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 Human Geography

시원한, 너무나 시원한 군복 '킬트(Kilt)' (하)

Jimie 2024. 5. 15. 04:59

시원한, 너무나 시원한 군복 '킬트(Kilt)' (하)

남보람입력 2019. 9. 3. 15:33
 

[남보람의 전쟁 그리고 패션-108]

 

1. 프로레슬링과 킬트, 타탄

 

가. 하일랜더스(The Highlanders)

킬트를 입은 스코틀랜드 산악대 관련 자료를 찾다 보면 다소 엉뚱한 사진이 나온다. 2000년대 초반 '하일랜더스(The Highlanders)'란 팀명으로 활동했던 프로레슬링 선수들이다. 이들은 두 가지 종류의 타탄이 들어간 킬트를 입고 링 위에 나타났다.

타탄 중 하나는 스튜어트 왕가의 것이다. 두 선수 모두 스코틀랜드 출신이니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타탄을 선택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스튜어트 왕가 타르탄(좌)과 그것이 적용된 킬트를 입고 경기하는 하이랜더스 /출처= ⓒWWE홈페이지

그런데 하일랜더스는 종종 회색과 갈색 바탕의 타탄이 들어간 킬트를 입었다. 이것은 이들의 고향인 스코틀랜드 오번(Oban) 마을의 타탄이다. 타탄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애용한 스포츠인이라 평가할 수 있다.

오반 마을 타르탄(좌)과 그것이 적용된 킬트를 입고 무대 위에 오른 하이랜더스 /출처= ⓒWWE홈페이지

 

 

나. 로디 파이퍼(Roddy Piper)

링 위에 킬트를 입고 나와 대중에게 이미지를 깊이 각인시킨 선구자는 따로 있다. 1970년대에 큰 인기를 얻었던 프로레슬러 로디 파이퍼(Roddy Piper)다. 그는 붉은 바탕색에 흰색 줄이 들어간 킬트를 입고 링 위에 올랐다.

그런데 로디 파이퍼가 입고 나온 것은 공인되거나 널리 알려진 타탄이 아니었다. 인터뷰에 의하면 '캐나다 출신이지만 어릴 적 밴드에서 백파이프 연주를 한 적이 있는 스코틀랜드계'라는 업계의 설정 때문에 시중에서 파는 체크 무늬 치마 중 하나를 그냥 골라 입었다고 한다.

데뷔 초(좌)와 전성기(우)의 로디 파이퍼. 좌측의 것은 그야말로 ‘족보 없는’ 타르탄이다. 우측의 것은 왈레스(Wallace) 부족 타르탄인데 세계적 기업 3M의 ‘스카치 테잎’ 디자인에도 사용되었다. /출처= ⓒWWE홈페이지
왈레스 부족의 타르탄을 디자인으로 사용한 3M사의 스카치 테잎 /출처= ⓒ3M홈페이지

로디 파이퍼가 선수 생활 초기에 '그냥 골라' 입었던 붉은 바탕색에 흰색 줄 타탄은 현재 '(Rowdy) Roddy Piper'란 고유 명칭을 갖고 있다. 킬트와 타탄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공로로 2013년 스코틀랜드가 정식으로 부여한 이름이다.

‘(Rowdy) Roddy Piper’ 타르탄(좌)과 로디 파이퍼의 트윗(우). “제가 입었던 킬트의 타르탄이 공식적으로 인정 받았네요. 영광스럽습니다”라고 적었다. /출처= ⓒ로디파이퍼트위터

 

 

2. '브레이브 하트'(1994) 속 월리스 부족의 킬트

'당신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대중 문화 속의 킬트'를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 아래의 것이 가장 많이 언급되지 않을까?

출처= ⓒIMDb

영화 '브레이브 하트'(1995)에서 멜 깁슨이 대킬트를 입은 모습니다. 멜 깁슨은 실존 인물 윌리엄 월리스 역을 맡아 열연했다. 앞서 설명했던 '월리스 타탄'의 그 월리스다.

왈레스 부족의 타르탄. 타르탄 속의 적색을 ‘왈레스 적색(Wallace Red)’라고 한다. /출처= ⓒwww.tartanregister.gov.uk

'브레이브 하트'는 1996년 아카데미상 작품상을 비롯한 5개 부문을 휩쓴 성공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고증 부분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멜 깁슨이 입은 킬트만 해도 그렇다. 월리스 부족의 그것과 다르다. 영화적 효과를 위해 색깔과 디자인을 달리했다고 보기엔 타탄의 기본 형식(색깔의 교차, 선과 면의 비율 등)을 너무 많이 벗어나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이 입은 킬트의 색깔, 디자인이 '기계로 짠 것처럼 똑같고 정확하다'는 지적도 있다. 영화 배경이 13세기임을 고려하여 디자인과 색깔을 조금씩 다르게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영화에서 멜 깁슨이 대 킬트를 입은 모습(좌), 킬트에 사용된 타르탄을 확대한 모습(우) /출처= ⓒIMDb

 

 

3. 서태지와 아이들 제3집 활동 시 서태지의 킬트

1994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3집 앨범을 내놓았다. 모든 것이 충격이었다. 댄스 그룹이 랩과 록 음악을 선보인 것도 그렇고 얼터너티브 록 박자에 맞춰 추는 흑인 힙합 춤도 그랬다. '교실 이데아'와 '발해를 꿈꾸며' 가사 속의 사회적 메시지도 나름 강렬했다.

 

서태지가 앨범 콘셉트 복장으로 입고 나온 치마는 더 충격적이었다. 즉각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 "출연자는 자숙하고 방송은 심의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강경한 여론이 들끓었다. 치마를 입으면 출연을 금지시키겠다고 했고 서태지는 복장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빨간색 체크무늬 치마를 입은 서태지의 모습. 앨범 발매 초기에만 잠시 입어 남아 있는 사진이 많지 않다. /출처= ⓒ서태지공식홈페이지

 

서태지가 입은 치마를 자세히 보면 적색 체크 무늬의 주름 치마다. 어찌 보면 킬트 같다. 그러나 본인도 당시 언론도 이것을 킬트라고 하진 않았었다.

 

그런데 2014년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출연 패널이 서태지가 입은 것이 '스코틀랜드 전통의상'이라고 주장했다. 서태지도 크게 부인하지는 않았는데, 입은 옷이 치마인지 킬트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것 같았다. 서태지는 덧붙이기를, "패션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남자는 치마를 입으면 안 된다는 것에 저항하는 의미로 입었었다"고 했다. 즉 그런 옷을 입은 의도, 내면, 정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남보람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elyzcam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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