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줄 끊고 전담 경호팀 해체…김덕홍 비운의 망명객 되나
[중앙일보] 입력 2021.01.15 00:30
황장엽·김덕홍 홀대한 대한민국 정부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와 김덕홍 전당 자료실 부실장이 중국 베이징 한국 대사관 영사부에 망명한 지 67일 만인 1997년 4월 20일 필리 을 경유해 서울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중앙포토]
모든 것을 보장하고 도와줄 테니 망명만 결행해달라던 금석맹약(金石盟約)은 종잇장이 됐다. 입과 발을 묶더니 오랜 거처인 안가마저 살지 못하도록 다른 곳으로 내쫓았다. 최소한의 생계는 보장해줄 요량이라 여겼는데 지난 연말 마지막 돈줄마저 끊었다. 새해 벽두부터는 전담 경호팀의 해체를 추진 중이다. 지난 1997년 전 세계를 놀라게 하며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와 함께 탈북·망명한 김덕홍 전 노동당 중앙위 자료연구실 부실장에게 닥친 일이다. 대한민국 정부와 정보기관이 82세의 노 망명객에게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그 내막을 들여다봤다.
‘북한 민주화’ 활동 지원 약속 믿고
1997년 베이징 한국 대사관에 망명
황장엽 홀대 이어 와병 김덕홍에게
문자로 해촉 통보, 신변보호 비상
“속 깊은 아내는 내가 평양을 떠나던 1997년 1월 25일 아침에도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내 아내 박봉실은 우리의 정치 망명이 공표되던 날 자결을 택했다. 순박하고 단순하지만, 속대가 여간 아니게 굳은 내 아내는 그것으로써 곧 엄습할 어마어마한 고통과 굴욕과 두려움에 항거하고자 했을 것이며,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내가 처절하게 감내해야 할 가장 큰 빚과 살을 저미는 고통을 다소나마 덜어주려 했던 건 아닐까. 그래서 아내는 세월이 갈수록 나를 더더욱 아프게 한다.” (김덕홍 회고록 『나는 자유주의자이다』중에서)
김덕홍 전 노동당 자료연구실 부실장은 엄청난 망명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한국행 직후 아내의 죽음을 접해야 했던 건 황장엽(2010년 사망) 전 비서도 마찬가지였다. ‘주체사상의 망명’ 또는 ‘북한 최고위급 동반 탈북’으로 국제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의 뒤에는 두 사람의 피눈물이 배어 있었다. 다른 가족·친지들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 생사를 모르게 됐고, 제자들이나 친분이 있던 지인들은 모진 고초를 겪었다. 당시 우리 정보 당국은 ‘황장엽 여독 청산’의 대상 규모가 3000명 정도라고 파악했다.
이런 상황을 예상 못했을 리 없는데 망명을 결행한 건 1996년 2월 황 전 비서의 모스크바 주체사상 강연이 기폭제가 됐다. “주체사상은 김일성과 김정일이 아닌 내가 만든 것”이란 황 전 비서의 언급은 북한 요원들에 의해 포착됐고 김정일은 냉랭해졌다. 황장엽은 김덕홍에게 “김정일이 나를 놔둘 것 같지 않다. 욕보기 전에 자살할 수 있게 독약을 구해달라”고 했고, 결국 정치적 망명을 택했다. 막판 결심을 굳히는 데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보낸 친서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북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대한민국 정부가 책임지고 황장엽과 김덕홍의 민간차원 대북사업을 지원하고 신변 안전을 보장하며 황장엽에게는 장관급 대우를, 김덕홍에게는 차관급 대우를 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는 게 김 전 부실장의 전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과 대통령의 약속은 이젠 옛말이 됐다. 최소한의 생계보장을 위해 김덕홍 전 부실장에게 고문직을 부여해온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 측은 지난해 12월 11일자로 “해촉 통보, 해촉 위로금 ○○○만원 지급 예정”이란 짤막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국가정보원 산하 조직인 이 연구원은 과거 황장엽 전 비서가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급작스러운 해촉 통보를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지난해 11월 원장으로 부임한 김기정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문재인 정부와의 코드 맞추기 차원에서 김덕홍 밀어내기를 결정했다는 주장이다. 또 최근 친여 성향의 국정원장 출신 인사가 연구원 명예이사장으로 위촉되면서 벌어진 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정원장까지 지낸 원로 인사의 용돈 벌이를 위해 김 전 실장의 돈줄을 끊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국전연 측은 “계약만료 건은 당사자가 장기간 고문으로 재직해온 점을 고려해 연구원이 10월 말 계약을 종료하기로 결정한 사안”이라고 해명했다. “연구 자문과 경영 조언을 위해 규정에 따라 명예이사장과 고문직을 운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신변안전 보장 차원에서 이뤄져 온 경호가 대폭 축소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서울경찰청 안보수사부는 최근 청이 맡아온 김덕홍 전 부실장에 대한 경호를 강남경찰서로 이관한다고 통보했다. 이렇게 되면 오랜 기간 김 전 부실장의 의전·경호를 맡아온 전담팀이 해체된다. 김 전 부실장의 측근은 “장기간 함께하며 자식처럼 여겨온 전담팀이 떠나면 건강이 더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경호팀 안팎에서도 북한 최고지도자에 의해 ‘스탠딩 오더’(시한 없이 언젠가 반드시 이행해야 할 명령)가 내려진 상태인 탈북 인사의 보호에 빈틈이 생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고 한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우선시하는 진보성향 정부가 집권할 때마다 황장엽·김덕홍씨를 비롯한 탈북인사들에 대한 압박성 조치가 이뤄지는 데 따른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커진다. 김 전 부실장은 김대중 정부가 출범해 임동원 국정원장이 부임하고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이 추진되면서 당국과 관계가 꼬이기 시작했다고 회고록에서 밝히고 있다. 대북 특사팀으로 간 국정원 고위 간부가 “황장엽이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오면 용서해주겠다”고 한 김정일의 말을 전해오자 황 전 비서가 “정신 나간 놈”이라고 욕했고, 김 전 부실장도 “국정원이 김정일 심부름하는 곳이냐”고 따졌다는 것이다.
결국 국정원은 그해 11월 ▶외부강연과 출판 금지 ▶정치인·언론인 접촉 금지 ▶대북 민주화 사업 중단 등을 통보했고, 연구소 이사장직 해임 등을 언론에 발표했다. 또 2001년 미 의회와 단체 등에서 6건의 미국 방문 초청장을 받았지만, 신변안전 등을 내세운 김대중 정부는 허락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도 이런 흐름은 이어져 2003년 7월 국정원은 “황, 김을 국정원 안가에서 사회로 배출한다”고 일방적으로 언론에 공개했다. “인권 단체가 통제·구금 의혹을 제기한다”는 황당한 사유였고, 아무런 존칭이나 직책 거론 없이 ‘황, 김’으로 불렀다. 미국 등 국제사회의 압박에 황 전 비서의 미국 행을 마지못해 허용했지만, 김 전 부실장의 방미는 ‘신원조사 미 회보’ 등의 이유로 끝내 불허했다.
김 전 부실장의 명예가 회복된 건 박근혜 정부 들어서인 2014년 9월이다. 당시 관련 인증서를 가지고 온 정부 당국자는 “김 선생은 대한민국에 매우 소중한 분입니다. 그러니 건강을 꼭 회복하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상황은 손바닥 뒤집듯 해졌다. “북한 땅을 밟지 못하고 하직하는 한이 있더라도 대한민국 정부가 회복시켜준 명예만큼은 가슴 깊이 안고 황장엽 형님을 찾아갈 생각”이라던 노 망명객의 바람은 다시 바람 속 등불이 됐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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