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Happiness

오세훈의 결혼스토리

Jimie 2021. 4. 12. 07:07

오세훈의 결혼스토리

 

 

2006년 주간경향 기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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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송현옥 교수와 만남에서 결혼까지 무슨 일 있었나.

장모 사공정숙 고대 수학과 교수의 알려지지 않은 사위 사랑.

한국 추상 철조를 개척한 조각가로 평가받는 장인 송영수는 누구?

처남 송상호 고대 경영학과 교수와 송상기 고대 스페인어과 교수와의 관계는…


오세훈 당선자의 부인 송현옥씨(45·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는 오 당선자를 고2 때 처음 만났다. 현옥씨는 조각가 송영수 전 서울대 교수의 딸이다. 현옥씨의 오빠인 상호씨(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몸이 아파 학교를 1년 쉰 뒤 오 후보와 같은 반이 되면서 세 사람은 함께 과외를 하게 됐다. 난생 처음 과외를 하게 된 오 후보는 10분이라도 더 공부하고 싶었지만 과외가 새삼스럽지 않던 현옥씨는 '농땡이'였다. 과외는 깨졌다.두 사람은 고3때 입시학원에서 다시 만났다. 오 후보가 길에서 자판기 땅콩을 사주며 "너 고등학생의 몇 %가 담배 피우는 줄 아니"라며 실없이 묻는 모습에 1년 전 '꽁생원'과는 다른 면모를 봤다고 현옥씨는 회상했다.

부인 현옥씨와 소문난 캠퍼스 커플

두 사람은 나란히 고려대 문과대에 응시했지만 오 후보만 낙방했다. 후기인 한국외대에 입학했던 오 후보는 2학년 때 고려대 법대에 편입, 영문과에 다니던 현옥씨와 소문난 캠퍼스 커플이 됐다.

당시 고려대 도서관은 늘 자리가 부족했다. 아침 7시에 도서관에 자리를 잡은 오 당선자가 송씨의 집으로 전화해 그녀를 깨우곤 했다. 송씨의 어머니 사공정숙씨(71)는 반듯하고 성실한 송씨의 남자친구에게 늘 감탄했다. "결혼을 반대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모친 사공정숙씨는 "학생 신분이기 때문에 친구처럼 지내라"는 조언을 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오 후보가 사법시험에 붙은 직후인 1985년 결혼했다.

"친구처럼 지내라"는 조언을 했지만 송씨의 모친은 일찍부터 오 당선자를 사윗감으로 염두에 뒀다. 송씨의 오빠 송상호씨의 친구였던 오 당선자는 상호씨가 수술 때문에 오래 결석했을 때 매일 수업 내용을 전해주러 그 집에 찾아갔다. 고교시절부터 유달리 성실하고 심성이 고왔던 오 당선자를 그는 깊은 관심과 애정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오 당선자가 대학 때 다른 여학생과 미팅도 안 했다"고 '증언'한다. 결국 24세 때 동기생 중 가장 빨리 결혼했다. 오 후보 부부는 '행복한 가정재단'의 홍보대사도 했다. 친구들은 "공처가 분위기가 좀 있다"고 하지만 부인은 "그의 내면이 얼마나 강철같은지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일축한다.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포기할 때도 그는 부인과 가족에게 별다른 상의 없이 결단을 내렸다.


송현옥씨 일가는 모두 고대 출신이다. 어머니 사공정숙씨는 1968년부터 고려대 수학과 교수를 지냈다. 1975년 고려대 사범대에 수학교육과가 생길 때 그 산파 역할을 맡았다. 1991년 사범대학장, 2000년에 교육대학원장을 지내고 2003년 정년 퇴임했다.

송 교수의 부친 송영수씨(작고)는 한국 철조 추상 조각의 제1세대로 알려진 조각가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전쟁이 나던 1950년 서울대 미대 조형과에 입학, 한국 현대 조각의 선구 김종영에게서 조각을 배웠다.

송씨는 앵포르멜 경향의 추상 철조를 개척한 조각가로 평가되는데, 그밖에 테라코타와 목조, 석조에도 관심이 깊었다. 추상 조각에 대한 이해가 거의 전무했던 시절, 그는 이 분야를 개척한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이들 재료로 새나 여성의 형상을 조형화 해 실존적 고뇌를 표현했다. 주로 철, 스테인리스 스틸 같은 금속 소재를 썼지만 물성을 뛰어넘어 인간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구성하려 했다.


1960년대는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한 국토 건설 드라이브로 수많은 동상과 조형물들이 제작됐다. 이 시기 조각가 송영수는 국가가 발주한 추상 조형물의 거의 전부를 독차지할만큼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작품을 '모뉴멘트'의 영역에서 활발히 추구했지만 그의 세계는 항상 모뉴멘트 너머의 순수 추상을 응시하고 있었다.

'경부고속도로 기념탑' 등 명작 남겨

국전 추천작가와 심사위원을 지낸 송씨는 1968년 서울대 전임교수가 됐으나 2년 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경부고속도로 기념 조형물 구상으로 심신이 지칠대로 지친 상태에서 그는 죽음을 맞았다. 대표 조형물로는 '경부고속도로 준공기념탑' '이준 열사 동상' '육군사관학교 화랑천 쌍사자' 등이 있다. 육사의 쌍사자상은 당시 소재 부족으로 시멘트로 만들어진 것인데 지금도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그만큼 그는 탄탄하고 꼼곰한 작품 세계를 추구했다.

부인 사공씨는 남편을 '정열의 인간'으로 기억한다. 짧았던 40평생을 조각을 위해 송두리째 바친 그를 "새로운 소재를 탐구하고 그 소재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몸과 혼을 바친 인간"으로 평가한다. 집안에 두 개의 커다란 산소통을 설치하고 동판의 용접을 손수 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추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구상의 기초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조각관이었다. 110권에 달하는 스케치북이 그대로 남아 있고 미술계에서는 그가 남긴 스케치 자체가 '위대한 미술품'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가 심장마비로 숨진 당일 새벽에도 송씨는 부인 사공씨를 깨웠다. "새롭고도 놀라운 구상이 떠올랐다"는 이유에서였는데 송씨는 "그렇게 무리해서 일하다가는 큰 일을 내겠다"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사공씨에게는 그 새벽의 일이 큰 한으로 남아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송 교수는 초등학교 5학년, 상호씨는 송 교수가 고등학교 때 연하의 총각과 결혼했다. 그는 현재 경희대 화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송현옥씨의 오빠 송상호씨(47)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 경영학계의 큰 별 김인수 교수의 직계 제자로 유학을 하지 않은 '토종 경영학자'다. 김인수 교수는 개강 전에 과제를 주고 첫날부터 학생들에게 혹독한 연구와 학습을 강요했던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는 김 교수 밑에서 기업 조직론을 공부했다.


최근 송 교수는 벤처기업의 조직과 인적 요소의 중요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벤처 창업자의 리더십, 구성원의 역량, 조직의 혁신이 벤처 성공의 관건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지만 '뒷바라지할 자신이 없어' 경영학 공부를 권했다는 것이 모친의 말이다.


송현옥씨의 남동생 송상기씨(40) 역시 고대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모교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재원이다. 세계의 지역연구를 인문학적 차원에서 심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요즘 그의 관심사다. "세계 각 지역의 이면에 흐르는 문화적이고 인류학적인 심층 파악 없이는 결코 복잡한 국제 문제를 이해하거나 풀어나갈 수 없는 세상이 됐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여동생 송현영씨(43) 역시 고려대 교육학과를 졸업해 어머니와 4명의 자녀, 사위 오세훈 당선자까지 모두 고대 출신으로 이뤄진 독특한 가족 구성이다. 송현영씨의 남편은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 중이다. 오 당선자의 장모 사공씨는 사위의 더 큰 장래에 대해 "성실하고 착한 사위로, 훌륭한 업적을 남긴 시장만으로도 대만족"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