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 Human Geography

팔레스타인(Palestine) 역사

Jimie 2024. 5. 13. 04:55

팔레스타인Palestine

요약

 고대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이 있었던 지역을 뜻하면서, 동시에 2013년에 수립된 나라.

지역으로서의 팔레스타인은 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에서 모두 신성시하는 지역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유대와 아랍의 민족운동 진영의 분쟁지로 주목을 받았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와 이스라엘 간의 오랜 분쟁 중 1993년 평화정착을 위한 기본적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수립되었고, 2013년에는 팔레스타인국이 수립되어 국가 지위에 대한 인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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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국기

개요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은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역사적 지명이자, 2013년 1월 이 지역의 일부에서 독립 국가로 수립된 국가의 명칭이다. 지역으로서의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여러 지역을 포함하며, 대체로 서쪽의 지중해에서 동쪽의 요르단 강까지, 북쪽의 이스라엘과 레바논 국경지대에서 남쪽의 가자 지구에 이르는 지역을 가리킨다.

 

아랍 민족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이 7세기 이슬람 제국의 정복 이후 이 지역에서 살아온 아랍 민족의 고향이며,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플레셰('펠리시테인의 땅'이라는 뜻)에서 나온 그리스어 팔라이스티나에서 유래되었다. 플레셰는 필리스티아라고도 하는 이집트 북동쪽의 작은 연안지역을 가리킨다.

 

BC 2세기에는 로마인 사이에서 이전 유대지역을 포함하는 시리아 주의 남쪽 1/3 지역에 대해 시리아팔라이스티나라는 명칭이 사용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요르단 강에서 서쪽으로 지중해 연안에 이르는 영국의 위임통치지역을 가리키는 공식 명칭으로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이 다시 쓰이게 되었다.

 

1948년 이스라엘이 이 지역 영토를 점령하고 독립을 선언하면서 유대와 아랍의 민족운동 진영이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는 분쟁지역으로 남아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과의 국경을 경계로 1994년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수립되었고, 2013년에는 팔레스타인국이 수립되었다.

역사적 지역으로서의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위치
자연지리

 

팔레스타인의 경계는 역사를 통해 심한 변동을 거듭했으나, 일반적으로 서쪽의 지중해 및 연안평원에서 중간지대인 하셰펠라를 거쳐 고대 히브리 왕국들의 심장부인 유대와 사마리아 산악지대에 이르는 영토를 포함한다. 동쪽에는 유대 광야(미드바르예후다)가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북쪽 부분인 요르단 강 유역을 향해 비탈져 있으며, 남쪽에는 건조하고 험한 네게브 사막이 아카바 만까지 이어진다. 북쪽에는 사마리아(남쪽)와 갈릴리 산악지방 사이에 넓고 기름진 에스드라엘론 평원이 펼쳐진다.

갈릴리 산악지방은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높고 관개가 잘 되는 지역으로 갈릴리 동쪽에는 갈릴리 호와 예전에 물이 흘렀던 훌라 계곡이 있다. 다윗 왕과 솔로몬 왕 시대에는 지금의 레바논 및 시리아 대부분 지역까지를 포함하는 왕국이 존재했다(BC 1000경).

 

팔레스타인은 해발 821m의 예루살렘 북부지역과 해면보다 약 400m가 낮은 사해 연안지대(지구에서 가장 낮은 육지)가 겨우 23km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어 지형적으로 급격한 대조를 이룬다. 기후는 겨울에 비가 내리는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로 연평균 강우량은 내륙인 동쪽으로 갈수록 점점 줄어든다.

 

초기 역사

이곳은 일찍이 초기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정착해서 살아왔으며, 역사시대에 들어서는 중동지방을 거쳐간 거의 모든 세력에 차례로 점령되었다. 그 가운데 이집트·아시리아·바빌로니아·페르시아·마케도니아 제국과 그뒤를 이은 프톨레마이오스·셀레우코스 왕조 등의 여러 제국들, 로마 제국, 비잔틴 제국, 우마이아 왕조, 아바스 왕조, 파티마 왕조, 십자군, 아이유브 왕조, 맘루크 왕조, 오스만 제국 등이 꼽힌다.

 

성서시대에는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이 자리잡고 있었다. '성지(聖地)'라고도 불리며, 정도는 다르지만 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 등에서 모두 팔레스타인 지역을 신성시한다.

 

유대교 전통에 따르면, '에레츠 이스라엘'('이스라엘의 땅'이라는 뜻)이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하느님이 약속한 땅이자 가장 거룩한 곳으로 유대민족 독립의 중심지였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와 사도들이 생활하고 복음을 전파한 현장으로 중시되며, 이와 관련된 몇몇 성스러운 장소들이 발견되었다. 

이슬람교도들은 예언자 마호메트와 관련된 일정한 곳들을 거룩한 장소로 여긴다.

 

1920년대초부터 시작된 시온주의자들의 이주 시기와 특히 1948년 이스라엘 국가가 세워진 이후에 이 지역을 중심으로 아랍 민족주의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근현대사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국제연맹의 결정에 따라 영국의 위임통치하에 놓였다. 이 위임통치는 영국이 정책적으로 팔레스타인의 유대민족 국가 수립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1917년 밸푸어 선언을 구체화한 것이었다. 영국의 통치는 1948년까지 계속되었으나 다수 민족인 아랍인과 세력이 점점 커가는 유대민족 모두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채 제2차 세계대전 후 국제연합(UN) 총회에 팔레스타인 문제를 넘기게 되었다.

 

UN 총회에서는 1947년 11월 29일 팔레스타인에 아랍인 국가와 유대인 국가를 따로 세울 것을 제안하는 결의안이 통과되었고,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의 수립이 선포되면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영국 관리들도 철수했다(팔레스타인 분할).

 

그후 이스라엘의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주변 아랍 국들의 정규군이 팔레스타인으로 진격하면서 벌어진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은 갈릴리 지방, 연안지역, 이집트 점령 가자 지구 일부, 네게브 사막, 예루살렘 북서부지역을 포함해서 UN의 원래 분할안(案)보다 50% 정도가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약 72만 명의 팔레스타인 아랍인이 이스라엘을 떠나 주변 아랍 국가들에서 난민생활을 하게 되었다. 1950년 요르단 왕국이 UN의 계획대로라면 이 지역에 세워질 아랍국의 영토에 포함된 요르단 강 서안(5,180㎢)을 공식적으로 합병했으나 국제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후에 웨스트뱅크로 알려진 이 요르단 점령지역은 1967년 가자 지구, 시나이 반도, 골란 고원, 동(東)예루살렘과 함께 이스라엘에 점령되었다(웨스트뱅크). 1979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이 조인되면서 규정에 따라 이스라엘은 1979∼82년에 시나이 반도를 이집트에 되돌려주었으나 웨스트뱅크, 가자 지구, 골란 고원, 동예루살렘은 계속 점령해왔다.

 

국가로서의 팔레스타인

이스라엘과의 대립과 팔레스타인 공동체의 구성

1948년 이스라엘 수립에 뒤이어 전쟁이 벌어진 1948∼49년과 종전 직후의 기간 동안, 새로 생겨난 이스라엘 지역을 벗어나 이웃 아랍 국가로 망명해 정착한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인'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또한 6일전쟁 이후 웨스트뱅크, 가자 지구, 동예루살렘 내에서 이스라엘의 지배를 받거나 이웃 국가에 흩어져 사는 아랍인들도 팔레스타인 공동체의 일원으로 간주되었다. 반면, 건국 이후에도 이스라엘 내에서 계속 거주하며 그곳의 시민이 된 아랍인들은 현재 이스라엘 아랍인으로 불리고 있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아랍 연맹은 1974년 10월 모로코의 라바트에서 열린 정상 회담에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PLO)를 팔레스타인 아랍인의 유일한 대표 기구로 인정했다. PLO는 1969년 헌장에서 분명하게 밝힌 것처럼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제거하고 팔레스타인 위임통치지역 안에 이슬람교도·그리스도교도·유대교도 각각의 독립국가를 건설할 것을 천명해 왔으나, 1988년에 이를 약간 수정하여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위한 2개 국가 수립안, 즉 이웃 이스라엘과 공존하게 될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는 안에 대해 처음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인티파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립

1993년 이스라엘과 PLO 간에 평화정착을 위한 폭넓은 기본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PLO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실제적 권한을 인정한 대신, 이스라엘은 PLO를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대해 유일한 대표성을 갖는 단체로 용인했다. 그리고 양측은 웨스트뱅크, 가자 지구의 통치권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점진적으로 이양하고 그 지역 내에 주둔한 이스라엘군을 단계적으로 철수시키는 5년간의 과도기간을 둔다는 데 합의했다. 이를 통해 1993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수립되었다. 1996년에는 웨스트 뱅크, 가자 지구의 영속적 지위에 관한 협상이 시작되었다. → 중동전쟁,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팔레스타인국의 수립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국제적 발언권을 확보하기 위해 2011년 11월 유엔 산하기구인 유네스코에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내의 강경파인 하마스 세력과 협상파인 파타당 세력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내분 수준의 갈등을 겪고 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국가로 국제적 지위를 격상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2012년 11월 29일 유엔 총회에서 팔레스타인을 옵서버 국가의 지위로 인정하는 결의안이 통과되었고, 2013년 1월 3일 팔레스타인국이 수립되었다.

 

전 세계 138개국에서 국가로 승인하는 데 찬성했다. 한국은 국가 지위 투표에서는 기권했으나 팔레스타인국의 대표성은 인정하고 외교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2005년부터 행정수도인 라말라에 대표부를 운영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아랍 및 이슬람권 국가들과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편이나, 적대적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 이스라엘을 정점으로 하는 외교적 갈등이 다른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에서 쟁점이 되고 있다.

 

정치경제적 상황

팔레스타인국의 정치는 주로 온건파인 파타와 강경파 하마스에 의해 주도되고 있으며, 그밖에 이슬람 권의 시아파와 기독교도로 구성된 소수 정당들이 존재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하부조직이었던 하마스는 반 이스라엘과 반 서방의 성향이 강하여 온건파인 파타와 물리적 충돌을 마다하지 않는 편이다. 하마스 세력에 의해 통치되는 가자 지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 대하여 파타가 주도하는 팔레스타인국이 통치권을 실현하고 있다. 팔레스타인국은 미국과 이스라엘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팔레스타인국의 수도는 예루살렘이지만 실질적인 행정수도는 라말라이다.

 

팔레스타인국의 경제는 이스라엘 정부에 예속되어 있는 상황이다. 국가 재정의 많은 부분을 미국과 이스라엘의 지원에 의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 일대의 농업과 산업의 기반 시설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국 자체의 경제활동은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다. 국민의 실업률은 50%가 넘으며, GDP는 이스라엘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팔레스타인국 전역이 분쟁지역이어서 여행은 제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