않는 마음 지니면서

豈上望夫臺 기상망부대 어찌 망부대에 오르리오 했건만

十六君遠行 십육군원행 열여섯에 님께서 멀리 떠나

瞿塘豫淅堆 구당여석퇴 구당 여석퇴로 가셨지요

 

五月不可觸 오월불가촉 오월이 되어도 가까이 갈 수 없어

猿聲天上哀 원성천상애 원숭이 울음만 천상에서 슬퍼요

門前遲行跡 문전지행적 문 앞엔 오가는 자취 뜸해

一一生綠苔 일일생록태 하나씩 푸른 이끼 돋아나다가

苔深不能掃 태심불능소 이끼 두터워 떼 낼 수도 없는데

落葉秋風早 낙엽추풍조 잎은 지고 가을바람 일찍 왔지요

 

八月蝴蝶來 팔월호접내 팔월 되니 나비 찾아들어

雙飛西園草 쌍비서원초 쌍쌍이 서쪽 동산 풀밭에서 나네요

感此傷妾心 감차상첩심 이를 보노라니 제 마음 몹시도 아파

坐愁紅顔老 좌수홍안노 앉아서 근심하다 앳된 얼굴 늙어가요

 

早晩下三巴 조만하삼파 언제든 삼파 떠나올 때면

預將書報家 예장서보가 미리 집으로 기별이나 넣어 주세요

相迎不道遠 상영부도원 당신 맞으러 먼 길 마다 않고

直至長風沙 직지장풍사 곧장 장풍사 까지 달려가렵니다

 

 

<복액(覆額)> : 앞머리를 늘어뜨려 이마를 덮는 것.

<죽마(竹馬)> : 아이들이 대나무 장대로써 말을 대신하여 타고 노는 것인데 여기서 연유하여 어릴 적 친구를 죽마고우(竹馬古友)라 하는 말이 생겼다.

<상(牀)> : 평상

<장간리> : 지금의 강소성 강령현(江寧縣)에 있는데 당나라 때에는 평민들이 살았다.

<극(劇)> : 놀다.

<혐시(嫌猜)> : 의심하여 미워하고 시기하는 것.

<전미(展眉)> : 밝은 표정이 되다.

<진여회(塵與灰)> : 티끌과 재가 되어서도 함께 살고 싶다. 진나라 시인 육기(陸機)의 시에서 나온 말.

 

<포주신(抱柱信)> : 신의를 지킴. 미생(尾生)이 다리 아래서 만날 약속을 한 여자를 기다리는 동안에 물이 불어 다리 기둥을 안고 있었으나 마침내 빠져 죽었다는 고사(장자)에서 나온 말.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고도 한다.

<상존포주신(常存抱柱信)> : 옛날 미생이라는 젊은이가 동네 처녀와 밤에 동구 밖 다리 밑에서 "몰래 데이트"를 하기로 약속하였는데 그날따라 비가 종일 내렸다. 그래도 미생은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다리 밑에서 기다렸고, 처녀는 설마 이 빗속에 기다리랴하여 나가지 않았다. 나중에 빗줄기에 강물이 불어나자 그래도 미생은 처녀가 나올 줄 알고 다리 기둥을 부여안은 채 기다리다 마침내 물에 잠겨 숨졌다는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망부대(望夫臺)> : 아내가 높은 데로 올라가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그 자리에서 죽어 화석이 되었다는 망부대(望夫臺)는 소철(蘇轍)의 <악성집(樂城集)>을 보면, “충주 남쪽 수십 리에 있다”고 했다. 여기서는 높은 곳에 올라가 남편이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한 것을 뜻한다.

 

<구당(瞿塘)> : 사천성 봉절현(奉節縣)에 있는 험준한 협곡으로 장강 삼협의 하나인데, 양쪽 기슭이 가파르고, 물줄기가 급하다.

<염여퇴(灩澦堆)> : 구당협 입구에 있는 암초인데 겨울에는 강물 밖으로 20장(丈)이나 드러나지만 여름에는 물에 잠겨 배들이 자주 난파된다.

<구당염여퇴(瞿塘灩)> : 황하 상류의 촉(사천성)으로 가는 깊고 좁은 협곡으로 물살 세기로 유명하며, 오월이면 상류의 빙하가 녹고 장마져 거슬러 올라갈 수 없었다.

 

<좌수(坐愁)> : 멍청하게.

<조만(早晩)> : 언젠가.

<삼파(三巴)> : 지금의 사천성 동쪽에 있는 파군 파동 파서를 말하는데 낭백()의 물이 파(巴)자 모양으로 굽이 흐른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태심(苔深)> : 푸른 이끼가 많다는 뜻으로 흔히 시인들은 근심을 비유하는 뜻으로 많이 쓴다.

<장풍사(長風沙)> : 안휘성 회영현(懷寧縣) 동쪽에 있는 지명인데 지금의 장풍협이다.

<직지장풍사(直至長風沙)> : 옥문관으로 가는 길목의 지역명.

 

詩仙 이백(李白/701~762)

중국 성당기(盛唐期)의 시인. 자 태백(太白). 호 청련거사(靑蓮居士).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되는 중국 최대의 시인이며, 시선(詩仙)이라 불린다. 1,100여 편의 작품이 현존한다. 그의 생애는 분명하지 못한 점이 많아, 생년을 비롯하여 상당한 부분이 추정에 의존하고 있다.

그의 집안은 간쑤성[甘肅省] 룽시현[隴 西縣]에 살았으며, 아버지는 서역(西域)의 호상이었다고 전한다. 출생지는 오늘날의 쓰촨성[四川省]인 촉(蜀)나라의 장밍현[彰明縣] 또는 더 서쪽의 서역으로서, 어린 시절을 촉나라에서 보냈다. 남성적이고 용감한 것을 좋아한 그는 25세 때 촉나라를 떠나 양쯔강[揚子江]을 따라서 장난[江南]·산둥[山東]·산시[山西] 등지를 편력하며 한평생을 보냈다. 젊어서 도교(道敎)에 심취했던 그는 산중에서 지낸 적도 많았다.

그의 시의 환상성은 대부분 도교적 발상에 의한 것이며, 산중은 그의 시적 세계의 중요한 무대이기도 하였다.

 

안릉(安陵:湖南省)·남릉(南陵:安徽省)·동로(東魯:山東省)의 땅에 체류한 적도 있으나, 가정에 정착한 적은 드물었다. 맹호연(孟浩然)·원단구(元丹邱)·두보 등 많은 시인과 교류하며, 그의 발자취는 중국 각지에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다. 불우한 생애를 보낸 이 백 (李 白)은 당시 부패한 당나라 정치에 불만이 많았고 자신의 정치적 재능이 발휘할 기회가 오기를 바랬다. 그가 43 세 되던 해인 724 년 현종(玄宗)의 부름을 받아 창안[長安]에 들어가 환대를 받고, 한림공봉(翰林供奉)이 되었던 1, 2년이 그의 영광의 시기였다. 도사(道士) 오균(吳筠)의 천거로 궁정에 들어간 그는 자신의 정치적 포부의 실현을 기대하였으나, 한낱 궁정시인으로서 지위를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종의 마음에 들어 호탕하고 방탕한 생활을 지속하며 당시 권력가인 환관 고력사에게 신을 벗기도록 하였으며, 현종의 애첩 양 귀비 (楊 貴妃) 에게 벼루를 들고 서있게도 했던 기인 중의 기인 이었다. 그러나 도사 (道士) 오 균 (吳 筠)의 천거로 궁정에 들어간 그는 자기의 정치적 포부의 실현을 기대하였으나, 한낱 궁정 시인 으로서 현종의 곁에서 시만 지어 올렸다. 그의 《청평조사(淸平調詞)》 3수는 궁정시인으로서의 그가 현종·양귀비의 모란 향연에서 지은 시이다. 이것으로 그의 시명 (詩名)은 장안에서 유명해 졌으나, 그의 정치적 야망과 분방한 성격은 결국 궁정 분위기와는 맞지 않았다.

 

이백은 그를 ‘적선인(謫仙人)’이라 평한 하지장(賀知章) 등과 술에 빠져 ‘술 속의 팔선(八仙)’으로 불렸고, 방약무인한 태도 때문에 현종의 총신 고력사(高力士)의 미움을 받아 마침내 궁정을 쫓겨나 창안을 떠났다.

 

창안을 떠난 그는 허난[河南]으로 향하여 뤄양[洛陽]·카이펑[開封] 사이를 유력하고, 뤄양에서는 두보와, 카이펑에서는 고적(高適)과 지기지교를 맺었다. 두보와 석문(石門:陝西省)에서 헤어진 그는 산시[山西]·허베이[河北]의 각지를 방랑하고, 더 남하하여 광릉(廣陵:현재의 揚州)·금릉(金陵:南京)에서 노닐고, 다시 회계(會稽:紹興)를 찾았으며, 55세 때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났을 때는 쉬안청[宣城:安徽]에 있었다. 적군에 쫓긴 현종이 촉나라로 도망하고 그의 황자(皇子) 영왕(永王) 인(璘)이 거병, 동쪽으로 향하자 그의 막료로 발탁되었으나 새로 즉위한 황자 숙종과 대립하여 싸움에 패하였으므로 그도 심양(尋陽:江西省九江縣)의 옥중에 갇히었다.

 

뒤이어 야랑(夜郞:貴州)으로 유배되었으나 도중에서 곽자의(郭子義)에 의하여 구명, 사면되었다(59세).

그 후 그는 금릉·쉬안청 사이를 방랑하였으나 노쇠한 탓으로 당도(當塗:安徽)의 친척 이양빙(李陽氷)에게 몸을 의지하며 처참하게 살다가 가난과 울분 속에 62 세의 나이로 병사하였다. 전설에는 채석강에서 술에 취하여 물속에 비친 달을 잡으러 뛰어 들었다고 한다. 이백의 생애는 방랑으로 시작하여 방랑으로 끝났다.

 

청소년 시절에는 독서와 검술에 정진하고, 때로는 유협(遊俠)의 무리들과 어울리기도 하였다. 쓰촨성 각지의 산천을 유력(遊歷)하기도 하였으며, 민산(岷山)에 숨어 선술(仙術)을 닦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방랑은 단순한 방랑이 아니고, 정신의 자유를 찾는 ‘대붕(大鵬)의 비상(飛翔)’이었다. 그의 본질은 세속을 높이 비상하는 대붕, 꿈과 정열에 사는 늠름한 로맨티시스트에 있었다. 또한 술에 취하여 강물 속의 달을 잡으려다가 익사하였다는 전설도 있다.

 

그에게도 현실 사회나 국가에 관한 강한 관심이 있고, 인생의 우수와 적막에 대한 절실한 응시가 있었다. 그러나 관심을 가지는 방식과 응시의 양태는 두보와는 크게 달랐다. 두보가 언제나 인간으로서 성실하게 살고 인간 속에 침잠하는 방향을 취한 데 대하여, 이백은 오히려 인간을 초월하고 인간의 자유를 비상하는 방향을 취하였다.

 

그는 인생의 고통이나 비수(悲愁)까지도 그것을 혼돈화(混沌化)하여, 그 곳으로부터 비상하려 하였다. 술이 그 혼돈화와 비상의 실천수단이었던 것은 말할것도 없다. 이백의 시를 밑바닥에서 지탱하고 있는 것은 협기(俠氣)와 신선(神仙)과 술이다. 젊은 시절에는 협기가 많았고, 만년에는 신선이 보다 많은 관심의 대상이었으나, 술은 생애를 통하여 그의 문학과 철학의 원천이었다.

 

두보의 시가 퇴고를 극하는 데 대하여, 이백의 시는 흘러나오는 말이 바로 시가 되는 시풍(詩風)이다. 두보의 오언율시(五言律詩)에 대하여, 악부(樂府) 칠언절구(七言絶句)를 장기로 한다. ‘성당(盛唐)의 기상을 대표하는 시인으로서의 이백은 한편으로 인간·시대·자기에 대한 커다란 기개·자부에 불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기개는 차츰 전제와 독재 아래의 부패·오탁의 현실에 젖어들어, 사는 기쁨에 정면으로 대하는 시인은 동시에 ‘만고(萬古)의 우수’를 언제나 마음속에 품지 않을 수 없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그의 시문집은 송대(宋代)에 편집된 것이며, 주석으로는 원대(元代) 소사빈(蕭士)의 《분류보주 이태백시(分類補註李太白詩)》, 청대(淸代) 왕기(王琦)의 《이태백전집(李太白全集)》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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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머리 막 이마를 덮었을 때 꽃 꺾으며 문 앞에서 놀았었지요
당신은 죽마 타고 와서 우물 난간을 돌며 청매로 날 희롱했지요

 

장간 마을에서 함께 살며 우리 둘은 조금도 싫어하지 않았어요
열 넷에 당신 아내가 되어 수줍어 얼굴 펴 본적이 없고
머리 숙여 어두운 벽을 향해 앉아 천 번 불러도 한 번도 말대꾸도 못했지요

 

열 다섯에 겨우 눈썹을 펴고 생사를 함께 하길 바랬지요
언제나 미생의 신의를 지녔는데 어찌 망부대에 오를 줄 알았겠어요
열 여섯에 당신은 멀리 가셨으니 구당협의 염여퇴는 물길이 험난한 곳
오월이 되어도 배는 갈 수 없고 원숭이 슬픈 울음소리 하늘 위로 솟는 곳

문 앞에 당신 발길 끊기고 푸른 이끼 여러 번 돋았지요
이끼 짙어 쓸지 못했는데 가을 바람에 나뭇잎 떨어졌어요
팔월인데 나비들이 날아와서 서쪽 동산 풀밭에서 짝지어 나니
이 광경에 제 마음 속상해 시름에 겨워 곱던 얼굴 늙어만 가요

언제고 삼파로 내려오시면
미리 집에 서신 보내어 알려주세요
맞이하러 가는 길 멀다 않고 곧바로 장풍사로 달려가겠어요

 

 

 

인간사 누구에게나 생이별이든 사별이든 이별은 있기 마련. 어떤 이별이든 슬픈 일이지마는 남녀간에 있어서 생이별은 말 못할 일이다. 특히 젊은 여인의 서방님과 생이별은 가슴을 쥐어뜯게 하는 크나큰 괴로움이다.

 

사랑하는 님이 언제 곁으로 돌아오실 줄 모른 채 기약 없이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추야장 긴긴 밤을 지새운다는 것은 뼈를 깎는 고통이요 괴로움이며 외로움일 것이다. 차라리 사별하면 당장 억장이 무너지고 살길이 아득하지만 세월이 흘러 남편의 3년 상을 치르고 나서 고무신을 거꾸로 신을 수나 있으련만, 기약 없는 생이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눈물로 밤을 하얗게 지새워야 하니 더욱 슬프고 괴로운 일이다.

 

장간 마을에 사는 장사꾼 아낙이 돈벌러 먼길을 떠나간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는 심경을 그린 악부시 이백의「장간행」은 2수가 있는데 그 중 제1수이다.



이 시는 3단으로 이루어졌다.

첫 단락은 시의 주인공 아낙이 과거를 회상하였다. 장간리는 평민들이 살던 곳이라 엄격한 예교(禮敎)에 구속받지 않고 어릴 적부터 자유분망 하게 자라 왔다. 앞머리가 이마를 덮는 서너 살 적부터 둘이서 봄이면 꽃을 꺾어 소꿉장난을 하였다.
어릴 적에 신랑은 때때로 죽마를 타고 와서 우물 난간을 돌며 청매(靑梅)로 나를 놀리기도하였다. 둘은 흉허물이 없이 지내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어 시기하거나 미워하지 않았다.
열 네 살에 죽마고우에게 시집을 왔는데 부끄러워 남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 숙인 채 벽만 보고 있었다. 남편이 천 번 불러야 실낱같은 목소리로 겨우 한번 대답한 수줍은 새댁이었다. 열 다섯 살이 되어서야, 겨우 남편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서 재가 되고 티끌이 될 때까지 백년해로 할 것을 굳게 다짐하였다.

 

서방님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겠다는 약속을 미생처럼 굳게 지킬 것을 다짐했건만 장사하러 먼길을 떠나버렸기에 망부대에 올라가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할 줄을 예전에 미쳐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사랑하는 임이 계신 구당협은 암초가 많아 뱃길이 험한 곳인지라 오월에도 풍랑이 사나워 건너기가 쉽지 않고, 또한 원숭이 울음소리가 하늘 위로 솟는 험준한 곳이라서 늘 걱정이 태산같음을 노래하였다.

2단은 독수공방의 슬픔이다.

임이 오래 전에 떠나버렸기에 안방 문 앞에는 푸른 이끼가 내 수심만큼이나 무성하게 돋아났다. 차마 이끼를 쓸지 않았는데 그 위에 시간이 무거워져 가을 바람에 우수수 낙엽은 지고, 팔월인데도 나비들이 쌍쌍이 서쪽 동산 풀밭에서 노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정경을 보니 더욱 수심이 쌓여 곱디고운 얼굴에 주름살만 늘고 있다고 한탄하였다.

 

3단은 하루속히 남편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이다.

님께서 언제든지 삼파로 돌아오신다는 소식을 미리 편지로 알려주시면 님을 마중하는 길이 멀다않고 곧바로 장풍사로 달려가겠다고 하여 미치도록 보고픈 정을 노래하였다.

이 시는 돈벌러 먼길을 떠난 남편이 하루 빨리 집으로 돌아오기를 애타게 염원한 엘레지로 아낙의 속마음을 꾸밈없이 묘사하였다. 그리움에 지친 여인의 심경을 진솔하게 그려내어 생이별의 슬픔을 동감하게 한다.
지난 세월을 회상하고 푸른 이끼·낙엽·가을 바람·팔월·쌍쌍이 나는 나비 등의 목전의 사물과 계절의 변화를 투영시켜 자신의 쓸쓸한 처지를 형상화하였다. 가을 바람에 나무 잎은 지고 팔월인데 나비들이 짝을 지어 날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내 곁에 임이 없음을 속상해 하다 보니“시름에 겨워 곱던 얼굴 늙어가요"(坐愁紅顔老)라고 한탄한 것이다.


이 아낙은 적극적인 여인인지 속절없이 탄식만 하지는 않았다. 하루 속히 님이 내 곁으로 돌아오기를 빌면서 오신다는 소식만 주신다면 불원천리하고 마중가겠다고 하였다.

춘원 이광수가 시조「님」에서

산 넘어 또 산 넘어 임을 꼭 뵈옵과저
넘은 산이 백이언만 넘을 산이 천인가 만인가
두어라 억이요 조라도 넘어볼까 하노라

 

노래한 것처럼, 당신이 오신다면 억 만개의 산을 넘어 마중 가겠다는 것이다.
「장간행」제2수에서는 “어찌하여 장사꾼 아낙이 되어 / 물 걱정 바람 걱정을 해야하는가”
(那作商人婦 愁水復愁風)라고 하여 님에 대한 염려와 생이별의 슬픔을 절묘하게 형상화하였다.

 

남녀간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는 아름답지만, 사랑하는 님을 생이별하고 추야장 긴긴 밤을 독수공방 애태우는 정념은 실로 눈물겹다. 그러나 사랑 이야기와 그리운 정을 시로 노래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시는 젊은 장사꾼의 아내가 남편을 생이별하고 사무치는 그리움에 애간장 태우면서 다리며 염려하는 정을 구구절절 담아내어 별리의 아픔이 어떤 것인지 그려내고 있다 .♣ ( 출처?종합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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