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מְדִינַת יִשְׂרָאֵל / Medinát Yisra'él)' 의 역사
요약
이스라엘인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것은 BC 13세기말로 추정된다. BC 10세기 중반 번영을 누린 후 이스라엘왕국과 유다왕국으로 분열되었다. 이스라엘왕국은 BC 722년 멸망했으며, 유다왕국은 BC 587년 바빌로니아인의 침략을 받았다. BC 141년 독립했지만 이후 로마·이슬람교도·십자군·오스만제국 등에 점령당했다.
1947년 국제연합이 팔레스타인 분할을 결의했으며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이 선포되었다. 하지만 이후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간에 전쟁이 여러 차례 발생했다. 이스라엘은 1979년 이집트와 평화조약을 맺었지만 1982년 레바논을 침공했다. 1994년에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와 가자지구 등의 팔레스타인 자치를 이행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현재 가자지구와의 교전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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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 사람이 거주한 것은 적어도 1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BC 10000년경 식물을 재배하고 동물을 사육한 증거가 남아 있다.
고대 팔레스타인인들의 가장 뛰어난 업적은 선형(線形)문자의 개발이다. 선형문자는 BC 2000∼1000년에 가나안인들이 창안한 것으로, BC 1000년경 페니키아인들과 이스라엘인들이 찾아냈다.
이스라엘인(히브리인)들이 가나안으로 알려졌던 팔레스타인을 완전히 점령한 때는 BC 13세기말경으로 추측되며, BC 1550∼1200년에는 이집트인들이 지배했다.
해양 민족들의 출현으로 아시아 속국들에 대한 이집트의 지배력이 약화되자 팔레스타인에서는 펠리시테인들이 유력한 세력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이들은 다윗 왕과 솔로몬 왕 시대에 팽창하는 이스라엘인들에게 정복을 당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BC 10세기 중반 솔로몬 시대에 최고의 번영을 이룩했으며, 최초의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다.
그러나 솔로몬이 죽자 왕국은 이스라엘로 알려진 북왕국과 유다로 알려진 남왕국으로 분열을 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왕국은 BC 722년에 아시리아인들의 침략으로 멸망했으나, 유다 왕국은 BC 625년까지 아시리아의 속국으로 남아 있었다. BC 587년 바빌로니아인들이 유다 왕국을 침략했으며 많은 주민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가 유배생활을 했다(→ 바빌론 유수).
키루스 2세(BC 550∼529) 때 페르시아인들에 의해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했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시조. 통치 기간 메디아, 리디아, 신바빌로니아를 정복했으며, 기원전 549년 메디아를 정복한 이후로는 나라의 이름을 페르시아로 바꾸었다. 기원전 539년 신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을 함락한 후, 제국의 기초를 다졌다. 이란 파사르가다에에 그의 무덤이 남아있다.
ⓒ Ernst Wallis et al / wikipedia | Public Domain
그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침략과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지배를 받았으며, 뒤이어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이 지역을 헬레니즘화하려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시도와 안티오코스 4세(BC 175∼164)의 성전 모독에 반발한 유다 마카베오가 반란을 일으켜 마침내 BC 141년 하스몬 왕조 때 이스라엘은 독립을 얻었다. 그러나 BC 65년 왕족의 내분으로 내란이 일어나 로마 제국이 개입하게 되었는데, 로마 점령기에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던 그리스도는 AD 30년경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이 시기에는 또한 2차례의 유대인 반란이 일어났으나 모두 진압되었다. 135년 마지막 반란 이후 팔레스타인의 유대 민족은 극소수 집단으로 위축되어 이스라엘은 더이상 하나의 국가로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이란사, 로마사).
그뒤 팔레스타인은 비잔틴 제국의 그리스도교 성지 보호로 인해 어느 정도 번영을 누렸다.
7세기에는 이슬람교도들이 이곳을 점령하고 691년 예루살렘에 바위의 돔을 세웠다. 그결과 예루살렘은 3대 주요종교의 성지로 남게 되었다.
이 지역은 1100∼1291년 이슬람교도들과 십자군에게 번갈아 점령되었으며, 1517년에 오스만 제국에 넘어갔다. 그뒤 1798∼99년 일시적으로 나폴레옹의 침략을 받았고 다시 이집트의 지배 아래 들어가 무하마드 알리의 통치를 받았다. 무하마드 알리를 통해 서유럽의 영향을 받던 팔레스타인은 1840년 다시 오스만 제국에게 넘어갔다.
19세기 후반 팔레스탄인에 유대국가를 세우려는 '시온주의'가 시작되어, 1882년 최초로 시온주의자들의 정착촌이 세워졌으며, 1917년 영국은 밸푸어 선언을 통해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했다.
영국의 외무장관 밸푸어(왼쪽)와 밸푸어 선언문(오른쪽). 밸푸어는 1916년 외무장관에 자리에 올라, 유대인의 협력을 얻기 위해 1917년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 수립을 약속했다. 밸푸어 선언은 유대인들에게는 이스라엘 국가의 탄생을 의미했지만, 이때부터 팔레스타인 민족은 유랑하게 됨으로써 중동 분쟁의 빌미가 되었다.
ⓒ דניאל צבי/wikipedia | Public Domain
영국이 1918년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1922년 국제연맹으로부터 위임통치를 승인받아 정치적 책임을 떠맡게 된 후 이 정책은 중요성을 띄게 되었다.
1930년대에서 1940년대초 아돌프 히틀러의 박해로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주가 늘어나면서 유대인과 아랍인의 관계는 점차 악화되었다. 이에 유대인 지역과 아랍인 지역으로 분할하자는 제안도 있었으나 거부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시온주의 국가를 배후에서 지원하는 가운데 1947년 국제연합(UN)은 팔레스타인 분할을 결의했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이 선포되었고, 이스라엘과 이집트·트란스요르단(뒤의 요르단)·시리아·레바논·이라크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중동전쟁). 이스라엘이 1967, 1973년 전쟁에서 승리했으나 중동은 지금까지 계속 불안정한 상태로 남아 있다. 이스라엘은 1979년 이집트와 평화조약을 체결했지만 1967년 전쟁을 전후로 팔레스타인 국가와 그 영토 내의 이스라엘 점령지인 유대인 정착촌 문제로 여러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가 어려워졌다.
1982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에 속한 게릴라군을 몰아내기 위해 레바논을 침공했다.
1987년 이후 웨스트뱅크와 가자 지구에 거주하는 아랍인들이 '인티파다'(intifadah : '봉기'라는 뜻)를 일으키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이스라엘 당국은 1992년 이후 아랍의 여러 국가와 팔레스타인 대표들과 직접 평화 교섭에 나섰다.
이듬해 이스라엘과 PLO는 5년 동안 웨스트뱅크와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인의 자치를 점차 확대 이행한다는 데 동의했다. 이스라엘은 1994년 요르단과 평화협상을 맺었다(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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