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님, '공정해 보여야 한다' 하셨지요?
김명수 대법원장. [뉴스1]
‘재판은 실체적으로 공정해야 할 뿐 아니라 공정해 보여야 한다는 것이 사법부가 강조해 온 오랜 덕목이고, 재판이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외관을 꾸며내는 행위만으로도 사법부의 존립 근거인 국민의 재판에 대한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2018년 6월 15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판사들의 사법행정권 남용 및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힌 글의 한 대목입니다. 그 아래에는 ‘이미 이루어진 고발에 따라 수사가 진행될 경우 미공개 문건을 포함하여 특별조사단이 확보한 모든 인적ㆍ물적 조사자료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제공할 것’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양승태 전임 대법원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에 대한 수사가 벌어졌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그 바로 앞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재판은 무릇 공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공정해 보여야 하기에 재판을 거래의 대상으로 삼으려 하였다는 부분에 대한 의혹 해소도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하나의 글에 ‘공정해야 할 뿐 아니라 공정해 보여야 한다’는 말을 두 차례 적은 것입니다.
‘공정해 보여야 한다.’ 주어로 판사, 법원, 재판이 붙는 이 말 자주 들었습니다. 대법원장, 법원장의 취임사나 퇴임사에 없을 때보다 있을 때가 많은 표현입니다.
미국 법관 윤리강령(Code of Conduct for U.S. Judges) 2조에 ‘판사는 모든 행동에서 부적절한 것과 부적절해 보이는 것을 피해야 한다(A Judge Should Avoid Impropriety and the Appearance of Impropriety in All Activities)’고 돼 있더군요. 그 아래에는 부적절해 보이는 경우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판사가 갖추어야 할 정직성(honesty), 청렴함(integrity), 공정성(impartiality), 기질(temperament), 건강(fitness)이 손상됐다고 합리적으로 판단되는 경우라고 쓰여 있습니다.
김 대법원장이 ‘공정해 보여야 한다’는 것을 그토록 강조한 날의 수개월 전인 2018년 초 ㈜한진 법무팀 직원들이 서울 한남동 대법원장 공관에서 만찬을 즐겼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그 팀에서 변호사인 김 대법원장 며느리가 일합니다. 2017년 말에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습니다. 일부 무죄 판결이었죠. 선고와 만찬 사이에 그리 시간 간격이 크지 않다는 뜻입니다.
㈜한진 법무팀이 그 재판에 얼마나 관여했는지는 모릅니다. 대한항공 측에 따르면 그 팀이 개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며느리가 이 재판과 관련해 김 대법원장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김 대법원장이 가족이 관련 회사에서 근무한다는 이유로 그 전원합의체 재판을 회피하는 게 ‘공정해 보여야 한다’는 본인 생각에 부합하는 행동인 것 같습니다.
그 만찬이 부적절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대법원장 공관은 그런 일(며느리 동료 초청)에 쓰라고 국민이 세금 내서 만든 곳이 아닙니다. 만약 그 식사 비용이 공금에서 나왔다면 법을 어긴 것일 수도 있습니다.
더 황당한 것은 대법원 공보 담당자의 태도입니다. 사실관계 확인을 요구하는 기자들에게 “사적인 영역에서의 일이라 따로 할 말이 없다”고 했다고 합니다. 과연 사적인 영역이라 볼 수 있을까요?
김 대법원장은 이번에도 말이 없습니다. ‘침묵의 명수’라는 법원 안팎의 비난에도 입을 꾹 다물고 있습니다. ‘공정해 보여야 한다’고 선ㆍ후배 판사를 향해 준엄하게 일갈한 게 불과 3년 전입니다.
김 대법원장은 넉 달 전에 거짓말(임성근 판사 사직 의사 관련)이 들통나 국민의 지탄을 받았습니다. 위에 쓰여 있듯이 미국 법관 윤리강령에서 판사가 판사로 인정받을 수 없는 상황 중 첫째가 정직성이 손상된 경우입니다. 정직하지 않은, 공정해 보이지 않는 대법원장의 사법부 관장. 시대의 비극입니다.
야당이 대법원장에 대한 '비리 백서'를 냈습니다. 초유의 일입니다. 중앙일보 사설이 김 대법원장에게 부끄럽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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