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Arts

죽어선 방치

Jimie 2020. 4. 18. 09:48

 

 

영남 일보

살아선 日帝에 감시당하고 죽어선 방치…“그래서 더 왕평답구려”

  • 이춘호
  • |
  • 입력 2013-11-15   |  발행일 2013-11-15 제34면   |  수정 2013-11-15
■ 옛가요 사랑 모임 ‘유정천리’ 회원들 청송 왕평의 묘 답사
원로 작사가 정두수씨 등 참석
노래비·추모길 등 둘러보기도
이동순회장 색소폰 연주로 추모
最古 영천극장 방치엔 안타까움
살아선 日帝에 감시당하고 죽어선 방치…“그래서 더 왕평답구려”

옛가요를 좋아하는 동호인들의 모임인 ‘유정천리’ 회원들이 지난 2일 청송군 수정사 계곡에 있는 왕평의 묘소를 찾았다. 이동순 회장은 ‘황성옛터’를 색소폰으로 연주, 작사가 왕평을 추모하고 있다.

 

왕평의 초라한 묘소 전경

 
살아선 日帝에 감시당하고 죽어선 방치…“그래서 더 왕평답구려”
유정천리 회원들이 고사를 지내고 있는 모습.
살아선 日帝에 감시당하고 죽어선 방치…“그래서 더 왕평답구려”
서울 단성사가 철거됨에 따라 현재 전국에서 가장 오래 된 추억의 극장으로 평가받고 있는 영천극장.
 


지난 2일 오후 2시 어름. 청송군 파천면 수정사 옆 수정골에 있는 왕평의 묘소.

이상하게 봉분이 보이지 않았다. 일본 경찰한테 감시당한 왕평은 무덤도 번듯하게 쓸 수 없었다. 수백년째 방치된 무덤 같았다. 전국에서 모인 ‘유정천리’ 회원들은 오히려 “그 묘소가 왕평답다”고 말했다.

회원들은 왕평을 기리기 위한 고사를 지냈다. 이동순 회장(영남대 국문학과 교수)이 부는 색소폰 반주에 맞춰 황성옛터를 합창했다.

유정천리 때문에 흘러간 대중가수들은 덜 외롭다. 이들 회원은 다들 옛가요에 푹 빠져있다. 유행가라도 배호·이미자까지만 애창한다. 그 이상은 옛가요 범주에 넣기 힘들단다.

이 회장은 수백곡의 옛가요 가사를 다 외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아코디언과 색소폰을 연주하며 ‘유랑악사’를 자처한다.

이날 왕평 기행에 불편한 노구를 이끌고 묘소를 찾은 원로 작사가가 있었다. 정두수씨(78)였다. 그는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와 ‘그리움은 가슴마다’, 남진의 ‘가슴 아프게’, 나훈아의 ‘물레방아 도는데’, 문주란의 ‘공항의 이별’, 은방울자매의 ‘마포종점’ 등을 남겼다. 이 밖에도 안평선(한국방송인회 상임부회장, 전 KBS PD,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 프로듀서)·이준희(성공회대 외래교수, KBS가요무대 자문위원)·김광우(가요사이트 ‘퐁키’ 대표)·남인수 연구가인 권혁규 대구세경정밀기어 대표도 추모하기 위해 참석했다. 1996년부터 금년까지 18회째 왕평가요제를 개최해 온 김천중 왕평가요제 추진위원장은 왕평가요제를 개최하게 된 동기와 배경을 설명했다.

회원들은 다음 날 서울 단성사 극장이 철거된 이후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관으로 주목받고 있는, 뼈대만 남은 구 영천극장과 영천문화원 바로 옆 조양공원에 세워진 황성옛터 노래비(89년), 왕평길, 숭렬공원 옆에 있는 생가터 등을 둘러봤다. 영천극장을 본 회원들은 “정말 기막힌 콘텐츠인데 방치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며 “영천시 관계자들이 지역 향토자료로 매입해 옛가요운동의 메카로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 유정천리는 뭘 하는 모임인가

유정천리(有情千里).

2010년부터 진주(남인수의 고향), 목포(이난영의 고향) 등 옛가요 주요 유적지를 답사하고 옛가요를 보전하고 연구하는 단체다. 유정천리는 1959년 상영된 영화주제곡으로 반야월 작사, 김부해 작곡에 박재홍(울고 넘는 박달재)이 불렀다. 그런데 이 노래는 자유당의 3·15 부정선거 한 달 전 비명에 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유석 조병옥을 위한 ‘추모곡’으로 더 빛을 발한다.

‘가련다 떠나련다 해공 선생 뒤를 따라/ 장면 박사 홀로 두고 조 박사도 떠나갔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당선 길은 몇 굽이냐/ 자유당에 꽃이 피네 민주당에 비가 오네’

2009년 11월 서울 필동 ‘한국의 집’에서 창립 모임을 한다. 창립 기념으로 ‘유정천리 옛 가요 명곡 모음’ CD를 제작한다. 이어 서울 예술의 전당 예술정보관에서 축음기 콘서트 개최로 이목을 집중시킨다. 이듬해 경산시민회관에서 경산 출신의 향토가수 ‘가수 방운아 기념사업회’와 함께 심포지엄도 개최한다.

이 밖에 연세대학교에서 가수 이애리수 타계 1주년 기념 이애리수 대표곡 선집 CD를 제작한다. 서울 안국동에서는 ‘조선 재즈 카페’ 행사도 연다. 이어 백년설, 남인수, 진방남, 강석연 등을 위한 CD도 제작한다. 매년 광복 이전 명가수 달력을 내고 있다.

지난 5월에는 경남 진주에서 가수 남인수, 작곡가 이재호, 작곡가 백영호 관련 유적 답사를 진행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 황성옛터( 왕평 작사, 전수린 작곡, 이애리수 노래)

 황성(荒城)의 적(跡) / 이애리수(李愛利秀) ;‘황성옛터 일제때 금지곡 설움’

고 박정희 대통령이 기분 좋은 술좌석에서 항상 황성옛터를 즐겨 불렀다고 한다.

황성옛터는 일제 강점기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래며 불렀으며 노래속의 황성은 주권을 잃은 대한제국을 의미한다.

 

특히 이 노래를 작사한 왕평은 경북 영천이 고향이란다.(출생지는 모텔이 됨) 왕평은 작고한 뒤에도 일제의 제지로 고향에도 모셔지지 못하고 그의  주검은 청송 수정사 앞에 봉분도 없이 묻혀 있어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아리랑과 함께 국민가요가 된 황성옛터(발표 당시 '荒城의 跡')를 부른 최초의 국민가수  이애리수는 1910년 개성 출신으로 본명은 이음전(李音全), '음전'이란"언행이 우아하고 점잖다"라는 뜻이다. 그의 예명인 애리수(愛利秀)도 영어 이름인 앨리스(Alice)를 우리 발음화한 것이다.

작곡가 전수린의 본명은'전수남'이고 작사가 왕평의 본명은'이응호'이다.

 

9살 때 잠깐 동안 아역 배우로 활동을 한 것도, 워낙 키가 크고 예쁜 외모 때문에 극단주들이 꾸준히 요청하는 바람에 이뤄진 것이다.

10세 때에 막간 가수로 있다가 18세에 황성옛터를 부르게 되며 22세에 연희전문학교 출신 배동필과 우여 곡절 끝에 가수라는 신분을 숨기는 조건으로 결혼하여 슬하에 27녀를 두었으며, 대중 앞에서 모습을 감췄다. '배동필(裵東必)은 '큰 키에 잘 생긴 얼굴, 부잣집 외아들. 어디 하나 흠 잡을 데가 없는 청년이었다.

자식들도 그들의 어머니가 황성옛터를 부른 것을 대학 졸업 때에 비로소 알 정도로 철저히 숨겼으니 세인들이야 아무도 알 수가 없었는데 ...2009년에 노환으로 별세를 했다고...

 

그녀는  미국 여성이 설립한 신식 학교로서 일제에 항거하는데 앞장 선 개성의 명문 여학교 '호수돈 여고'를 졸업했다.  재학시 학교에서 줄곧 1등을 하는 등 공부를 잘 했고, 반장을 도맡아 하면서 적극적인 학창 생활을 했다.

 

황성옛터는 1928년 단성사에서 열린 극단 취성좌(聚星座) 공연의 막간 무대에서 18세 가수 이애리수의 노래로 처음 소개됐고, 1932년 빅타 레코드에서 `荒城의 跡’이라는 음반으로 발매된 후 당시로는 대단한 물량인 5만장이 팔리면서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고려 옛 궁궐터인 개성 만월대의 쇠락한 모습에 나라를 빼앗긴 아픔을 빗댄 가사 덕분에 조선총독부의 압력에도 전국적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가 국민가요가 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가요 '황성옛터'를 부른 이애리수(사진ㆍ99) 여사,

결혼과 동시에 한 평생 대중앞에서 사라진 뒤 지금은 백수(白壽)를 바라보는 노인. 

'황성옛터'가 세상에 나온 지 꼭 80년이 지난 2008년 가을, 사랑을 좇아 화려했던 과거를 미련 없이 버린 채 

그 긴 세월을 꿋꿋하게 살아온 지금  백수(白壽)를 바라보는 전설 속 여가수 처음으로 언론앞에...

 

'황성옛터’ 이애리수씨가 2009년 3월 31일 향년 99세 노환으로 별세했다.(경향신문 2009. 3. 31)

이애리수씨 노래 듣기<아래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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