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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든버러 공작, 필립 마운트배튼(필립공) 별세(향년 99세)

Jimie 2021. 4. 16. 05:42

에든버러 공작, 필립 마운트배튼(필립공) 별세(향년 99세)

2021. 4. 9. 22:35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인 에든버러 공작 필립 마운트배튼(필립공)이 향년 99세로 별세했다. 영국 왕실 버킹엄궁은 2021년 4월 9일(현지시간) "에든버러 공작 필립공이 이날 아침 윈저성에서 평화롭게 별세를 했다"고 밝혔다.

필립공은 지난 2월 코로나19가 아닌 다른 감염증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했으며, 이어 지난달에는 심장 수술을 받았다. 이후 지난달 16일 치료를 마치고 퇴원해 윈저성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100세 생일을 두 달여 앞둔 9일 윈저성에서 향년 99세로 눈을 감았다.

필립공은 1921년 6월10일 그리스에서 그리스와 덴마크의 왕자 안드레아스와 빅토리아 여왕의 증손녀인 앨리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렇지만 이듬해 큰아버지 콘스탄티노스 1세가 터키 독립전쟁 패배의 책임을 지고 퇴위하면서 일가족이 함께 추방당해 프랑스로 망명하였다.

1928년 영국으로 건너간 후 영국해군사관학교에 진학해 영국 해군에서 복무했다. 해군사관학교 재학 당시 영국 왕 조지 6세와 함께 사관학교를 찾은 엘리자베스를 처음 만난 후 편지를 주고 받으며 사랑을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필립은 1947년 11월 엘리자베스와 결혼했다. 그렇지만 몰락한 왕족에 그리스와 덴마크의 왕자 신분이었고, 누나들이 독일의 옛 왕족, 귀족들과 결혼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극심한 반대 여론에 직면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그리스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고 영국인으로 귀화하는 동시에 종교도 성공회로 개종한 후 엘리자베스와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지난 1952년 엘리자베스가 엘리자베스 2세로 영국 여왕에 즉위하면서 여왕의 부군이 됐다. 엘리자베스 2세와의 슬하에 찰스 왕세자와 앤 공주, 앤드루 왕자, 에드워드 왕자 등 3남 1녀를 두었다.


출처: https://pg1219.tistory.com/290

 

영국 필립공 나이 외도 어머니 별세 엘리자베스 여왕 남편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인 에든버러 공작 필립 마운트배튼(필립공)이 향년 99세로 별세했습니다. 영국 왕실 버킹엄궁은 2021년 4월 9일(현지시간) "에든버러 공작 필립공이 이날 아침 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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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근 4월 12일 오후 11:25

[삶과 추억]

"13세 때 영국 여왕이 반한 남자"

"세기의 사랑 74년 외조 99세에 잠들다"

덴마크와 그리스 왕족 출신 조각남
엄격한 아버지 자상한 시아버지
다이애너 "가장 사랑한 아빠"로 불러

"아버님 제 가정불화를 해결하고자 기울여 주신 놀라운 노력에 제가 얼마나 감사해 하는지 꼭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영국의 고 다이애너 왕세자 빈이 1992년 시아버지 필립공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이 친필 편지에서 다이애너는 시아버지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빠"로 불렀다.

이 일화는 주인공이자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부군인 에든버러 공작 필립이 지난 9일 별세했다. 만 99세. 영국 매체가 필립공의 일생을 추모할 때 빼놓지 않은 단어가 책임감과 규율이다. 필립이 평생 가장 중요하게 여겼고 삶을 지탱해 준 것이 이 두가지 였다.

필립공은 증조부 크리스티안 9세가 덴마크 국왕, 할아버지 요르요스 1세가 그리스 왕국(1974년 폐지)의 국왕인 덴마크, 그리스 왕족 출신이다. 왕실의 먼 친척 으로서 영국에서 교육을 받고 해군 장교로 임관한 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1947년 당시 공주였던 엘리자베스와 결혼 했으며 1952년 부인이 즉위하면서 여왕의 부군이 됐다. 가정에서 그는 때로는 까칠한 남편이었으며 엄격한 아버지였고 이혼 위기의 며느리를 다독거렸던 자상한 시아버지였다. 가족 관계속에서 그의 삶의 꿰적을 살펴본다.

왕실 혈통에 훤칠한 키, 조각같은 외모를 갖춘 그는 젊은 시절 가는 곳마다 선망의 대상이였다. 그를 눈여겨 본 사람 중에는 훗날 영국의 군주가 되는 엘리자베스도 있었다. 좀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엘리자베스가 감성과 열정을 앞세워 다가간 드문 존재가 남편 필립이다. 13살 때 다섯 살 많은 필립을 본 뒤 사랑에 빠졌고 그 뒤 편지를 주고 받다가 1947년 결혼했다.

왕의 남자가 될 줄 알고 한 결혼이었지만 처음엔 평탄하지 않았다. 아들 셋, 딸 하나를 낳으며 다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결혼생활은 줄타기의 연속이였다. 결혼 초 필립공의 외도설이 그치지 않았다. 결혼 10년째인 1957년엔 엘리자베스 2세 없이 해군 요트를 타고 호주와 남극 순방에 나섰다. 군주 부부의 불화설은 영국뿐만 아니라 영연방의 단골 화재가 됐다.

필립공은 이런 방황을 거쳐 결국 자신의 가치인 책임과 규율로 돌아왔다. 부부는 74년을 해로했다. 1997년 결혼 50주년 기념행사에서 필립공은 이렇게 말했다. "성공적인 결혼의 열쇠는 서로에 대한 아량 (雅量:깊고 너그러운 마음씨)입니다."

찰스 왕세자는 부친인 필립공의 서거를 두고 BBC에 "어머니를 오래도록 보필한
아버지의 에너지는 진정 놀라웠다."며 "여왕인 어머니의 생애에서 아버지는 바위 같은 든든한 존재였다."고 회고했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찰스 왕세자지만 "그립다"는 말도 했다.

사실 필립공과 찰스 왕세자의 부자 관계가 매끈하진 않았다. 찰스 왕세자는 부드러운 성격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가졌는데 군인 출신의 필립공은 아들이 단호하지 못한 것으로 받아 들였기 때문이다.

갈등의 원초는 찰스 왕세자가 진학의 문제로 최고조에 이르렀다. 찰스는 윈저 성에 가까운 이튼 킬리지를 원했지만 필립공은 자신의 모교인 스코틀랜드의 고든스타운 기숙학교를 고집했다.

엄격한 규율과 스포츠로 심신 수양을 추구 하는 학교다. 찰스 왕세자는 "많은 것을 배웠다."며 무사히 졸업을 했지만 자신의 두 아들은 가까운 이튼 킬리지에 보냈다.

왕실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일까 필립공은 유독 며느리와 사위에겐 따뜻한 사랑으로 대했다. 가장 각별했던 경우가 만 20세의 나이에 32세 였던 찰스 왕세자와 결혼한 다이애너 빈이었다.

필립공과 다이애너는 자주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시아버지는 결혼생활을 힘들어 하는 며느리를 다독이는 내용을 주로 담았다. 다이애너의 장례식 때는 손주인 윌리엄과 해리가 엄마의 관을 뒤따를 수 있도록 했고 자신도 함께 했다.

BBC에 따르면 필립공의 장례식은 오는 17일 왕실 거처인 런던 서쪽 윈저 성의 성조지 예배당에서 국장이 아닌 왕실 장으로 열린다. 코로나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해 30명 이하의 왕족만 참석할 예정이다.

미국에 살고 있는 손자 해리왕자는 참석을 하지만 그의 부인 메건 마클은 임신에 따른 건강문제로 오지 않는다고 한다. 보리스 존슨총리도 참석하지 않고 다른 왕족에게 자리를 내주기로 했다. 간소한 장례식은 필립공의 생전의 유언이기도 하다.

필립공이 생전에 부부가 오래 오래 행복 하기 위해서는 침대와 냉장고를 같이 사용 해야 한다고 말했답니다. 이처럼 이들 부부가 70년 넘게 금슬이 좋은 부부로 살아온 것은 아마도 결혼 초기 어려웠던 시기를 두 분께서 슬기롭게 잘 버텨 왔기에 가능한 일 것이라는 제 나름의 생각을 해 봅니다. 조용하게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 필립공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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