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 Human Geography

和製漢語[わせいかんご]

Jimie 2022. 12. 5. 15:47

和製漢語わせいかんご

 

출처 www.youtube.com/channel/UCUuU8Z5n_A3p_0XKiojvfHA/community

민족(民族), 민족주의(民族主義), 문화(文化)、경제(経済)、종교(宗教)、철학(哲学)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한자어들은 모두 일본에서 도입된 어휘다.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먼저 서구문물을 받아들여 이를 내재화하면서 개념화했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현대 중국어에서 사용되고 있는 어휘의 상당수가 일본에서 수입된 것이다. 이 어휘들을 일본에서는 일본이 만든 한어라고 해서 ‘와세이캉고’(和製漢語わせいかんご)라 하고 중국에서는 ‘신한위’(新漢語xinhanyu)라고 한다. 와세이캉고(和製漢語)는 일청(日清), 일로(日露)전쟁이후 중국을 근대화시켜야 하겠다고 느낀 많은 인텔리계층이 일본유학과정에서 많은 서적을 접하고 이를 중국어로 번역하면서 중국어에 새로 편입된 것들이다. 의식(意識)、우익(右翼)、좌익(左翼), 계급(階級)、공산주의(共産主義)、공화(共和)、실연(失恋)、진화(進化)、접문(接吻:kiss)、유물론(唯物論)같은 딘어 들도 이런 과정을 통해 중국어가 된 것이다. 단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国)의 인민(人民)과 공화국(共和国)도 와세이캉고(和製漢語)인 셈이다. 한자어지만 일본에서 만들어져 중국으로 역수출된 단어들은 사회주의(社会主義), 공산당, 간부(幹部)등 상용어를 포함해 800단어 이상인데 마오저동(毛沢東), 량치차오(梁啓超)、쑨원(孫文)、루쉰(魯迅)등은 이에 대해 전혀 거부감이 없었고 오히려 반겼다. 마오저동(毛沢東)은 정풍운동(整風運動)을 벌이면서 문서표현을 풍부하게하기 위해서는 외국어에서 본받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가 좋아한 대표적인 와세이캉고(和製漢語)는 간부(幹部)란 단어였다. 언어학자들은 마오저동이 와세이캉고가 없었더라면 모택동사상(毛澤東思想)을 어떻게 썼을까 라고 할 정도다. 중국의 대문호 루쉰(魯迅)은 일본에서 접한 신문물인 만년필(万年筆) 사진(写真)같은 단어를 좋아했다. 량치차오(梁啓超)는 1898년 무술변법(戊戌変法)이 실패하자 일본에 망명해 일본의 정치소설 ‘佳人之奇遇,’ ‘経国美談’등을 중국어로 번역하면서 많은 신조어를 중국어에 편입시켰다. 물론 와세이캉고에 대한 반발도 있었다. 중국의 대표적 번역가인 옌푸(厳復)는 ‘와세이캉고’보다는 주로 중국의 고전을 차용해 신조어를 만들자는 입장이었다. 예를 들면 물리학(物理学)은 격치학(格致学), 경제학(経済学)은 계학(計学)、사회학(社会学)은 군학(群学), 형이상학(形而上学)은 현학(玄学)으로 하자고 주장했다. 또 메이지 시대 일본에 유학중이던 펑원주(彭文祖)는 1915년에 쓴 저서 ‘盲人瞎馬新名詞’(맹인과 눈먼 말의 신명사)라는 저서에서 宗旨、権利、義務、代価, 支那、取締、取消、引渡、手続、目的、法人、当事者、第三者、強制執行、親属、継承、文憑、盲従、同化、場合、衛生등 59개를 중국인이 신조어로 받아들인다면 수치스런 행위로 망국멸족(亡国滅族)에 이르게 된다면서 강력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옌푸가 주창한 중국식 신조어는 서양의 신문물에 대입하기에는 개념이 모호해 이내 폐기됐고 펑원주가 망국멸족에 해당한다면서 맹비난한 일본식어휘의 상당수는 그의 희망과는 정반대로 거의 고스란히 중국어에 편입돼 사용되고 있다. 위에 열거된 단어가운데 支那는 일본이 중국을 얕잡아볼 때 쓰는 어휘라 중국에서는 쓰이지 않고 있고 取締는 일중 양국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통용된다. 일본에서 ‘토리시마리야쿠’(取締役とりしまりやく)라고 하면 기업의 Executive란 위미인데 반해 중국에서는 이를 ‘취띠’(取締qudi)라 읽고 행정력 즉 공권력을 집행한다는 단속(crack down)의 의미로 쓰인다. ‘場合’는 중국본토에서는 쓰이지 않지만 타이완 등 다른 중화권 지역에서 일본어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중국은 그러나 와세이캉고(和製漢語わせいかんご)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일본의 잔재라고 해서 이를 중국어 렉시컨(lexicon)에서 제외하자고 주장하는 대신 ‘신한위’(新漢語xinhanyu)라는 명칭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