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 Human Geography

국가원로회 서신 141호 戰士와 戀人

Jimie 2024. 5. 11. 06:15

국가원로회 서신 141호, 142호  戰士와 戀人

 

충격! 현대사의 진실! 이리역 폭발과 5.18, 동일범 간첩 소행 맞다 - 2023.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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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국가원로회 서신 141회 - 전사와 연인.

국가원로회 서신 141호
  - 戰士와 戀人 -


     만포행 열차

1982년 7월 중순 우리가 속한 공병국 산하 27건설여단은 소위 평양 501호 공사라고 명명된 인민무력부 지하갱도 확장공사를 마치고 자강도 전천군 고인구에 위치해 있는 산골짜기에 미사일 발사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전 여단병력이 이동하였다.

조총련을 통해 일본에서 사들여온 비싼 건설장비들은 화물열차편을 이용해서 먼저 현장에 도착했고 인원들은 대대, 중대별로 나뉘어서 일반열차를 이용하여 현장으로 갔다.

자강도 전천군 고인구에 있는 그 골짜기에는 원래 한 개의 협동농장이 있었는데 미사일 기지가 건설되는 바람에 그곳에 있던 백여 가구의 농장 사람들은 하룻밤 새에 모두 타지방으로 이주되고  농장원들이 살던 주택은 모두 부대의 병실이 된것이다.

우리 소대는 평양에서 501호 공사가 끝난 후에도 뒷정리를 하느라고 남아 있다가 여단이 철수한지 3개월 뒤인 1982년 10월 말에 평양에서 만포행 열차에 올라 미사일 건설기지로 향했다.

유리가 비싼값에 팔림으로 도적질  해가는 것이 비일비재하여 사람을 실어 나르는 열차들이라고 해봐야 창문에 유리창이 온전히 끼워져 있는 열차를 별로 볼 수가 없다.

매 열차마다 상급차 칸이 하나씩 붙어 다니는데 거기 또한 일반 칸과 별로 다를  바 없고 자리가 좀 편하다고 할 뿐이지 승객들이 비닐로 창문을 가리고 다니는 형편은 똑같았다.

상급차 칸은 영웅들이나 공로자, 남한의 영관급에 해당하는 좌급 이상의 고급 군관들과 보위부, 안전부계통의 사람들을 비롯하여 특별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만 이용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정해진 이러한 공간도 폭력을 행사하는 단체 군인들 앞에서는 때로는 무용지물이 되고 신분의 차이나 격 같은 것이 따로 없이 무조건 같이 공유해야 될 대상이다.

평양을 출발하면서 우리 소대가 올랐던 열차는 당연히 일반열차였는데 보따리를 이고 진 사람들이 너무 많이 빼곡히 들어차서 한걸음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공간이 없어서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게  되자 소대장은 열차가 서는 다음 정거장에 모두가 내려서 상급차 칸으로 오르라고 명령하였다. 우리 소대는 열차가 다음 정거장에 멈춰 서자 모두 창문으로 뛰어 내려서 앞쪽에 있는 상급차 칸으로 달려갔다. 문이 닫혀 있어 열라고 소리쳤지만 안에서 안내원들이 문을 안으로 닫아 걸고 열어주지를 않았다.

기차가 떠나겠다고 빽빽 대고 신호를 울리자 다급해진 소대장은 출입문을 포기하고 모두 창문을 오르라고 지시하였다. 우리는 일시에  창문 쪽으로 달려가서 창문을 가리고 있던 비닐들과 군데군데 몇 장씩 남아 있는 유리창들을 모조리 부수고 창문을 넘어 들어 갔다.

많지 않은 사람들이 타고 있어서 비교적 조용하던 상급차 칸안에 한 개 소대의 인원들이 갑자기 쏟아져 들어가자 열차 안은 금새 아수라장이 되었다.

소대장은 열차가 출발하자 누가 문을 닫아걸고 열지 않았느냐고 승객들에게 소리쳤다. 아무런 대답이 없자 소대장은 소대원들에게 열차 안에 타고 있는 여성 열차 안내원들을 모조리  끌고 오라고 큰 소리로 지시했다.

"소대원들이 여성 안내원 세 명의 머리채를 잡아서 소대장  앞에다가 끌어다 놓자 소대장은 그 자리에서 한 여성동무의 옷깃을 힘껏 잡아 당겼다. 안내원이 입고 있던 옷은 단추가 우두둑 떨어져 나갔고 속옷까지 함께 찢어지면서 그녀의 몸은 숱한 승객들이 보는 앞에서 홀딱 벗겨져 아무것도 가리지 않은 채로 알몸이 그대로 환하게 드러났다.

"이 쌍 놈의 기집 애들 옷도 모조리 벗기고 밟아 버려!''

평소에 작업지시를 할 때도 워낙 성질이 지랄같이 고약했는데 약이 오르고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소대장이 소대원들에게 불호령을 내린 것이다.

소대원들은 승객들이 보는 앞에서 여성안내원들의 속옷을 팬티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벗겨 놓고 짐승 다루듯이 이리 저리 굴리고 희희덕거리면서 조롱하고 장난감  취급을 하였다.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북한세상에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광경이 백주 대낮에 펼쳐진 것이다.

옷이 홀딱 벗겨진 여성안내원들은 수치심과 모멸감에 울고불고 눈물을 떨구면서도 제발 잘못 했노라고  한번만 용서해 달라고 소대장의 발 앞에 엎드려서 빌고 또 빌었다.

바로 그때 대좌(대령)의 군사 칭호를 달고 있는 한 군관동무가 그 광경을 지켜 보다가 참지 못하겠던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의 나이는 어림짐작으로 50대  중반 이상은 되어보였다. 그는 오자마자 계급이 높은 지휘관답게 위엄있는 자세를 취하더니 소대장에게 어느 부대냐고 증명서를 내 놓으라고 하였다.

북한에서 공병국이라고하면 인민군대 중에서도 제일 수준이 낮은 부대로 취급되고 일 년에 총 한방도 제대로 쏴보지 못하는 부대라고 정평이 나있다.

부대원들 또한 대부분 계급적으로 토대가 안 좋거나 부모가 과오가 있고 사회적으로 별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대상들이 걸러져서 오는 부대라고 인식되어 있다.

그도 아마 우리가 공병국 산하 날라리 부대라는 것을 짐작하고 온 느낌이었다. 소대장은 대좌를 쏘아보다가 상급자에 대한 예의 같은 것은 아예 무시해 버린 채 적반하장격으로 그에게 도리어 시비를 걸었다.

"아무 부대면 어때서? 이건 어디서 굴러 들어온 개뼈다귀 같은 영감태기야? 너도 여기서 옷을 좀 벗구 싶어? 우리가 공병국이라고 얕보는 모양인데 대좌를 달고 다니면 누가 엎드려서 구두라도 닦아 줄줄 알았어?''

대좌라면 까마득한 하늘과도 같은 상관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옆에서 듣기에도 소대장이 하는 말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의 상관이 아니면 상대가 어떤 직책이나 계급을 달고 있던 절대로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이 북한  군인들의 막돼먹은 행동이라고 하지만 일반군관이 아니고 대좌라는 사람 앞에서 소위를 달고 있는 사람이 무례한 행동을 하는 것은 어떻게 봐도 도가 넘는 짓이었다.

상하좌우를 분별하지 못하고 다른 부대의 상급지휘관들의 인격을 무시하고 놀려대다가 잘못 걸려들어서 공개처형을 당한 사람들도 있는데 그 순간에 소대장은 아마 그런 사실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소대장을 바라보는 대좌의 인상이 한순간에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소위  너, 공병국 어디 소속이야, 이 놈의 자식 너한테는 상급자도 없어? 너 콩밥 좀 제대로 먹어볼래?'' 

일반적으로 맞닥뜨린 상대한테 자기가 불리하다고 생각되면 직급에 관계없이 거의가 다 대충 얼버무리고 피하는 것이 흔한  일이었는데 그 장소에서 대좌는 비록 혼자였지만 계급이 있는지라 그의 기세도 만만치 않았다.

대좌가 자기 앞에서 공손하게 수그러들 줄 알고 위협을 했는데 잘 먹혀들지 않자 소대장이 주먹으로 그의 턱을 일시에 가격했다. 순간적으로 날아온 주먹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대좌에게 주위에 있던 소대병사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서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참으로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패륜적이고  군법을 무시하는 일이 달리는 열차 안에서 발생했다.

          평양사내

그 순간에 좌중을 놀라게 하는 또 하나의 광경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이 불한당 같은 새끼들 당장 멈추지 못해?'' 벼락같은 소리가 들리더니 몸이 탄탄하고 다부지게 생긴 30대 초반의 젊은이가 싸움판의 한 가운데로 날렵하게 뛰어 들었다.

그는 험악한 기세로 대좌를 구타하는 소대원들을 둘러보더니 가벼운 동작으로 주위에 있는 열 댓 명의 군인들을 손쉽게 제압해 버렸다. 그 사람이 소대병사들을 때리는 동작이 얼마나 민첩하게 빠르고 정확하였던지 나는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면서도 그의 손발이 움직이는 것을 도저히 눈으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기세등등해서  대좌를 짓밟던 소대병사들이 순식간에 영문도 알 수 없는 사람한테 얻어 맞고 열차바닥에 모두 쓰러지자 소대장의 몸이 일시에 굳어졌다. 혼자서 열댓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순식간에 제압한다는 것은 영화에서나 본 일이었지 현실에서는 소대장으로서도 처음  보는 너무나도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싸움에 가담하지 않고 옆에 서있던 나에게 여자안내원들의 옷을 입혀주라고 말하더니 쓰러져서 매를 맞던 대좌를 자기가 직접 일으켜 세우고  밟혀서 피가 나오는 그의 입슬을 닦아 주었다. 그런다음 소대장을 대좌의 앞에 불러다 세워놓고  무섭게 호령하였다.

"너한테 단단히 버릇을 가르쳐 주고 싶지만 대원들이 보는 앞에서 지휘관을 망신시키는 일은 잘된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만은 용서해 준다. 그 대신  대좌 동지하고 처녀 안내원들에게 잘못했다고 무릎을 꿇고 빌어라!''

갑자기 당하는 일이라 소대장이 우물쭈물하자 그는 발로 소대장의 종아리 아래 복사뼈 부위를 순식간에 가격해서 대좌앞에 주저 앉혔다.

소대장은 상대방의 위엄 앞에 파랗게 질려가지고 대원들이 보는 앞에서 조금 전까지만해도 자기가 짐승 다루듯 하던 대좌와 처녀 안내원들에게 제발 잘못했으니까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무 데서나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버릇처럼 되었고 자기보다 강한  자를 만나지 못한 것이 요행수가 돼서 늘 망종처럼 놀면서 나쁜 일에 대원들을 부추키고 내몰던 소대장이었는데 이길 수 없는 상대 앞에서 양과 같이 얌전하고 순종하는 모습을 보니 비굴한 것이 아니라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때 순식간에 나타나서 사태를 제압하는 광경을 보면서 저 사람은 사복차림을 하고 다니지만 대남연락소 공작원이 아니면 어느 특수부대에서 한 가닥 하는 사람이 분명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소대장이 빌고 난 후에  그는 자기한테 맞아서 쓰러진 소대사람들을 한 사람씩 일으켜 세우더니 몇 마디 훈시 겸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였다.

싸움을 할 때는 호랑이 보다 더 거세게 무서운 사람이었는데 정작 나중에  행동이나 말하는 것을 보니 정말로 자상하고 사내다운 사람이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여과담배를 한 갑 꺼내서 매 사람들에게 일일이 한 대씩 나누어 주면서 자기도 어린 나이에 부모 곁을 떠나서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고 오랜만에 부모님들이 계시는 고향에 가는 길이라고 소개를 하였다.

우리의 일행  중에서 금방 입대한  어린 대원 덕영이 그의 집이 어딘가고 묻자 그는 자강도 희천시 인근에 있는 농촌이라고  대답 하였다. 서로 이런 말 저런 말을 주고받으면서도 그는 자기의 내력을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을 피했지만 나는 내가 생각했던 대로 그가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낌으로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자강도 희천은 우리가 가는 목적지인  자강도 전천군 고인구 보다 조금 가깝기 때문에 그는 어차피  우리보다  먼저 열차에서 내리게 되어 있었다.
열차에서 내리기 전에 그는 우리에게 3일 후에 고향에 계시는 어머님의 진갑잔치가 있다며 시간이 있으면 다같이 놀러오라고 고향집 주소를 적어서 집이 어디냐고 묻던 어린 대원 덕영이에게 넘겨 주었다.

우리의 첫 만남은 불미스럽게 잘못 시작되었지만 그와 헤어지기까지의 과정  속에서 나는 참으로 그가 인정이 있고 사내다운 기질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열차 안에서 깊은 감동을 받고 인연이 되었던 우리의 만남은 3일 뒤에 엄청난 사건으로 이어지게 되었는데 그때는 전혀 짐작조차 못했다.

       희천마을

평양사내와 헤어진 뒤 우리는 그 유명한 개고개를 넘어서  한 30분 가량을 더 달려 저녁 무렵에야 목적지인 자강도 전천군 고인역에 도착하였다. 자강도는 평지가 없고 돌이 많은 산골짜기라고 해서 무슨 말인가 했었는데 막상 와보니 정말 앞뒤가 높은 산들로 꽉 막힌 오지 중의 오지였다.

우리는 기차역에서 내린 다음 도보로 반시간 정도를 더 걸어서야 대대가 위치해 있는 장소에 도착했고 소대장은 소대를 정렬시킨 후 바로 대대 지휘부에 들어가서 대대장에게 소대의 도착보고를 하였다.

보고를 받고 인원점검차 내려왔던 대대장은 소대인원 절반 정도의 얼굴이 맞아서  터지고 찢어져 만신창이가 된 모습을 보더니 단번에 눈살을 찌뿌리고 소대장을 쏘아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야,소대장 네 얼굴은 반반한데 대원들은 어떻게 돼서 저렇게 피투성이야?''

소대장이 잠깐 머뭇거리자,

"야 이새끼야, 어떻게 된 일이냐고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 귀때기가 갑자기 막혀 버렸어?''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절반이 넘는 소대원 얼굴이 그 모양이니 지휘관인 대대장으로서는 화가 날만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성격이 괴팍하고  맞고는 절대로 참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전 여단에서 소문이 난 사람인데 보통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소대장은 열차 안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고 그냥 모든게 자기불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간단하게 보고하였다.

말없이 듣고 있던 대대장은 한참동안 소대장을 노려보더니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소대원들은 휴식을 취하라 한 후 소대장만 지휘부로 오라고 지시했다. 대대장실에서 한시간 가량 곤욕을 치루고 돌아온 소대장은 주눅이 들었는지  병실에 와서도 말한마디 없었다.

아직은 미사일 발사대 갱도공사가 시작되기 전이고 추위가 지금 막 시작되는 계절이어서 여단참모부는 각 대대별로 열흘동안 월동준비를 끝내라고 지시하여 평양사람의 일은 그렇게 끝나는 것 같았다.  3일 후 중대는 기상해서 새벽부터 도끼와 톱을 준비하는 등 겨울동안 난방용으로 사용할 땔나무를 하러가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여단이 위치해  있는 주변에는 미사일 발사 시설이 들어서기 때문에  위장용 차원에서 절대로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였고 만약에 나무를 베면 엄격하게 처벌한다는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모든 대대,중대병력은 20여리 밖에 떨어져 있는 개고개 지역의 정해진 산림구역에 가서 벌목을 해야 했다.

아침 식사 이후 정치상학이 끝나고 오전 10시 30분 경 우리 중대는 대대장의 지휘아래 백여명이 우와즈라는 소련제 트럭에 나뉘어 타고 벌목장소로 향했다.  2~30분 정도면 벌목장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인데 중대병력을 태운 두대의 트럭은 벌목장을 지나고 개고개를 그냥 넘어서 남쪽 방향인 희천 쪽으로 계속 질주해 내려갔다.

앞 트럭의 운전석에 앉아 있는 대대장이 직접 지휘하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벌목을 하기 전에 다른 곳에서 무슨 할 일이 있는가보다 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개고개를 넘어서 한참 달리던 두대의 트럭은 산기슭에 옹기종기  들어서 있는 작은 마을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트럭이 마을 입구에 들어설 무렵 열차 안에서 평양사람으로부터 집주소를 넘겨 받았던 덕영이가 나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하사동지, 우리가 지금 그 사람한테 가는게 아닐까요? ''  ''누구말이야?''  ''저번 날 평양에서 올 때 열차 안에서 우릴 때렸던 사람 말이에요. 그 대남공작원 같아 보였던 그 사람 말입니다.''  ''우리가 왜 그 사람을  찾아가는데? 그 사람집이 여기라고 했던가?''


"우리가 오던 날 저녁에 소대장 동지가 나한테 와서 그 사람이 열차 칸에서 나에게 준 집주소를 달라고 해서 줬습니다. 대대장 동지가 가져오라고 시켰나 봅니다.''

덕영이의 말을 듣고서야 나도 대대장이 왜  벌목장으로 가지 앉고 이 마을로 왔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트럭이 마을 한복판에 도착하자 대대장은 중대장 이하 80명 전체 대원들을 집합시키고 기세등등하게 명령조의 훈시를 했다.

"잘들어라!1중대 2소대가 3일 전에 평양에서 오는 열차 안에서 한 놈한테 당한 수모를 오늘 반드시 갚는다. 그 새끼가 아무리 날고 겨도 걔는 혼자고 우리는 80명이야. 죽이지는 말고 다시는 까불지 못하게 완전히 병신을 만들어 버려. 모두들 알았지?''

대대장의 살벌한 명령을 들으면서 나는 속으로 일이 무섭게 잘못되어 간다는 것을 직감하였다. 열차 안에서 잘못을 한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분명히 우리 쪽이고 빌어도 용서를 받을까 말까 한 일인데  대원들이 매를 조금 맞은 것을 복수한다고 중대병력을 인솔하여 싸움을 거는 것은 사실상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차라리 한 개 대대를 책임진 대대장이라면 그 사람을 탓할게 아니라 소대원들을 추궁하고 소대장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정상적인 일인데 대대장은 경우가 맞지 않는 정 반대의 돌발적인 행동을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군대는 군대였다. 대대장의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여기저기서 ''죽이자, 죽이자!'' 하는 목소리가 연발로 터져 나왔다.

지나가던 마을 사람들은 군인들 일 개 중대가 갑자기 마을에 들이닥쳐서 도끼와 톱을 들고 흔들어 대며 소란을 피우는 것을 보자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먼 발치에서 겁먹은 눈길로 바라보면서 자기들끼리 수근거렸다.

쉽게 표현하면 그 순간 중대의 분위기는 그야 말로 전장에 임하는 전투원들이 결사의 각오를 다지는 현장이었고 모두가 비장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대대장을 비롯한 지휘관들이나 중대 병사들은 당사자와의 일면식도 없었기 때문에 자기들의 행동이 경솔하고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전혀 몰랐다. 늘상 그래왔던 것처럼 머릿수자만 있으면 어떤 싸움이던지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날의 비극을 불러온 요인이라 할 수 있었다.

대대장은 이미 희천마을의 잔칫집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는지 중대장과 소대장들을 거느리고  먼발치로 앞장서 중대병력을 인솔해 가고 있었다.

중대가 우르르 몰려가는 속에서도 소대장은 다른 지휘관들이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우리들에게 싸움에 끼지 말라는 눈짓을 하였다. 열차안에서 그 평양사람을 접촉한 우리 소대병사들은 소대장의 암시를 당연한것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나는 그의 집 앞에 이르는 동안 중대의 맨 뒤에서 내키지 않은 걸음으로 따라가면서 죄인과도 같은 무거운 마음을 도저히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북한 농촌 어디를 찾아가 봐도 다 그러하듯이 그의 집 또한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평범하고 아담한 농촌의 문화주택이었다. 우리가 집 앞에 도착하자 집안과 마당에서는 그가 열차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었던 것처럼 정말로 진갑잔치가 한창이었다.

북한의 농촌마을에서는 식량난이 터지기 전까지는 어느 집에 잔치가 생기면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없이 동네사람들 모두가 몰려가서 밤새도록 같이 마시고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

고향집의 풍경과도 같은 소박한 진갑잔치가 무뢰한들에 의해서 싸움마당으로 변한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마음이 아프고 떨렸다. 잔치를 한창 즐기던 마을 사람들은 군인들이 떼거리로 들이닥치자 무슨 일이 벌어질것이라고 예감했던지 모두가 당황해 하는 기색들이었다.

대대장은 중대병력을 집 앞에 멈춰 세우고 안에다 대고 소리쳤다.

"좋은 말로 할때 잘 들어라! 우리가 미리 알고 왔으니까 숨을 생각하지 말고 3일전에 평양에서 온 새끼는 당장 나와라!''

떠들썩하던 잔칫집의 분위기가 대대장의 고함소리 한 번에 순식간에 조용해지고 얼어 붙었다. 밖에서 술을 마시던 몇 사람들이 집 안으로 다급히 뛰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잠시 후에 한복을 깨끗하게 차려입은 늙은 할머니 한 분이 집안에서 나오더니 공손한 말투로 대대장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대대장은 앞에 서있는 부모뻘 같은 할머니에게 인사도 없이 첫 마디부터  마구잡이로 반말을 쏟아냈다.

"당신의 아들인가 하는 사람 3일전에 평양에서 왔지? 집안 박살 나지 않으려면 그 새끼 당장  나오라고 해!'

할머니는 평소 인민군대에 대해 예의가 없는 무뢰한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듯 대대장의 말투와 행실을 별로 신경쓰지 않고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내 아들이 어렸을적 집을 나가 27년 만에 온 게 있어요. 무슨 일인지 나한테 먼저 알려주면 안되겠어요?''

할머니의 공손한 말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옆에서 듣고 있던 중대장이 나서서 할머니에게 소리쳤다.

"다 죽어가는 송장같은 노친은 필요 없으니까 방안에 숨어 있는 아들새끼 뒈지기 전에 빨리 밖으로 나오게 하란 말이야!''

이때 60이 넘어 보이는 남자 한 분이 대대장 앞으로 오더니 머리를 숙여서 인사를 하고는  할머니를 가리키면서 자기의 누님인데 오늘이 진갑잔치날이라 지금 한창 상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하자 중대장이 그 사람의 목덜미를 잡고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이 새끼야, 너도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어? 상을 받던 똥을 받던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니까 평양에서 온 그 새끼를 당장  내보내란 말이야! 집안으로 들어가서 다  박살을 내야 정신을 차리겠어?''

"중대장한테 멱살을 잡힌 분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부들부들 떨면서도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조카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대신 사과를 할테니 한번만 용서해 달라고 애걸하였다.

중대장의 오른쪽 주먹이 한순간에 그의 얼굴에 날라 들었고 정면을 얻어맞은 그 사람은 코피가 터지면서 그 자리에 쓰러졌다. 이를 지켜보던 할머니가 참지 못하고 중대장의 따귀를 후려갈겼다.

"이 짐승만도 못한 놈들아, 네놈들이 인민군대가 맞긴 맞아? 차라리 날 죽여라! 이 개만도 못한 놈들아!''

칠순의 늙은 할머니는 독이 올라 중대장의 한쪽 귀를 잡고  매달리듯 달려 들면서 사정없이 비틀었다.
중대장이 자기의 귀를 잡고 있는 할머니의 손을 뿌리치면서 가슴을 밀치자 할머니는 애처러운 비명소리를 지르면서 저만치 나가서 쓰러졌다.

바로 그 순간에 열차 칸에서 보았던 평양사내가 어머니가 쓰러졌다 하는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허공으로 날라와 전광석화같은 발차기로 중대장의 목젓 부위를 사정없이 올려 찼다. 중대장은 숨도 제대로 못쉬고 저만치 나가 떨어져 버렸다.

  2020년 10월 노동당 창건기념일에

차회, 5.18의 진상이 밝혀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