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강성 지지자들은 28일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 반대표를 던지지 않은 이른바 ‘반란 의원’ 색출에 나섰다. 전날 표결에서 민주당에서만 최소 31명의 이탈표가 나왔는데, 이들을 가려내 내년 총선에서 불이익을 주는 등 ‘공개 심판’을 하자는 취지였다. 일부 친명계 의원과 당내 인사들 역시 몇몇 의심 의원들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강성 지지자들에게 동조했다. 헌법이 정한 무기명 투표의 정신을 부정하고 헌법 기관인 의원들에게 일방적 ‘자백’을 강요한 것이다. 이에 떠밀려 이날 하루 동안 20여 명의 의원이 “난 아니다. 반대표 던졌다”고 직간접적으로 공개했다.
이 대표 팬 카페 ‘재명이네 마을’과 친야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이날 ‘수박(민주당 내 보수 인사) 리스트’ ‘낙선 명단’ 등의 제목을 단 반란표 의원 명단이 올라왔다. 체포동의안은 무기명 투표이기 때문에 누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평소 이 대표에게 비판적인 비명계 의원들이 이 리스트에 들었다. 이들은 “1급 역적 수박을 색출해야 한다”며 의심 의원들의 휴대전화 번호도 공개했다. ‘개딸(개혁의 딸)’ 등 강성 지지자들은 비명계 의원들에게 “부결표를 던졌느냐” “양심 고백하고 자수하라”고 문자 폭탄을 보냈다.
일부 친명계 의원과 당직자들도 동조하며 이런 움직임에 기름을 부었다.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무기명 비밀투표 뒤에 숨는 것은 비겁하며, 본인이 밝히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했다. 그는 특정 의원의 실명을 거론하며 “어떤 표결을 하셨는지 당당하게 밝힐 생각이 없느냐”고 했다. 친명계 김용민 의원도 문자 폭탄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비명계 중진 의원을 향해 “동지에 대한 신뢰와 예의가 우선”이라고 저격했다.
강성 지지자들의 문자 폭탄 공격에 일부 의원들은 “가결표를 던졌다는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부결표를 던졌으니 함부로 얘기하지 말라”는 등 직접 답문을 보내기도 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이재명 대표는 “의원의 개인 표결 결과를 예단해 명단 만들어 공격하는 행위는 당 단합에 도움이 안 된다”며 색출 행위를 중단해 달라고 했다.
강성 지지자들은 비명계 의원들을 향한 각종 검증되지 않은 의혹도 제기했다. 비명계 의원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진을 올리며 “자신들끼리 은밀한 얘기를 나눴다” “이 상황에서 웃고 있다”고 하는가 하면, “비명계가 공천 관련 딜을 하려 했는데 이재명 대표가 거절했다”는 말도 나왔다. 이들은 의심 의원들에게 문자를 보낸 뒤 체포동의안에 부결표를 던졌다는 대답을 들으면 ‘수박 리스트’에서 이름을 빼주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색출 광풍이 19년 전 한나라당 박창달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사태를 연상시킨다는 말이 나왔다. 당시 표결에는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 의원 중 최소 35명이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고 이에 따라 박 의원 체포동의안은 부결됐다. 이에 반발한 열린우리당 평당원들은 “체포동의안에 반대표를 던진 의원을 색출하자”며 당 홈페이지에 ‘찬반투표 자수 요구’를 올렸고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자백 릴레이가 시작됐다. 자신의 투표 결과를 공개한 의원 수는 50명을 넘었고, 답변을 제출하지 않은 의원들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이번 색출 사태는 19년 전보다 한층 진화했다는 게 정치권의 평가다. 당시는 당 게시판을 통해 작업이 이뤄져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는 개별 의원들의 휴대전화를 실시간으로 공략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성 지지층들 사이에선 “수박 의원 지역구로 이주해 총선 때 심판하겠다”는 극단적 주장까지 나왔다. 의원들의 공개 자백도 빠르게 이어지고 있다. 오영환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의 상식 밖 체포동의안을 국회에서 부결시켰다”고 했고, 권칠승 의원은 “찬성표를 던진 의원 명단에 제 이름이 있어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사실이 아닌지라 어이가 없고 황당하다”고 했다. 이병훈 의원도 “민주당 광주시당위원장으로서 당연히 부결 투표했다”고 했다. 고영인 의원은 ‘수박 인증 제대로 하셨다’는 문자를 받고 “나는 부표를 던졌으니 함부로 이야기하면 가만 안 있을 겁니다”라고 답했다.
이재명 대표는 강성 지지자들의 색출 작업이 과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이번 일이 당의 혼란과 갈등의 계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민주당을 사랑하는 당원들은 중단해주셔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직자들은 이 부분을 유념하고 의원 및 당원들과 소통을 강화해 해소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당대표 비서실장인 천준호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정확한 정보도 아닌데 미루어 짐작해서 특정인을 낙인찍는 건 당의 단합에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초선 강경파 그룹인 ‘처럼회’ 소속 황운하 의원도 통화에서 “지금 국정 지지율이 떨어져 야당의 역할이 중요한 때인데 찬반 표결한 의원을 색출해내는 행동은 당의 단합에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최강욱 의원도 “심정이야 충분히 느낄 수 있다”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다만 다수의 의원들은 본지 통화에서 “개딸들의 지금 행태는 지나치다”면서도 실명 비판은 꺼렸다. 한 중진 의원은 “잘못하면 내가 강성 지지자들의 타깃이 될 상황”이라고 했다. 당 일각에서는 “개딸들의 색출 작업도 문제지만, 국회의원이 이런 압박에 밀려 무기명 투표 결과를 자백하는 게 더 큰 문제”라는 말도 나왔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양심과 양식 있는 분들이 소신을 갖고 투표하는데 그걸 반란표라고 하면 되겠나”라며 “(개딸들의 색출은) 소신에 따라 진행한 무기명 투표이기 때문에 누구인지 단정하기 어렵고 헌정 질서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자 도전”이라고 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팬덤 정치의 심화로 당내에서 조금이라도 반대 의견이 나오면 해당 행위라고 비난하고 그런 사람들을 색출하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며 “비판 기능이 말살되는 포퓰리즘의 극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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