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귀순 어민 강제 북송’ 사건 관련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을 지난 1일 국가정보원법상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하면서 서 전 원장이 각종 내부 보고서에 북송에 불리한 정황을 빼라고 반복 지시했다는 내용을 공소장에 적시한 것으로 9일 알려졌다. 공소장엔 서 전 원장의 지시로 국정원과 합동조사팀의 보고 문건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구체적으로 담겼다.
법무부가 9일 국회에 제출한 공소장에 따르면, 2019년 11월 1일 북한 선원들이 NLL을 넘어 남하를 시도하자 서 전 원장은 김모 당시 국정원 3차장에게 법적으로 탈북민들을 북한에 돌려보낼 수 있는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지시를 전달받은 대공수사국 직원들은 ‘울릉도 동북방 해상 北 선원 나포시 신병 처리 검토’라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 초안에는 북한 선원들이 귀순 의사를 밝혔다는 사실 등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이에 서 전 원장이 같은달 3일 보고서 초안을 보고받으면서 “흉악범인데 그냥 돌려보내면 안 되나”라고 했다는 것이다.
어선이 우리 당국에 나포된 지 이틀 만인 2019년 11월 4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책 회의에서 강제 북송 방침이 결정되자, 서 전 원장이 수차례에 걸쳐 보고서 내용을 수정하도록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 검찰의 수사 결과다. 그 결과 보고서 중 “일반 형사절차에 의거, 선박 혈흔감정과 증거 압수수색 등을 처리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 등 북한 선원들에 대한 강제 수사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문구가 삭제됐다고 한다.
서 전 원장은 다음날에도 ‘대공혐의점 희박’이라는 보고서 문구를 보고 “NSC에서 (북송이) 결정됐는데 대공혐의점 희박이 뭐야?”라며 이를 ‘대공혐의점 없음’으로 수정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이는 탈북 어민들에 대한 추가 조사 없이 이들을 북송하면 된다는 취지의 지시였던 걸로 검찰은 의심한다. 보고서에선 ‘귀순 요청’이란 표현도 삭제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시기 정부 중앙합동정보조사팀의 보고서도 서 전 원장 지시로 대거 수정됐다고 한다. 서 전 원장은 11월 4일 3차장에게 “지금 쟤들(북한 선원) 16명이나 죽인 애들이 귀순하고 싶어서 온 거겠냐, 지들 살려고 온 것이지. 우리는 북송하는 방향으로 조치 의견을 넣어가지고 보고서를 만들어줘”라고 지시했다. 3차장이 “두 번이나 실무부서에서 반대했다”고 하자 서 전 원장은 “그냥 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 지시를 받은 3차장은 실무자들이 작성한 보고서 중 ‘진술 검증과 거짓말탐지기 검사 등을 하겠다’는 향후 조사 계획을 삭제하고, ‘탈북 어민들은 진정한 귀순으로 보기 어렵고 희대의 살인범으로 우리 정부가 보호해야 할 가치가 없다’는 등의 문구를 추가하도록 했다.
11월 5일에는 합동조사팀장이 국정원 대공수사국 직원으로부터 “북송이 BH의 지침” “귀순이라는 용어가 있으면 곤란합니다” 등의 말을 듣고 다음날 새벽까지 직접 보고서를 수정하기도 했다. 그 결과 ‘동해 NLL 월선 귀순’은 ‘동해 NLL 월선 나포’로, ‘귀순 동기’는 ‘월선 동기’로, ‘남하 경로’는 ‘선박 이동 경로’로 바뀌었다. ‘귀순 의사 표명’ ‘거짓말탐지기 심리검사’ ‘탈북민 정착 지원 절차 진행할 수 있도록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 신병 인계’ 등 단어는 삭제됐다고 한다.
검찰은 “서훈 전 원장 등이 공모해 합동조사팀 공무원들로 하여금 예정된 합동조사 계획 및 본래의 규정과 절차에 무관하게 강제북송 결정에 부합하는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함으로써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적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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